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경제민주화 기조 후퇴 논란 전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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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옥죄기' 일단 멈춤 "6개월 만에 '백기'?"

[일요시사=경제1팀] 박근혜 대통령이 10대그룹 총수들과 청와대 오찬을 가졌다. 대통령은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당부했고 참석자들은 향후 투자계획을 설명하면서 정부 측의 지원을 요청했다. 일단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은 모양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재벌 달래기'를 두고 경제민주화가 대폭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청와대로 국내 민간 10대그룹 총수들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창근 SK 의장, 구본무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이재성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조양호 한진 회장, 홍기준 한화 부회장, 박용만 두산 회장, 허창수 GS 회장 등이 참석했다.

모두발언 요점
재계 기 살리기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노력해줘 감사하다"며 "지난 4월초 30대그룹이 149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과 12만8000명의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한 것이 경기부양 노력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러한 기업들의 노력과 정부의 추경을 비롯한 경기활력 회복을 위한 정책을 통해 최근 취업자 수가 2개월 연속 30만명 이상 늘어났고 2.4분기 성장률도 9분기 만에 0%대 성장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창조경제 구현과 일감 나누기·동반성장 노력을 통해 경제민주화에 협조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은 어려운 점이 많다며 기업들의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투자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맞을 때마다 과감한 선제적 투자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를 새롭게 일으키는 동력이 되어왔다"며 "규제 전반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불합리한 규제가 새로 도입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경제민주화 입법과정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상법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잘 알고 있다"며 "정부가 신중히 검토하고 더 많은 의견을 청취해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임하도록 하고 대주주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허용하며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높여 대주주의 전횡을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게 취지다. 집중투표제는 1개의 주식에 선임될 이사의 수만큼 투표권을 부여해 소액주주가 지금보다 쉽게 이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10대그룹 총수와 오찬 엇갈린 평가
경제 살리기에 밀려난 경제민주화

재계는 현재 상법개정안이 현실화되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에서도 재계의 반발이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이날 오찬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와 기업투자 요구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지난 대선과 현정부 경제분야의 핵심화두였던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기업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설득 정도의 수준만 언급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하반기 국정 성과 창출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투자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정재계는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반드시 기업들의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고 보는 것.

박 대통령은 지난 7월10일 언론사 논설·해설실장들을 만나 "(경제민주화 관련) 중점 법안들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통과됐다"며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는 투자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들은 그동안 지속돼온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상법개정안' 완화
"사실상 항복 선언"

실제로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후퇴를 선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 야당은 박 대통령의 청와대 오찬간담회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자리였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중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 "상법개정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겠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 등은 사실상 대기업에 항복 선언을 한 것이라는 것.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포기할 테니 대기업 투자를 늘려달라고,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 대변인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업의 의지를 당부한 발언을 두고 "화룡점정이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며 "박 대통령 논리대로라면, 정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무능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야당 "대통령 핵심공약 사실상 포기"
새누리당 "좀 더 논의하겠다는 취지"

그는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대해 "재벌들은 투자보다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것에몰두했다"며 "재벌들이 곳간을 채워가는 동안, 청년들은 88만원에 인생을 저당 잡혔다. 중장년층은 실업과 노후불안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오답노트'부터 만들기 바란다. 전임 대통령의 실패에서 정말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인가"라며 "재벌 투자를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재벌들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거나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키는 것은 경제 살리기와 전혀 상관없다는 점을 명심하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김제남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박 대통령이 재벌들의 요구사항을 일방적으로 청취하다시피 한 이번 청와대 오찬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의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친기업적 태도를 표명하는 터닝포인트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투자활성화가 규제정책 때문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지난 10여년간 정부는 일관되게 규제완화조치를 추구해왔고, 그 혜택은 대부분 재벌대기업들에게 돌아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대기업은 지금까지 국내투자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과 10대그룹 총수들의 오찬이 경제민주화 후퇴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야당의 경제민주화 포기 관련 비판에 대해 "오찬간담회를 함께하면서 재계의 현안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의견을 듣고, 올 하반기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업들의 협력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상법개정안·집중투표제 '백지화' 가닥?


유 대변인은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해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이뤄내는 동시에 현재의 어려운 경제환경의 개선을 위해 기업들이 솔선수범하여 투자해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정부 또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유 대변인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하도급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핵심법안들은 국회를 통과했다"며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나머지 경제민주화 완성을 위한 법안들도 국회에 제출되어 논의 중에 있다는 사실을 야당도 잘 알고 있다"며 경제민주화 후퇴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오찬간담회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대기업의 협조를 위해 정책적 과제를 지연시켰다는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자체가 여권의 공식석상에서 사라졌고 핵심법안들은 아직 국회 상임위 문턱도 밟지 못했다.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안과 보험·증권 등 제2금융권으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확대하는 법안은 6월국회 처리가 목표였지만 정무위에 계류 중이다. 횡령·배임 등 재벌 총수의 중대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 형 확정 이후 대통령 사면을 차단하는 사면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에 머물러 있다. 이런 법안들은 국회에 장기 계류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 정기국회 초점을 맞추는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처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핵심법안 대부분
국회 계류 중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기업은 '모든 계열사'에서 '총수 일가가 일정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로 축소됐고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강화, 지주회사 전환촉진을 위한 금융 자회사 규제개편, 집단소송제, 사인의 금지청구제 등도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박근혜정부의 제1국정기조는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성장이다. 그런데 취임 첫해, 그것도 새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경제민주화는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흐지부지될 위기에 처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0대그룹 총수들 무슨 말 했나

말씀들은 그럴싸한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세계 경제가 어렵다. 규제를 풀어준 것은 기업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창조경제는 한국경제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이며 기업들이 앞장서서 실행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삼성의) 투자 고용 계획은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으며 SW 인재육성에 노력하고 기초과학을 육성하고 융복합 기술개발에 노력할 계획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연 740만대 생산 중이며 해외 생산도 늘고 있다. 국내 임금과 물류비용의 상승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연 1000만대 생산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자동차, 철강 등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 친환경과 첨단소재 개발도 노력 중이며 해외 협력업체 동반진출 지원에 힘쓰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융복합 IT 기술, 에너지 저장장치, 전기자동차 등에 있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필요가 있으며 이중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기차 보조금 지원확대가 필요하다. (LG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휴대폰 사업, 저성장아동을 위한 성장호르몬 보급 등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롯데는) 여성이나 지방대 출신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며 지역 전통시장과 중소상인과의 상생에도 노력하겠다. 이를 위해 비닐 장바구니를 5만개 제작·배포하기로 했다. 잠실 제2롯데월드 등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적극 나서겠다.

▲조양호 한진 회장=사회적 보상시스템 부재 등으로 고용시장 수급이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인항공기 등 방위산업의 경우 사업연속성의 부족으로 어려움이 있다. 인천공항 허브화와 중국인 비자확대, 특급관광호텔 건립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 (한진은) 60대의 신규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1대당 250명의 고용창출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김창근 SK 의장=대중소기업 동반성장지수 평가가 줄 세우기 평가보다는 기업별로 자발적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중국의 석유국유기업인 시노펙과 합작투자가 상업생산에 돌입하는데 국가 지도자간 신뢰필요성에 대한 긍정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스마트 그리드, 빌딩관리시스템, 에너지저장장치 등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신 시장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 합작투자가 조속한 처리가 되면 이를 통해 울산에 1만개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을 것이다.

▲허창수 GS 회장=외국인투자촉진법 처리가 시급하다. (GS는) 신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GS홈쇼핑이 중소기업 제품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동반성장의 주요 사례다.

▲박용만 두산 회장=72개 지방상공회의소 회장들을 모두 만나본 결과 투자와 일자리 창출 의지는 있지만 투자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눈이 너무 좁고 턱이 너무 높다. 통상임금은 공멸의 문제다. 입법이 개별 기업의 경우 어디에 해당되는지 모를 만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 지원과 실패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솔선수범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를 만드는 등 상공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소 수출 등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정부 금융 지원도 필요하다.

▲홍기준 한화 부회장=(한화는) 80억달러 프로젝트인 이라크 주택 10만호 건설을 진행 중이다. 중소업체와 동반진출을 통해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차원의 보증과 보험지원이 필요하다. 태양광산업에 대한 기회도 찾고 있다.

▲이재성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심해저 자원개발과 해양플랜트에 대한 자원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서 물꼬를 터주기 바란다. 이제 골드러쉬에서 블루러쉬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호주, 브라질 등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다. 세일즈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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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