<요지경 세태> 삐뚤어진 웨딩문화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14 1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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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돈…남 눈치 보면서 결혼하는 세상

[일요시사=사회팀] 본격적인 결혼 성수기인 10월, 넘쳐나는 청첩장에 주말은 온통 결혼식으로 도배된다. 그런데 요즘 결혼식에는 뭐가 그렇게도 많은 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문화가 확산되며 결혼준비 과정에서 작고 큰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의 결혼문화, 무엇이 문제일까.




시대가 변하면서 결혼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다양한 신조어들이 결혼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뜨거운 감자인 ‘꾸밈비’는 예비 신혼부부를 갈라놓는 씨앗이다. 실제로 꾸밈비와 같은 신종 문화 때문에 파혼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올바른 결혼문화를 망치는 허례허식에 대해 알아봤다.

예단은 폐백 시 시부모와 신부가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에서 비롯됐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예물을, 시부모는 신부에게 답례로 저고릿감을 준비했다. 부모에게는 예물로 옷이나 옷감을, 시가의 친척들에게는 관계에 따라 각각 한 가지씩을 선물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단은 이렇듯 따뜻했다. 그러나 지금의 예단은 주로 현금으로 주고받게 되면서 예비부부 사이에 심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보통 신부 측이 예단을 보내면 신랑 측에서는 신부가 옷이나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게끔 일정금액을 다시 돌려보낸다. 우리는 이것을 ‘봉채비’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 이 봉채비는 기본이고, ‘꾸밈비’라는 새로운 비용이 생기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봉채비와 함께 명품가방을 선물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꾸밈비’는…
룸살롱 용어

어느새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꾸밈비’는 결혼을 앞둔 신랑 집안이 신부에게 꾸밀 수 있는 비용을 주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그런데 이 꾸밈비는 여성들 사이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명품가방’을 선물해주는 일종의 공식으로 굳어버렸다.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이 꾸밈비는 남편과 시댁 쪽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게 자신이 이정도로 인정받는다는 걸 인증해주는 척도로 자리 잡게 됐다.


과거에 결혼한 여성들에게 꾸밈비를 물어보면 대부분 ‘모른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꾸밈비가 여성들 사이에서 당연한 권리로 자리잡게 된 데는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L과 M 카페가 큰 공을 세웠다. 물론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꾸밈비 논란 때문에 파혼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리는 걸 보니 심각성이 꽤 크다.

문제는 이 꾸밈비의 어원이다. 도대체 이 용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꾸밈비의 어원은 놀랍게도 화류계 직업여성들이 주로 쓰던 용어로 밝혀졌다. 꾸밈비는 직업여성들이 새로운 업소로 들어갈 때 받는 돈이다. 즉 직업여성이 다니던 술집을 그만두고 새로운 술집으로 옮길 때, 치장하라고 선불로 받는 업소 지원금을 뜻한 것. 이들은 꾸미는 데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 화류계에 받을 딛는 여성의 경우, 옷, 화장품, 향수, 미용실 비용 등 수백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꾸밈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업주들은 선불금으로 수백만원 정도 쥐어준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 들어온 직업여성에게 의무적으로 주는 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꾸밈비’다. 업주 입장에서는 ‘예쁘게 꾸미고 우리 업소에서 오래 일하라’는 의미로 주는 돈이 된 것이다.

이후 화류계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과거를 숨기고 결혼을 하려 할 때, ‘남자에게 가는데 당연히 꾸밈비를 받아야 되지 않겠냐’며 남성들에게 꾸밈비를 요구하면서 잘못된 문화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게 됐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 꾸밈비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관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요구하니 그저 들어주는 입장이었던 것. 결혼의 본질을 흐리는 꾸밈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꾸밈비·애교예단 정체불명 겉치레 눈살
“누구는…”불필요한 명분에 멍드는 혼례

또한 ‘애교예단’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혼할 때 신부측에서 시댁에 보내는 물품을 흔히 예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예단과 더불어 애교예단까지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예단은 반상기, 은수저, 이불 등을 말하는데 여기에 손거울, 귀이개, 동전주머니 등을 보석함에 넣어 함께 보내는 것이 애교예단이다.

애교예단의 취지는 값비싼 예단 대신 저렴하고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대산하자는 것이었는데 몇몇 유명 결혼준비 인터넷 사이트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필수처럼 자리매김했다. 이 애교예단 한 세트는 최소 30만원에서 50만원의 추가비용이 들어 예비 신부들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다. 남들이 다 하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30만∼50만원이라는 액수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꾸밈비’나 ‘애교예단’이나 결혼문화 허례허식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전통 결혼방식은 결혼의 전반적인 비용을 신부의 부모가 부담한다. 신랑의 부모는 결혼식 전날 결혼식 예행연습을 위해 모인 모든 가족들의 식사비용과 신혼여행 비용도 부모의 몫이다. 본인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에는 전통적 방식을 따라, 신부가 부담해야 할 부분과 신랑이 부담해야 할 부분을 나눠서 낸다.

한국과 대조
미국 결혼문화

미국의 경우 예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고액의 선물이나 현금을 보내지 않는다. 굳이 선물을 한다면 결혼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나 집안 장식 용품 정도다. 반면 한국의 결혼식은 미국의 비해 확실히 거품이 많다. 미국은 한국처럼 남자가 집을 장만해야하는 문화가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월세 아니면 자가이므로 새로 시작하는 커플들은 대부분 렌트에서 시작하고 여유가 될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한다. 그리고 약혼을 한 후 동거를 시작하는 커플들이 많은 탓에 이미 거주할 집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한국은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한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급하게 식이 진행된다. 반면 미국에는 이러한 공장형 웨딩홀이 없다. 결혼식 자체가 하루 종일 즐기는 파티다. 예식 장소는 일반적으로 교회를 많이 선호한다. 그 외에 공원이나 집 뒷마당 등 하객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면 어디든 결혼식 장소가 된다. 하객이 소수일 경우에는 시청, 카운티 오피스, 법원 등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주례를 하기 위한 라이센스가 필요하다. 이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 주례를 서야 그 결혼이 정식으로 인정받는다. 그 이유는 한국처럼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식 자체가 곧 혼인신고를 의미한다. 결혼 직후 두 사람이 정식적인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결혼증명서에 사인해 주는 사람이 주례다.

교회 목사들 대부분은 라이센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예식을 많이 올리는 편이다. 교회 이외에 시청이나 카운티에서도 주례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상주하고 있다. 일반인 중에서도 라이센스를 소지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인에게 주례를 부탁해도 된다.

보통 결혼 날짜가 정해지면 혼수용품을 장만할 수 있는 쇼핑몰에 ‘웨딩 레지스트리’라는 것을 등록한다. 예를 들자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 선물로 받고 싶은 품목 리스트를 작성해 등록한다. 그러면 결혼식에 초대받은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그곳에 예비부부의 이름을 말하면 그들의 희망하는 선물 리스트를 공개한다. 지인들은 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골라서 구입하면 된다. 다른 지인이 이미 구입한 품목은 리스트에서 삭제된다.

높아지는 비용
늦어지는 연령

선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선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선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다. 각자의 경제적 상황에 맞춰 선물을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부담도 덜해 합리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선물을 하지 못했을 경우는 축의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모든 하객들이 피로연장으로 장소를 옮긴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파티’가 열린다. 준비된 식사가 나오고 중간에 다양한 이벤트들이 곁들여진다. 신랑신부 들러리들은 한명씩 일어나서 주인공들과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그들의 결혼에 대해 스피치를 한다. 그리고 결혼식은 ‘초대된 사람’만 올 수 있다.

한국의 결혼식은 결혼 당사자들의 인맥보다 부모님의 인맥이 훨씬 더 많지만 미국은 신랑 신부 중심의 인맥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전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참석 여부를 알려줘야 하고, 신랑 신부는 이를 토대로 피로연의 좌석을 마련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결혼식은 큰 부담 없는 그들만의 축제인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12년 전국 결혼 출산 동향 조사’ 자료를 보면 2010년에 5044만8천원이었던 평균 결혼비용이 2년 사이에 7750만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1년 5478만9000원에서 2012년에 7750만원으로 2271만1000원이나 증가해 1년새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돈으로 얼룩지는 허니문
입국해 파혼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결혼비용으로 각각 얼마씩을 준비하고 있을까. 먼저 남자의 결혼비용은 1억 735만원으로 3540만원인 여자 결혼비용에 비해 3배 더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비용중 결혼 당사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은 남자가 3496만7000원 여자가 1623만9000원으로 역시 두 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결혼비용 중 가장 부담스러운 항목은 남자는 신혼 주택 구입 자금, 여자는 신혼 살림 구입 자금이 각각 1위를 차지하며,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했다고 해도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공식은 아직 공고하다.

또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초혼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2013년에 조사한 바로는 서울시민의 경우, 초혼연령이 남자는 32.4세, 여자는 30.2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의 초혼 평균연령은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오름세다. 이 같은 초혼연령 추세는 부담스러운 결혼비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택비용과 예단을 줄일 수 있는 정부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허례허식을 없애고 결혼을 간소하게 하려는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한 허례허식

 
현재 한국의 혼인문화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일정한 틀조차 없는 모습이다.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식을 통해 혼인의 아름답고 의미로움이 전달되지 못해 마음이 겉도는 것 같고, 식이 길어져 지루해지면 축하할 흥미를 잃게 되니 식 진행을 위한 투자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과거에는 신부측에서는 시집을 보낸다고 말했고 신랑측에서는 며느리를 들인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요즘 결혼은 정확히 말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제는 남자 여자 편을 갈라 혼인을 준비할 때가 지났다. 양가의 합의 아래 혼인준비를 위한 경비를 각출해 상술에 의해 만들어진 쓸데 없는 허례허식은 배제하고, 뜻 깊은 격식을 간추려 가능하면 혼인하는 신랑신부와 하객이 하나가 되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에서는 결혼풍속이 서서히 실용적으로 변하고 있기도 하지만 ‘평생에 한번’이라는 말로 합리화되는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천층만층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결혼식이 조금 정돈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해외 이색 결혼식
단돈 1700원으로 웨딩마치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커플이 1파운드(약 1700원)를 사용해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예술가 죠지나 포르테우스(36)와 싱어송라이터 시드 이네스(39)는 자신의 집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결혼식 하객들에게 피로연에서 먹을 음식을 직접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인근 교회 목사가 무료로 주례를 서 주었다. 결혼식에서는 죠지나의 이모가 케이크를 직접 구웠으며, 시드의 아버지가 색소폰 연주로 결혼을 축하했다. 

영국에서는 평균 결혼 비용이 2만 파운드(약 3400만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혼인신고에 드는 비용인 70파운드(약 12만원)는 어쩔 수 없지만, 결혼식에 드는 비용은 신부의 중고 드레스를 사기 위해 사용한 1파운드뿐이었다.

신부인 시드는 “우리는 크고 화려한 결혼식을 바라지 않았다”며 “우리의 결혼생활은 매일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지금까지 본 중 최고의 결혼식이다”고 전했다.

이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정말 아름다운 커플이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허례허식 없이 결혼하는 이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결혼식이 많이 있어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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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