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임시거처' 환자방에선 지금…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14 13: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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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 없으면 입원도 못한다

[일요시사=사회팀] 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대형병원을 찾는다. 그만큼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병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생긴 것이 ‘환자방’이다.




지방에 있는 암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상경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의료서비스의 질이 지방에 비해 높은 서울 대형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넘쳐나는 환자들을 수용할 병실은 부족하다. 몇몇 병원들은 이에 병실을 추가적으로 늘렸지만 여전히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

서글픈 환자들

지방에는 암환자를 수용할만한 의료기관이 미흡한 실정이다. 보통 이름난 종합병원이 수도권에 몰려있으니 지방 환자들이 상경을 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서울에 몰려있는 유명 종합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다보니 병실이 부족해 환자나 환자가족이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게 ‘환자방’이다.

유명 대형병원 인근에는 대부분 환자방들이 몰려있는데, 이중엔 고시원이나 원룸을 개조한 무허가 시설도 많다. 똑같이 의료보험을 내는 국민인데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서러운 환경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다. 통원치료가 계속된다면 입원조치를 취해야 함이 맞지만 병원들은 병실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원치료 환자까지는 여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자방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A대형병원 암센터에 찾아갔다. 병원 인근에는 원룸 등 주택가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건물마다 ‘환자방’이라고 크게 써져 있었고 홍보 차량도 확인됐다. 환자방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한 환자방 관리인을 만났다. 이곳에 주로 거주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환자’들이었다. 이들은 지방에서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임시로 거주하며 치료에 임한다. 문제는 이 환자방 이용금액이 결코 만만치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겐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관리인은 “치료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며 “지방에서 서울까지 매번 오가는 것이 힘드니 환자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요즘엔 시설이 많이 좋아진 편이다”고 말했다.


환자방의 일반적인 방 크기는 10㎡(3평) 정도로 매우 작은 편이다. 이러한 작은 방은 1일 기준 3만∼4만원 선이고 한 달에는 90만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가격에 따라 화장실은 공용과 개인으로 나뉜다. 조리 시설이 딸린 거실 및 싱크대는 공동으로 사용한다. 위생은 관리하기 나름이지만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창문이 딸려 있기는 하지만 건물에 막혀 온전한 햇볕이 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주거 용도가 아닌 건물을 방으로 쪼개 이용하다 보니 옆방의 소음도 종종 들린다. 심지어 옆방의 부부가 치료비 때문에 싸우는 내용까지 알 수 있었다. 환자가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환자방을 택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수요가 많아 환자방은 대부분 만실이다.

유명 대형병원들 인근에 ‘우후죽순’
고시원·원룸 개조한 무허가 시설도

대형병원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병원관계자들은 이러한 세태를 알고 있지만 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환자방의 존재가 환자들에게는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현상의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환자들을 수용할 만한 병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현상 때문이다. 즉 지방에는 믿을 만한 대형병원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 한마디로 ‘의료 불균형’ 때문이다. 몇몇 대형병원들은 부족한 병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실을 늘렸지만 단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원래 살던 지역이 아니라 수도권에서 암 치료를 받는 환자 비율은 제주도의 경우 95.0%다. 대도시에도 많아 광주의 암 환자 중 48.8%는 수도권에서 치료를 받고, 울산은 66.6%나 된다. 이처럼 암 환자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특히 심각한 상황이다. 

수도권의 대형 종합병원 근처에는 소규모 환자방이 있지만 가장 많은 곳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국립암센터’ 앞이다. 이곳은 특히나 환자방이 밀집해 있다. 그리고 굳이 환자방이란 간판을 내걸지 않아도 남은 방을 빌려주는 형태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국립암센터에 많은 환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대학병원보다 저렴한 진료비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 항암 치료 후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머물 곳이 없어 환자방을 찾는 것이다. 국립암센터는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 사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먼 곳에서 올라온 환자들은 매번 모텔이나 호텔을 전전할 수 없으니 중장기적으로 머물 환자방을 찾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별도의 시설을 마련하지 않고 가정집의 빈 방을 활용해 환자방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업’ 아닌 ‘영업’이 성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암 환자가 2010년을 기준으로 한 해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통계청이 밝힌 2011년 사망 원인에는 남녀 모두 암으로 인한 사망이 총 사망자의 47.4%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 암 발생률도 해마다 증가해 2010년에는 202만53명의 암 환자가 새로 생겨났다. 한국 국민이 평균 기대수명인 81세까지 살 때 평생 3명 중 1명, 36.2%가 암에 걸린다. 이제 암은 보편적인 질환이 됐지만 암 치료와 자활에 드는 사회경제적·심리적 비용은 여전히 높다. 건강보험 보장 항목이 늘어났고, 암보험 가입률도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수술, 진료비 등을 제외한 비용 또한 만만찮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3평짜리 하루 3만∼4만원

물론 암 환자들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중증환자 산정특례제도’를 이용해 5년 동안 건강보험 항목 중 5%만 납부하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암 환자들은 “치료비용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의료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특진 진료비나 각종 검사비용, 항암 치료가 끝나고 나면 시작되는 방사선 치료비 등은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국립암센터 사회사업실장을 지낸 한 관계자는 “환자방은 100만명 넘는 암 환자의 치료와 재활 과정을 환자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우리 현실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암 발병 전후의 사회적·심리적·경제적 비용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 때문에 암 환자들이 환자방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특히 환자방에 머문 경험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치료 경험 자체가 박탈감과 우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지역 의료 기반을 확충하거나 지방 환자들을 위한 별도의 제도를 마련해 도와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독한 치료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이상적인 대안으로는 수도권에 있는 대형병원들이 수도권 병상만 집중적으로 늘리는 게 아니라 지방 대도시에 암센터를 건립해 운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지방에서 근무를 기피하는 의료인력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방 의료 인력을 잘 훈련시켜 지방에 기존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환자를 분산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지자체의 각별한 관심도 요구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환자방 대안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가 올 연말까지 ‘암환우 쉼터 건립을 위한 폐휴대폰 수거 캠페인’을 전개한다. 이번 캠페인은 환경부가 매년 1800만 대 이상 발생하는 폐휴대폰을 모아 재활용을 통해 금속 자원 회수는 물론 환경오염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매각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범국민 폐휴대폰 수거 캠페인을 벌여오던 것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다. 매각 수익금은 암환우 쉼터 건립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국립암센터에서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는 지방 거주자들은 대부분 병원 인근에 있는 환자방을 주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치료비도 버거운 상황에서 월 80만∼90만원이나 하는 환자방의 비용은 이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암환우 쉼터가 건립이 되면 암환우들은 이곳에서 무료로 숙박을 하며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국립암센터 주변에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베타니아 쉼터와 일산은혜교회, 맑은샘교회에서 운영하는 쉼터가 있지만 보다 많은 환우들에게 무료 쉼터를 제공하기 위해 암환우를 위한 쉼터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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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