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추태 ‘천태만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4.29 15:20:26
  • 댓글 0개

회사 망신시키는 꼴불견 “한명씩 꼭 있다”

[일요시사=경제1팀] ‘샐러리맨의 꽃’이라 불리는 대기업 임원들의 추태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기업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그 꼴불견의 천태만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폭언과 폭행,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수법도 다양하다. 이들은 한 번의 실수로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개인의 명예가 여지없이 실추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최근 포스코에너지 고위직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에게 폭행을 휘두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당사자인 A씨는 지난 22일 포스코에너지로부터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지만 사건의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라면과 바꾼
임원 자리

항공업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5일 대한항공 인천발 미국 LA행 비행기 안에서 기내 비즈니스석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여 승무원을 폭행했다. 

A씨는 기내식으로 제공된 밥과 라면이 다 익지 않았다며 수차례 다시 준비해 오라고 요구, 그래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손에 들고 있던 잡지로 여 승무원의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항공 사무장과 기장은 기내 폭행 사건을 비행기 착륙 전 LA공항 관계자와 수사기관에 신고해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출동했다. 미 FBI는 폭행 A씨에게 입국한 후 미 수사 당국 조사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임원 A씨는 바로 귀국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승객은 항공기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폭행·협박, 위계행위를 하면 안 된다. 또 기장은 기내 안전을 해치는 행위나 인명·재산에 위해를 주는 행위, 또는 항공기내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승객을 상대로 체포 신청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A씨가 대기업 임원으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포스코에너지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풍자한 ‘포스코 라면’, ‘기내식의 황제’ 등의 여러 가지 패러디들이 등장했다. 신라면 패러디에서는 승무원 얼굴을 때린 것을 두고 ‘매운 싸다구맛’이라고 비아냥거리며 ‘기내식의 황제가 적극 추천합니다’라는 말풍선과 함께 ‘개념 무첨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A씨는 23일자로 사직서를 제출, 회사에서도 이를 곧바로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1983년 포스코에 공채 입사한 후 포스코터미널, 포스코켐텍 등을 거쳐 2년전 포스코에너지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 3월 인사에서 ‘샐러리맨의 별’이라고 불리는 상무로 승진까지 한 인사다. 포스코는 임원 승진 비율이 대기업 평균 1%보다 더 낮아 280명당 1명 정도의 임원이 나올 정도로 어렵다.

이러한 최상위의 자리에까지 오른 대기업 임원이 이번에 비행기 기내에서 보여준 추태는 우리사회 지도층의 추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회특권층 추태
‘나라망신 일쑤’

사실 사회지도층들의 비행기내 난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12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김해발 대한항공 1104편 항공기(서울행)에 탔다가 이륙준비를 위해 좌석 등받이를 세워달라는 승무원의 요구와 기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소란을 피웠다. 결국 비행기 출발이 1시간가량 지연됐고 박 전 회장은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05년 9월에는 모 대기업 부장 B씨가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인계돼 처벌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조리실에서 승객에게 물을 뿌리고 생수로 발을 씻는 것도 모자라 승무원을 발로 걸어 넘어뜨리고 성희롱 발언을 하는 등 추태를 일삼았다. 결국 B씨는 영국 경찰에 연행되는 망신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 난동뿐 아니라 각종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임원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현직 대기업 간부가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철창에 머리를 찧는 ‘자해 소동’까지 벌여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11일 내연녀의 집에서 지적장애 3급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강간)로 STX중공업 차장 C씨를 구속하고 이를 방조한 혐의로 C씨의 내연녀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주말부부인 C씨는 지난 1월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내연녀의 집에서 30대 지적장애(3급)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당일 내연녀의 집을 찾은 C씨는 마침 방 안에 있던 지적장애 여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 승무원 농락 ‘라면 상무’파문 일파만파
장애인 성폭행 임원…술집 여주인 성추행 간부
택시기사 ‘묻지마 폭행’10대 소녀 몰카 망신도

내연녀 와 피해자는 한동네에 살며 친분을 쌓은 사이로 전해졌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내연녀가 C씨의 성폭행을 도운 정황을 포착, 내연녀도 불구속 입건했다.

C씨는 당초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 피해자의 체내에서 자신의 DNA가 발견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자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C씨는 수갑을 찬 채로 철창에 머리를 수차례 찧는 등 자해 소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터빈·엔진 등 동력기관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C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약 3개월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회사에 출근했지만 지난 2일 구속되자 회사측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못해?”

지난 2012년 2월에는 CJ그룹의 한 임직원이 여성을 성추행 한 뒤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등 소동을 벌이다 덜미가 잡혔다. 서울 중구 중림동의 한 실내포장마차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계산하던 CJ그룹 부장 D씨는 가게 여 사장이 돈을 받는 순간 “주방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소리쳐, 여사장의 고개가 돌아간 틈을 타 볼에 입을 맞췄다.

화가 난 여 사장은 D씨를 쫓아냈지만 곧 다시 돌아온 D씨는 여 사장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내가 CJ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못하겠느냐”며 가게 안에서 행패를 부렸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여 사장의 남동생이 곧장 가게로 달려와 D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사건은 남대문 경찰서에 넘겨졌다. 경찰서에서도 D씨의 범행 일체를 부인하다 남동생이 당시 상황이 녹화된 CCTV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미안하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게 합의했으면 한다”며 추행 사실을 자백했다.


더욱이 D씨는 CJ식품계열의 주력 상품 출시에 앞장서면서 이목을 끈 인물로 알려져 대기업 임직원의 도덕성에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해 1월에는 만취한 대기업 임원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두산그룹 전무 E씨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 상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상해)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택시기사는 술에 취해 잠든 E씨를 깨워 “어디로 가시냐”고 물었고, E씨는 다짜고짜 택시기사의 턱을 구둣발로 차고, 주먹을 휘둘러 눈을 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9년에는 ‘청정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의 지주회사 대상홀딩스의 대표가 10대 청소년 성추행이라는 복병에 시달려 충격을 줬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대상홀딩스의 대표이사 F씨 등 일행 3명은 4월 22일 밤 10시께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빌딩 앞에 앉아있던 10대 소녀의 치마 쪽을 쳐다보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이에 소녀의 일행 중 남성 1명이 항의하면서 몸싸움을 벌이다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의 성추행을 지켜보고 만류했던 공익근무요원도 F씨 일행에게 폭행을 당했다.

결국 일행 3명은 모두 폭행 혐의가 적용돼 입건됐고, 경찰은 F씨 일행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소녀의 일행 남성에 대해서만 ‘정당한 행위’로 간주하고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냈다.

하지만 소녀와 F씨가 합의에 성공함에 따라 성추행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강제추행 혐의는 피해자가 고소·고발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친고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휴대폰으로 소녀의 사진을 찍은 혐의를 받고 있는 맥쿼리 증권 부사장만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입건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재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업 브랜드를 좌우하는 대기업 대표인사가 “10대 소녀를 성추행했다”는 전례 없는 사건이기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계 한 관계자는 “자기 딸 같은 나이인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별들 몸조심
주의보 발령

이처럼 과거부터 최근까지 대기업 임원들의 ‘도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상당수 대기업들은 임원들에게 ‘몸조심 발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해당 임원의 명예실추는 물론 그 기업의 국내외 이미지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 총수의 리더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동반상생이 정·재계 화두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임원의 특권의식’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면 ‘경제민주화가 지나치다’는 대기업의 항변이 먹혀들겠느냐는 우려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과 정부 당국이 대기업의 세금 탈루와 부당 거래 등 폐단을 캐내려고 두 눈을 부릅뜬 상황에서 대기업 임원의 잘못된 처신이 불거지면 이롭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때문에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외 출장 또는 회식자리 등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일부 기업들에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처럼 무슨 일이 발생한 다음에야 시정하겠다는 등 야단법석을 떠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상식적인 명구절을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아닌 ‘젠틀 코리아(Gentle Korea)’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항공기 ‘진상손님’제재 강화

승무원 괴롭히면 업무방해

최근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승무원 폭행사건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가운데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마련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23일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항공기내 폭행·협박·위계행위나 출입문·탈출구·기기 조작, 항공기 점거·농성행위는 징역형 등 엄중 처벌토록 하고 있다. 아울러 승객의 안전유지 협조의무를 다룬 조항에도 ▲폭언·고성방가 등 소란행위 ▲흡연 ▲음주나 약물복용 후 위해행위 ▲타인에 성적(性的)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 ▲전자기기 사용 ▲조종실 출입기도 행위 등도 금지행위로 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승무원 업무방해’ 행위도 기내 금지행위로 추가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올해 초 발의됐던 것으로 이번 ‘승무원 폭행’ 사건과 맞물려 이목을 끌고 있다. 입법화할 경우 직접적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폭행이나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지속적이고 공격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행위, 악의를 갖고 행하는 업무 방해 행위 등도 제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 의원은 “항공기 내에서 승객이 난동을 부리며 승무원 업무를 방해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 기내 안전을 위한 승무원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승무원 업무 방해 행위에 대한 제재를 신설해 항공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아>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