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설정한 협상 시한, 8일 오전 9시(한국시각)를 불과 1시간 20여분 앞두고 중재국인 파키스탄이 제안한 ‘2주간 휴전안’에 동의했다. 일단 전쟁은 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다. 이제 미국과 이란은 2주 안에 45일 휴전과 종전을 가르는 협상안을 만들어야 한다.
협상안은 배상금과 종전 후 안전보장 등 15개 항목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핵심은 누가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느냐에 있다. 미국과 이란은 이미 각각 자신들이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바다의 문을 쥐겠다는 것이다. 이 순간부터 협상은 휴전 조건이 아니라 ‘지배권 거래’로 바뀐다.
문제는 통행료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본질은 ‘지나가려면 돈을 내라’는 구조다. 국제 해협은 특정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움직임은 해협을 사유화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 힘으로 막고 돈으로 푸는 구조다. 이 순간부터 국가는 질서를 지키는 주체가 아니라 질서를 흔드는 주체가 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이곳이 막히면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한다.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심장부를 쥐는 문제다. 그래서 이 해협은 ‘열려 있어야 하는 공간’으로 규정돼왔다. 그런데 지금 그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바다가 협상의 카드로 바뀌고 있다.
미국은 해상 질서를 지키는 국가를 자처해 왔으며, 자유로운 항행, 글로벌 공급망, 국제 규범을 강조해오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그 질서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이란 역시 제재에 맞서 해협을 지렛대로 사용해 왔다.
양측 모두 원칙을 말하지만 행동은 다르다. 질서는 명분이 되고, 통제는 현실이 된다.
결국 지금 상황은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이 아닌 ‘누가 바다의 문을 쥐느냐’의 싸움이다. 총 대신 통행권이 무기가 됐으며, 미사일 대신 가격이 움직인다. 전쟁은 더 이상 땅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장악하는 것이다. 흐름을 쥔 쪽이 이긴다. 그리고 그 흐름의 핵심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바뀐다. 전쟁은 끝나는가, 아니면 형태만 바뀌는가. 공중전이 멈췄다고 해서 충돌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교묘한 단계로 들어갔다. 군사 충돌보다 경제 압박이 더 오래 가며 더 넓게 퍼진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전쟁 이후’가 아니라 ‘전쟁의 다음 단계’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통행료’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권력의 선언이다. 길을 지배하겠다는 의미다. 통행료를 부과하는 순간, 그 길은 더 이상 중립 공간이 아니다. 힘의 영역이 된다. 바다가 시장이 아니라 통제 구역으로 변한다. 이 변화는 국제 질서의 근간을 흔든다.
이 구조가 굳어지면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각국은 더 이상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모든 이동은 조건부가 된다. 에너지는 가격이 아니라 정치에 의해 결정된다. 물류는 효율이 아니라 통제에 의해 재편된다. 세계 경제는 연결이 아니라 분절로 바뀌는데, 그 시작이 바로 해협의 사유화다.
문제는 이 흐름이 한번 시작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국가가 통행료를 요구하면, 다른 국가도 같은 방식을 따라한다. 해협은 서로 다른 ‘요금 구간’으로 쪼개진다. 바다는 연결의 공간이 아니라 장벽의 연속이 된다. 국제 질서는 규범이 아니라 거래로 전락한다. 힘이 곧 가격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중간에 있는 국가들이다.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선택지가 줄어든다. 공급망은 불안정해지고 비용은 급등한다. 기업은 계획을 세울 수 없고, 국가는 전략을 잃는다. 결국 모든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물론 이란의 선택은 이해할 수 있다. 제재에 묶인 상황에서 해협은 거의 유일한 카드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미국 역시 다르지 않다. 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활용한다. 양측 모두 ‘필요’라는 이름으로 원칙을 흔든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한 양국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에서 ‘해협 통행권’이 거래 대상으로 인정되는 순간, 이 모델은 국제 표준이 된다.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대만 해협 등 주요 통로가 모두 협상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세계는 연결망이 아니라 통제망으로 재편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통행료’가 자리 잡는다.
이 순간부터 국제 사회는 선택을 해야 한다. 바다를 공공재로 지킬 것인가, 아니면 힘의 시장으로 넘길 것인가. 중립성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통제의 대상이 될 것인가. 지금의 대응이 앞으로의 기준이 된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길은 누구의 것인가.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특정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인가, 아니면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공간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국제 질서를 결정한다. 그리고 지금 그 답이 흔들리고 있다.
전쟁은 이미 변했다. 땅을 점령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대신 흐름을 장악하는 시대가 왔다. 항로, 데이터, 에너지, 금융이 새로운 전장이다. 이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치명적이다. 총성이 없어도 국가를 흔들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모습이다.
지금 미국과 이란이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전쟁의 새로운 모델이다. 공중전으로 시작해 경제전으로 끝나는 구조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단계가 바로 ‘통행료’다. 길을 쥔 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것이 새로운 전쟁의 공식이다.
그러나 이 공식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결국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오늘은 한 해협이지만, 내일은 다른 통로가 된다.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세계는 동시에 흔들린다. 그래서 이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결론은 분명하다. 바다를 돈으로 잠그는 순간,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질서를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통로를 장악해 이익을 추출하는 존재로 변한다.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그 순간 국가는 해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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