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규당 김인기 화백

곧은 먹과 여유 멋 '자연스런 조화'

[일요시사=사회팀] 규당 김인기 화백은 파란 산자락 밑에 작고 아담한 단층집을 마련했다. 밤이면 하얀 별이 하늘을 수놓고 낮이면 마당 앞의 초록 새싹이 말을 건네는 곳. "시골스러운 게 더 좋다"는 김 화백은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규당(閨堂)의 도록을 펼치자 그 안에 새로운 경관이 펼쳐졌다. 샛노란 꽃들이 전해오는 향내음과 푸른 나무 그늘의 서늘함, 굽이진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하얀 하늘과 맞닿아 보드라웠다. 추수를 앞둔 너른 들녘처럼 김인기 화백은 넓은 품으로 손님을 맞았다.

슬럼프 없는 활동

"전 그림에 관해서는 질투와 시기가 없어요. 꼭 유명해져야겠다는 욕심도 없고요. 라이벌은 더더군다나 없어요. 누구보다 잘 하려고 경쟁하듯이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니까…. 그림은 창작이잖아요.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작가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면 그걸로 된 거죠."

김 화백의 그림에는 먹과 멋이 있다. 먹의 올곧은 기운과 여유로운 멋의 조화가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김 화백은 "그림 안에는 반드시 작가의 생각이 들어간다"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건 꼭 이렇게 그려야지. 이런 생각으로 붓을 들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요. 순간순간 드는 생각을 종이에 옮겨 그리는 편이죠. 작가가 틀에 갇혀 있으면 그림도 갇혀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림은 자신을 그리는 거예요. 그래서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중요하죠. 그림에 순수함이 묻어나거든요."


과거 김 화백은 17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며느리로 살았다. 당시를 회고하며 김 화백은 "밥 한 번 하려면 쌀이 한가마니나 들어갔다"고 웃음을 지었다. 살림만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김 화백. 그는 가족들 몰래 "그림을 친구로 삼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느 날인가 툇마루에 홀로 앉아 있는 어른을 봤어요. 참 쓸쓸해 보였죠. 나이 들면 자식들만 쳐다보며 살아야 하고, 육신도 약해질 거고.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고. 정말 곁에 아무도 없는데 그걸 보며 생각했어요. '아, 나는 꼭 평생 갈 친구를 만들어야겠다.' 그게 제겐 그림이었죠."

그는 해당(海堂) 김영순 선생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하지만 워낙 대가족이었던 살림 탓에 김 화백이 시간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 자신과 약속했어요. 절대 수업을 빼먹진 말자고. 그런데 제가 지각 1등이었어요(웃음). 매일 수업 끝날 때쯤 돼서야 갔거든요. 하지만 전 '늦긴 했지만 빠지진 않았다.' 이렇게 좋게 생각했어요. 물론 시간이 없어서 숙제도 못하고 그랬지만 속상하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내가 그림을 좋아하니까 이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가까워질 수 있겠지. 이렇게 희망적으로 생각했죠."

결혼 후 뒤늦게 입문…숨겨둔 재능 꽃피워
"질투·시기·욕심 버리고 자신을 그려야"

동년배 작가보다 입문은 늦지만 김 화백이 쌓아온 굵직한 이력은 그의 선배들을 뛰어 넘는다. 김 화백은 동양화는 물론 사진과 서예, 간단한 조각에도 능하다. 만개한 재능에 연륜을 덧칠하고 있는 김 화백. 그가 그림을 그린지도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림은 저를 보채지도 않고 제 얘기를 가만히 들어줘요. 누구처럼 속 썩이는 일도 없고, 저랑 다툴 일도 없고. 자식들은 결혼하면 떠난다는데 그림만은 늘 제 곁에 있어요. 제 삶에서 그림을 만난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김 화백은 그림을 시작한 후 단 한 번도 붓을 놓아본 적이 없다. 슬럼프도 없었다. 교통사고 직후에도 병실에 누워 화선지를 집었다. 그때 그렸던 그림들은 병실 천장을 빼곡히 수놓았다.

"그림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 저는 없었어요. 어떤 일이든 즐겨야 돼요. 모든 건 경험이잖아요. 돌이켜보면 병실에서 그림을 그렸던 것도 소중한 경험이죠. 사고를 낸 사람도 이해하게 됐고…. 인간의 삶은 하루하루가 첫 경험인데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매너리즘도 없었어요. 아직 그리고 싶은 것도 많고요."

긍정 메시지 담아

그가 지금껏 작업한 작품은 1000여 점에 달한다. 김 화백은 자신의 작품이 돈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쓰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 번은 사정이 어려운 사람이 제 그림을 꼭 갖고 싶다 하기에 '착한 가격'에 작품을 내준 적이 있어요. 정말 뛸 듯이 기뻐하더라고요. 그럼 그 작품이 저보다 그 사람에게 더 큰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어느 작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제 작품이 사람들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어요.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면 좋겠고. 그림을 보고 누가 그랬는데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라나? 이 말 하면 제가 그냥 넘어가죠(웃음)."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김인기는 누구?]

▲한국미술협회 회원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현대여성작가회 감사 및 이사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 한국화 분과 위원
▲경향신문 편집자문위원
▲경향미술대전 심사위원
▲개인전 조형갤러리 외 4회
▲초대전 한국현대시화 100주년 기념전 외 100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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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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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