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총리 하마평' 떡시루 엎은 박준영 전남지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1.14 15: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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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인데…‘나불나불’ 입이 방정

[일요시사=경제1팀] 박근혜 정부 첫 호남총리로 거론되는 박준영 전남지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호남 민심을 건드리는 발언으로 스스로 비난을 자초했다. 일부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을 향한 머리 조아리기라는 비판도 쏟아진다. 평소 정치적으로 언행이 신중하고 세련된 원칙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던 그에게 다른 속내라도 있었던 것일까. 지금의 상황만큼이나 드라마틱한 박 지사의 정치인생을 들여다봤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본격 가동을 시작하면서 다음 관심사는 국무총리 인선에 쏠리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청와대 안주인이 되는 2월 25일 전까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끝내려면 늦어도 이달 말 안에는 인선을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갖가지 분석을 토대로 정치권 안팎에선 국무총리 인선에 대한 하마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유력 총리로 물망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호남 출신’ 국무총리가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5부 요인 강창희 국회의장(충청), 양승태 대법원장(부산·경남),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대구·경북), 김능환 선관위원장(충청) 중 호남 출신이 아무도 없다는 점에서 지역 안배 차원에서라도 호남인사 등용은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박 당선인이 ‘대통합’과 ‘책임 총리제 도입’ 방침을 세워 놓은 만큼 중량감 있는 인사가 배치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 같은 조건에 부합되는 인물로 박준영(67·전남 영암) 전남지사가 물망에 오른다. 민주당 소속인 박 지사는 전남에서 3선 지사 고지를 밟았다는 점에서 기용 시 지역화합과 야당 포용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대표적인 ‘DJ맨’으로 국민정부 시절 국내언론비서관, 공보수석 겸 청와대 대변인, 국정홍보처장 등을 지내 국정 경험도 풍부하다.

1946년 전남 영암의 가난한 농촌집안에서 태어난 박 지사는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72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언론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가 극에 달했던 유신 체제에서 기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이내 그의 인생에서 첫 번째 전환점을 맞게 된다.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었고, 박 지사는 살육의 현장을 외면한 언론보도에 항의하며 신문제작 거부에 앞장서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됐다.

당선인 총리 인선 본격화…호남인 박 지사 거론
언론인→청와대 대변인→전남지사…‘DJ 계승자’

이후 박 지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1985년 오하이오대학에서 신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중앙일보> 외신부기자로 복직하고 뉴욕특파원을 거쳐 <중앙일보> 편집부국장까지 지내며 언론인의 길을 계속 걸었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내며 당선되면서 그의 인생은 두 번째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그는 언론계를 떠나 대학 강단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새 정부 출범 직전인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연락을 받고 청와대행을 결심했다.


그가 맡은 첫 보직은 국내언론비서관(1급)이다. 이후 그는 공보수석 겸 청와대 대변인, 국정홍보처장을 거치며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입’이자 국민의 정부 ‘얼굴’로 역할을 했다.

그는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순간으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꼽는다. 남북간 화해의 장을 연 역사적 현장에 동행했고 그 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기록하는 역할을 해 자부심이 크다. 특히 2000년 6월 15일, 훗날 ‘6·15 선언’으로 알려진 남북간 화해 합의문을 직접 발표했던 그 긴박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국민 정부 이후
정치인으로 대변신

국민의 정부 이후 그는 정치인으로 대변신했다. ‘윤태식 로비의혹’ 사건에 얽혀 곤욕을 치른 뒤 2002년 1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들어왔다.

그해 4월, 박태영 전남지사의 자살로 우여곡절 끝에 6·5 보선에 출마해 열린우리당 후보를 물리치고 전남지사에 당선됐다.

당시 민주당은 열린 우리당과의 분당과 탄핵바람으로 2004년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한 상황이었다. 후보 난을 겪던 민주당의 전략공천에 의해 전남지사 후보로 추대된 그는 열린 우리당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4배가량 뒤졌지만 상황을 대 역전 시키며 승리를 거둬 전국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어 2006년에는 박주선 현 국회의원과 경선 구도가 펼쳐졌지만 박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결국 단독후보로 결정돼 비교적 수월하게 재선에 성공했고, 주승용 국회의원과 이석형 전 함평군수의 협공에 경선 초반에는 순탄치 않을 것처럼 보였던 3선 도전에도 민주당 깃발을 확보해 성공했다.

도청 이전, J프로젝트, F1대회, 기업유치 등 8년간 전남 도정을 이끌어 오던 그는 지난해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계승자를 자임하며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그러나 낮은 인지도와 지지율을 제고할 기회를 쉽게 찾지 못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직접적인 사퇴 배경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친노 세력이 중심이 된 민주당 내에서 대립과 갈등 국면을 넘지 못한 것으로 풀이했다.

당시 그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호남 후보는 안 된다는 데 왜 그러냐’는 질문이었다”며 “지역주의와 정치공학적 접근이 정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민주당 내 ‘비호남 후보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대선 경선 출마한 이후 아직까지도 민주당과 어색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민심 폄하 발언에
정치인생 최대 위기


이런 갈등의 골 때문인지 그는 18대 대선에서 표출된 호남 민심에 대해 “무겁지 못했고 충동적인 선택”이라고 발언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광주 MBC라디오 <시선집중 광주>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답했다.

대선 후 호남 고립이 우려된다는 진행자 질문에 그는 “시도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무거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때그때 감정에 휩쓸리거나 어떤 충동적인 생각 때문에 투표하는 행태를 보이면 전국하고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대중 대통령처럼 이 지역 출신으로 오랫동안 지지를 해 준 값어치 있는 분이라면 호남인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했어도 그럴만하다고 얘기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호남인 스스로 정치를 잘못했다고 평가한 세력에 대해서 몰표를 몰아준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발전 측면에서 좋은 투표행태는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친노세력에 대해 “참여정부는 실패했다. 갑작스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국민들은 동정은 했지만 지지는 아니었다. 그것을 착각해 선거를 치렀다”고 비판한 뒤, “지난 대선에는 참여정부에 종사한 사람들이 출마 안했으면 했는데 거슬러 올라갔다. 국민들이 얼마나 무섭고 냉정한지를 인식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충동적 표심’ 발언에 호남 발칵
친노세력과 고질적 갈등 빚기도

민주당 패인에 대해서도 “과거 민주당이 보여줬던 행태가 불안했으며 그것 때문에 국민들이 표를 안줬다. 국민들의 깊은 마음을 읽지 못했고 자성이 없었다”면서 “민주당은 좀 무거운 당이 돼야 한다. 너무 가볍다고 생각한다”며 거듭 힐난했다.


반면 그는 DJ 가신인 한광옥·한화갑 전 의원의 박근혜 지지에 대해선 “평소 존경했던 분들로 그분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면서 “민주당내에서 그분들의 역할이 없고, (민주당) 패권주의 때문에 그분들이 그러한 선택을 내렸다”고 감쌌고,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서도 “박 당선인이 약속을 잘 지키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있고, 믿는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단결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회를 잘 활용하면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박 당선인 중심의 단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에 민주당과 호남은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과 전남북·광주 3개 시도당은 합동논평을 통해 “매우 유감스러운 발언”이라고 비난했고, 호남지역 사람들 역시 “전남도지사라는 분이 호남의 선택을 잘 못이라고 규정하며 몰아붙일 자격이 있는지 묻고싶다”며 강한 배신감을 표출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그가 이 같은 발언을 하게 된 배경과 저의를 의심했다. 언론인 출신인 그가 자신의 발언에 대한 파장을 예견하면서도 이 같은 발언을 한데는 다른 속내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3선 도지사로 더 이상 도지사를 할 수 없는 그는 지역민들의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작심발언’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선으로 더 이상
도지사는 못해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첫 총리 물망에 오른 그가 언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치관을 밝혔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이명박 정권 때 4대강사업 적극 지지 입장을 밝히는 등 민주당 당론과 배치되는 어깃장을 놓아 논란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그는 하루만에 “이는 민주당 변화를 요구한 원론적 발언”이었다며, “(박근혜 정부 첫 총리 기용설에 대해서는) 남은 임기동안 도지사직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를 향한 비판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자진사퇴 압박을 권유받는 등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이런 시점에서 그가 어떤 ‘한 수’를 둘지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박준영 지사는?

▲전남 영암(1946년)
▲인창고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
▲대통령 공보수석 비서관 겸 대변인
▲국정홍보처장
▲전남지사(3선)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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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