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땄다. 27바퀴, 4분 남짓, 네 명이 이어 달린 집단의 질주였다. 이번 금메달은 단순한 스피드의 결과가 아니라, 마지막 두 바퀴를 위해 스물다섯 바퀴를 견딘 전술의 완성도였다. 그리고 그 전술의 뼈대를 가장 먼저 세운 사람이 있었다. JTBC 해설위원 김아랑이다.
그의 해설은 흥분이 아니라 설계에 가까웠다. 경기 초반, 한국이 3위에 머물러 있을 때 그는 “지금은 무리할 구간이 아니”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계주는 오래 1위를 지키는 종목이 아니라, 마지막에 1위가 되는 종목이라는 설명이었다. 선두를 당장 빼앗지 않는 선택을 소극성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체력과 리듬을 아끼는 전략으로 읽었다.
24바퀴를 남겨두고 캐나다와 접촉이 발생했다. 관중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고, 화면은 잠시 흔들렸다. 계주에서 충돌은 단순 사고가 아니다. 속도 균형이 깨지고, 교체 각도가 흐트러지며, 다음 주자의 진입 타이밍까지 영향을 준다. 김아랑은 이 장면을 드라마로 키우지 않았다.
그는 “흔들린 뒤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라인을 복원하고, 속도를 재정렬하고, 교체 리듬을 지켜내는 것이 본질이라는 설명이었다. 한국은 재추월을 서두르지 않았다. 3위를 유지하며 레이스의 뼈대를 다시 세웠다. 그 침착함이 체력을 지켰다.
중반 16바퀴를 남기고 네덜란드 선수가 넘어졌다. 계주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내가 넘어질 때가 아니라, 앞선 선수가 무너질 때다. 속도를 유지한 채 급회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아랑은 “위기는 옆에서 온다”는 취지로 공간 인식과 시야 확보를 짚었다.
한국은 안쪽으로 말려들지 않고 바깥 라인을 선택해 충돌을 피했다. 최민정의 각도 선택은 단순한 반사신경이 아니었다. 그 한 번의 회피는 사실상 금메달을 지킨 동작이었다. 운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한국은 중반 내내 3위였다. 불안은 커졌지만 해설의 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3위를 ‘관리의 자리’로 규정했다. 추월은 남발하는 기술이 아니라, 남겨두는 카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은 싸우지 말고, 마지막 두 번의 싸움을 준비하라”는 말은 감정의 온도를 낮추고, 전술의 방향을 선명하게 했다.
네 바퀴 전, 심석희에서 최민정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캐나다를 제치며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김아랑은 추월 자체를 찬양하지 않았다. “추월 이후 교체가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계주 추월의 핵심은 ‘교체 전 가속’이다. 모든 힘을 추월에 쓰면 다음 주자에게 남는 것이 없다.
한국은 속도를 남긴 채 교체했다. 숨이 남아 있는 교체, 여지를 남긴 추월. 그 차이가 마지막 폭발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바퀴. 김길리가 코너 진입 직전, 인코스를 바라봤다. 쇼트트랙은 직선이 아니라 코너에서 승부가 갈린다. 승부는 0.3초, 몸을 낮추는 타이밍에서 결정된다. 김아랑은 그 직전 구간에서 “지금”이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김길리는 각을 세웠고, 코너 탈출 속도에서 우위를 점했다. 화면은 추월을 보여줬고, 해설은 예측이 아니라, 준비된 통찰이었다.
결국 8년 만의 정상 탈환. 선수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러나 김아랑의 목소리는 낮고 단정했다. “정말 완벽한 레이스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주인공은 선수라는 사실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 절제는 선수 출신 해설만이 가질 수 있는 거리감이었다.
좋은 해설은 장면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장면의 결을 선명하게 만든다. 김아랑의 해설은 경기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그 안의 전술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코너 각도, 교체 리듬, 체력 분배, 위험 회피. 그는 빠르다고 외치지 않았다. 왜 빨라질 수 있었는지를 풀어냈다. 감정의 증폭기가 아니라, 경기의 해부자였다.
이번 금메달의 전술 완성도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초반 과열을 피한 포지션 관리, 변수 구간에서의 복원 능력, 마지막 4바퀴에서의 단계적 가속. 한국은 초반에 이기려 하지 않았고, 마지막에만 이기려 했다. 계주의 정석을 끝까지 지켜낸 경기였다. 그리고 그 정석을 가장 먼저 세운 사람이 김아랑이다.
감독은 벤치에 있었다. 선수는 빙판 위에 있었다. 그러나 레이스의 흐름을 가장 먼저 읽은 사람은 마이크 앞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