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26일 오전 1시30분(한국시각) 시작해 오전 3시50분에 끝났다. 결과에 따라 이재명정부의 초반 국정 운영 동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대통령실 3실장이 모두 동행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지난달 말 타결된 관세 협상의 세부 협의를 비롯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통상·외교의 굵직한 현안 문제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상회담 직전 국내 정치 상황을 언급하며 폭탄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미국과 통상·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전 이를 먼저 풀어야 진정한 대화 상대가 된다는 사인을 보낸 셈이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이 열리기 3시간 전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며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없고, 그런 상황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이 “한국에서 혁명이나 숙청이 벌어진 것 같다”고 주장한 트루스소셜 게시글에 대해 묻자 “최근 며칠 동안 한국의 새 정부가 교회들에 대해 아주 거친 급습을 벌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심지어 미군 기지까지 들어가 정보를 얻었다는데 사실이라면 그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알다시피 한국의 새 대통령이 곧 이곳에 온다. 몇 시간 뒤에 도착하는데 만나 뵙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그런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는 트럼프가 정상회담 직전까지 보인 행태로 봐서 한미 정상회담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나 남아공 라마포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수준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일방적인 트럼프식 종전을 주장하다가 설전을 벌였고, 라마포사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선 남아공에서 백인 농민이 ‘살해되고 탄압받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영상을 틀며 그를 몰아세웠던 전적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도착하자 백악관 현관까지 직접 나와 웃는 얼굴로 악수하며 이 대통령을 환영했고, 트럼프 특유의 ‘오른손으로 이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왼손을 이 대통령의 왼쪽 팔에 갖다 대는’ 친근감을 표했다.
취재진으로부터 “한국에 전할 메시지가 무엇이냐” 등의 질의에 “우리는 좋은, 훌륭한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답했고, 실제 백악관 내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정상회담 내내 화기애애한 모습을 취했다. 특히 북핵 관련 피스메이커가 돼 달라는 이 대통령의 말에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정상회담장에서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좋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재차 국내 상황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은 아시는 것처럼 친위 쿠데타로 인한 혼란이 극복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며 “내란 상황에 대한 국회가 임명하는, 국회가 주도하는 특검에 의해 사실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저의 통제 하에 있진 않지만, 대한민국 검찰이 하는 일은 팩트 확인, 팩트 체크인데 미군을 직접 수사한 게 아니고 그 안에 있는 한국군의 통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한 것 같다”며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오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루머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 단속, 교회 급습, 이런 이야기를 들어 이야기했던 것”이라고 자신이 SNS에 글을 올리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트럼프가 정상회담 직전과 달리 정상회담장에서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부분이나 이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오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루머가 있었기 때문에 얘기했다”고 말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정상회담 직전 이재명정부에 엄청난 부담이 되는 내정간섭을 했을까?
필자는 트럼프가 단순히 관세나 통상 협상, 그리고 국방비 분담 문제 등 정상회담에서 유리한 입지를 만들기 위해 취한 제스처나 미국 내 트럼프를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의 배려 차원을 넘어 뭔가 시사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고 원칙을 중요시하는 나라인데, 우리 생각으로 그들의 워딩을 해석하면 안 된다. 트럼프를 장사꾼으로만 봐서도 안 된다. 트럼프의 폭탄 메시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구명하기 위한 제스처가 아닌, 한국의 민주주의가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이 대통령이 백악관을 나올 때 트럼프는 배웅하지 않았다. 이는 정상회담의 과정이나 결과를 떠나 무례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트럼프가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이 무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정치 공학적 차원으로 봐선 안 된다.
필자는 트럼프가 정상회담 후 이 대통령을 배웅하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한국이 세계 10대 강국이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우크라이나나 남아공과 별 차이 없이 자국 이익만 주장했고, 특히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되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민의힘이나 보수 세력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폭탄 메시지와 무례함을 이정부 공격에 사용하면 안 된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우려됐던 긴장은 피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도 정상회담을 마친 후 한미 양국이 지난달 큰 틀에서 원칙적으로 타결한 무역 합의를 그대로 지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포고문 서명식에서 이 대통령에 대해 “그(이 대통령)는 매우 좋은 남자(guy)이며 매우 좋은 한국 대표”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이정부는 트럼프가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폭탄 메시지와 무례함의 의미를 잘 되새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