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데렐라 활극' 동양-오리온 동상이몽 내막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0.01 13:27:10
  • 댓글 0개

사람이냐 회사냐…담철곤은 실리를 택했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 서열 38위 동양그룹을 이끄는 현재현 회장이 벼랑 끝에 섰다. 자금확보를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리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기업어음 등은 하루하루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믿었던 동서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등을 돌렸다. '물'보다 진한 '피'는 '돈'보다는 연했다.




동양그룹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그룹 주력이었던 동양종금을 비롯한 금융계열사들의 부실악화로 퇴출직전 상태에 몰렸던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이를 외면했고 동양그룹은 금융계열사에 자체 자금을 쏟아부어 가까스로 위기탈출에 성공했다.

15년 만의 위기
현 회장 선택은?

15년이 지난 지금 동양그룹은 또 다시 벼랑 끝에 섰다. 동양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최대 원인은 고질적인 재무구조 부실을 꼽을 수 있다. 외환위기 때 악화됐던 그룹 재무구조는 동양증권 등에서 고금리를 약속하고 발행한 동양 관련 CP(기업어음) 등으로 돌려막으면서 간신히 유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증권사가 계열사 CP를 발행하지 못하게 금융투자업 규정이 바뀌면서 자금 조달의 길이 막혔고 미뤄둔 계산서가 한꺼번에 날아든 것이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동양그룹의 CP 규모는 1조1000억원대다. CP외에 채권단 보유 여신도 9000억원 정도에 달한다. 동양그룹은 채권단 보유 여신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역시 만기를 연장해놓은 상태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동양증권에서 CP 매각도 10월부터는 금지되기 때문에 자금조달 방법이 없고 그렇게 되면 동양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궁지에 몰린 동양그룹은 계열사 보유 자산들을 기초로 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최대 1조원 가량 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낮은 신용등급을 보강하기 위한 신용 제공처를 백방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선뜻 신용보강에 나서는 기업은 없었고 결국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동서지간인 담철곤 오리온 회장에게 SOS를 쳤다. 담 회장과 그의 부인인 이화경 부회장이 보유한 오리온 주식(각각 12.91%, 14.49%)을 담보로 신용을 보강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을 하고 이후 동양매직 등 계열사 매각을 성사시키면 유동성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담 회장 부부의 지분율은 28.81%로 시장 가치로 보면 1조6000여억원에 해당한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사위들이다. 이 창업주의 장녀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이 현 회장의 부인이고, 둘째 딸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이 담 회장의 부인이다. 부인들로 보면 '자매 그룹'이고 사위들로 보면 '동서 그룹'이다. 두 부부는 서울 성북동에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사촌이기도 하다.

좌초위기 현 회장 'SOS'…담 회장 'NO'
심사숙고 끝에 "동양에 지원없다" 결론

동양그룹의 '사위 경영'은 지난 2001년 9월 시작됐다. 북한에서 홀로 월남한 이 창업주는 슬하에 딸만 둘을 뒀다. 장녀 이혜경 부회장은 1976년 현 회장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부산지검의 검사였던 현 회장은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낸 현상윤씨의 친손자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현인섭씨의 3남2녀 중 셋째다.

이듬해인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법조인에서 경영인으로 변신을 한 현 회장은 이 창업주 아래에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81년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땄고 83년 동양시멘트 사장, 88년 동양증권 회장을 거쳐 89년 동양그룹 회장에 올랐다.

둘째 딸 이화경 부회장은 10년 이상 열애 끝에 80년 담 회장과 결혼에 골인했다. 담 회장의 선친은 화교 출신으로 대구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다. 이화경 부회장과는 담 회장이 서울로 유학 오면서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던 담 회장은 결혼 직후 동양시멘트에 입사했다가 1년 뒤 동양제과로 회사를 옮겼고 89년 사장에 올랐다.


이 창업주가 타계한 89년부터 2001년까지는 '한 지붕 두 사위'시대가 지속됐다.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현 회장은 시멘트와 금융 부문을, 담 회장은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쪽을 맡아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졌다.

분리 후 두 회장은 부부 경영을 앞세워 신사업 확장, 내실 다지기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독자행보를 걸어왔다.
지난 9월10일 이혜경 부회장은 어머니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을 통해 이화경 부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사장도 담 회장 부부에게 동양그룹을 지원해줄 것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오리온의 재무상태다. 양호한 편이지만 넉넉하지만은 않다. 올 상반기 말 계열사를 포함한 오리온의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2조8129억원이고, 이 가운데 유동자산은 1조168억원으로 분석됐다. 이 중 보유현금과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만 놓고 본다면 4000억원 수준이다.

담 회장 지원 거부
경영권이 우선

게다가 오리온은 돈쓸 곳도 많다. 중국시장 판매 확대를 위한 선양공장 신축에 내년까지 총 1억달러가 소요된다. 또한 담 회장이 지난 4월 대법원에서 횡령·배임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던 터라 회사 차원에서의 지원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담 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추석연휴 전 담 회장은 '지원 불가'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런 입장이 금융감독원에 전해졌고 금감원은 발표를 미룰 것을 요구했다. 추석 연휴에 동양그룹 계열사의 CP와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동양증권 특별 점검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담 회장의 심경 변화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 이사장도 이날 담 회장에게 발표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장모의 사위사랑
지분 무상 증여

그러나 담 회장은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인 23일 동양그룹에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격 발표했다. 담 회장 부부는 이어 지원 불가 심경을 토로하는 내용의 '사랑하는 오리온 가족 여러분께 전하는 글'을 사내 인터넷망에 올렸다. 이 글은 이화경 부회장이 주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는 "동양그룹에서 자금 지원 요청을 받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어떤 결정이 최선일지 고민했다"며 "추석 내내 아버지의 체취가 담긴 책 <동양보다 큰 사람>을 읽으며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식으로서, 동생으로서, 경영자로서 모두를 충족시키는 완벽한 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가슴에 평생 안고 갈 빚이 될 테지만 저희와 오리온그룹은 독립경영을 할 것이며 동양그룹이 요청한 자금 지원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부부는 또 "혈연 앞에서조차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경영자'라는 이름의 자리가 이번만큼 힘든 적은 정말 없었다"며 "오리온의 대주주로서, 경영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이번 저희의 결정으로 인한 어떤 비난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업계는 담 회장 부부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담 회장은 이날 임원회의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40% 육박하는 상황에서 잘못되면 오리온이 외국인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담 회장 부부의 지분은 개인 지분이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 지분이라고 할 수 없다. 오리온이 동양을 지원한 후 행여 동양그룹이 발행한 ABS를 상환하지 못하는 사태에 당면할 경우 결국 담 회장 부부의 오리온 지분을 매각해 상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오너 주식의 담보 제공이 경영권 문제로 퍼지고 결국 회사 가치 하락으로 동반부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이사장이 동양그룹 지원에 나서고 동양네트웍스 측이 오리온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 9월24일 이 이사장은 동양네트웍스에 무상대여한 오리온 주식 2.66%(15만9000주)를 증여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동양네트웍스 측은 "이 이사장의 증여 결정은 오리온 그룹의 동양그룹 지원 여부와 무관하게 결정됐다"며 "이번 오리온의 발표로 친족기업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서운한 속내를 드러냈다.

동양네트웍스 측은 이어 "오리온그룹은 이 이사장의 의지와 달리 동양그룹 지원을 공식 거절했다"며 "친족기업이면서 계열분리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이유를 들어 동양그룹의 지원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오리온그룹과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겠다"
10월 CP 못막으면 법정관리

담 회장만 바라보던 현 회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이사장이 사재 출연에 나섰다고 하지만 이는 동양네트웍스의 부채비율(723.8%)을 120%로 낮춰 자금조달에 작은 숨통이 뚫린 정도. 10월 말 돌아오는 회사채와 CP 등 4200억원을 막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재계는 동양그룹이 이를 갚지 못하면 주요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정관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계열사는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이다. 두 계열사는 이미 완전자본잠식 상태인데다 10월 중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와 CP 등이 그룹 내에서 가장 많기 때문이다. 동양레저의 경우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CP가 1329억, 동양인터내셔널은 1898억원이다. 또한 두 계열사 모두 10월까지 갚아야하는 회사채가 모두 800억원에 이른다.


동양그룹의 지배구조는 현 회장→(주)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시멘트→동양파워→삼척화력발전소와 현 회장→동양레저→동양증권 순으로 지분을 보유한 구조로 돼 있다.

이중 동양레저는 ㈜동양 지분 36.25%, 동양증권 지분 14.8%, 동양파워 지분 24.99%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동양인터내셔널은 동양증권 19%, 동양시멘트 1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두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그룹 전체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그룹 지주회사격인 ㈜동양의 대주주가 동양레저이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단 동양그룹은 "팔 수 있는 건 다 판다"는 입장이다.

동양그룹은 동양매직과 ㈜동양의 섬유사업 부문을 매각해 각각 2500억원, 800억원을 확보하고 당장 1000억여원을 현금화할 수 있는 레미콘사업장 20곳 등도 팔 계획이다.

특히 일부 지분만을 매각하려고 했던 동양파워는 전량 매각 방침으로 돌아섰다. 동양파워는 동양시멘트와 함께 그룹의 차기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발전사업을 담당하기로 한 기업이다.

동양파워 지분 100%의 가치는 2020년부터 나올 매출액에 대한 미래 가치를 추산해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파느냐다. 동양파워 매각은 매수인 우위로 진행되는 인수·합병(M&A)이다. 통상 M&A는 매각 공고 후 빠르게 매각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4~5개월은 족히 소요된다. 연말까지 돌아오는 채권과 CP 규모가 1조원을 웃도는 지라 동양그룹은 매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사방팔방이 '벽'
타개책 있나?

매각이 빨리 진행되더라도 제값을 받을 수 있는가도 문제다. 매도인이 급하면 매수인은 가격을 깎으려고 한다. 삼척에서 건설 중인 화력발전소 건설이 2019년에나 마무리 된다는 점도 가격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올 하반기 대형 매물인 STX에너지도 걸림돌이다. 에너지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업체들은 STX에너지의 가치가 동양파워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STX에너지 인수에 실패할 경우 차순위로 동양파워 인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STX에너지 인수 과정을 기다리다보면 마음이 더 급해지는 건 동양그룹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동양이 계열사 법정관리를 감수하고 핵심 계열사도 매각하는 초강수를 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동양파워에 동양시멘트를 함께 묶어 매각하는 방법으로 가치를 높이거나 동양증권을 매각하는 방법 등을 동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 회장은 벼랑 끝에 서있다. 싸늘한 시장반응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사방팔방이 벽으로 막혀버린 상황에서 15년 전의 그 날처럼 다시 일어설지 재계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