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잇따른 중대재해로 산업 현장 안전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부가 ‘산업재해 공화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고강도 제재에 나선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추진 상황 및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현행법상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형사·민사 책임 외에 행정·경제적 제재를 추가해 산재 발생률을 낮출 계획이며,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개정도 추진한다.
주요 내용은 ▲과태료·과징금 제도 도입 ▲입찰 제한, 영업정지 대상 확대 ▲긴급 작업중지권 도입 등이다.
권 차관은 “법을 안 지켜서 이득을 보고 재해가 발생하는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개선할 제도 일부는 소급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를 저격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엔 “포스코 사태는 상징적 사건이었고, 그에 대해 엄단해야 하지만 (이번 발표는) 전체적으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포스코이앤씨에선 최근 한달 새 중대재해가 연이어 일어났다. 지난달 28일 함양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1명이 숨진 지 일주일 만에 광명~서울 고속도로 연장 공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노동자가 감전돼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과태료·과징금 도입에 대해 권 차관은 “현행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 근로자와 기업 간의 관계고, 행정적 제재와는 역할이 다르다”며 “과태료는 신속하고 중복 부과가 가능해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 과징금은 산업안전법에 할지, 중대재해처벌법에 넣을지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설명했다.
과징금의 규모는 정액 또는 매출액의 일정 비율 부과 등 다양한 사례를 검토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또한 건설사에 대한 입찰 제한·영업정지 요청 기준을 현행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하고, 이미 영업정지 요청을 받은 업체에서 사망사고가 재발하면 등록말소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한다. 건설업 외 업종에서도 산재 사망사고를 인허가 취소 사유에 포함할 수 있도록 법제처에 건의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가 아니더라도 산업재해 예방이 가능하도록 ‘긴급 작업중지명령 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권 차관은 “어떤 경우에 긴급 작업중지 명령이 가능한지 요건을 구체화해, 현장이 예측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요건을 정한 후에도 근로감독관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작업중지·해제 심의위원회를 통해 발동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불법 하도급 단속 강화 ▲대출 심사에 중대재해 이력 반영 ▲외국인 근로자 취약 사업장 모니터링 ▲사고 유형별 맞춤 관리 등이 포함됐다.
고용노동부는 내달 중 전문가와 노사 의견을 수렴해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책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5개년 계획 수립과, 성과를 지속적으로 관리, 평가하기 위한 ‘상설특별위원회’ 설립 방안도 반영될 전망이다.
국민이 안전보건조치 위반 사항을 손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안전한 일터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권 차관은 “산재를 줄여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가는 것이 목표”라며 “전 부처가 힘을 합쳐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과거와는 다른 접근을 해 변화가 생기고, 성과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1만명 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인 1만명당 0.29명을 크게 웃돌았고, 이에 대통령 직속 국정위는 오는 2030년까지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재계에선 규제 중심의 정책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산재 발생 시 피해자 보상에 더해 추가 규제까지 적용되면, 단 한 건의 사고로도 경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 간담회 자리에서, 중소기업인들은 “안전 관리를 하고 싶어도 투자 여력이 없다”며 “정부 지원금으로 겨우 안전관리자를 두는 수준인데, 사고라도 나면 경영주가 처벌받게 돼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오기웅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노동문제는 중소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도 매일 마주하는 문제”라며 “중기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 지원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오 부회장은 “최근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중소기업도 여러 예방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정책 지원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당히 취약하다”며 “예방 노력을 기울인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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