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로 몰린’ 대학강사 사연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1: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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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강의했다고…학생이 국정원에 신고

[일요시사=사회팀] 공안정국의 폐해, 끔찍한 망령이 대학가에도 나타났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강의를 듣던 학생이 담당 강사를 빨갱이라며 국가정보원에 신고한 사실이 알려졌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 ‘상아탑’은 옛말이 된 걸까.



경희대학교에서 마르크스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 유물론 등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던 임승수씨(저술가·38)는 지난 10일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접했다. 임씨는 올해부터 경희대에서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강의를 진행 중이었다. 그는 “학교로부터 누군가 나를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황당하고 어이없다”

임씨와 경희대 측에 따르면 임씨를 신고한 학생은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내용 등을 적은 이메일을 학교 관계자 등에 보냈다. 그 내용을 보면 신고자는 임씨의 저서내용과 과거 민주노동당 간부 경력의 전력 등을 문제삼아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자본주의 및 반미사상을 갖고 있다”며 국정원에 신고한 것.

지난 1학기부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한 임씨는 교양수업‘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를 진행해 왔다. 임씨의 이 강의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생위원회가 임씨를 찾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학기에 개설했다. 30명 정원이 금세 찼고 청강 신청도 들어왔다. 수업을 들었던 A씨는 “강의를 통해 쉽게 자본론을 이해할 수 있었고, 반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는데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B씨도 “대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내용이든지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의 개설을 결정한 대학생위원회 관계자는 “신고자가 강사의 민주노동당 가입 이력과 이석기 의원 체포 등을 논하면서 신고했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이 진보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수업을 공격하기 위한 빌미로 쓰이면, 대학 사상과 학문의 자유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고한 학생은 내란음모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을 예시로 들면서, 임씨를 신고한 근거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등 임씨의 저작과 과거 민주노동당 간부를 지낸 경력을 지적했다.
임씨는 “누군가 나를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말을 학교 측으로부터 들었다. 신고한 학생은 내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반미사상을 갖고 있으며 민주노동당에서 간부로 일한 전력을 문제삼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위에 신고당한 사람이 또 있는 것으로 안다”며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임씨에 대한 신고자의 신원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학의 1학년 학생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임씨는 “황당하고 어이없다”며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어린 학생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게 요즘 이상한 사회분위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참 세상 요지경이다. 누가 그런 철없는 신고를 했는지도 궁금하고, 그런 신고를 받고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다”고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과거 트위터에서 한 농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아 재판을 받은 사진사 박정근씨(25)를 변호한 이광철 변호사는 “트위터 농담은 물론 생각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대학 강사를 신고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주눅들어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했다.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도 “다양한 생각이 공존해야 민주주의인데, 공안당국이 ‘생각이 다르면 적’이라는 배제의 논리를 확산시켰다”고 말했다.

“반자본주의·반미주의 강조”청강생이 고발
‘이석기 사건’이후 대학까지 덮친 공안정국

생각이 다른 견해의 표출을 차단하려는 행위는 최근 곳곳에서 발견됐다. 고려대 정경대·이과대 학생회와 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관련 강연회’는 학교 측의 장소 대관 거부로 이날 야외 광장에서 열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일부 단체의 항의와 시위”로 배급사가 개봉 사흘 만에 상영을 중단하는 영화사상 초유의 조치를 내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매카시즘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사회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르크스 강의 및 관련 저서, 그리고 민주노동당 경력을 문제로 국정원에 신고당한 임씨는 2006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에서 교육부장을 맡았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합당하면서 통합진보당으로 바뀔 때 그에 반대하여 탈당했고 현재 당적이 없는 상태다. 


임씨는 “민주노동당은 선거에 나왔고 국회의원도 배출했던 정당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당 경력이 국정원 신고거리가 된다는 건, 대체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들리겠지만, 앞으로 수업할 때 ‘제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고요, 제가 거기에 동의한다는 얘기는 아니에요’라고 꼭 얘기하려고 한다”며 “정말로 국정원이 도청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임씨는 국정원에 신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은 후, 강의에 들어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이 수업은 여러분이 내 강의를 듣고 마르크스 사상에 세뇌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이나 현상, 사건을 특정한 측면에서만 보면 항상 같은 부분이 보일 뿐입니다. 이 수업은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세계관을 함께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마르크스의 세계관을 통해서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보면, 자유시장경제라는 특정한 관점에서 봤을 때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의 다른 모습이 드러납니다. 사물이나 현상, 사건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볼 수 있을 때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지지요. 이 수업이 여러분에게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라면 최소한 ‘말’과 ‘글’, 즉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과열된 이념 갈등이 수십년간 대학에서 이뤄진 강의까지 흔들고 있다. 특정 표현으로 체포나 구속이 되는 건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우리사회가 이것을 그대로 용인한다면 힘들게 획득한 민주주의가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보법 위반자 보니…

지난 13일 경찰청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가보안법 위반자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8월말까지 최근 5년간 총 558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2009년 70명이었던 국보법 위반 혐의 검거자는 2010년 151명, 2011년 135명,2012년 109명이었다. 올해는 8개월 만에 98명이 적발됐다. 찬양고무 346명, 이적단체구성가입 134명, 회합통신 39명, 잠입탈출 17명, 간첩 10명, 반국가단체 구성가입 3명, 편의제공 3명, 목적수행 약취유인 2명, 자진지원 2명, 예비음모 2명으로 집계됐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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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