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서울 서초구 우면산 자락에 있는 관문사. 이효림 작가는 이 관문사에서 '회심처(會心處)'란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은은한 찻잔 속의 향기와 어우러진 형형색색의 그림은 날이 섰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염색된 닥지만이 낼 수 있는 오묘한 색감. 불교적인 소재가 이끌어내는 담박함의 매력. 이효림 작가는 이번 회심처(會心處)를 준비하면서 "내 마음을 먼저 갈고 닦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왜 붓이 아닌 마음을 먼저 얘기한 것일까.
붓 보단 마음으로
"지금 전시장에 모두 35점의 작품이 걸려있는데요. 이중 3분의 2는 올해 그린 작품들이에요. 사실 전시를 준비할 때는 거의 두세달을 집에 갇혀있다시피 작업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수행을 하다 보니 거기서 얻어진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수행에서 배웠던 힘과 집중력을 그림에 쏟아 부을 수 있게 됐고, 그림에 막힘이 없으니까 손도 빨라졌고요. 제가 미술전공만 10년을 넘게 했는데 단순히 '앉아만 있는다'고 작업이 되는 건 아니에요."
이 작가는 묵언수행 예찬론자다. 실제로 이 작가는 지난 3년 동안 동안거와 하안거를 빠짐없이 했는데 그 과정 속에 개인적인 변화가 많았고, 작품에도 변화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다른 작가들은 내가 수행을 하는 동안에도 그림을 그릴 거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할 거고. 여기서 오는 복잡함이 있었죠. '괜히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내 참모습을 돌아보면서 오히려 작업에 자신감이 붙었어요. 과거엔 좋은 작품을 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어설픈 그림이 나왔거든요. 하지만 이젠 마음에 평화를 찾았다고 할까요? 그렇게 달라진 그림이 여기 있습니다."
염색된 닥지의 오묘한 색감
담박한 매력의 불교적 소재
전시를 보고 난 관객들은 대개 "마음이 따뜻해졌다" "힐링이 된 것 같다"는 감상평을 남긴다. 작가 본인의 말처럼 스스로 욕심을 버리니 그 절제된 마음이 작품 안에 녹아있다는 설명. 그리고 이 작가의 작품을 본 관객들은 그가 추구해나가고자 하는 순수한 세계를 그림을 통해 간접 경험하게 된다.
"그림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 했을 때 작품은 화가 그 자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림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데 테크닉만 익히고, 마음 수행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는 말이죠. 전 예술가는 동시에 철학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철학이 없는 예술은 단순한 디자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동안 기술적으로 제 화법에서 이효림스러움을 추구했다면 이젠 철학에 좀 더 치중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작가는 "동양화하면 보통 수묵화를 생각하는데 삼국시대까진 모두 채색화였다"면서 "고구려 시대의 채색기법을 배워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온고지신'인 셈.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동양화에 대한 이 작가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또 철학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서양화는 오래 전부터 시각적인 것에 비중을 뒀어요. 반면 동양화는 추상화된 표현이나 철학적인 메시지 전달에 강점을 보였고요. 과거 서양화는 원근법 등에서 보듯 실물이나 사건을 재현하는 일에 탁월했어요. 하지만 동양화는 어떤 정신을 표현한 작품이 많았죠. 그런데 사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이상의 사실적 묘사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죠. 그래서 서양화의 흐름도 사실상 추상화로 많이 넘어왔고…. 역사적으로 봤을 때 회화의 역사는 동양이 훨씬 더 오래됐어요. 이런 면들을 종합하면 '동양화가 (서양화에 비해) 조금은 더 우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화사한 그림이 전달하는 '눈의 즐거움'
잠시나마 깨달음 주는 '머리의 즐거움'
이번 전시 주제는 회심처, 뜻을 풀이하면 '마음을 얻은 순간' 즉 '깨달은 순간'이란 의미다. 이 작가 본인도 완전한 깨달음을 위해 작업을 하는데 그 깨달음의 가장 높은 경지가 ‘회심처’란 설명이다.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겠죠. 이건 종교와 무관해요. 그리고 사람들은 깨달음이라는 꼭대기로 향하려고 하니까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다 같지 않나 싶고요. 특히 전 제 그림을 통해서 고천을 막론하고 깨달음을 얻는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종교 무관한 깨달음
이 작가는 기자에게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해가며 그 그림의 뜻과 의미를 풀이해줬다. 이 같은 '그림설명'은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한다. 화사한 그림이 전달하는 '눈의 즐거움'과 잠시나마 깨달음에 다다른 듯한 '머리의 즐거움'이 함께 느껴질 특별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린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효림 작가는?]
▲2004년 코엑스 아트페스티벌 부수전
▲2007년 신진작가창작지원전시 gallery LAMER 外
▲2010년 영화 <전우치> 작품 참여
▲2012년 남송국제아트쇼(NIAS) 초대 개인부스전 外
▲동국대 미술학과 한국화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