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지선 기자] 지난 2009년 국내에 베이비박스(영아유기 방지를 위한 아기보호소)를 처음으로 도입한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이 목사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자신의 집 대문이나 주차장에 버려진 갓난아이의 생명을 구하고자 베이비박스를 도입하게 됐다. 유난히도 쌀쌀한 올 가을, 이 목사에게 베이비박스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를 거쳐 간 갓난아이와 장애아동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0대 미혼모, 외국인노동자, 불륜을 저지른 유부녀의 아기 등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다음은 아이가 유기되지 않고 자신에게 온 것에 감사한다는 이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사람은 휴지가 아닙니다”
-베이비박스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예전부터 집 앞 대문이나 주차장에 버려진 갓난아기들이 한두 명씩 있었다. 내가 조금만 부주의해도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아기였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2008년 모 프로그램에서 체코의 베이비박스에 관련된 방송을 우연히 접하면서 우리나라도 저걸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겨울, 집 앞에 또 한 명의 아기가 종이박스 내 얇은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모습을 목격한 후 바로 베이비박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고 나서는 매일 하나님께 “단 한 명의 아이도 이 베이비박스 안에 들어오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언제 첫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나.
▲베이비박스를 만든 지 약 3달 후인 2010년 3월로 기억한다. 낮 12시에 첫 아기가 들어와 더 충격적이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내부 사람이 바로 알 수 있게끔 초인종이 울린다. 첫 아기를 데려온 후 나를 비롯한 주사랑공동체 가족들 모두 목 놓아 울었다.
-1년에 몇 명 정도의 아기들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오는가.
▲원래는 한 달 평균 2∼3명의 아기가 들어왔었다. 그러나 올해 8월경부터는 한 달에 10명 이상의 아기들이 들어왔다. 9월에는 무려 15명의 아기가 들어왔고 이 달에도 벌써 4명 이상의 아기를 맞이했다. 추워진 날씨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버려진 아기들이 갑자기 급증한 이유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생활고, 잘못된 성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내와 이혼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남성이 갓난아기를 버리고 갔다. 그는 아이를 버리기 전에 죽이려고 고층에서 두 번이나 떨어뜨리거나 목을 졸랐다고 한다. 한 10대 미혼모는 도망간 남자친구의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겪으면서 아이를 몇 번씩이나 4층 높이에서 떨어뜨리고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했다고 한다. 마침 친구가 베이비박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아이를 안고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이 외에 자신이 일하던 식당 사장한테 성폭행 당해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외국인 노동여성들, 남편 몰래 외간남자와 불륜을 저질러 아기가 생겨버린 유부녀 등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잘못된 성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기들은 어디로 가는지.
▲들어온 아기들 중 일부는 직접 키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파출소 신고를 통해 구청 내 노인청소년과 명단에 올라가고 아동사립병원, 임시 보호소 등을 거쳐 입양기관에 보내진다. 참 슬프고도 힘든 일이다. 한 번 버려지는 것도 큰 상처인데 허술한 국내 법 때문에 죄 없는 아이들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버려져야 하니 말이다. 베이비박스제도의 합법화가 간절해지는 대목이었다.
-최근 일어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6살의 한 미혼모와 그녀의 아버지가 함께 울산에서 서울까지 달려왔다. 어린 미혼모는 오열을 하며 차마 걸음을 떼지 못했다. 위로의 말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채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미혼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모님이 키워주시겠다고 한 것. 그 소식을 듣고 주체할 수 없이 기뻤고 그 부모에게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보람도 느꼈다.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들 갈수록 늘어
정부 합법기관 승인·복지제도 개선 필요
“한달 2∼3명서 15명으로 늘어”
-베이비박스의 역할은 무엇인지.
▲ 베이비박스의 주된 역할은 영아유기를 방지하는 것이다. 항간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오히려 유기를 조장하다고 하는데, 과거만 해도 원치 않은 임신으로 영아를 화장실에서 낳고 비닐봉투에 싸서 버리는 사체유기사건이 많았다. 불법낙태도 지금보다 더 성행했다. 그러나 베이비박스가 도입되면서 신생아 사체유기가 급격하게 감소됐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겼다 상황이 좋아지자 다시 찾으러 오는 경우도 벌써 10건이 넘는다. 베이비박스는 영아유기를 조장하는 시스템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수단 중 하나다.
-구청에서 베이비박스 철거를 요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이 제도가 불법이라고 말하는데.
▲베이비박스가 불법이라는 법적조항 자체가 국내에 없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베이비박스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유럽국가의 경우 수십 개에 달하는 베이비박스를 정부가 직접 관리·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산부인과가 즉 베이비박스나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정부도 버려지는 아동에 대한 복지를 개선하고 영아사체유기를 방지할 효율적인 방안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본다.
-비단 갓난아기들 뿐 아니라 장애아동까지 직접 키우시는데 재정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어 여유로운 편은 아니지만 수중에 있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동네 주민들이 항상 쌀을 갖다 주셔서 감사하게도 굶어본 적은 없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아동의 치료비와 교육비는 많은 이들의 후원금으로 대신하고 있다. 장애아이의 수술을 앞둘 당시는 서울대·보라매 병원 등의 배려와 정말 위급할 때마다 거액을 기부하시는 고마운 분들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커서 학교나 사회에 나갈 경우를 대비한 교육은.
▲주사랑공동체 식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오셔서 장애아동과 유아를 돌보면서 가르치고 있다. 기본적인 것부터 말, 글자 등을 가르친다.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받는 음악·치료 등도 아이들 정서안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어느 정도 큰 아이들을 직업교육이 가능한 센터 등으로 보내 활발히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유기 조장? 생명 창구죠!”
-향후계획과 소망이 있다면.
▲세계에 ‘생명살리기운동’을 보급하고 싶다. 그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베이비박스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도록 노력하고 전국에 베이비박스가 놓일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또한 장애아동들을 위한 치료와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들어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다. 하루 빨리 정부가 베이비박스제도를 합법화시켜 아이들이 수차례 버려지지 않고 바로 입양기관에 보내질 수 있도록 배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