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경영권 버린 재벌가 사람들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3.18 11: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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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장손도, 금지옥엽 막내도 ‘마이웨이’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 후계자. 소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인생’이라며 부러움을 살만하다. 최근엔 ‘은수저’가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불릴 정도로 서민들의 삶과는 차이가 크다. 돈 걱정 없이 화려하게 보장된 삶은 물론, 어려서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가업 승계를 받기까지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하지만 국내 재벌가 자손 중에서도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빽’이 아닌 ‘꿈’이다. 



‘출생의 비밀’ 만큼이나 TV드라마 속 단골 소재인 ‘재벌자제’의 모습이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작가들이 갇혀 있는 상상력의 한계를 확 깰 만한 실존 캐릭터가 국내 재벌가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회장님
내 꿈은 변호사

우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 효성 전 사장의 행보가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효성그룹의 유력 후계자 중 1명으로 거론돼 온 그는 이달 초 중공업 PG장을 갑작스럽게 사임, 여느 재벌가 자제들과는 다른 ‘이반’의 길을 택했다. 그는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법무법인 현’의 고문 변호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룹을 완전히 떠나 외부에서 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입학, 수석 졸업한 조 전 사장은 1996년 미국 하버드 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효성그룹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뉴욕 주 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다.

당시 조 전 사장은 국제 변호사로서 굵직굵직한 성과를 이뤄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 온 것이 그것이다. 닷컴 도메인을 선점한 사이버 ‘스쿼터(도메인 매점매석 행위자)’가 조 전 사장에게 수 억원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 도메인등록협회와 미 법원에 제소, ‘효성닷컴’을 찾아왔다.


이후 그는 1999년 효성 전략본부팀장으로 입사해 전략 부문에서 활동하다 2006년부터 그룹의 주력사업인 중공업 부문을 맡아오며 매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넉넉한 후계자 삶 포기 “꿈 찾아 옆길로”  
처음부터 입사 거부…임원 지내다 결단도

중공업PG 매출액은 2조원을 넘어서 회사 전체의 20%를 차지했고, 국내 최초로 북미 풍력발전 시장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남통 우방 변압기 기업 인수나 750KW 및 2MW 급 풍력발전시스템 국내 최초 인증 등은 업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조 전 사장은 사내 인트라넷에 ‘사임사’라는 글을 통해 “법률가로서의 전문성과 효성에서 10여 년간 축적한 경영 노하우를 접목해 법조 분야에 매진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조 전 사장이 근무할 ‘법무법인 현’은 40대 초반의 젊은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2007년에 설립한 신흥 로펌으로, 매출액 기준 국내 10대 로펌에 들어간다. 특히 조 전 사장의 부인으로 법무법인 김&장 등에서 근무한 이여진씨도 조 전 사장과 같은 법무법인에서 함께 일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의 퇴진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조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사장, 3남인 조현상 부사장과의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밀려난 결과가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조 전 사장의 퇴진이 관심을 끄는 것은 ‘재벌가 대물림 경영’이라는 방정식에 변화를 주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기업 경영보다
자선 활동 관심


조 전 사장과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정경선 사단법인 루트임팩트 대표이자, ㈜허브서울 공동대표가 그 주인공. 그는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손자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장남으로, 회사 지분 15만1530주, 지분 0.17%를 보유하고 있는 유력 주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부모 후광에 기대지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2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의 관심사는 ‘후계 수업’ 보단 ‘자선 활동’에 있었다. 대학시절 정 대표는 대학생 문화 기획 동아리 ‘쿠스파(KUSPA)’를 결성, 자선 파티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거나 아마추어 음악인을 돕기 위한 콩쿠르를 여는 등의 활동을 했다.

2010년에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모인 재능 기부 단체 ‘크리에이티브 셰어(Creative Share)’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2011년 11월부터 아산나눔재단 인턴 생활을 거친 후, 본격적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완강히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사회적 기업 후원단체인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 임팩트’를 만든 것이다. 목적은 자선 사업가들과 사회 혁신가들의 육성 및 역량 강화에 있다.

정 대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달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수행하는 임팩트스퀘어(Impact Square) 의 박동천 공동 대표를 포함한 몇몇 지인들과 함께 사회 혁신가들의 협업 공간인 ㈜허브서울을 열었다. 허브서울은 최근 이용자 수가 늘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정 대표는 2호점 확장은 물론이고 소셜 벤처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적극 가동할 예정이다.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 역시 자신의 의지를 펼친 현대가 자제 중 하나다. 정 팀장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의 장녀로 지난해 12월 재단에 합류했다.

아산나눔재단은 청년 창업 활성화와 글로벌 리더 육성을 위해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에서 5000억원을 출연해 2011년 출범한 민간 공익재단으로 최근 신설된 재단 기획팀은 창업 관련 신사업을 발굴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팀장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해 MIT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후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해 왔다. 평소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현장에서 창업을 지원하는 역할에서 의미를 찾고, 스스로 재단을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벌가 문제아서
광고계 기린아로

꿈을 찾은 재계 자제 중에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서원씨도 빼놓을 수 없다. 박씨는 지난 2006년 대학생 5명이 창업해 국제 광고제를 휩쓸고 광고계의 룰을 바꾼 ‘빅앤트 인터내셔널’의 대표다.

빅앤트는 설립 3년 만에 한국 최초로 국제 5대 광고제인 칸 국제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클리오 광고제, D&AD, 뉴욕 원쇼 석권과 3년 연속 수상을 기록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주목받았다.

박 대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알릴 당시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도 했다. ‘돈 있으면 누가 못 해’, ‘아버지 후광 효과’라는 등의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예상과 달리 학창시절부터 번듯한 재벌 3세의 장남들과 맥을 달리했다. 남들보다 10배 이상 놀던 중ㆍ고교 시절을 보내고 1998년 정원 미달로 단국대 경영대에 입학했다 3회 학사 경고 후 자퇴, 도피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이 후에도 2회 학사경고에 5차례나 전공을 바꿔야 했던 긴 방황 끝에 박 대표는 산업디자인에서 물을 만났고, 한국인 최초로 세계 5대 광고제를 휩쓴 광고계의 기린아로 돌아온 것이다.

박 대표는 지난달 방송된 KBS2 TV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해 ‘재벌2세가 아닌 광고쟁이’로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털어놓기도 했다.

경영과 담 쌓고 생활…쉽게 독립했다 낭패도
‘변호사, 자선가, 광고인, 공직자, 영화감독…’

이날 방송에서 박 대표는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까지 왔지만 대기업 회장 아들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털어 놓으며 “대학교에서 늘 F였는데 산업 디자인과로 전과한 첫 학기에 올 A를 받았다. 이게 내 길이구나 생각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광고 분야에서 더 잘해 다음 세대에 이어 주는 것이다”라고 광고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도 일찌감치 비경영자의 길을 걸었던 자제들이 있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이 대표적. 박 이사장은 고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다섯째 아들이다.

박 이사장은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 교수와 공직자의 길을 걸어왔다. 물론 그룹 계열사의 지분은 갖고 있지만 다른 형제들과 달리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박 창업주의 장남 고 박성용 회장의 아들 박재영씨도 작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회사 경영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지난 2009년 금호그룹 관련 지분을 모두 팔고,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뒤, 경영권 승계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상태다.

‘도련님 수발’에 
그룹 휘청하기도

다만 모든 기업인들의 경우가 그렇듯 이들의 독립도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영그룹은 이중근 회장의 막내아들인 이성한 감독이 운영하는 부영엔터테인먼트(이하 부영엔터)가 자금난에 빠지자 자금 메꿔주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영엔터는 현재까지 3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이 제작비 중 상당 금액이 부영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동광주택으로부터 출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영엔터의 업무용 사무실까지 모 기업의 지원을 통해 운영하면서 이 회장의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족벌 경영’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막내 아들을 위한 이 회장의 사랑만큼 이 감독의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지난 2007년 제작된 이 감독의 첫 작품인 <스페어>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관객 수가 4만5290명에 그쳤으며 이어 2009년 작품인 <바람>도 15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10만여 관객만을 동원했다. 이어 2011년 개봉한 <히트>도 11만명 만을 동원하는데 그쳐 모기업으로부터의 원조 없이는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부영그룹은 지난해 8월 부영엔터에 자금을 대거 쏟아 붓다 못해 부영엔터를 통째로 인수했다. 그룹 계열사인 대화기건이 부영엔터의 대주주가 됨으로써 69억 원의 빚을 지고 완전자본잠식상태에 빠진 부영엔터의 빚까지 모두 떠안았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내 젊은 주식부자 순위
GS 9세 꼬마가 100억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 LG전자 부장(35)이 ‘40세 이하 젊은 주식 부호’ 랭킹 1위에 올랐다.
지난 11일 재벌닷컴이 상장사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 지분가치를 지난 8일 종가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40세 이하 대상자 중 구 LG전자 부장의 주식 평가액은 5685억원으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구 부장에 이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38)이 4951억원으로 2위,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39)이 4416억원으로 3위에 올랐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의 장남 장세준(39)씨는 3561억원으로 4위, 김영찬 골프존 회장 장남인 김원일 사장(38)은 3421억원으로 5위였다.
그 뒤를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 장남인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보(3269억원),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 차남인 장세환씨(2434억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장남인 박준경 상무보(2347억원)가 이었다.
재벌닷컴은 이번 조사에서 1000억원 이상 상장사 주식을 가진 40대 이하 부호는 23명, 100억원 이상을 기록한 부호는 195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95명 중 여성은 54명(27.7%)이었다. 100억원 이상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젊은 주식부자 중에서도 가장 나이 어린 부자는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의 차남인 정홍(9)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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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