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 러닝크루’ 몰려다니는 이유

도심서 우르르 ‘무서운 러닝족’

[일요시사 취채1팀] 최윤성 기자 = 2030세대 사이서 러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야외 운동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늘어난 데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어 진입장벽이 낮은 이유다. 그러나 일부 러닝크루들이 공공 운동장뿐 아니라 산책로까지 점령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어나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런라니’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상황서 러닝크루가 단체로 몰려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MZ세대 사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러닝크루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달리기 열풍에 휩싸이면서 공원과 운동장 등 달릴만한 곳은 어디든 러너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러닝크루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일부 러닝크루가 공공 운동장의 모든 트랙을 차지한 채 단체로 달리거나 과도한 크루 활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MZ 열풍 

산책로나 운동장이 러닝크루 회원들로 가득 메워지자, 이용에 불편을 겪는 시민들이 속출해 결국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이에 <일요시사>가 단체로 무리지어 달리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러닝크루 활동이 잦은 서울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지난 7일 오후 1시께 도착한 운동장은 한산했다. 트랙에서 뛰고 있는 지역 주민을 몇 명 볼 수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다. 해당 시각에는 총 4명 정도가 혼자 뛰거나 둘이서 함께 달리고 있었다. 러닝크루의 주 모임 시간이 오후 6~8시로 퇴근 시간 이후에 맞춰져 있어 만나기는 어려웠다.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도는 중 달리기 직전 몸을 풀고 있는 한 주민을 만났다.


최근에도 러닝크루에 초청돼 종종 나간다는 A씨는 “실제 훈련 방식이 맨 앞 사람 기준에 맞춰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줄지어 뛸 수밖에 없다”며 “혼자서 하는 것보다 크루에서 활동하면 운동 효율도 더 좋아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성을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가입한 사람은 별로 없다”며 “편견이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단순 운동 목적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늰 “혼자서 달릴 때 뒤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비켜달라고 해 놀란 적도 있고, 트랙 중간에 멈춰 서서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다수의 러닝크루가 그런 게 아니라 일부 크루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말했다. 

이후 오후 4시께 해당 운동장은 러닝하러 나온 주민들이 앞선 시간 때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단체로 달리고 있는 모임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트랙 빈자리를 채우듯 레인별로 한두명씩 뛰고 있었다.

“실제 훈련방식이 줄지어 뛰어”
“맨 앞사람 기준 맞춰 달려야”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B씨는 “러닝크루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같이 뛰면 외롭지는 않겠지만 신경 쓸 게 많아 아직은 혼자가 편하다”며 “산책하러 나온 주민이 러닝크루를 피하는 과정서 부딪힐 뻔한 일도 본 적 있다”고 말했다.

이날 여러 사람이 모여 선수들처럼 훈련 방식에 맞춰 뛰다 보면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돼 좋다는 주민과 러닝크루에 가입해 함께 달리기보다는 혼자서 운동하는 게 더 편하다는 주민의 생각은 달랐다. 


실제 여의도공원서 활동하는 한 러닝크루 부매니저와 연락이 닿았다. 부매니저 C씨는 “맨 앞에서 뛰는 사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행동은 따로 없다”며 “단체로 뛰기 때문에 뒤떨어지지 않게 통제하는 과정서 모여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2열로 뛰다 1열로 바꿔 뛰기도 한다”고 말했다. 맨 앞에서 달리는 상급자에 맞춰 팀원들이 뒤따라 달리고, 이탈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과정서 모여 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러닝크루는 SNS를 활발히 사용하는 20~30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운동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달리기를 의미하는 러닝(Running)에 조나 모임 등을 의미하는 크루(Crew)가 합쳐진 용어인 러닝크루는 ‘달리기’라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서로 뭉친 집단을 뜻한다. 

달리기가 인기를 끈 것은 수년에 걸친 코로나19 확산이 영향을 줬다.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젊은 세대가 실내 운동보다는 실외 운동에 주목했고, 그 결과 운동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달리기는 다른 종목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MZ세대에게는 매력적인 운동이됐다.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과 소통하며 달릴 수 있는 소모임인 러닝크루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커뮤니티 플랫폼 ‘밴드’서 러닝과 걷기를 주제로 삼은 모임은 지난 2021년 9월 대비 올해 90%가 증가했다. 밴드서 러닝을 검색하면 지역 소모임만 약 2649개가 나온다. 

민원 빗발에 제재 나서
신조어 ‘런라니’까지

이 과정서 민폐를 끼치는 일부 러닝크루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급증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서 러닝크루가 한밤중에 도로를 막고 한복판서 단체로 찍은 인증샷이 공개돼, 일반인뿐 아니라 러너들 사이서도 도가 지나쳤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에게 “비켜달라”고 소리 지르거나 공공 운동장의 모든 레인을 차지한 채 단체로 달리는 행위와 러닝크루를 촬영한다며 막무가내로 길을 막거나 야밤에 스피커로 음악을 튼 채 달리는 행위도 지적받았다.

이 같은 러닝크루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자 지방자치단체서도 제재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는 지난 1일부터 반포2동 반포종합운동장 내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하는 내용의 이용규칙을 시행했다.

반포종합운동장은 한 바퀴에 400m인 레인 5개가 마련돼있어 러닝크루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서초구는 지난달 반포종합종합운동장 내 러닝크루 관련 민원을 9건 접수했다. 소음이나 촬영, 유료 강습을 막아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에 따라 서초구는 “10인 이상의 친목 동호회일 경우 4인·3인·3인 등 조를 구성하는 것을 권고한다”며 “트랙 내 인원 간격을 약 2m 이상으로 유지해달라”고 안내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현장 관리직원의 판단에 따라 현장 계도 등으로 주의 또는 퇴장까지 요구하겠다는 계획이다. 

“비켜”

서울 송파구 역시 석촌호수 산책로에 ‘3인 이상 러닝 자제’를 요청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송파구에는 러닝크루 관련해 올해 총 15건의 민원이 들어왔다. 경기 화성시도 동탄호수공원 산책로에 러닝크루 출입 자제를 권고했다. 지자체들의 단속 조치를 알리는 소식에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러닝크루를 러너와 고라니의 합성어인 ‘런라니’라 부르는 등 자라니와 킥라니에 이어 신조어까지 나온 상황이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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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