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덕화가 제3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이하 CHIFFS 2009)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덕화는 지난해 2회 영화제에 이어 3회까지 중책을 맡아 CHIFFS를 대표하는 얼굴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지난해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CHIFFS의 홍보와 운영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 영화제를 성공시킨 주역이었다. 국내 영화계에서 이 영화제가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게끔 만든 일등공신 격. 올해도 최선을 다해 영화제를 성공시키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지난해 이어 2년 연속 집행위원장 맡아
영화제 참석 배우들 섭외 불만 아쉬움 토로
‘CHIFFS 2009’는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지역인 충무로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란 키워드 아래 45개국 250여 편의 영화가 오는 8월24일부터 9월1일까지 대한극장과 명동 CGV, 동대문 메가박스 등 주요 극장에서 상영된다. 개막식은 8월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폐막식은 9월1일 국립극장에서 개최된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덕화는 서울 중구청장인 정동일 조직위원장과 함께 영화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덕화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전에 사과부터 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처음 하는 것이라 시행착오도 많았 고 저 나름대로 영화제를 제대로 못한 것 같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천지가 개벽하는 것같이 대단할 것마냥 말씀드렸는데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영화제를 보다 잘 만들어보려 했지만 제가 한 치 앞도 못 보고 때를 잘못 만나서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다시 이 자리에 섰다. 과정은 생략하겠다. 정말 좋은 영화제를 만들려 했는데 잘하지 못했다. 영화제가 공중분해 될 뻔하기도 했다. 진짜 지난해만큼 만이라도 영화제를 하게 해준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냥 외면을 하면 그만이고, 제가 사표까지 냈는데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게 해주셨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올해 영화제가 다른 영화제나 지난해 영화제보다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내년에는 독립을 해서 영화인들이 원하는 영화제답게 만들겠다. 그리고 규모가 크든 작든 이제는 정말 영화계, 연기자들에게 실익이 갈 수 있는 영화제를 추진하겠다. 구색이나 맞추고 남을 흉내 내는 영화제는 마음에 안 든다. 충무로국제영화제가 다른 영화제와 달리 연기자들에 의한 연기자들을 위한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기자들에 ‘의한’
연기자들을 ‘위한’
이덕화는 올해 드라마 촬영과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대상포진 증세로 고통을 받기도 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다.“45세 때 탤런트협회장을 했다. 이순재, 최불암 선배 등에 이어 협회장을 한 것이다. 당시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제가 배우협회장을 안 했으면 장례도 못 치를 뻔했다. 크게 다쳐서 병원에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에게 큰 신세를 졌기 때문에 봉사하는 자리로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행위원장으로서 그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참석자 섭외다. 이 위원장은 영화제에 참석하는 배우들 섭외에 대해 불만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영화제 준비하며
대상포진으로 고통 받기도
“내가 하는 일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배우 섭외다. 내 아들보다 어린 배우들에게 빌어야 할 정도다. 배우가 참석하고 싶어도 기획사와 이야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배우에게 연락하고 기획사 사장하고 또 연락해야 한다. 기획사는 수십억원을 들여서 배우를 확보하고 영화를 만들고 마케팅을 한다면서 영화제 개막식에 여배우 하나 보내려고 해도 메이크업, 드레스, 차량 등 돈이 많이 든다고 하소연을 한다. 경비는 많이 드는데 출연료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며칠 전에도 매니지먼트 사업하는 후배들 모임에 무작정 찾아가서 부탁을 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다. 배우들이 많이 영화제에 참석했으면 좋겠다.”
이덕화는 지난해 집행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쓰면서 “영화에 출연한 지 10년이 지난 사람이 무슨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느냐”는 반론에 부딪히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당구영화 <큐>를 마지막으로 영화 출연을 안 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후 2002년 SBS <여인천하>로 복귀할 때까지 아무 활동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돌아와 보니 영화계, 방송계 상황과 사람들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드라마를 중심으로 재기했고, 이제는 영화 쪽 일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1971년 임예진과 찍은 <진짜 진짜 잊지마>로 영화계 데뷔
“영화 사랑하는 분들 있다면 한국 영화산업 걱정할 것 없다”
그가 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모교인 동국대를 통해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돌아가신 유현목 감독의 장례식에서 채시라와 함께 조사를 맡게 된 것도 동국대 동문이었기 때문이다. 감독님은 동국대 국문과를 나오셨지만 연극영화과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셨고, 20년 이상 연극영화과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나를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교수님께 배웠다.”
현재 한국에는 ‘영화제 홍수’ ‘영화제 공화국’이라 할 만큼 많은 영화제들 있다. 이 위원장은 한국에 영화제가 많아도 결코 막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크고 작은 영화제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필요가 있으니 다양한 영화제를 없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성장하면서 자연도태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인위적으로 조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1971년 임예진과 함께 찍은 <진짜 진짜 잊지마>로 방송계보다 영화계에 먼저 데뷔했다. TV탤런트로는 1973년에 데뷔했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에는 임권택 감독의 <개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년 2개월 동안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따라 다녔다. 윤삼육 감독의 <살어리랏다>도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 출연한 영화는 앞서 말씀드린 당구영화 <큐>였다. 내기당구 하다가 손목까지 잘리는 내용을 담았다. <타짜>처럼 재미있는 영화였는데 너무 일찍 나온 것 같다.” <천추태후> 촬영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덕화는 요즘 영화 대본이 3~4개 정도 들어와 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역할은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주인공만 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삼촌, 아버지 등의 배역이 들어온다. 오랜만에 영화 출연을 하는데 비중 있는 역할, 멋진 역을 하고 싶은데, 생각처럼 안 된다.” 이덕화에게 충무로는 아버지 고 이예춘씨와 함께한 40여 년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충무로는 나를 비롯해 영화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또 젊은 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는 한국 영화의 토양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내가 충무로에서 보낸 시간은 충무로 100년 역사의 반이 넘는다. 이제는 딸을 비롯한 자녀 세대가 마음껏 영화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자리로 남겨주고 싶다.”
그의 바람은 추억이 서린 충무로가 다시 한국 영화의 메카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다.
충무로, 다시 한국 영화의
메카이자 뿌리가 됐으면
“충무로에 한국 영화산업이 다시 집중되길 바란다. 예전엔 영화사, 녹음실, 현상소 등 제반 영화시설이 충무로에 다 있었다. 충무로가 다시 영화의 거리로 되살아나길 바란다. 미국에 할리우드가 있다면 한국엔 충무로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위원장은 최근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한국 영화산업에 대해 크게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이제 영화계의 거품이 다 빠졌다면 다시 올라가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없이 사업의 하나로만 보는 사람은 도태되고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만 남으면 실질적인 발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