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3> 부패의 덫에 걸린 사람들

‘쏠쏠한 돈맛’에 맛들이다 패가망신!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부정부패 사건으로 인해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나랏돈을 받는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정행각은 심각한 수준이다. 뒷돈을 받느라 민생 치안은 뒷전인 경찰에서부터 어려운 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불린 공무원들까지 국민들에게 연일 실망감을 안겨주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이처럼 공직비리가 잇따르자 일부 지자체는 공무원 비리 고발자에게 주는 포상금을 2배나 늘이는 등 비리척결을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부정부패의 덫을 추적해봤다.

직위와 권한 이용한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빈번하게 일어나
복지 보조금, 재난관리기금 등 허술히 관리되는 돈에 욕심
빈틈 많은 관리체계 악용해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으로 배 불려
민생 치안 책임져야 할 경찰들의 비리도 점점 악랄해져 성매매 알선까지

부정과 부패, 비리와 편법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뒷돈을 주고받는 은밀한 모습은 일상화된 지 오래다. 뇌물을 받고 불법을 눈 감아 주거나 자신의 직책과 권한을 이용해 부정한 돈을 넘보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태풍피해자 돈 부풀려
자기 통장으로 쏙쏙

이 가운데 최근 연일 뉴스화면을 장식하는 것은 나랏돈을 녹으로 받는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정부패다. 오로지 돈을 위해 직업의 윤리도, 소명도 벗어 던진 일부 공직자들의 행태는 보는 이들을 한숨 쉬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눈먼 돈으로 치부하고 몰래 횡령하는 공무원들이 잇달아 적발되어 적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 지난 1일에는 태풍 피해자들에게 지원되어야 할 재난관리기금을 횡령한 공무원과 건설업자가 무더기로 검거됐다.

제주지방경찰청은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법 등으로 재난관리기금을 횡령하고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현 제주도청 공무원 이모(54)씨와 현모(47)씨에 대해 구속영창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또 서귀포시청 재난관리 담당 국장을 비롯한 공무원 9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와 현씨는 서귀포시청에 근무할 당시인 지난해 2월, 시청 재난관리 담당 국장과 공모해 관내 마을 이장으로부터 마을운영자금을 조성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을에 있는 하천을 정비한 것처럼 공문서를 꾸며 5000여 만원을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씨 등은 지난해 12월 특정 건설업체에 특혜를 줄 것을 약속하고 뇌물까지 받았다. 이들은 11곳의 하천퇴적물 제거사업을 발주해 7개 건설업체에 장비 임대료를 부풀려 지급하는 방식으로 재난관리기금 8748만원을 지출해 이 건설업체로부터 15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다른 공무원 2명은 제주시 용담2동에 근무할 당시인 지난해 10월, 재해복구물자 구입비를 과도하게 지급한 뒤 되돌려받거나 자원봉사자 급식비 명목으로 허위지출하는 등의 수업을 써 946만원의 부정한 돈을 받아 유흥비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다. 또 다른 제주시 공무원 3명은 재해복구물자 구입비나 공사인력 인건비를 과다지급한 뒤 일부를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500여 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모두 2007년 여름 일어난 태풍 ‘나리’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돌아갈 재난관리기금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불린 것이다. 이미 지난해 11월에도 재난관리기금 8900만원을 횡령한 공무원이 무더기로 적발되어 충격을 준 뒤 같은 죄목으로 또 다른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덜미를 잡힌 것.
이로써 태풍 ‘나리’ 재난관리기금 횡령액은 모두 3억4591만원으로 늘어났고 공무원 16명과 건설업자 12명 등 28명이 검거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 2월엔 수십억원에 달하는 장애인 복지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서울 양천구청 소속 공무원이 덜미를 잡혔다. 이 공무원은 무려 3년 동안 장애인 수당 26억원을 횡령해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술한 보조금 관리의 수혜자가 된 이 공무원은 양천구청 8급 직원이었던 안모(38)씨. 안씨는 장애인 수당을 과다 신청하는 방법으로 수십억원의 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가 장애 수당을 횡령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5월부터다. 안씨는 장애인에게 1인당 3만원에서 20만원까지 지급되는 장애인 수당이 장애 급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이용해 돈을 횡령했다. 낮은 급수의 장애인을 높은 급수로 올려 더 많은 돈을 신청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 이 방법으로 그는 매달 평균 9000여 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안씨는 이를 위해 자신과 부인, 장모, 어머니 등의 계좌를 빌렸다. 이 계좌에 횡령한 금액을 나눠서 입금한 것. 안씨가 횡령한 돈은 모두 26억 4400만원. 이 중 16억원은 통장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안씨는 서울 강서구에 33평형 아파트를 장만하고 벤츠승용차까지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로또 2등에 당첨됐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호화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이 같은 안씨의 행각은 결국 지난 2월15일 양천구의 자체 감사결과 적발됐다. 결국 안씨는 물론 상급자인 양천구 사회복지과장과 장애인복지팀장 7명도 함께 직위해제됐다.

허술한 보조금 체계
거액의 횡령 도와줘

안씨가 이처럼 오랫동안 거액을 횡령할 수 있었던 것은 허술한 복지보조금 지급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각 자치구에 지원하는 복지보조금은 담당자만이 확인 가능한 인터넷뱅킹을 통해 대상자에게 지급되는데 이 시스템이 횡령을 쉽게 한다는 것.
관리시스템 역시 안씨를 도왔다. 안씨의 상급자는 안씨가 서울시에 요청할 복지보조금에 결재를 할 때 총액만 확인하고 세부내역은 확인하지 않는 허술한 관리를 해 마음 놓고 보조금을 부풀릴 수 있도록 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복지보조금을 처리할 공무원의 수가 적다는 데 있다. 많은 기관에 복지 보조금 전달을 맡은 공무원은 1~2명의 적은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안씨도 혼자 장애인 1300여 명의 몫을 처리해 왔다. 이처럼 적은 인원이 일을 맡다 보니 담당 부서 업무가 과중되어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

사실 공금을 횡령하는 공무원은 심심찮게 적발되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서구청의 8급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 1억여 원을 횡령해 구속되기도 했다. 이 직원이 썼던 수법 역시 안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급자의 소득이 줄어든 것처럼 조작해 시에서 보조금을 더 타낸 뒤 차액을 자신의 가족 계좌로 빼돌린 것.
이처럼 복지보조금 등 공금을 횡령하는 공무원들이 늘자 정부는 사회복지 전달 체계의 대대적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들의 부정과 비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경찰이다. 최근에는 경찰들이 한 짓이라기엔 그 정도가 심각한 비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고 있어 공권력의 신뢰도까지 손상을 입고 있는 지경이다.

성매매업소에게 뒷돈을 받고 단속을 무마해주는 것을 넘어 성매매를 알선한 경찰까지 등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지난달 31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업주 A(41·전직 경찰관)씨와 동업자인 B(42·여)씨 등 2명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해 5월부터 지난 1월까지 양산에서 무등록 유료 직업소개소(속칭 보도방)를 운영하면서 C(17)양 등 청소년 7명을 울산, 양산 일원 유흥업소에 600여 차례 소개해 주고 소개비 명목으로 이들이 받은 접대비 일부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비리 공무원은 퇴출
강력한 제도 마련해

A씨 등은 또 같은 기간 이들 청소년에게 업소 손님을 상대로 200차례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이 같은 비리가 알려지자지난해 11월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도를 넘어선 경찰들의 부패에 경찰청은 삼진아웃제까지 도입하며 비리근절을 다짐하기도 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30일 경찰 비리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부적격 경찰관에 대해 재교육을 실시하고 개선이 되지 않으면 영구 퇴출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경찰관은 경찰종합학교에서 4주간의 재교육을 받는다. 재교육을 받은 직원은 다른 부서로 배치돼 연 2회 부적격자 심사를 받는 등 집중적인 관리 대상이 되고 이후에도 다시 부적격 판정을 받아 개선이 되지 않으면 ‘직권면직 제도’를 통해 퇴출된다.
또 자질이 부족한 부적격자의 유입을 사전에 막기 위해 채용 과정에서 면접을 비중 있게 다루고 경찰학교 졸업사정위원회를 운영해 정밀 인성 검토를 벌이기로 했다.

경찰은 또 비리 내사 전담팀을 운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경찰청과 지방청에 사정인력 56명을 충원해 경찰관 비위 첩보 수집 활동을 펼친다. 이와 동시에 유흥업소 밀집 지역과 경찰관련 비위사건이 빈번한 곳을 위험 관서로 지정해 예방활동을 벌인다.
또 적극적으로 비리 근절에 동참한 직원에 대해서는 성과급이 지급되며 직원들 사이에 연대책임제가 확대된다. 업주와의 유착 고리를 맺고 있는 직원이 자진신고 기간 안에 신고를 하면 면책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시행된다.

전체 공무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한 ‘계급 강등제’도 시행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공무원법’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품 및 향응수수, 공금유용ㆍ횡령 등 주요 비위행위에 대해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징계시효가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중징계인 해임과 정직 사이에 강등제도가 신설돼 1계급 강등과 함께 정직 3개월의 처분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특히 금품 및 공금 비리로 강등처분을 받은 경우 다시 종전 직급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24개월의 승진제한 기간이 적용되므로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한다.
금품비리에 대한 징계수위도 1단계 상향조정된다. ‘징계의결 요구기준’을 제정ㆍ시행해 기관장의 온정적인 징계도 방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징계를 받은 공무원이 법원이나 소청심사위원회가 절차상의 하자 등을 이유로 징계처분 무효ㆍ취소 결정을 내리더라도 반드시 재징계 의결을 요구하도록 했다.

이처럼 비리 공무원을 척결하기 위한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시민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뿌리 깊이 박힌 부패의 늪에서 빠져나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한 시민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고리를 확실히 끊을 수 있는 보다 단호한 조치가 나오기 전엔 이름뿐인 정책에 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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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