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모펀드 불편한 동거 백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4:46:09
  • 댓글 0개

'염불보다 잿밥' 재계 위협 공공의 적

[일요시사=경제1팀] ING생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MBK파트너스가 선정됐다. 인수는 금융당국의 승인을 거친 뒤 연말에 최종 완료될 예정이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그간 국내기업을 인수한 사모펀드가 끊임없이 빚어온 '먹튀' 논란이다. '론스타-외환은행' '뉴브리지캐피탈-제일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ING생명과 MBK파트너스 역시 '먹튀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ING생명 한국법인을 인수하기로 했다. ING그룹은 이 같은 내용 지난달 26일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날 MBK는 ING생명 지분 100%를 1조8000억원에 인수하고, ING그룹은 주식인수대금 중 1200억원을 재투자한다는 내용의 인수본계약(SPA)에 서명했다.

MBK는 최대 5년간 ING 브랜드를 사용하고 ING그룹은 향후 1년간 자문과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ING생명은 앞으로 MBK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독립·독자적인 기업체로 경영되며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금감원·금융위
인수 적정성 검토

MBK는 재원 1조8000억원 마련을 위해 인수금융 8000억원을 포함, 자기자본 약 1조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인수 금융에는 우리투자증권, 하나대투증권, KB국민은행 등 3개사가 참여했다. 자기자본 1조원 중 6800억원은 MBK 3호 펀드에서 출자하며 국내연금, 새마을금고 등 국내연기금의 투자를 받을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캐나다 PSP인베스트먼트가 2000억원을 투자하고 나머지 1200억원은 ING생명이 재투자한다.

인수 금액을 두고 업계에서는 MBK가 유리한 거래를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처음 ING생명 한국법인이 매물로 나왔을 때 가격이 3조원에 육박했고, 지난해 KB금융과 매각 협상을 할 때에도 2조원 초반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ING그룹은 2008년 네덜란드 중앙은행으로부터 100억유로의 공적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ING생명 한국법인의 지분을 올해까지 50% 초과, 2016년까지 100% 전량을 매각해야 한다.

남은 관문은 금융당국의 대주주 변경 승인 여부다. 금융당국은 MBK의 ING생명 인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가장 큰 걸림돌로 MBK가 사모펀드라는 점을 들고 있다.


2005년 설립된 MBK는 국내 최대의 사모펀드다. 운용자금은 2012년 기준 약 4조원.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넷째 사위인 김병주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1호 펀드로 한미캐피탈, HK저축은행, C&M, 중국의 베이징보웨이공항지원, 루예제약, 일본의 야요이, 타사키, 대만의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즈, 갈라TV를 인수했으며 이중 한미캐피탈(현 우리캐피탈),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즈, 갈라TV, 루예제약은 투자를 회수했다.

2호 펀드로는 두산테크팩, 영화엔지니어링, 금호렌터카, 중국의 GSEI, 뉴차이나생명, 일본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인보이스를 사들였고 이후 금호렌터카는 KT렌탈로 합병됐으며, MBK는 KT렌탈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했다.

3호 펀드는 2012년 1차 자금조달로 약 1조4000억원을 유치했으며 최근 HK저축은행, 코웨이, 네파 등을 인수했다.

이와 관련 ING생명 노조는 "MBK는 HK저축은행을 인수한 후에 직군 분리를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C&M 인수 후에는 하청을 통한 무분별한 분사를 시도해 노동자들이 MBK의 핍박에 맞서 노조를 만들었지만 55일간의 파업 후에야 노조를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ING생명 우선협상자 1조8000억에 MBK 선정
혹시 또…론스타 먹튀 트라우마 '조마조마'

또한 노조는 "이러한 경영형태를 볼 때 MBK는 보험회사의 기반이 되는 노동자를 동반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자본의 이익 극대화만을 쫓기 위한 탄압과 구조조정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든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다. 사모펀드의 운용은 투자자들을 비공개로 모집하여 자산가치가 저평가된 기업에 자본참여를 하게 하여 기업 가치를 높인 다음 기업주식을 되파는 전략을 취한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는 사모투자전문회사를 말하며 우리나라 투자신탁업법에서는 100인 이하의 투자자, 증권투자회사법에서는 50인 이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는 펀드를 말한다. 사모펀드는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일반 펀드와 달리 개인 간 계약 형태를 띠고 있어 금융감독기관 감시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재벌들의 계열사 지원이나 내부 자금 이동 수단, 불법 자금 조달 등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큰 부작용은 구조조정으로 기업 체질개선을 하기보다 비용 절감 등 단기 처방으로 기업 가치를 올려 되파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먹튀'다.

국내에서 사모펀드의 먹튀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는 1998년 외환위기(IMF) 이후 국내 기업을 인수한 상당수 사모펀드가 고배당과 유상감자 등을 실시해 회사 미래가치를 훼손하고, 당장의 경쟁력만 강화시켜 차입금과 고수익을 일으키면서부터다. 

대표적인 게 '론스타 사태'다.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사모펀드 론스타는 IMF 직후 한국시장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당시 론스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에서 부실채권을 사들인 후 이를 되팔아 이익을 거두는 형태의 영업을 했다.


2000년부터는 부동산 사업에 손을 뻗쳐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를 6330억원에 인수해 3년 뒤 매각, 3120억원의 차익을 남기는 등 뛰어난 사업수완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론스타와 한국 간 큰 갈등은 없었으나 2003년 8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탈세 혐의 등 각종 고발에 시달렸고 이후 막대한 배당금을 챙겨가면서 '먹튀'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을 통해 약 4조6600억원의 차익을 챙겨 9년 만에 한국을 떠났다.

끝나지 않은
론스타 사태

'론스타 사태'는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IB업계에서는 한국은 투자하기에 적절치 못한 곳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론스타라는 실체는 한국 땅에서 사라졌지만 한국 사회에 남긴 여운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론스타 사태로 몸살을 앓는 동안, 다른 사모펀드들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남겼다.

에어컨 생산 업체로 유명한 만도는 회사가 둘로 쪼개진 채 각각의 사모펀드에 인수되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1998년 미국 사모펀드 로스차일드에 매각된 만도기계는 만도공조(위니아만도)와 ㈜만도로 분리돼 각각 UBS캐피탈 컨소시엄과 JP모건 자회사인 선세이지에 팔렸다.

선세이지는 회사에 대한 투자는 외면하고 2002년 유상감자를 통해 ㈜만도로부터 950억원을 회수했다.

UBS캐피털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위니아만도의 소유주가 된 유럽계 사모펀드 CVC캐피털은 페이퍼컴퍼니인 만도홀딩스를 만들어 인수·합병하면서 만도홀딩스 주식 절반을 유상 소각해 520억원이 넘는 자본금을 회수했다.


오리온전기 인수
반년 만에 청산

오리온전기는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간 뒤 반년 만에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6개월간 매틀린패터슨의 행보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2005년 4월27일 오리온전기를 인수한 매틀린패터슨은 일주일 뒤인 5월2일 오리온전기의 주식 100%를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에 넘겼다. 이틀 뒤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는 OLED 사업부문을 분사해 오리온 OLED를 설립했다. 이후 5월13일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는 오리온전기 주식을 50%씩 나눠 트랜스캐피털그룹과 파트너얼아이어드그룹에 넘겼다. 이 두 회사는 모두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홍콩에 본사를 둔 오션링크라는 회사가 100% 주주다. 결국 오리온전기 지분 모두가 오션링크에 넘어간 것. 그리고 10월31일 오션링크는 오리온 전기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유수의 재벌그룹들도 사모펀드의 힘을 피할 수 없었다. 2004년 SK는 미국계 사모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 지분 8.6%를 확보하며 2대주주로 올라서면서 경영참여를 선언,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SK(주)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은 고작 0.72% 수준.

반면 소버린은 경영 참여 선언 1년 전부터 SK그룹이 SK글로벌 분식회계 등으로 흔들릴 때마다 값이 내려간 SK(주) 주식을 싸게 사들여왔다. 이후 소버린은 1768억원을 들여 SK(주) 지분의 14.99%를 추가로 확보하며 최 회장 사퇴를 공식적으로 요구했고 최 회장과 소버린은 치열한 지분경쟁에 돌입했다.

최 회장은 2005년까지 SK(주) 주식 25만3648주를 사들이면서 경영권 방어에 나섰고 2년여에 걸친 이들의 분쟁은 소버린이 공시를 통해 투자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변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후 소버린은 보유하고 있는 SK(주)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고 선언했다. 결국 1768억원을 투자해 SK(주) 지분을 사들인 소버린은 2년 뒤 8000여억원의 이익을 챙겨 떠난 셈이 됐다.

KT&G는 '기업사냥꾼' 칼아이칸에 호되게 당했다. 2006년 칼아이칸은 KT&G의 지분을 6.59% 확보하고 2대주주로 올라서면서 KT&G 측에 사외이사 1명 이상 선임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사실상 경영권을 압박한 것. 이후 칼아이칸은 KT&G의 주식 한주에 6만원으로 매수하겠다고 공개매수 의사를 나타내면서 집요하게 KT&G를 압박했고 당시 최대주주인 프랭클린뮤추얼이 칼아이칸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자 KT&G는 국민연금 등의 힘을 빌려 간신히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칼아이칸은 보유하고 있던 KT&G 주식 700만주를 팔아치워 1500억원이라는 시세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장류 생산 전문업체 샘표와 자동차 와이퍼 생산업체인 캐프는 최근까지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는 사외 이사 정도로 경영권에 간접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버린·칼아이칸 공격에 SK·KT&G 흔들
샘표·캐프 적대적 M&A로 최근까지 골머리

그러나 지난해 12월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IMM프라이빗에쿼티(이하 IMM)는 캐프 경영진에 전환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IMM은 같은 계열인 IMM인베스트먼트와 함께 2010년 5월 캐프에 600억원을 투자, 캐프 보통주 5만주(10.22%)와 우선주 28만8892를 보유한 주요주주다. IMM의 우선주는 보통주 10주 이상으로 전환하도록 돼 있다.

캐프의 경영진과 노조는 대자본의 '기업 강탈'이라고 비난하며 강력히 맞섰다. 고병헌 전 대표는 보통주 전환을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IMM은 지난 2월 법원에 주주지위확인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해 지난 5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IMM이 본격적으로 경영 참여를 시작하자 캐프 노조는 지난 7월 초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새로운 경영진인 IMM 측이 총 6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 회사의 자본을 확충하고 재무구조 안정에 나서면서 노조 측도 이를 경영정상화의 단계로 보고 보름 만에 조업을 완전 정상화했다.

샘표식품은 우리투자증권이 운영하는 사모펀드 마르스1호와 6년간의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마르스1호는 2006년 9월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의 이복동생인 박승재 전 사장이 넘긴 샘표식품 지분 24.1%를 매수한 이후 적대적 인수·합병을 선언하며 샘표식품 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마르스1호는 2007년 3월 샘표식품 주식을 추가 매입, 지분율을 29.97%까지 끌어올렸고 샘표식품을 상대로 낸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샘표식품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이후 2008년 4월 마르스1호는 샘표식품 주식에 대해 공개매수 계획을 전격 발표했으며 샘표식품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백기사로 풀무원과 전략적 파트너로 손을 잡으면서 맞섰다.

캐프 공장 중단
보름 만에 재개

마르스1호는 지난 6년간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및 감사선임을 놓고 표 대결을 벌였다. 지속적인 공개매수에도 불구 주총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표 대결에서 밀리며 주주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하고 이 지분을 매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샘표식품이 자기주식 120만주를 공개매수를 통해 300억원에 취득한다고 밝히면서 6년간의 지지부진한 경영분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