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 유치원 입학대란 요지경 실태

"대입보다 치열" 가족 총동원 007 눈치작전

[일요시사=사회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아이 유치원 보내기.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다. 만삭일 때부터 국·공립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줄을 잇는 산모들, 맞벌이 딸 대신에 새벽부터 꽁꽁 언 발을 싸매고 표 추첨을 기다리는 할머니 등 유치원 입학에 시름을 앓고 있다. 아이들 교육의 시발점인 유치원 입학 대란을 살펴봤다.

“일을 그만둬야 하나 걱정이에요.”

유치원 추첨을 기다리던 한 맞벌이 학부모 이모씨가 한숨을 쉬며 털어놓았던 말이다. 유치원 추첨에서 아쉽게 떨어져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까지 그만둬야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 이씨는 말단 공무원 남편과 결혼해 맞벌이를 하며 어렵게 가정을 꾸려나갔다. 돈 모으기 전까지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2년 만에 예쁜 딸을 갖게 됐고, 현재 그 아이가 유치원에 가게 될 나이에 접어들었다.

유치원 교육 필수에
입학추첨 대란 일어

아이가 어릴 때는 친정엄마가 종종 봐주거나 전업주부인 여동생이 봐주곤 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어대는 통에 유치원 교육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가 돼버렸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유치원 입학에 온 힘을 쏟는다.

이씨는 “지금 추첨이 안 되면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 둬야 하는 판이다. 나 같은 맞벌이 주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무책임한 법안만 내놓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5살 된 손자를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추첨을 기다리던 한 할머니는 “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뭐 이렇게 어렵게 해놓았냐”며 “이렇게 해서 애들이 어떻게 공부하겠나. 돈 없으면 애들 유치원도 제대로 못 보내는 나라에서 서민들은 어떻게 살겠나”라고 한탄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립유치원의 횡포로 정부보조금은 유명무실이 될 만큼 원비는 50% 이상 올라 양육비에도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내년부터 정부가 지원해주는 29만원 보육비 덕 좀 볼까 생각했던 99%의 서민들은 김칫국만 마신 된 꼴이 됐다.

140만명 중 40%만 입학 가능…추첨에 ‘발 동동’
당첨 불확실성 대비 중복지원…대리출석 촌극도

실제로 한 유치원은 올해 57만원이던 유치원비를 내년부터는 73만원으로 책정했다. 즉 70% 가량 원비를 올린 것. 무상 보육비를 받아도 학부모 부담은 크게 줄지 않는다. 이에 막무가내로 원비를 올린 유치원 측은 물가 탓으로 돌리고 있다. 모 유치원 원장은 “올해 같은 경우에는 원비 상승폭이 꽤 큰 편이거든요. 워낙 물가가 많이 올랐고, 인건비도 많이 나가고 저희도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많은 맞벌이 부부들은 국·공립 유치원 입학은 엄두도 내지 못 하고 일반 사립유치원에라도 보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 하고 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의 교육비가 소위 대학 등록금 수준에 육박해 아이를 둔 부모들의 걱정은 날로 더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유치원 입학 추첨에 성공해 유치원에 보내기는 했지만 넘어야 할 또 다른 관문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학부모들은 5세 미만으로 확대된 정부의 무상보육지원정책으로 유아 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유치원들이 벌써부터 월 교육비를 5∼10% 가량 인상키로 결정했기 때문.

예로 경기도의 모 사립유치원은 지난해 42만5000원이던 월 교육비와 18만원이던 방과 후 교육비를 각각 5% 인상하기로 했으며, 또 다른 유치원도 35만원의 교육비 10% 인상을 고려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유치원은 월 교육비 대신 입학비와 기타 경비를 인상하거나 타 유치원의 동향을 살피는 등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유치원 입학 대란’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도 또다시 학비를 걱정해야 할 판에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유치원 입학 전쟁
서민들만의 고충 아냐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만 3세의 월 교육비는 국·공립 7만1810원, 사립 42만8793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어 만 4세는 국·공립 10만2728원, 사립 44만3252원 정도가 들고 만 5세 이상은 국·공립 8만8637원, 사립은 44만395원이 소요된다.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무상보육지원 확대정책을 내놓으며 내년부터 아이 1명 당 22만원 씩 보육비를 지원해주겠다고 선언했지만, 지원비만큼 원비를 함께 올리는 악덕 유치원들이 잇따라 증가하고 있어 사실상 무상보육정책은 실효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처지가 됐다. 이에 학부모들은 당초 안고 있던 부담이 더 가중돼 긴 한숨만 내쉬고 있다.

하지만 유치원 입학경쟁은 비단 서민들만 겪는 고충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유치원에 못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내년 유치원에 입학할 만 4∼5세 어린이는 약 14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됐지만 그 중 전국의 유치원 수용 인원은 61만명 남짓이다. 즉 유치원 총 입학원생 중 40% 정도만 유치원에 갈 수 있게 된 셈이다.

2013년 입학을 위해 실시된 서울의 모 유치원 원생 추첨에는 140명이 정원이다. 추첨과정은 참담했다. 입학 추첨에 지원한 학부모는 정원의 두 배 이상을 웃도는 350여 명이 몰렸기 때문. 이중 14명을 선발하는 ‘만 3세 기본교육과정’ 일반전형에 지원한 학부모는 총 118명으로 경쟁률이 9대 1에 육박했다. 결국 학부모들은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원비를 올린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거나 상대적으로 원비가 훨씬 비싼 영어 유치원이나 놀이학교를 찾아야 했다.

일례로 서울 강남의 모 놀이학교는 매달 150만원을 웃도는 월비를 챙기고 있다. 이 놀이학교의 교육비는 약 70여만원. 여기에 재료비 21만원과 방과 후 활동비, 식대 등을 포함하면 사립 유치원 못지않게 비싼 금액이다. 물론 놀이학교 측은 정부 지원금은 받고 있지만 학부모 측에 무상보육비로 지급될 금액은 교육비에 포함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학부모들은 정부 보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일반 국·공립이나 사립유치원을 선호하고 있다.

사립유치원 추첨에 지원했다가 한 번에 당첨된 분당의 30대 주부 최모씨는 “원서를 여러 군데 넣어볼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1곳에 넣은 곳에 입학하게 됐다. 당첨이 되자 여기저기서 ‘좋겠다’, ‘정말 잘 됐네’ 등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며 “발표 때까지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는데 운이 따른 것 같다. 또래 이웃들은 대부분 추첨에서 떨어져 결국 비싼 영어 유치원에 보내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산율 늘리기와
무상보육의 아이러니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유치원 입학이 어려워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이 무상보육정책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1년 동안 만 0∼2세와 5세에 대한 무상보육이 처음으로 실시됐는데, 내년부터 만 3∼4세까지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유치원 지원자 수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 국민 모두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 하니 시설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일부 사립유치원은 경쟁률이 11대 1에 달하면서 추첨 경쟁에 몰리고 있다. 예비 유치원생을 둔 일부 학부모들은 1, 2순위 유치원에서의 당첨 불확실성에 대비해 과거 대입시절에 쓰던 동일한 수법으로 4∼5군데씩 원서를 집어넣는가 하면 추첨일이 중복될 경우 가족들을 동원해 대리추첨을 하는 등 촌극도 벌이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오모씨는 “유치원비 인상으로 정부 무상보육은 말짱 도루묵이 될 텐데 내년에 시행될 지원 확대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기본적으로 원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결국 악덕 유치원만 배불리는 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라고 비판했다.

사립 원비 70만원으로 올려 정부 보조비 소용없어
원측, 물가·인건비 이유로 70%↑…횡포 속수무책

결국 아쉬운 쪽은 학부모다. 무상보육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각종 언론에서는 ‘서민을 위한 정책이다’라며 정부를 서민경제의 축이라고 칭송했다. 반면 실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효과는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오고 있다. 정부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비에 대한 정확한 규제를 마련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교육기관들은 정부 지원금 받고도 월 교육비와 입학비 등을 대거 올리며 배짱영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 결국 출산율을 높이자는 정부의 바람과 내년에 시행될 보육정책은 모순정책으로 변질된 셈이다. 


유치원 추첨에 7차례나 떨어진 주부 한모씨는 “주위에서 ‘얼마나 좋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그렇게 애를 쓰세요?’라고 묻더라고요. 제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도 모르면서. 7번이나 떨어지니 포기 할만도 한데 다들 (유치원에)보내니까 제 아이만 안 보내면 이상하잖아요. 괜히 자격지심도 생기는 것 같고…”라며 씁쓸해했다.

또 다른 주부 윤모씨는 “아이는 많이 낳으라고 큰 소리 치면서 정작 아이를 키울 학부모를 위해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으니 정부 정책도 믿을 수가 없고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며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면 돈이 무서워서 도대체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하겠나”라고 지탄했다.

보여주기 정책보다
실용적인 정책 우선

최근 유치원 입학을 두고 주위에서는 ‘로또’ 혹은 ‘바늘에 실 꿰기’라고 비유한다. 그만큼 당첨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국·공립 유치원을 아무리 늘려도 아이들 수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부 지원금 받고도 원비를 올리는 일부 유치원의 배짱 영업, 무상보육비를 부담하고도 이런 현실을 통제 못 하는 정부로 인해 학부모만 유치원 추첨에 떨어져서 한 번 울고, 비싼 유치원비에 두 번 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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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