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20년' 덫에 걸린 총수들 잔혹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8.13 09: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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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돈 꼬불치기' 예나 지금이나 판박이

[일요시사=경제1팀] 금융실명제법이 시행 20년을 맞았다. 금융실명제는 횡행하던 가명 거래를 원천 차단해 금융 질서를 단숨에 뒤집었다. 그러나 양날의 검이었다. 차명계좌를 통한 검은 돈 유통이 성행한 것. 특히 대기업 총수들이 연루된 대형 횡령·배임 사건과 탈세 사건에서 어김없이 차명계좌가 등장했다. 불법 자금 은닉에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이 없다는 인식이 기업 오너들에게 박혀 있는 셈이다.



금융실명제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때는 1982년 5월 터진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이후다. 사채시장의 큰손이던 장영자씨는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회사와 접촉해 현금을 빌려주고 몇 배의 약속어음을 받아냈다. 남편 이철희(전 중앙정보부 차장)씨의 경력을 언급하며 "특수자금이니 비밀을 지켜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로 불린 이 사건으로 청와대 배후설이 등장했고 은행장 2명과 기업 간부, 전직 기관원, 대통령의 처삼촌에 이르기까지 30명이 줄줄이 구속됐다.

비자금으로
드러난 허점

장씨와 이씨 부부는 법정 최고형인 15년형을 선고받고 10년가량의 옥살이 끝에 풀려났다. 2개월 뒤인 7월 정부는 '금융실명거래와 금융자산소득에 대한 종합과세의 실시방침(7·3 조치)'를 발표했다. 금융실명제 1차 도입 시도다. 방침의 요지는 ▲1년 뒤인 1983년 7월1일부터 모든 금융거래에 대해 실명제를 실시하며 ▲금융소득을 종합과세하고 ▲실명이 아닌 3000만원 이상의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과징금으로 5%를 내야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침은 여당 등 정치권의 반발에 밀려 1982년 12월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실시를 유보하기로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공약, 당선된 후 1988년 10월 "금융실명제를 1991년 1월1일부터 전면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두 달 동안 실명전환 기간을 뒀다. 실명전환 기간 직후 재무부가 발표한 잠정 집계결과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전체 가명계좌에 들어있던 2조8623억원 가운데 96%인 2조7480억원이 실명 전환됐다. 실명전환된 차명계좌는 27만5800좌(2조9246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금융거래 투명성은 어느 정도 높아졌다.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금융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도 사라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점이 있었다.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한 차명거래를 불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금융실명제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94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거지면서 부터다. 이 시기 서석재 당시 총무처장관(2009년 사망), 박계동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등의 폭로로 전·노 전 대통령이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95년 10월 박계동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신한은행 서소문 지점에 ㈜우일양행 명의로 예치된 110억원의 예금계좌 조회표 사본을 제시하며 '노태우 비자금 4000억원'이라고 발언,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이 여러 시중 은행에 차명계좌로 분산 예치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신한은행이 즉각 해명했고 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단서가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노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금융질서 잡는다' 가명거래 원천차단
대기업 회장들 측근 차명으로 비자금

지난 2001년 7월에는 이용호 G&G 회장이 삼애인더스, 인터피온 등 자신의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발굴 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 250억여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도 차명계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건의 수사를 위해 2001년 특별검사가 임명됐으며 특검 과정에서 신승남 전 검찰총장 동생,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및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등 권력층의 비리가 추가로 밝혀졌다. 홍업씨는 이후 검찰 수사에서 이권청탁 대가 등으로 47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홍업씨는 이 회장에게 받은 자금을 사채업자와 김성환 전 서울음악방송 회장의 차명계좌 등을 통해 자금을 세탁했다.

기업 오너가 차명계좌로 인해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을 통해서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자기도 모르게 차명계좌를 개설해 50억원가량의 현금을 입출금했다고 밝혔다.


폭로 후 삼성 측은 차명재산에 대해 "임원들의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삼성 특검'이 발족됐고 삼성 측은 이건희 회장이 선대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삼성특검은 이 회장이 임직원 명의의 1199개 차명계좌로 4조500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운영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삼성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만 이 회장을 기소하고 비자금의 조성과 사용처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회장은 여론에 밀려 사건의 책임을 지고 2008년 4월 경영퇴진을 선언하고 물러났다가 2009년 12월 '삼성 위기론'에 의해 유례없는 단독 사면을 받고 2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비슷한 시기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은 '변양균-신정아 게이트' 수사 과정서 비자금이 드러나면서 차명계좌 논란에 시달렸다. '변양균-신정아 게이트'를 수사하던 경찰은 신정아씨의 횡령 혐의를 밝히기 위해 2007년 9월 김 전 회장의 부인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괴자금을 발견했다.

시작은 찬란
과정은 암울

검찰은 자금 출처를 추적, 괴자금의 출처가 쌍용양회 임원들의 명의를 빌려 주식으로 보관하고 있다가 현금화한 것으로 최종 결론지었고 압수한 현금과 수표 63억원, 엔화 4억원, 차명계좌 14개에 예치된 20억원 등 총 87억원 전액을 국고로 환수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중 박용성 두산그룹 명예회장도 정치권의 느닷없는 의혹 제기로 장남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사장과 함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두산 총수일가가 1973년부터 2006년까지 33년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60여 개의 차명계좌로 몰래 관리하고 그 과정에서 증여세 탈세, 통정매매 및 불법적 현금이동 등의 불법행위를 일삼았다는 것. 의혹은 노희찬 전 의원의 입을 통해 나왔다.

개정 논의 급물살
안철수 법안 준비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해당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산 총수일가가 60여 개의 차명계좌로 수백억원 규모의 주식과 채권, 현금을 불법·탈법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포착하고 그 자금출처를 추궁했고, 두산그룹 측으로부터 '1973년 동양맥주(현 두산) 주식을 상장할 때부터 대주주 지분 20% 가량을 차명계좌로 관리하기 시작했고 경영권 유지 등의 목적으로 운용했다'는 해명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또 "60여 개 차명계좌와 비자금을 관리한 사람은 바로 박용성 회장과 그의 장남인 박진원 상무"라며 "모 증권사 모 직원이 실무적으로 차명계좌 관리를 도왔다. 모 증권사 내부문서에 따르면 박용성 회장이 직접 비자금을 관리하다가 1999년 3월 아들 박진원에게 관리를 넘겼다"고 말했다.

수사만 시작되면
줄줄이 차명계좌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2009년 3월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2007년 3월께 박연차 당시 태광실업 회장에게 건넨 50억원의 출처가 차명계좌라는 사실이 불거지면서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불법거래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사종결하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정치권에서 라 전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도 금융실명제 위반과 관련한 일부 내용만 적발하고 공개하면서 업무정지 3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이에 최근 국회차원의 감사원 감사요구가 제기됐다. 지난달 참여연대와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 전원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검찰이 신한금융지주와 라 전 회장의 불법·비리 행위를 봐주거나 비호한 의혹이 있다"며 해당기관에 대한 국회차원의 감사원 감사요구를 청원했다.

참여연대 등의 주장의 요지는 라 전 회장이 90년대 말부터 재일동포 주주, 임직원 및 그 가족, 외부 지인 등 수십명의 이름을 빌린 차명예금과 증권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운용하며 막대한 사적 이익을 취해 왔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라 전 회장의 수십여 개 불법 차명계좌 운용 사실과 관련 비리 의혹을 접수·파악하고도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조치와 처벌을 추진하지 않은 국세청과 검찰의 행위에 대해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요구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태광그룹은 모자가 동시에 차명계좌와 임직원 명의 주식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는 2010년 10월 시작됐다. 100여 일간 이어진 수사에서 이들 모자는 임원과 사원들, 거래처 관계자 이름까지 빌려 무려 7000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3000억원대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무자료 거래, 허위회계처리 등 방법으로 회삿돈 500여억원을 횡령하고 골프장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로부터 담보도 없이 돈을 빌리거나 주식, 골프연습장 등을 낮은 가격에 사들여 회사에 900여억원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6월과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태광그룹 계열사로부터 225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징역 4년과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6월에 벌금 10억을, 이 전 상무는 징역 2년과 벌금 10억원 등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용건 삼환기업 명예회장은 지난해 11월 삼환기업 노조가 "최 명예회장이 수십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10여 년 동안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임직원과 다른 계열사를 통해 주식을 사들인 뒤 손실 처리하는 방법으로 계열사 간 부당거래를 했다"며 검찰에 고발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 같은 혐의로 지난 4월 최 명예회장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명예회장은 계열사인 신민상호저축은행에 3자 배정 유상증자 명목으로 120억원을 예금하는 등 계열사 간 부당지원으로 모두 183억여원 상당의 손실을 입힌 혐의다.

다만 최 명예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수백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횡령 등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자료와 주식취득자금 소명서, 차명계좌 확인서 등을 검토한 뒤 무혐의 처분했다.

"비리 차단하려면 
원주인 반환 금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차명 계좌와 차명 소유 회사 등을 통해 한화 계열사와 소액주주, 채권자들에게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돼 작년 7월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심은 김 회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했고 현재 대법원에서 상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 회장은 조울증과 호흡 곤란 등의 이유로 올해 1월 법원에서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받고 3월과 5월 구속 집행 정지 기간이 연장됐다.

처조카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아 주목을 받은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회장도 60억원의 회사 자금을 영업자금 대여 명목으로 횡령해 차명계좌로 주가를 조작해 5억원 규모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라 회장은 지난 6월29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팔아 5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해외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굴리며 조세를 포탈해 재산을 불리고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리는가 하면 개인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회사에 수백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로이스톤 등 7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CJ그룹 주식을 사고 팔아 거액의 차익을 남기거나 CJ그룹 국내외 계열사의 주식을 차명 보유해 배당소득을 받고도 양도소득세와 배당소득세 등 274억7000여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검찰 조사 결과 이 회장은 지난 98~2002년 사이 CJ그룹의 해외법인 자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뒤 2004년부터 자사 계열사 주식을 차명보유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2003년 이전의 조세포탈 혐의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공소사실에서 제외됐다.

이 회장은 또 2003~2007년까지 CJ그룹 임직원 459명의 명의를 빌려 차명계좌 636개를 관리하면서 CJ(주) 주식을 사고 팔아 1182억원의 수익을 올리고도 238억4000여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지난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의 금융실명제법은 합의에 의한 차명거래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 않다. 금융기관이 모든 금융거래 당사자의 차명거래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이유다.

금융기관은 자금출처를 조사할 실질적 권한이 없다. 따라서 거래자의 주민등록상 실명 여부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의무도 없다. 거래자가 금융기관을 속이고 차명계좌를 만들어도 업무방해에 속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금융정보분석원(FIU)법이 만들어지면서 금융회사가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고 의심되는 거래를 FIU에 보고할 의무가 생겼지만 합의에 의한 차명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법 조항은 없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금융실명제법 시행 20주년을 맞아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최근 전 전 대통령이나 CJ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차명계좌 논란에 불이 붙으면서 차명계좌를 전면 금지하거나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명제법 개정
찬반 입장 팽팽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최근 차명계좌가 적발되면 계좌 평가액 일부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실명이 확인된 계좌를 명의자 재산으로 간주하고 실질권리자의 반환청구를 금지하는 쪽으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의원입법 1호로 관련 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금융권은 반대 입장이다. 금융권은 거래자의 '양심선언'이나 검찰과 국세청의 개입이 없고서는 금융기관에서 차명거래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정부는 차명계좌를 금지할 경우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동창회· 동호회 등 각종 친목도모를 위한 모임의 회비 등의 계좌를 개인 명의로 하는 경우, 부부의 생활비 통장 등 당사자 간 합의된 차명거래를 하는 이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는 것.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선의의 차명계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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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