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초대석> 나라의 진짜 어른을 모시다 - 김상근 목사의 희망 메시지

“누가 뭐래도 우리 국민은 위대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0개월이 흘렀다.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등을 거치면서 ‘무정부’ 상태에서는 벗어났다. 표면상으로는 안정기에 접어든 모양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격랑의 시대’ 그 자체다. 정치색, 세대, 성, 지역 등 나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대혼란을 잠재울 방법을 찾아 종교계 큰 어른을 만났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자리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하 기사연)에서 김상근 목사를 만났다. <일요시사> 취재진이 먼저 기사연에 도착해 김 목사를 기다리는데 입구 쪽에서 ‘으쌰, 으쌰’ 하는 기합 소리가 들렸다. 거동이 불편한 김 목사가 난간을 잡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는 소리였다.

사법부 늑장
갈라진 합의

지팡이를 팔에 걸고 한 칸씩 천천히 발을 디뎌 계단을 다 내려오는데 들린 ‘으쌰’ 소리는 열 번 정도였다. 차는 숨을 고르면서 김 목사는 방석 두 개를 덧댄 뒤 의자에 앉았다. 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걸을 뿐 여든이 넘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활력이 넘쳤다. 인터뷰 장소까지는 직접 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김 목사는 기독교계 민주화운동의 원로다. 김대중정부 시기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정부, 문재인정부 시기에 공직을 맡는 등 진보 정권에서 일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석하고 홈플러스 사태에 목소리를 내는 등 여전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인터뷰에 앞서 ‘사회 혼란을 겪고 있는 국민에게 따뜻한 덕담을 해주신다는 생각으로 말해줬으면 한다’는 기자에게 김 목사는 환히 웃으면서도 “덕담할 때가 아니야”라는 뼈있는 말을 던졌다. 지난해 12월3일, 전 국민을 충격과 경악에 빠뜨린 비상계엄 사태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김 목사는 현재 사회를 “상식이 붕괴하면서 오는 혼란과 갈등이 매일 증폭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개인이 가진 상식, 그게 모여서 사회적 상식이 된다. 일종의 사회적 합의인데, 그 큰 합의가 현재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목사는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와 10개월이 지난 현재를 언급했다. 그는 “계엄령이 선포될 당시 전 국민이 그 모습을 봤다. 그때는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이건 대한민국이 아니다. 내란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계엄군으로 출동한 이들도 머뭇거리지 않았나. 어떤 군인은 철수할 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게 상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10개월이 지나도록 당시 국민이 생각했던 상식이 입증되지 않으면서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령이 잘못됐다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지 않으면서 상식이 붕괴한 것”이라며 “비상계엄 사태 직후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윤석열의 정당성,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는 주장이 나왔다”고 짚었다.

비상계엄 사태 지나면서
상식 붕괴하고 혼란 가중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극우 바람이 영향을 미쳤다고도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일부 정치 세력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등에 업은 정치 세력이 지역주의에 편승하면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미국에서 불고 있는 극우 바람, 마가 바람이 세계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바람에 매우 취약하다. ‘미국 절대주의’ ‘숭미주의’를 배경으로 미국 것을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어서다. 우리나라 문제를 가지고 열리는 집회에 왜 성조기가 등장하나? 문제는 그들이 큰 정치 세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미국발 극우 바람이 우리나라 젊은 층에 스며들고 있는 부분을 우려했다. 김 목사는 “과거에는 본인이 노력하고 애쓰면 개천에서도 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천에서 태어나서는 용이 될 수 없다. 이 절망감이 폭력적인 형태로 분출한 게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상층부를 구성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특목고를 나왔거나 강남에 살거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과거에 저명 인사여서 경제적으로 탄탄한 배경을 가진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사람들이 서울대 법대를 가고 상층부를 구성한다. 이들은 개천 근처에 간 적도 없고 심지어 개천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어떻겠나? 특목고도 나오지 못했고 강남에 살지도 않고 아버지가 부자도 아니다. 그런 이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국가 기관을 때려 부쉈다. ‘아무개 판사 나와!’ 하고 소리도 질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포옹도 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에게 잘못된 성취감이 심어졌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목사는 정치권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발
극우 바람

그는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지연, 학연 등이 영향을 끼치니까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지 않았나.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을 하니까 정말 소위 말하는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 강남 출신 이런 사람들만 취업이 되는 것”이라며 “개천 사람은 취업할 수 없다. 정치권이 20대, 30대를 위한 희망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노력하고 애쓰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목사는 현재 2030세대가 밟고 올라갈 사다리가 끊어진 상태라고 봤다. 그는 “정치권에서 아주 집중적으로 이 젊은 세대가 꿈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갈등을 증폭하는 식으로 이끌고 있다. 그러면 정말 답이 없다”고 우려했다.

아직 손을 쓸 수 있는 시기인지를 묻자 김 목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다 “지금 사회가 혼란스럽고 국민이 갈라져 있으니까 대통령도, 정치권도 통합을 말한다. 하지만 통합은 마지막 골(goal)이지 과정이나 수단이 아니다. 통합까지 가는 과정을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을 고민해야 하는 주체가 정치권이다. 그리고 사회적 숙의를 통해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정치권이 현안을 놓고 토론해야 한다. 한쪽이 안건을 내면 다른 한쪽은 국회를 박차고 나가는 게 아니라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필요하면 국민자문단이나 시민단체에 의견을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대, 30대가 왜 서부지법에 쳐들어갔고 그 사람들이 왜 부화뇌동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숙의 과정을 거치면 해결이 가능하다. 그건 정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목사는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무슨 꿈을 꾸고 있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하고 있네’라고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꿈을 꾸는 사람조차 없다. 지금은 집단지성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봐도 과하지 않다”며 “정치권이 엉뚱한 생각을 해야 한다. 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엉뚱한 생각,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생각하는 통합은 무엇일까? 그는 모든 국민이 한 가지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은 ‘독재’라고 잘라 말했다.

마라톤 뛰듯
장기적으로

그는 “다수의 의견에 소수가 동의하는 것, 다수가 합의점을 냈을 때 그 의견에 승복하는 게 바로 통합이다. 가장 좋은 예가 국회다. 국회가 안건을 표결로 결정하면 그게 통합이다. 숙의, 집단지성을 창출하는 과정 없이 거수로만 해서 다수의 폭력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러다 보니 다수당이 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덤비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목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거론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후하게 평가하는 것은 그가 토론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특정 사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들으면 여러 차례 되묻고 생각하고 판단했다. 반대를 뭉개버리는 게 아니라 곱씹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은 경청을 잘한다. 각계각층 사람들과 토론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듣는다. 국무회의에서도 ‘아무개 장관 말해봐라’ ‘자유롭게 말해라’라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수용하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대통령의 의견에 아무도 반대를 말하지 않는 분위기에 갇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이견을 듣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회 상황과 정치권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쓴소리하던 김 목사는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느냐는 말에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꼰대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웃으면서도 “성경 말씀에 ‘구하고 두드리고 열어라’라는 가르침이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저앉지 말고 계속 뭔가를 찾고 탐구하고 노력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을 꽉 채우는 길이의 글에도 벌떡증을 일으킨다. 그저 ‘쇼츠, 쇼츠, 쇼츠’에 매몰돼있다. 방에 틀어박혀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게임만 하지 말고, 그 손바닥만 한 세계에 갇히지 말고 긴 글도 읽어 버릇하면서 정말 구하고 두드리고 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젊은 세대 절망 달랠
정치권의 역할 중요”

김 목사는 “정치권에서 해법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를 ‘쇼츠’ 방식으로만 해서 그렇다. 뭐만 하면 ‘입법’ ‘입법’을 외친다. 멀리 보고 길게 보면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정책이 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다 단거리 달리기만 하고 있다. 오늘만 살고, 내일만 사는 식이 아니라 삶의 마라톤을 뛰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1939년에 태어난 김 목사는 올해로 여든일곱 살이 됐다. 새로운 일을 하기엔 버겁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김 목사는 최근 동료 목사들과 함께 ‘조곤조곤TV’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방송을 시작했다. 비상계엄 사태, 탄핵 등을 거치면서 등장한 일부 기독교 세력의 극우화 행보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김 목사는 “교회의 극우화와 절망을 야기한, 즉 오도하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저항하는 교회의 힘이 너무 약하다. 그리고 여기에 끌려가는 교인이 너무 많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교회를 찾지 않는 신도도 너무나 많다. 망가진 교회를 보기도 싫고 목사 설교도 싫고 이런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 손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방치되는 것이다. 이대로 30년이 지나면 문 닫는 교회가 수두룩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나를 비롯해 함께 조곤조곤TV에 출연하는 목사님들은 기독교계에서 영향력이 꽤 있던 분들이다.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결과가 지금이다. 이대로 죽게 되면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죽기 전에 몸부림이라도 쳐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지금껏 하고 있던 사회활동은 모두 중단하고 유튜브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채널명 조곤조곤은 또박또박이라는 뜻이다. 하나씩 짚어가면서 이건 잘못된 거고, 이게 옳은 거라고 알려주는 게 바로 조곤조곤이다. 그 방향을 지향하려고 채널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우리나라 국민은 정말 위대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역사적 사건을 모조리 겪었다.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정말 절망적일 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국민은 그 모든 걸 극복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처지에 있던 나라 중에 그 모든 걸 극복한 나라가 없다. 누군가는 ‘뭘 믿고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과거에 다 극복했다”고 힘줘 말했다.

절망을 넘어
국민 힘으로

이어 “우리 어렸을 때 코를 안 흘리는 애가 없었고 얼굴에 버듬 안 핀 아이가 없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먹을 게 없어서 나타난 모습이다. 그것도 극복했다. 전쟁 나서 전부 폐허가 된 때도 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다. 독재 정권이 나타났을 땐 국민이 무너뜨렸다. 우리 국민에게 내재한 힘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 힘을 믿고 우리가 위대하다고 자부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내보자. 지금의 현안도 노력해서 풀어보자,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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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