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지난달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 여파로 정부 통합전산시스템이 멈춰선 지 벌써 엿새째에 접어들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던 공공 서비스도 차질을 빚고 있는데, 특히 ‘안전신문고’ 서비스가 장기간 접속 불가 상태가 되면서 교통 질서를 무시하는 차량들이 도로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안전신문고는 시민들이 불법 주정차나 교통법규 위반, 각종 안전 위반 사항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바로 신고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공 신고 플랫폼이다.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지난달 26일 이후 각종 위법 차량을 목격했다는 신고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회원은 “사거리 직진 중 우회전 차량이 갑자기 끼어들어 클랙슨을 울렸는데, 오히려 상대방이 화를 내며 차선 변경을 문제 삼았다”며 “국민신문고에 바로 신고하려 했지만 안전신문고 오류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회원은 “장애인 주차구역 2면을 불법 점유한 차량을 촬영했지만 접속 불가로 당장 신고할 수 없어 날짜와 시간, 위치가 표시된 사진을 따로 저장해뒀다”며 “복구되면 수용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안전신문고는 원칙적으로 위반일로부터 2일 이내 신고를 마쳐야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기간을 넘겨 신고하면 계도 및 경고 조치만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이번 화재로 인한 예외 조치를 마련했다. 행안부 공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이후 발생한 위반 건은 시스템이 복구된 시점부터 7일 이내에 신고하면 접수가 가능하다.
예컨대 1일 복구된다면 오는 8일까지가 신고 기한이 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전산시스템 복구 기간 동안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이나 사진 자료도 사후 접수 시 과태료 부과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마비된 기간, 일부 운전자들이 ‘어차피 신고가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해 도로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보배드림에는 ▲중앙분리대 진입 전 반대 차선을 넘어 역주행 후 좌회전하는 차량 ▲내부순환로 정체 구간에서 2차선을 달리다가 3차선으로 끼어드는 얌체 차량 ▲사거리에서 무리한 우회전 후 정차 등 각종 위반 사례가 영상과 함께 공유되고 있다.
특히 “대낮부터 신호·차선 위반을 대놓고 한다” “안전신문고 오류가 곧 위반자들의 면허 방패가 된 셈”이라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회원들은 “신고가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라며 불법 운전자들의 ‘일시적 자유’를 꼬집었다.
일각에선 복구 후 신고 폭증에 따른 처리 지연과 부당한 신고 남발 우려도 제기된다.
법규 위반 차량들의 사진과 영상을 차곡차곡 수집하고 있다는 한 회원은 “신고가 한꺼번에 몰리면 처리가 지연될 수 있겠지만, 규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시스템 장애를 기회로 삼아 법규를 위반하는 운전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2025 행정안전통계연보(통권 제 27호)’에 따르면 안전신문고 신고는 2020년 188만9000여건에서 2024년 1243만여건으로 무려 6.6배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안전신문고의 일시 중단이 단순한 시스템 장애 이상의 사회적 파장을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한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민 신고를 통한 감시 효과가 사라지자 일부 운전자들이 곧바로 규칙을 어기는 모습이 실제로 많이 목격될 수 있다”며 “이는 제도적 단속만큼이나 시민 감시가 교통 질서 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결국 안전신문고 복구 이후 대량의 신고가 한꺼번에 접수될 가능성이 높다”며 “당장은 무법천지가 된 도로 상황에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위법 차량 운전자들에겐 오히려 ‘뒤늦은 과태료 폭탄’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기준 정부 전산시스템 647개 가운데 98개 시스템이 재가동됐다. 복구율은 15.1%다.
복구 작업은 1·2등급 시스템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는 중이며, 업무 영향도나 사용자 수, 파급도 등 높은 1등급 시스템의 복구율은 전날 50%를 넘어섰다. 다만, 647개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3·4등급 시스템 복구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어 전체 복구율도 큰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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