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새 대통령에 바란다 - 하동환 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

“대공수사권 회복 시급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된 지 1년이 지났다. 간첩 수사권은 모두 경찰로 이관됐지만 성과는 초라하다. 2023년 기소된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은 국정원의 마지막 수사였다. 이 사건을 지휘한 하동환 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은 절박함을 토로했다. “경찰이 감당하지 못하는 3건의 거대 간첩단 수사를 미완의 상태서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차기 정부에서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반드시 회복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잡지 못한 간첩이 수두룩하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회복은 곧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필연적 의무다.” 이는 하동환 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이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한 말이다. 그는 진보든 보수든 어떤 정권이 집권해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회복은 국가안보 방어체계를 유지할 필수요건이라고 강조한다. 지금도 지하당 간첩들의 은밀한 행위가 활발하지만 경찰은 그들의 윤곽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걸음마 수준

경찰은 지난 2월 일선 경찰서의 안보계를 폐지하고 시도 경찰청 단위로 통합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추진했다. 광역화를 통해 안보수사 역량을 강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시·도청 별로 안보수사과 내 최소 1개에서 최대 6개 광역안보팀이 신설됐다. ▲서울청 6개 팀 ▲부산청 2개 팀 ▲대구청 2개 팀 ▲인천청 2개 팀 ▲대전청 2개 팀 ▲광주청 1개 팀 ▲울산청 1개 팀 ▲세종청 1개 팀 등이다.

기존 경찰서 내 안보계 시설은 그대로 유지하되 해당 서 관할지역 내 안보 문제가 발생하면 시·도청 광역안보팀이 경찰서 내 업무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경찰은 지난해 8월 안보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 경찰청 안보수사국 안보범죄분석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기존에 흩어져 있던 안보수사 관련 첩보 수집과 정보 분석 기능을 일원화해 정보의 정확성과 대공수사 전문성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현재 안보수사국 산하에는 안보범죄분석과, 안보기획관리과, 안보수사지휘과, 안보수사1과, 안보수사2과가 있다. 약 150명 규모지만 성과는 제로에 가깝다. 실제 경찰은 국정원으로부터 현재까지 수백여건의 사건을 이첩받았으나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다.

하 전 단장은 아직 경찰이 ‘간첩 수사’ 노하우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수사 인력이 아무리 많아도 간첩들이 쓰는 암호통신문인 스테가노그라피를 해독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북한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들은 모두 스테가노그라피로 위장돼있기 때문이다.

스테가노그라피는 그리스어로 ‘감춰진(Stegano)+통신(Graphy)’의 합성어다. 그림·오디오·영상 파일 안에 지령 메시지 등을 코드 형태로 숨기는 과정 또는 그 기법 일컫는다. 북한은 남한의 간첩단 조직원들에게 평범한 사진, 신문 기사로 보이는 ‘커버 파일(Cover File)’에 비밀 메시지를 숨긴 뒤 스테가노그라피가 적용된 ‘스테고 파일(Stego File)’을 생성해 지령을 전달한다.

스테가노그라피는 정보를 숨긴다는 측면서 암호와 비슷하지만 비밀 메시지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가방어시스템 무력화 상태…재구축 필요”
대공수사권 폐지 1년 “국가 안보 자해행위”

하 전 단장은 “주로 중국과 러시아, 북한 스파이들이 쓰는 통신기술로 복호화 방법을 공유하는 관계자끼리만 정보 교환이 가능하다. 지난 63년간 국정원은 암호해독키 없이도 북한의 스테가노그라피를 해독해낸 노하우가 축적돼왔다. 경찰이 아무리 과학수사에 뛰어난 역량을 보인다고 해도 스테가노그라피를 해독할 수 있는 노하우는 결코 단기간 내 전수될 수가 없다”고 우려했다.


하 전 단장은 “창원 간첩단(2023년 3월 기소)과 제주간첩단(2023년 4월 기소) 사건 모두 스테가노그라피가 활용됐다. 당연히 피고인들은 해독키를 제공하지 않았고 국정원은 이를 스스로 풀었다. 경찰의 과학수사 역량은 이런 간첩통신을 해독하는 데 특화돼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 전 단장은 경찰의 해외 내·수사 역량 부재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국내 간첩단은 매년 2~3회 중국이나 동남아서 북한 상부선 간첩을 접선해 국내 정세를 보고하거나 지령을 받는다. 해외서 이런 은밀한 범행 현장을 채증하는 것은 수년간 현지에 체류하면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수행해 왔다”는 그는 “국정원의 이 같은 해외 내·수사 시스템은 전 세계 수사기관 사이에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경찰은 시스템이 전혀 준비돼있지 않다. 성공적인 간첩수사를 위한 필수 요소는 해외 내·수사와 과학수사 역량인데 이 점이 뼈아프다”고 짚었다.

하 전 단장은 “지난 2023년 수사했던 민노총·창원·제주간첩단 사건을 지휘하면서 확실한 증거가 수집된 11명만 수사에 착수해 검찰에 넘겼다. 2024년부터 국정원의 수사권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내·수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찰에 사건을 넘길 수가 없어 수사에 착수했다”며 “최소 3~4년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100여명에 달하는 세 간첩단의 북한 연계 용의자들을 모두 확인해 간첩단 조직을 일망타진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미 늦었다?

북한 고위급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국정원을 매우 적대하지만 북의 지령에 따라 남한서 활동하는 간첩들을 색출하는 국정원 대공수사국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입을 모았다. 즉, 국정원 수사국 존재 자체가 국가안보를 지키는 강력한 힘이었던 셈이다.

하 전 단장은 “입사 후 평생 수사관으로 활동하는 국정원과 달리, 경찰은 보안수사 분야뿐 아니라 2~3년 단위로 정보, 경비, 외사 등 직렬로 이동한다. 그런데 보안수사 분야는 승진이나 처우가 타 부서에 비해 매우 열악하기에 모두가 기피한다. 이런 상황서 막연히 간첩세력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정원 안팎서도 경찰이 국정원의 대공수사 노하우를 익히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북한의 스테가노그라피 기술이 업그레이드되는 속도가 경찰이 국정원의 대공수사 역량을 따라가는 속도보다 월등하다는 게 대공수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 전 단장은 “타이거 우즈의 스윙 폼을 수년간 따라 해도 그와 똑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 국정원이 60년 넘게 축적한 수사기법을 경찰이 단기간 안에 터득할 수 있겠냐”며 “북한 대남공작부서의 IT 역량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경찰은 전 세계에 신경망처럼 깔린 국정원의 해외 내사 시스템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간첩통신을 해독하는 과학수사 실전 경험도 부족하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결과적으로 국가 안보 자해행위였다”고 비판했다.

성과 없는 안보수사국 기피
국정원 국내 파트 부활 절실

경찰 내부서도 안보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안보수사국이 ‘성과’를 내기 어려운 기피 부서로 전락하면서 수사 의지도 꺾인 상태다.

하 전 단장은 “국정원은 각 부서에서 수십년간 일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보장해준다. 반대로 경찰은 언제 어느 부서로 인사이동을 할지 알 수 없다. 예컨대 베테랑 시위 진압 경찰관이 사상범을 상대로 한 간첩수사를 능숙하게 할 수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하 전 단장은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사라진 국정원의 국내 파트 부서도 부활시켜야 한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 전 단장은 “차라리 국정원을 개혁하려면 미국의 CIA와 FBI처럼 정보와 수사 분야를 분리해야 한다. 수사의 주체가 경찰도 국정원도 아닌 간첩수사만 전담하는 독립기관인 안보수사청을 별도로 신설해 국정원 조사관들을 이동시키는 등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곳에 경찰, 군, 민간 전문가까지 모두 망라하면 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정원 관계자도 “본래 북한은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 폐지 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남파공작원들에게 수 차례 지령을 내렸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이후 최근 스테가노그라피를 포함해 북한의 지령 중 ‘국보법 폐지 분위기 조성’이라는 문장이 사라졌다. 이게 무얼 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윤석열정부는 그간 의대 정원 증설 등 개혁정책을 내놨으나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혔고 오히려 의료계 파업 장기화로 인해 많은 국민을 골병들게 했다. 하 전 단장은 정부가 의료계의 정확한 실태 진단과 새로운 정책 실행으로 인해 야기될 제반 후유증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하 전 단장은 “과거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의 문제점에 대한 사전 경고와 더불어 향후 정책적 대안까지 정부에 제공해 왔다. 이제는 국정원의 역할이 아예 없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면 결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다”며 “의료 현장의 심층적인 문제점을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알 수 있겠나. 아니면 요소수 사태의 징조를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어떻게 사전에 감지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국내 파트 역할


이어 “담당 분야를 누비는 국정원 정보관들은 과거 대한민국 전반에 걸쳐 사회현상의 심층적인 문제의 원인까지 모두 찾아내 대책을 강구해 청와대에 보고했고 그것이 정책으로 실현된 바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해당 부처 공무원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현업을 팽개치고 현장에 파고들어야만 도출할 수 있는 알 수 있는 정보들을 국정원은 어떻게든 수집해 왔다. 즉, 국정원 국내 파트가 올바른 국가정책 수립에 소리없이 기여해 왔다는 점이 팩트”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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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