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고성능 먼지털이 풀가동 진짜 이유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9.09 13: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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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까지 탈탈…도랑 치고 가재도 잡고?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올 하반기 주요 대기업들에 대한 연이은 세무조사 때문이다.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자동차가 털렸고 거리두기를 해왔던 포스코까지 건드렸다. 업계에서는 세수 부족에서 비롯된 전방위 세무조사라는 게 중론이다. 새는 세금을 막아 복지재원을 확보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조사라는 얘기다. 물론 국세청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올 들어 지난 5월 말까지 정부의 세금징수 실적은 82조1262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조원 줄어든 수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국세징수는 목표액(210조원)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되는 실정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국세청은 그 어느 때보다 이곳저곳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첫 번째 타깃은 금융업계였다. 국세청은 올들어 가장 먼저 SC은행을 털었다. 2월22일 SC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3일 뒤 국민은행을 들여다 봤으며 신한은행과 농협중앙회에 대한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지난해 이미 원천징수 관련 조사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 9조 부족
현미경 조사 실시

증권업계에서는 교보증권에 이어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됐다. 국세청은 조사인력도 정기조사 때보다 2배나 많이 투입했고 기간도 4∼5개월로 길게 잡는 이른바 '현미경 조사'를 실시했다.

금융업계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는 지난 8월 재계를 뒤흔들었다. 두 번째로 세무조사를 받은 국민은행이 세금 폭탄을 맞은 것. 최대 2000억원대 중후반의 추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의 2분기 당기순이익(488억원)의 4배 이상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세청은 우선 과거 커버드본드(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 발행 및 500만원 이하 소액 채권의 대손상각 과정에서 국민은행이 세금을 탈루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500만원 초과 채권의 경우 대손상각 후 손비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소액 채권의 경우 금감원에 신고만 하면 손비 처리가 가능하다.


국민은행은 이 점을 이용, 만약 한 사람이 카드 채권 300만원, 대출 채권 300만원을 가졌을 경우 각각을 별도의 상품으로 보고 임의로 손비 처리해왔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국세청은 세금과 가산세를 내야 한다는 입장. 이 경우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2400억원의 추징금이 매겨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민은행이 고객 정보를 계열사에 헐값으로 제공하고 소득을 누락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덜 받은 정보사용료에 대한 세금도 모두 내야 한다. 이 금액이 더해지면 국민은행은 3000억원에 육박하는 세금 폭탄을 짊어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은행의 막대한 세금폭탄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금융회사들도 긴장을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행보다 앞서 세무조사를 받은 SC은행은 물론 아직 세무조사가 진행 중인 보험·증권 회사 역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포스코, 현대차…무차별 대기업 세무조사 
인원·기간 대폭 증가 "일단 털고 보자?"

대기업 계열사 세무조사도 진행 중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LG전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올 초 1000억원대의 세금을 추징했다. 지난 2∼7월까지는 LG디스플레이가 세무조사를 받아 300억원대의 세금을 추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월부터는 LG상사도 세무조사 대상이 되어 약 120일간의 일정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LG그룹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모두 세금 탈루 혐의를 포착하고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국내 종합상사 1위 업체인 SK네트웍스도 지난 4월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기간은 오는 10월 말까지 6개월로 국세청은 SK네트웍스가 2009년 워커힐을 합병하면서 회계처리를 정상적으로 했는지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10년 매출이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줄어든 배경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자금 조성 의혹 혐의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CJ그룹의 경우, 계열사인 CJ푸드빌이 지난 4월 중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CJ푸드빌은 패밀리레스토랑 빕스와 프랜차이즈 빵집 뚜레쥬르 등 14개 브랜드를 운영하며 전국 매장 수는 2000개에 달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8곳에 해외 법인을 세웠다. CJ그룹의 해외 법인은 140개. 지난해에만 30여개가 집중적으로 증가했다. 국세청은 이 점을 주목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 하반기에는 주요 대기업의 '몸통'에 대한 세무조사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지난 3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와 포항 포스코 본사, 광양제철소 등 3곳에 국세청 직원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70여 명의 국세청 직원이 투입돼 사무실을 '이 잡듯' 뒤졌고 회계장부 등 세무 관련 자료를 챙겼다.

국민은행 세금 폭탄
금융업계 '촉각'

포스코는 2005년, 2010년 등 5년 단위로 정기 세무조사를 받았다. 기간을 지킨다면 2015년에야 조사를 받는 게 정상이다. 이번 세무조사가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국세청과 포스코는 "정기 세무조사"라고 했지만 정기 세무조사는 통상 열흘 전에 통지한다. 심층조사를 전담하는 국세청 조사4국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일각에서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정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인 2009년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뒤 지난해 2월 재 선임돼 2015년 3월까지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인 퇴진 압박에 시달려왔다.

실제 지난달 28일 박 대통령이 대기업 회장단을 초청한 오찬 회동에 정 회장이 제외됐으며 지난 6월 박 대통령 방중 시 국빈만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또한 새 정부 출범 때마다 포스코 회장이 바뀐 전례도 있다.

정기조사라지만…
'불똥'튈까 긴장

그렇지만 업계 대부분은 박근혜정권 출범 초부터 복지재원 마련과 경제민주화 실현 등을 위해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한 것이 포스코로 이어졌다는 분석에 힘을 싫고 있다.

포스코는 2005년 정기 세무조사에서 1800억원 가량을 추징당한 바 있다.

국세청은 조만간 현대자동차에 대한 세무조사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국세청이 최근 현대차에 세무조사 계획을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현대차는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등 세무조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에 대한 세무조사는 지난 2005년 9∼12월 진행된 정기 세무조사와 2007년 6월 진행된 특별 세무조사 이후 6년 만에 실시되는 조사다. 현대차는 2005년 진행된 정기 세무조사 결과 1962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추징액 상당부분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안고 있던 현대우주항공(현 한국항공우주산업) 보증채무 2100억여원을 해소할 목적으로 단행된 계열사 유상증자가 불법적으로 이뤄진 점에 착안해 추징된 세금이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국세청이 르노삼성과 한국GM 등 최근 자동차 회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세무조사에서 해외 본사와의 거래 가격·로열티 과다 지급 등을 문제 삼은 점을 들어 현대차의 세무조사도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쟁점은 해외 거래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말 세무조사를 받고 올 초 700억원의 추징금을 통보받았다. 당시 국세청은 부품 값을 비싸게 수입해 오고 완성차 가격을 싸게 수출한 것은 아닌지와 로열티 지급 등이 적절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닛산은 지난 2000년 르노삼성 출범 이후 로열티로만 4944억원을 받아갔다. 르노삼성은 억울하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낸 상태다. 이런 분위기를 볼 때 국세청이 현대차의 해외 법인과의 거래 내역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이라는 것.


상반기 현대차의 해외 생산 비중은 61.4%. 상반기 국내·외에서 만들어 판매한 238만여 대 중 국내 판매량은 13%(32만여 대)에 불과하다. 법인세의 근거가 되는 당기순이익이 해외 매출에 의해 좌우된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세무조사에 관한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으며 조사가 이뤄진다 해도 정기조사 차원일 것이라는 입장. 그러나 예기치 못한 '불똥'이 튈까봐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다.

효성그룹의 경우에는 특별 세무조사가 조세범칙조사로 전환됐다. 조세범칙조사는 단순 세무조사와는 달리 이중장부나 서류 위조 등 부정한 방법으로 탈세한 납세자를 대상으로 벌이는 고강도 세무조사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경영진 2명은 탈세 혐의로 아예 출국이 금지되기까지 했다.

웅크린 재계 "해도 너무 한다"
복지재원 확보용 '맞춤형 조사'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는 지난 5월말 시작됐다. 국세청은 조사 과정에서 조 회장의 차명 재산과 분식회계를 통한 거액의 탈세 혐의를 포착했고 세무조사의 성격을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이달 중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마치고 조세범칙심의위원회를 열어 효성그룹에 대한 세금 추징과 검찰 고발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사상 최대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국세청은 지난 7월 롯데쇼핑 4개 사업본부(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시네마)에 대한 세무조사에 돌입했다. 통보도 없었고 인원만 150여명이 동원됐다. 앞서 2∼6월에는 호텔롯데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됐고 당시 국세청은 호텔롯데에 20억원 이상의 세금을 추징했다.

이밖에도 국세청은 조세 회피지역인 버진아일랜드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난 OCI 등 역외 탈세 혐의가 있는 23개 기업에 대해 동시 세무조사에 들어갔으며 NHN, 동아제약, CJ E&M 등 주요 대기업 및 그 계열사와 인천공항공사 등 대형 공기업까지 조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증세 없는 복지확대'를 약속하면서 국세청에서 그 '행동대장' 역할을 부여했다. 복지로는 무상보육·반값등록금·기초연금 등의 사업을 약속했으며 대선 전 발표한 새누리당 계산에 따르면 이들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앞으로 5년간 총 134조5000억원, 연간 27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국세청은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오랜 숙원이던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권 확대를 요구해 지난 7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11월부터는 정보 활용 범위가 확대되게 됐다.

또한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기획단'을 새로 만들었다. 국세청 차장을 단장으로 하고 총괄기획분과·탈세대응분과·세원발굴분과·체납추적분과로 구성했다. 기획단 규모는 4팀, 74명이다.

지하경제 추적 조사를 위한 조사전담팀도 만들었다. 지방청 조사 분양에는 400여명, 조사팀 70여개를 보강한 데 이어 서울청 조사2국과 4국을 각각 개인, 법인 분야 지하경제 추적조사 전담조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대통령의 손발이 되기 위해 몸집을 불린 것이다.

이에 따라 세무조사 대상 기업도 늘었다. 500억원 이상 매출기업 가운데 세무조사 비율은 16%였지만 올해는 20%로 올려 잡았다. 조사대상 기업은 1170곳으로 늘었고, 조사기간도 통상 3∼4개월에서 6∼8개월로 길어졌다.

확대 해석 경계
"별도 목적 없다"

하지만 아무리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세수확보 차원이라고 할지라도 다소 과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가뜩이나 경제심리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탈세근절도 좋지만 자칫하다가는 기업의 투자위축이나 실물경기 침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경련도 국세청이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조사 강도·기간을 강화하고 있고 가능한 과세를 하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최근 침체된 경제상황을 고려해 세무조사를 가급적 자제해달라는 재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사비율을 낮추겠다는 방향도 밝힌 상태라는 점도 설명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난 7월 말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비롯하여, 최근 경기침체 여파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건설·조선·해운 업종에서 세무조사를 축소하고 조사건수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며 "최근 세무조사가 세수확보 등 별도의 목적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국세청은 그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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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