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기러기아빠 아지트 ‘기러기바’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16 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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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자리, 그녀들이 채워준다

[일요시사=사회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인과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아있는 ‘기러기아빠’들은 늘 외롭다. 이들은 가족을 그리며 술로 밤을 지샌다. 그리고 씻기지 않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기러기바(데이트바)’를 찾고 있다.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이 불면서 시작된 ‘기러기아빠’ 문제, 한국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미 국어사전과 국립국어원에 신조어로 포함됐을 정도로 한국사회에 엄연한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그 숫자도 50만 가구 이상으로 추산되니, 이미 가족의 한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기러기아빠’의 속은 썩어 문드러진다. 지금 그들은 속 얘기를 들어줄 대화상대를 찾고 있다.

데이트 상대 찾아
밤거리 헤맨다

서울 강남 일대에 외로운 기러기아빠들을 상대하는 일명 ‘기러기바(데이트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곳은 초저녁부터 기러기아빠 등 외로운 남성들로 북적댄다. 이색적인 건 이들은 동행 없이 혼자 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간 외로웠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선택해 1대 1로 술을 마시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이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고 있다.

수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먼 타국으로 떠나보낸 A씨는 최근 외로움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 기러기아빠가 주 고객인 ‘데이트바’에서 대화녀를 만나고부터다. 묘한 술집시스템에 대해 꽤 만족하는 눈치다. “내 나이쯤 돼서 기러기족 생활을 하다보면 룸살롱도 재미없고 늘 외롭다. 우연히 데이트바를 알게 됐는데 술에 대한 부담도 없고 젊은 아가씨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위로받는 느낌이다.”

사실 A씨는 ‘데이트바’를 처음 접했을 때, 신종 변태 유흥업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데이트바를 직접 가보니 신종 유흥업소가 아니었다.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는 ‘데이트바’에서 만난 대화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대 이상의 위안을 느꼈다. 그 뒤로  A씨는 한 달에 두 세 번씩 데이트바를 찾고 있다.


A씨는 기러기아빠들이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를 통해 데이트바의 존재를 알게 됐다. A씨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기러기아빠들과 고민을 털어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가끔 열리는 정기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리고 정기모임 어느 날, 데이트바에 다녀온 B씨의 후기를 듣게 됐다. 당시 A씨는 퇴폐업소라고 생각해 단순히 웃어 넘겼지만 그 호기심은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쓸쓸히 퇴근하는 발걸음에, 문득 정기모임 때 B씨가 말한 데이트바가 떠올랐다. A씨는 B씨에게 들은대로 곧장 데이트바로 향했다.

솔로 남성들을 위한 전용술집 데이트바는 대화녀라고 불리는 예쁜 여종업원과 독립된 공간에서 1대1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룸살롬 등에 싫증을 느낀 기러기 아빠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러기아빠 A씨는 본인이 원하는 아가씨 한 명을 지목해 1대 1로 ‘프라이빗바’에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맥주와 안주는 무제한 제공된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법 이야기가 통했고 재밌었다. 기본 한 시간에 10만원이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화녀가 자신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시덥잖은 농담에도 밝은 미소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녀의 반응에 들뜬 A씨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데이트바를 이용하는 기러기아빠 A씨는 “가정에서 치이고 회사에서 치이다 보면 삶이 황량하다. 체면 때문에 속내를 털어놓기도 힘들다. 그렇다보니 늘 외롭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던 중 우연히 데이트바를 알게 됐는데 술에 대한 부담감도 적고 대화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위안을 받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진솔한 대화로
발길 끊이지 않아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데이트바’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손님들과 원활한 대화를 위해 대화녀들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 매너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대화녀로 일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교양지식은 갖춰야 한다고. 학식 있는 기러기아빠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세태 속에 목돈 마련을 위해 ‘대화녀’를 자청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사실 퇴폐적 서비스를 하는 바나 유흥업소는 천지에 널려있다. 하지만 데이트바는 유흥업소에 질린 외로운 남성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큰 부담 없이 편하게 와서 기분전환하고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뜨거운 서비스나 진한 스킨십을 원하는 손님은 드물다. 물론, 간단한 스킨십 정도는 허용된다.

가끔 꼴불견인 손님들도 있다. 도를 지나쳐 가슴 등 신체 은밀한 부위를 노골적으로 만지려고 하는가 하면 치마 속 등 몰래카메라를 찍으려는 남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 남성들은 대화를 나누다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나랑 사귀자”고 말하기도 한다. 또 몇몇 손님은 은밀하게 성매매를 제의한다고 한다. 아무리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도 사적인 만남, 2차는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서울 강남 일대에 ‘데이트바’우후죽순
초저녁부터 외로운 남성들 북적북적

‘대화녀’ 가희(27·가명)씨는 “손님들이 사귀자는 건 대부분 엔조이를 의미한다. 가끔 정말로 마음이 통하는 손님이 있기도 하지만 일일 뿐이다. 솔직히 사귀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가희씨는 6개월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지만 생활이 막막했다. 학원비며 수업에 필요한 도구며 돈 나갈 곳이 많았다. 거기에 생활비와 적금, 보험료 등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아 경제적으로 힘들어 고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데이트바에 발을 들이게 됐다.

“사실 처음엔 술집 접대부 같은 일은 아닐까 겁이 났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나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가희씨에 의하면 데이트바 일 손님 대부분이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다보니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 견문이 넓어졌다고 한다.

과도한 스킨십 금지
여성은 목돈 목적

‘대화녀’로 일하면서 가희씨는 가끔 ‘카운슬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전했다. 딱딱하고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만큼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남성들의 ‘속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외로움도 많이 타고 고민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면서 “처음엔 술집 접대부 같은 일이 아닐까 싶었지만 요즘엔 무슨 심리상담사가 된 기분”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실 ‘대화녀’들은 기러기남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진심으로 경청해주며 가끔 조언도 해주면 손님들이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아 자신도 힘이 생긴다고 했다.

가희씨는 “낮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고 밤에는 기러기바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희씨 뿐 아니라 데이트바에서 일하는 대화녀들은 대부분은 낮에 직장생활을 한다. 이중에는 자기계발 중인 대학생들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새벽 3시에 퇴근해 다음 날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초미니스커트로 각선미를 과시하는 ‘대화녀’들은 대부분 낮엔 직장에 다니거나 피팅모델 등의 일을 하는 투잡족이다.

수연(22·가명)씨는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학교에 다닌다. 학비를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때 까지 계속 이 일을 할 예정이다”며 “시간을 많이 뺏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면서 고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털어놨다.

한편 수연(24·가명)씨는 섹시바에서 일하다가 된통 당한 기억에 다시는 유흥업소 관련해서는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커져버린 씀씀이를 감당하기 위해서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 데이트바를 만나게 됐다.


수연씨는 “섹시바에서처럼 속옷만 입고 일하지 않아도 되고, 손님들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귀띔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화녀들은 한 달에 보통 300만원을 번다. 1시간에 10만원의 비용 중 5만원이 대화녀의 몫이다. 술을 많이 먹지 않아도 되니 목돈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렇듯 외로운 기러기아빠들과 그들의 지갑을 노린 이들로 데이트바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누구는 외로움을 달래고, 누구는 목돈을 마련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 좋은 만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한국사회의 슬픈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신적 고통 호소
아빠들이 위험하다

기러기아빠들은 정신적 고통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러기아빠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느낀다. 또 이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무분별한 음주습관으로 알코올중독에 걸리기 쉽다. 씨는 방송을 통해 “혼자 지내다보니 술을 자주 먹게 되는데 거의 기절할 정도의 폭음이 잦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기러기아빠였던 국립대 퇴직교수 K(69)씨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이웃에게 발견돼 논란이 됐다. 경찰은 “K교수가 외로움 탓에 술을 많이 마셔 건강이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월에는 대구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치과의사 A씨가 유학중인 딸과 아내 문제로 고민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스웨덴 우메오대학 연구팀이 1991∼2000년 68만3000여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녀·부인과 떨어져 사는 경우 자살률은 2.3배,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률은 4.7배로 훨씬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기러기아빠 현상을 중심으로 가족이 흩어져 사는 현상에 대한 연구로 연세대 대학원 신학과 목회 상담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양숙씨는 기러기아빠를 ‘비동거 가족’이라고 규정했다. 비동거 가족 문제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것.


‘쭉쭉빵빵’아가씨와 토킹 1시간 ‘10만원’
이중 5만원 대화녀 몫…간단한 스킨십 허용

그는 논문에서 기러기아빠를 “자녀를 외국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 놓고 국내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자”라고 정의한 뒤,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학력 중시 현상과 더불어 국제화 세계화 정보화라는 흐름 속에서 결국 자녀 조기 유학을 위해 가족 비동거라는 선택을 한다”고 요약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내 자녀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는 주관적 판단에서부터 군복무, 공ㆍ사교육 문제, 과열 경쟁 등이 제시됐다. 또 한반도 이남을 뒤덮고 있는 영어 콤플렉스는 영어가 곧 돈이라는 ‘영어 자본론’으로 직결되는데, 이는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과 맞물려 ‘덩달아 유학’을 부추긴다.

그 이면은 어쩌면 더 심각하다. 이미 외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외국 교육의 장점 등에 길들여진 기러기 엄마와 자녀는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엄마 잘 만나야 대학 간다’는 말에 떠밀리듯 부인과 자식을 보낸 아버지는 갑작스런 독거 생활에 사실 처자식의 귀국이 그립기만 하다. 고독감, 정서적 불만, 성적인 욕구 불만 등은 그들이 맞닥뜨리는 보편적 문제라고 최 씨는 지적한다.

기러기 생활이 길어질 경우 가족 간 거리감이 심화돼 가정해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물론 기러기 가족은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기러기아빠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문제들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녀유학 명암
무작정? 계산기부터 두드려야!

자녀를 무작정 유학길에 보내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에 입시경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내려는 미국인들은 초등학교부터 관리에 들어간다. 미국 중산층 엄마도 학교성적, 과외활동 등을 관리하는 맹모 생활을 한다. 그리고 ‘하버드 맘(엄마)’ ‘스탠퍼드 맘’ 같은 자녀 자랑을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차 번호판에 붙이고 다닌다.

경제학에 ‘밴드왜건 효과’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부화뇌동하는 것을 지칭한다. 연 10조원의 국부를 투입하고 50만명의 자발적 이산가족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기러기 가족의 비용과 교육성과라는, 투입과 산출의 냉정한 경제학적 계산을 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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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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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