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철곤-이귀남 ‘무릎칠 인연’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5.29 10: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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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때…마치 짠듯…‘전관예우’절묘한 타이밍

[일요시사=경제1팀] ‘법’과 ‘자본’의 유착. 이귀남 전 법무장관이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정(情)을 함께 나누는 중이다. 퇴직 후 오리온그룹에 취업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 특히 이 전 장관은 담 회장의 비자금 수사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터라 파문이 일고 있다. 봐주기 수사에 대한 일종의 보은 차원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2011년 8월1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퇴임식을 갖고 공직 생활을 마감한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 퇴임사의 주요 내용은 “국민의 의식과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 국민의 신뢰를 받는 조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직윤리법
시행 직전에?

그로부터 1년 뒤. 이 전 장관은 오리온그룹 상근고문으로 취업했다. 현재는 비상근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고위 공직자의 민간기업 고문 취직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이 2011년 7월29일 공표됐지만, 2011년 10월29일 이후 퇴직한 사람부터 적용됐다.

이전에도 법조계나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금감원 등 힘센 부처에 있는 고위공무원들이 퇴직한 뒤 유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2년간 금지한 조항은 있었지만 고문, 자문위원, 사외이사 등 실무자가 아닌 자문역의 취업은 허용했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은 기업들이 퇴직한 고위공직자를 ‘고문’으로 모셔놓고 전관예우를 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개정법에는 ‘사외이사나 고문, 자문위원 등 직위나 직책 여부를 불문하고 사기업체 등의 업무를 보거나 조언을 하고 임금을 받으면 이를 취업으로 본다’는 내용이 추가로 신설됐다. 그러나 이 개정법은 공포 3개월 후부터 시행돼 두 달여 전 장관직을 그만 둔 이 전 장관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법의 적용은 피해갔지만 이후 이 전 장관의 오리온그룹 취업은 석연찮은 뒷말을 낳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제61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돼 지난 2009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재직했다.


이 전 장관 퇴임후 오리온 고문으로 취업
담 회장 비리 수사·재판 시기 겹쳐 뒷말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과 부인 이화경 사장은 이 전 장관이 재직 중이던 2011년 초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그해 6월 회삿돈 226억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74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담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이 사장과 함께 최측근인 조경민 전략담당 사장, 김모 온미디어 전 대표 등을 통해 비자금 조성을 계획·지시·위임하고, 조성된 자금을 횡령·유용한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고가 미술품을 법인자금으로 매입해 자택에 장식품으로 설치하고, 람보르기니 등 고급 외제 승용차를 계열사 자금으로 리스해 자녀들을 태워 학교에 보내는 등 사치스런 생활을 누린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주방 담당 등 자택 관리 인력을 계열사 직원처럼 꾸며 20억여원의 관리비도 회삿돈으로 부렸다. 재판부는 이 같은 공소 내용을 대부분 유죄로 판단했다.

또 담 회장은 2006~2007년 그룹에 제과류 포장재를 납품하는 위장계열사 I사의 중국3개 자회사에서 비자금 20억원을 조성·횡령하고, I사의 중국 자회사를 헐값에 팔아 회사에 31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았다. I사 임원에게 급여를 주는 것처럼 가장해 회삿돈 38억원을 횡령하고, I사의 서울영업소 부지와 건물을 무상으로 써 8억6천만원의 손실을 회사에 안기기도 했다.

담 회장의 횡령·배임 의혹 금액은 수사 초기 의심됐던 40억원에서 100억원대로, 다시 최종적으로 300억원대로 늘어났다. 담 회장 자택에 있던 100억원이 넘는 미술품들의 가격이 횡령액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회삿돈으로 구입한 개인 소장 미술품에 대해 횡령죄를 적용한 것은 담 회장이 처음이었다.


남편 구속됐지만
사장은 입건유예

그러나 이 사장은 당시 입건유예됐다. 남편이 구속됐고 회사에 피해금액을 갚은 점, 그룹 경영상 필요성, 본인 건강이 악화된 점 등을 고려했다는 이유였다. 오리온그룹의 실질적 지배자는 ‘오너의 딸’인 이 사장으로, 담 회장은 이 집안의 사위다.

혐의가 있음에도 입건유예를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계의 반응이다. 이재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위원회 부위원장) 변호사는 이 사장의 입건유예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 변호사는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2011년 초순경 이뤄진 오리온그룹의 1차 수사는 담 회장 부부의 업무상 횡령, 위임사건에 대한 수사였다”며 “배임금액과 횡령금액이 컸던 이 사건에서 특이할 만한 것은 당시 부인이었던 이화경 사장이 이례적으로 입건유예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기업 취업제한 기간 절묘하게 피해
혐의가 있는데도 회장 부인 ‘입건유예’

이어 “보통은 기소는 다하고 재판부에서 참작해서 한 사람은 실형을 하고 한 사람은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고 해서 집행유예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런 경우에 입건유예를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4년 동안 변호사하면서 이런 경우는 못 봤다”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할일을 검찰이 미리 나서서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이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이 전 장관이 오리온의 고문으로 간 것도 봐주기 수사 보은이 아닌가 한다”며 “이 사장을 입건유예 한 걸로 봐서는 그때 당시에 고맙다는 보은차원에서 고문으로 영입한 측면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담 회장도 지난해 1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담 회장의 횡령에 가담한 조 전 사장 역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자유의 몸이 됐다. 

항소심 집유
대법원 확정

당시 재판부는 “회사의 자금을 사주의 재산과 구분하지 않고 함부로 사용하는 행태에는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면서도 “그림 값 등에 대한 피해 변제가 전액 이뤄지고 향후 윤리경영을 다짐하고 있는 점에 비춰 원심의 형(징역 3년)은 다소 무겁다”고 감형 사유를 밝혔다.

이를 두고 ‘재벌 봐주기 판결’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같으면 소위 전문경영인이 분식회계를 하거나 횡령을 했다면 우리같이 (집행유예로) 처벌되는 일은 없다”며 사법부의 솜방망이 판결을 비판하기도 했다.

정황은 또 있다. 2012년 4월부터 2개월여 동안 진행된 오리온에 대한 2차 수사가 담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지 않은 점이다. 우연치 않게도 이 전 장관이 오리온그룹의 고문으로 가기 직전에 2차 수사가 시작됐고, 수사가 있자마자 이 전 장관은 고문으로 취업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오리온 계열사 스포츠토토를 압수수색하며 두 번째 수사에 나섰다. 이때 검찰은 담 회장 일가의 ‘금고지기’였던 조 전 사장을 다시 구속기소했다. 조 전 사장은 스포츠토토 측 자금 책임자였던 김모 부장과 공모해 지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임직원들의 급여 명목으로 거액을 빼돌리거나 친인척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수법으로 100억원대 회삿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확대 없이
금고지기만 구속

당시 검찰수사 기록에 따르면 조 전 사장은 2009년 2월쯤 스포츠토토의 부장 이상 간부들을 모아놓고 “월급의 절반을 반환하라”고 지시했다. 조 전 사장은 이 같은 방법으로 오리온그룹 계열사 6곳의 임직원 22명의 급여와 성과급, 퇴직금 등 66억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했고, 이 중 54억원을 고급 와인과 롤렉스·까르띠에 등 명품시계, 그림 등을 구입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원의 급여를 부풀려 지급한 뒤 되돌려 받는 방식은 기업 오너들이 비자금을 조성하는 ‘단골 수법’이다. 조 전 사장 역시 당시 비자금중 일부를 명품시계와 고가 와인 등의 형태로 담 회장에게 상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사장은 또 검찰 조사에서 담 회장의 부인인 이 사장에게도 비자금 사용과 관련된 보고를 직접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금을 관리했던 김 부장도 이들 돈의 용처에 대해 “담 회장 부부의 고급 와인과 명품 시계를 구입하는 등 사치품을 사는데 썼다”는 진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선 당초 마무리 수순을 밟았던 스포츠토토 비자금 수사가 담 회장을 정조준하면서 커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결국 수사는 확대되지 않았다.

조 전 사장의 진술이 사실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담 회장 부부에 대한 소환조사 여부를 검토 중이던 검찰은 조 전 사장과 김 부장을 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김 부장에게 명품와인과 시계를 판 업자를 조사한 결과 사치품들은 담 회장 부부가 아니라 조 전 사장의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회삿돈 300억 빼돌려도 회장 ‘집행유예’ 
‘비자금 상납’진술에도 오너 수사 중단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오리온에 대한 2차 수사가 담 회장에게 번지지 않기 위해서 이 전 장관을 영입했다”는 반응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 전 장관이 법무부장관 재직시절에도 오리온 수사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뒤 상임고문으로 영입되어서 역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법이 돈과 권력에 따라 불공정하게 집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탄식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오리온그룹의 고문 취업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개정법이 시행되기 전 퇴임했기 때문에 공직자 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었으며, 오리온 외에 다른 기업에서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도형 사무총장은 “수사 당시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분이 해당 기업에 취업한다는 것은 위법성 여부를 떠나 부적절한 것”이라면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떠나 검찰 수장이셨던 분이 취한 행보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어찌됐건 이 전 장관의 오리온그룹 취업은 지난해 초 이른바 ‘SK 맷값 폭행 사건’ 처리 검사가 SK그룹 전무로 취업한 일과 더불어 자본과 법의 유착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귀남 행적 보니…
과거에도 수사개입 의혹 ‘구설’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이 오리온 고문으로 취업해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 대한 비자금 재수사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과거 이 전 장관의 수사개입 의혹들이 재조명 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들을 수사했던 울산지검에 법무부 간부를 통해 전화를 걸어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내용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그해 3월쯤 울산지역 구청장 3명 등 새누리당 관계자 8명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던 울산지검에 법무부 간부가 전화를 걸어 기소 시점 연기를 요청했다. 그러자 울산지검은 법무부의 이 같은 수사 개입에 반발하며 새누리당 관계자 8명을 모두 불구속기소했다는 것이다.

앞서 이 전 장관은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한 서울서부지검에 법무부 간부를 통해 전화를 걸어 사실상 불구속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이 전 장관이 한화그룹 전 재무책임자인 홍동욱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말라는 뜻을 법무부 간부를 통해 전달했다는 것이다. 당시 법무부는 “중요 사건의 보고를 위해 통화했으며 수사 지휘·지시와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사실들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서는 담 회장의 비자금 수사에도 이 전 장관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네티즌들은 “나라 꼴 참 잘 돌아 간다”,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오리온은 다시 수사를 받아야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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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