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임 헌법재판관 정계선·조한창

빨리 도는 탄핵 시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계선 전 남부지법원장과 조한창 변호사가 헌법재판관 업무에 돌입했다. 아직 9인 체제가 완성되진 않았으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심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두 사람은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추천한 인물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무리 없이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조한창·정계선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헌법재판소 ‘8인 체제’가 됐다. 헌법재판소법의 ‘7인 이상 심리’ 규정을 충족하게 된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최우선으로 처리할 방침이다. 특히 최선임인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등이 퇴임하는 오는 4월18일 이전에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8인 체제
결판낸다

지난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8인 체제로 선고됐다. 당시 헌재는 “8인의 재판관으로 재판부가 구성되더라도 탄핵 심판을 심리하고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8인 체제를 갖춘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제 막 업무를 시작한 조·정 재판관은 지난 2일 헌재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한 뒤 이 사건을 심리 중인 전원재판부에 합류하고, 예정된 재판관 회의에 참여했다.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을 논의하는 재판관 회의는 매주 1회씩 열리는데, 재판관이 충원된 만큼 주 2회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헌재 관계자는 “할 일이 워낙 많아 신임 재판관들도 곧바로 업무에 착수할 것이다. 심리가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헌재는 이달 중순 정식 변론기일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오는 4월 중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이 재판관이 오는 4월18일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 재판관 충원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기에 그전에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은 접수 63일 만에,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은 91일 만에 선고된 것을 고려하면 2~3월에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판관들도 대부분 “신속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새로 합류하는 조 재판관은 후보자 시절, 탄핵 심판 기간에 대해 “신속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면서도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고 충실하게 심리하는 것이 요구돼, 적정한 심리 기간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탄핵 심판 선고 시기의 가장 큰 변수는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변론 태도다. 윤 대통령은 노·박 전 대통령과 달리 공개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적으로 다투려는 의지가 크기 때문에 증인 수십명을 신청하고, 송달 절차 등을 문제 삼으면 심판이 지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이 탄핵이 소추된 직후 관련 서류를 수령하지 않자 헌재는 우편으로 보내고 송달된 것으로 간주해 처리했다.

조·정 재판관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 등 다른 탄핵 사건 9건에도 투입된다. 헌재에 역대 가장 많은 탄핵 사건(10건)이 몰려있어,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제외한 기존 재판관 5명은 1인당 1~4건씩 탄핵심판 주심을 맡고 있다.

박근혜 탄핵 때처럼…걸림돌 제거
윤 심리 속도 4월 이전 결론 목표


최근 접수된 탄핵 사건 주심을 새 재판관들에게 재배당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재판관들의 사건 처리 부담을 나누고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조 재판관은 서울 상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9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8기. 육군 법무관을 거쳐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서 법복을 입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해 상고심 보조 경험이 있고, 사법연수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평택지원장과 두 차례 수석부장으로 발탁돼 사법행정 경험도 있다.

조 재판관은 양승태 사법 농단 연루 의혹을 받았다. 사법 농단은 2011년 9월~2017년 9월 당시 법원행정처가 정부의 관심 사건 재판에 개입하거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등 사법부와 판사의 독립을 침해한 여러 갈래의 사건을 일컫는다.

그는 2015년 5월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일하던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직 상실 무효’ 행정소송과 관련해 ‘각하(소송을 제기할 요건을 갖추지 못해 사건을 종결하는 것)는 부적절하다’는, 일종의 재판 가이드라인이 담긴 문건을 법원행정처 인사로부터 전달받았다.

조 재판관은 문건을 파쇄하면서도 담당 부장판사에게 ‘각하에 대해 법리적으로 검토하는 게 어떻겠냐’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조 재판관에 대해 “헌법 질서 수호가 긴요한 시점서 재판 개입 등에 협력한 반헌법적 이력이 있는 그가 헌법재판관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4일 인사청문회서 이 주제는 깊이 있게 논의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 재판관의 인사청문회까지 불참한 탓에 청문회는 좌석 절반이 빈 상태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야당 단독으로 진행한 청문회서 첫 질의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사법 농단 의혹부터 꺼내들었다.

조 재판관은 해명을 하려다 “깔끔하게 사과할 건 사과해야 한다”는 민 의원의 질타를 받고는 거듭 고개를 숙이며 관련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할 건 사과”
거듭 고개 숙여

그가 또 다른 재판 독립 침해 사건에 연루됐던 사실도 청문회서 언급됐다. 같은 당 김한규 의원은 2008~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태’를 지적했다. 신 전 대법관 재판 개입 사태는 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 배당하고 사건 처리 방향을 제시한 사건을 말한다.

조 재판관은 당시 관련 형사사건을 집중 배당받았던 형사13단독 판사로, 재판 전제가 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위헌성이 논란되는 상황 속에서도 지체 없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질의에 나선 김 의원은 “왜 상당수 사건이 본인에게 배당됐다고 생각하는가?” “신 전 대법관이 특별히 부탁하면서 배당했나?” “(윗선의)어떤 부탁이나 압박도 없었는가?”라며 조 재판관을 압박했다. 조 재판관은 당시 재판 관련해 아무런 부탁도, 압박도 받지 않았다며 “제가 부당한 지시에 맞춰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조 재판관은 윤 대통령이 ‘12·3 불법 계엄’을 명분으로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부정선거와 관련해 대법원에 여러 소송이 제기됐지만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며 “개인적으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서 충분히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 재판관은 특히 비상계엄 선포 당시 상황을 두고 “저희가 생각하는 전쟁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문헌상 나오는 ‘사변’이라는 사태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을 때) 황당한 느낌이었다”며 “그때 상황과 나타난 자막의 내용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부합되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한덕수(전) 권한대행이 ‘야당이 특별검사 후보를 추천한 것이 위헌적’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동의하는가”라는 민주당 박희승 의원의 질문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이행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헌재는 2019년 “특검 후보자의 추천권을 누구에게 부여할지는 국회서 입법 재량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라고 결정했다.

조 재판관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헌재서 열린 취임식서 “우리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헌법적 가치는 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배격하는 법치주의를 통해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영역서 해결돼야 할 다수의 문제가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기관들의 합의를 통해 해결되지 못한 채 사건화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 등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배려와 공감을 기본으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를 위한 이정표를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재판관은 1969년 8월2일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서 태어났다. 1987년 충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인권 변호사인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진로 변경을 결심해, 이듬해인 1988년 재수를 통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진학해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시 수석 합격자들은 신문에 크게 인터뷰가 실리던 시절이었다. 정 재판관은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서 “법조계가 너무 정치 편향적이다. 검찰의 5·18 관련자 불기소와 미지근한 6공 비자금 문제 처리 등에서 볼 수 있듯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법대로라면 전직 대통령의 불법 행위도 당연히 사법 처리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의대·법대
동시 합격

1998년에 사법연수원을 제27기로 수료한 후, 서울지방법원(현 중앙지법)서 예비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해 서울행정법원,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등 여러 곳에서 일했고, 옥스퍼드 대학교에 연수를 다녀왔다.

헌법재판소에 파견돼 2년간 헌법연구관을 지냈고, 법원으로 돌아와 서울고등법원서 1년간 항소심 사건을 다루다가 2013년 지법부장으로 울산지방법원에 전보됐다. 당시 울산지법의 첫 여성 형사합의부장을 맡아 2013년 울산 계모 살인사건서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계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후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전보돼, 여성으로는 최초로 공직비리 뇌물 등 부패사건 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27부 재판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맡았던 유명한 재판이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이다. 검찰서 징역 20년·벌금 150억원·추징금 111억4131만7383원을 구형했고, 법원에서는 징역 15년·벌금 130억원·추징금 약 82억7000여만원을 판결했다.

판결 배경에 대해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이 전 대통령의 행위는 직무 공정성과 청렴성 훼손에 그치지 않고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2019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임 시 비트코인을 재물로 보기는 어렵지만 사기죄의 객체인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고 봐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비트코인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전자정보로서 재산범죄의 객체가 된다고 처음으로 판단한 판결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과 여성, 아동, 난민, 이주민, 소수자 등 인권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활성화하고, 법원 내·외부의 성평등 의식 확산과 제도 보완, 성범죄 사건 심리 절차 및 판단 방법의 개선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 재판관은 대법원 산하 커뮤니티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서 활동했다. 초대 회장인 오경미 대법관에 이어 2023년 후임 회장(2대)으로 뽑혔다.

2023년 3월, 4월 임기가 만료되는 이선애,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유력했으나,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이력 때문에 헌법재판관 추천위서 위원들 간 격론이 있었다고 한다. 이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사법부 양대 최고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포진한 상황서, 특정 출신 독식으로 갈등 해결 기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다는 것이다.

결국 정 재판관은 최종 후보에 들지 못했고, 여성 법관으로는 정정미 판사가 헌법재판관 지명을 받았다.

조, 사법농단 연루 의혹 사과…합리적 평가
정, 법조계 “실력 최고…이제야 날개 달아”

2023년 7월 임기가 만료되는 조재연, 박정화 전 대법관 후임 최종 후보 8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여성 법관으로 신숙희, 박순영 판사도 이름을 올렸다. 당시 임기가 끝나는 박정화 대법관이 여성이기도 하고,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대법관을 뽑는 인사기 때문에 사실상 신숙희, 박순영, 정계선 셋 중 하나는 대법관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 거부권 행사 논란 끝에 아무도 지명되지 못했다.

차기 대법관 또는 헌법재판관으로 유력했으나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 연구회에 몸담고 있었다는 배경으로 최근 연이어 낙마했다. 법원 안팎에선 정 재판관이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판사로 분류되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실력 측면에선 최고의 판사”라며 “원리원칙을 고집하는 모습이 강성으로 비춰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재판관은 최근 취임사에서 끊임없는 소통과 도움을 언급하며 헌법재판소의 정신을 되새겼다.

정 재판관은 “우리는 지금 격랑 한가운데 떠 있다”며 “연이은 초유의 사태와 사건이 파도처럼 몰려와도 침착하게 중심을 잡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기대어 신속하게 헤쳐 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헌재의 사명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며 “헌재 구성원분들이 계셔서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출발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받치는 지혜의 한 기둥이자 국민의 신뢰를 받는 든든한 헌법재판소의 한 구성원으로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나아가는 믿음직한 동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최 대행은 및 지난달 31일 국회 추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3명 가운데 2명(정계선·조한창)만 임명하고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최 권한대행은 마 후보자에 대해 “여야가 다시 임명에 협의해 달라”고 언급했다.

최 권한대행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반헌법적’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서 “최 부총리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즉각 임명하라”며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해 선별적으로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삼권분립 침해이자 위헌 행위”라고 비판했다.

무의미한
정치 성향

최 권한대행이 주장한 ‘여야 협의 요구’는 거짓 논란마저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여야가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민주당 2명, 국민의힘 1명을 추천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국회의 헌법재판관 선출권을 침해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우 의장은 “헌법재판관 임명은 절충할 문제가 아니다”며 “국회가 선출한 3인의 헌법재판관 후보는 여야 합의에 따르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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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