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그는 누구인가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09 14: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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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 빨갱이 소탕?…이석기는 불행했다

[일요시사=사회팀] 바람 잘 날 없는 정국이다.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그는 현재 국정원과 여야의 뭇매를 맞으며 절벽 끝에 간신히 서 있다. 논란의 주인공, 이 의원의 행적을 살펴봤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핵심에 오르기까지의 정치적인 과정과 사상적 실체는 이번 국가정보원 수사로 상당 부분 드러났지만, 그가 그 같은 사상을 갖게 된 데 영향을 미쳤을 인생 궤적은 베일에 가려진 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굴곡 많았던 여정…
음지에서 양지로…

1962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이 의원은 1980년 성남 성일고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는 선후배 사이가 돈독하기로 유명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그렇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선배가 운동을 함께했던 후배를 책임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용인은 인근 성남과 함께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집결지로 유명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영세한 작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서울의 난개발에 쫓겨난 도시 빈민들이 몰려온 곳이었기 때문. 이러한 지역적 특성으로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며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의원은 현장 운동가로 성장할 수 있는 치열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불태웠다.

주변인들에 따르면 이 의원은 한국외대 재학 당시 대학가요제에 참여한 타대학 학생인 부인을 TV로 보고 반해 직접 찾아가 교제를 청했고, 결국 1990년 결혼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2002년 부인과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성향의 사회변혁·정치활동을 하는 인사들 가운데는 부부가 함께 같은 길을 걷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의원의 전 부인은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혼자서 가계를 꾸려가던 부인이 2002년 이혼소송을 제기했으며, 이혼 후 전 부인은 자녀들(1남 1녀)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이민생활을 했다.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장남이 24세 이전에 출국한 것으로 병무청에 신고돼 있는 점을 토대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이 의원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아파트 경비원에 따르면 이 의원은 올 5월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경비원은 “오전 6시 반쯤 출근해 오후 11시 넘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혼자 살았던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항상 기사가 집 앞에 데려다 줬는데 주차는 아파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했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주민인 한 40대 남성은 “이곳에 사는지조차 몰랐다. 조용히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사를 보면 이 의원은 대체로 불행했다. 국방부 부이사관이던 누나는 수배생활을 하던 이 의원에게 생활비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후 “징계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기무사 조사 뒤 팔다리에 힘이 풀리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은 끝에 2005년 6월 숨졌다. 암투병 중 그를 옥바라지했던 모친도 2008년 3월 유명을 달리했다.

반면 이 의원은 꾸준히 개인 재산을 증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5월 사당동 아파트, 2009년 4월 여의동 J빌딩 6층을 각각 구매했다. 구매 당시 이석기가 운영하는 CNP전략그룹(현 CN커뮤니케이션즈)은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 2008년 4월 총선을 거치면서 매출이 연 20억원대 이상으로 성장하였고, 이로 인해 민노당을 통해 개인 재산 증식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인간 이석기’에서
‘양심수 이석기’로

이 의원이 현 정국의 중심에 서기까지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민혁당 사건은 그에게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 민혁당 사건은 ‘인간 이석기’를 ‘양심수 이석기’로 만들었고 이후 본격적인 정치활동의 초석이 됐기 때문이다.

민혁당은 1989년 결성된 반제청년동맹의 중앙위원장 김영환씨(<강철서신> 저자)가 1991년 잠수함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후 1992년 3월 결성한 지하 전위 조직이다. 민혁당을 주도했던 김씨가 이후 북한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 1997년 7월 해체를 선언했지만, 김씨와 함께 창설을 주도했던 하영옥씨 등은 이에 반대하며 민혁당을 유지했다.

한국외대 중국어통번역과 82학번인 이 의원은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을 맡으며 함께했다. 당시 재판부 기록에 따르면 민혁당 사건으로 이 의원의 수배 생활이 시작된 때가 1999년 8월이고,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된 때가 2002년 5월이다. 이 의원은 2003년 3월 반국가단체 구성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6월 형을 선고받았다.


하씨와 이 의원의 관계는 돈독했다. 2003년 4월30일 민혁당의 중심이었던 하씨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먼저 석방됐다. 반면 이 의원은 당시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확정판결이 내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암 투병 중인 모친 김복순씨가 위독하자 특별휴가를 받고 일주일간 나올 수 있었다.

하씨는 지난해 이 의원의 부정 경선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소한 이후에는 이 의원과 만난 적이 없다”며 “제 부친상 때 문상을 와서 한 번 본 게 전부”라고 밝혔다. 이 의원 역시 지난해 5월 한 인터뷰에서 “당시 수배 중이어서 민혁당에 가담해 활동한 적이 없다. 하영옥씨와는 10년 넘게 연락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서 ‘동지애’불태워 
과거 민혁당 사건으로 정치입문 초석 마련

2003년 석방된 이석기 의원은 이후 정치권과 연을 맺는다. 그가 대표로 재직했던 정치 컨설팅업체인 CN커뮤니케이션즈(구 CNP전략그룹)를 통해서다. CN커뮤니케이션즈는 통진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노당의 사업을 독점했는데 그 때문에 “당권파의 자금줄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과거 당 정치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이석기 의원이 당시 직접 행사장에서 강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주로 강조한 부분이 동지애다. 동지와 조직이 함께하면 현재의 장애물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동지애’적 관점에서 이 의원은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진당의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에 연루된 바 있다. 그는 통진당의 비례대표 경선에서 27%로 1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경선 이후 제기된 부정의혹이 당 진상조사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사실로 입증됨에 따라 통진당 내 특정계파의 개입과 주도에 의한 조직적인 표몰이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경선 과정 자체가 부정이었던 만큼 경선 과정에서 선출된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총 사퇴시켜야 한다는 것이 통합진보당의 공식입장이었다. 이에 이 의원을 비롯한 당권파는 재조사를 촉구하며 완강히 거부했다.

당시 부정선거 진상조사 위원회는 이 의원에 투표한 IP 60% 이상이 중복투표였으며, 소스코드가 개방된 직후, 이석기 후보의 득표가 73% 몰리는 비정상 상황이 연출되었음을 근거로, 이 의원 측의 조직적인 부정 선거를 밝혀냈다. 비례대표에 1등으로 당선된 이 의원은 정작 통합진보당 당사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놀랍게도 통합진보당에 입당한 지 3개월밖에 안된 시기에 비례대표 후보에 등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이 의원은 자신의 경기동부연합과 함께 통합진보당에 정계 진출의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들어온 것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동일 IP에서 투표한 비율이 가장 높은 후보는 나순자 후보로 밝혀졌다. 다른 후보들 역시 동일 IP 투표비율이 높았다. 그리고 당권파라 불리는 계파에서는 이 의원 한 사람만 출마했고, 참여계와 민주노총에서는 여러 명의 비례대표가 나와서 표가 분산됐다. 또한 통합연대의 요구에 따라 당권(투표권)을 한달만 당비를 내면 주기로 했고, 이를 이용하여 경선용 당원불리기에 적극 나선 후보들이 이런 문제를 야기한 측면이 있다. 적어도 이러한 전후맥락을 파악하면서 부정선거에 대한 진상조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모두의 잘못이란 말과 당권파만의 잘못이란 말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의원은 과거 인터뷰를 통해 “국민은 이석기의 사퇴를 원하지 않으며 이석기 사퇴 운동은 야당연대를 음모하려는 수구세력의 공격”이라고 말했다. 선거와 관련하여 강기갑 비대위원장은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된 이 의원과 만나 사퇴를 종용할 예정이었으나, 이 의원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이 의원이 부정선거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만난 한 당권파 인사는 “민혁당 사건으로 수배와 수감 생활을 겪는 동안 이 의원이 받은 고통이 얼마나 컸겠나. 아내와 이혼했고 어머니와 누나가 돌아가셨다. 그래도 서운한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오히려 진보 정치를 걱정한 사람이다. 고생한 사람에게 더운밥을 대접하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람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보여준 헌신 때문에 이 의원을 도우려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당권파의 핵심으로…
경기동부연합=이석기

지금 통진당 당권파를 지칭하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명칭이 외부로 알려진 때는 1990년대 중반이다. 1991년 전국연합이 결성됐을 당시 12개 지역 단체에 ‘경기동부연합’은 등장하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에서야 전국연합이 공식적인 지역 단체로 이름을 올렸고 이후 세력을 넓혀갔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전국연합 아래 있던 경기동부연합은 진보 정당에 투신하기로 결정하고 조직을 해산했다. 그 이후 민노당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조직적 측면에서 경기동부연합은 사라졌지만 인적 자원으로는 여전히 활동하며 진보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2011년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진보 대통합 논의 과정에서는 강경 노선을 유지하고, 반면 국민참여당(참여당)과의 합당을 주도했던 세력이 당권파였던 경기동부연합이다. 권영길 전 대표 등은 참여당과의 합당을 반대했지만, 당권파는 강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통진당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5월 비례대표 부정 경선 논란에 섰던 이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참여당과의 통합을 먼저 제기하고 엄청난 논쟁을 했다”고 말했다. 스스로가 당권파의 핵심 브레인임을 시인하는 발언이었다. 진보 정치를 또 한 번 뒤흔든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은 아직도 그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과 이 의원에게는 ‘종북’ ‘패권’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자연스레 다른 정치 세력과 여론이 외면했고 고립됐다.

이러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의원은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진당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불행한 가족사와 갖가지 의혹들
우여곡절 끝에 국회 입성했지만…

어렵게 여의도에 입성한 이 의원의 의정 활동은 과연 어땠을까. 그의 활동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는 증언이 많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김재연 의원의 경우는 종종 집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의원은 외부 활동이 거의 없었다. 보통 국회의원의 존재감은 토론회 같은 곳에 출석하며 드러낼 수 있는데 그런 활동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입법 활동도 다른 의원들에 비해 미진했다. 법안 발의를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10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통진당의 현역 의원 수는 6명이다. 때문에 다른 당 의원들의 서명이 필요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이석기라는 이름이 법안에 들어가 있다면 어떤 의원이 서명을 하려고 하겠나. 이 의원과 함께 기록으로 남는 것에 부담감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5일 국회에 첫 출근한 이 의원은 “정의감으로 불타는 20대 운동권의 심정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년도 채 안된 지난 5월12일 경기도당 간부들과 가진 회합에서 비현실적인 말들을 쏟아내며 위기에 처했다. 깜짝 등원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뒤 ‘국가내란죄’로 추락하기까지 불과 1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석기의 몰락
예고된 시나리오

지난달 28일, 국정원과 수원지방검찰청은 이 의원의 사무실과 자택에 대해 형법상 내란예비음모 혐의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 의원이 국회의원 신분이기 때문에 체포영장은 청구되지 않았으나, 신체를 포함한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됐다.

여러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국정원은 이석기 등 경기동부연합 계열 활동가들이 지난 5월 경기도 용인의 모처에서 모임을 갖고 경기남부지역의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를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국정원은 이석기가 2004년 산악회 형식의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을 결성해 1년에 1번씩 회의를 가졌다고 보고 있다.

당시 언론은 이석기가 도피했다고 보도했으나 이튿날 이 의원은 통합진보당의 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입장을 밝혔다. 이석기는 이 자리에서 “나에 대한 혐의내용 전체가 날조”라며 “유사 이래 있어본 적이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이라고 발언했지만 결국 과반수가 넘는 국회의원들의 찬성으로 인해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그는 현재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수원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이석기 의원은?

▲성남 성일고 졸업
▲한국외대 중국어통번역학과 졸업
▲한 과테말라 의원친선협회 이사
▲한 EU 의원외교협의회 회원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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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