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먹히는 ‘청와대 관계자’ 사기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6.04 10:21:57
  • 호수 1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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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도에나 쓰던 수법이 지금도…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기망’은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해서 진실을 숨겨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로,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속일 의사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서 권력을 사칭한 사기꾼은 피해자를 기망했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속았다고 인지하기 어렵다는 함정이 발생한다.

사기죄는 수법이 날로 고도화·지능화하면서 전체 범죄서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늘고 있는 반면, 검거율은 매년 줄고 있다. 지난 3월18일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과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사기 사건 발생 건수는 2017년 4만343건, 2018년 4만7352건, 2019년 5만5799건, 2020년 6만5637건, 2021년 5만5860건, 2022년 5만8302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고도화
지능화

이 기간 전체 범죄 중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12.8%(2017년)서 21.2%(2022년)로 급증했다. 경찰이 처리하는 사건 5건 중 1건이 사기인 셈이다. 그러나 사기 범죄 검거율은 하락세다. 사기 범죄 검거 건수는 2017년 3만2721건, 2018년 3만5470건, 2019년 4만1093건, 2020년 4만2596건, 2021년 3만1371건, 2022년 3만1837건으로 매년 3~4만건 수준이다.

발생은 증가하는데, 검거 건수는 비슷한 수준이다 보니 같은 기간 사기 범죄 검거율은 81.1%(2017년)서 54.6%(2022년)까지 떨어졌다. 신종 사기 수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고도화·지능화되는 가운데 경찰 단속이나 수사가 이를 뒤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기 중에서도 끊이지 않는 것이 ‘권력 사칭형 사기’다. 누구나 겪어봤을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도 여기에 해당한다. 보이스피싱이 가족 등 지인 사칭은 크게 감소한 데 반해 검찰 등 정부 기관을 사칭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발생한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은 2만550건으로 피해액만 4143억원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에만 2506건(343억원)에 달하는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이 발생했다. 2021년 912건(171억원), 2022년 1310건(213억원)과 비교해 증가세가 뚜렷하다. 반면 지인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21년 991억원, 2022년 927억원서 지난해 상반기 32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대출 빙자형은 2021년 521억원, 2022년 311억원, 지난해 상반기 241억원으로 집계됐다.

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서는 검찰, 경찰, 법원을 사칭한 건수가 1만6008건(34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10건 중 8건 이상이 사법기관 행세를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사칭도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 직원인 것처럼 연락해 돈을 요구한 경우는 1781건(5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외에도 시중은행(146건, 22억원), 우체국·택배회사(254건, 145억원) 등을 사칭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실, 법원, 검찰, 경찰, 금감원…
사칭 범죄 늘지만 처리 건수 떨어져

보이스피싱이 대면하지 않고 당하는 사기라면, 직접 만나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 이럴 때 대통령 친인척, 대통령실 관계자, 유명 연예인 등을 사칭한다.


“나는 고졸이며 언니는 의대 근처도 안 갔고, 결국은 모든 게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지난달 10일, 징역 9년과 징역 3년6개월을 각각 선고받은 의사 사칭 재미교포 사기범 일명 ‘제니퍼 정’ A씨(51)와 여동생 B씨(45)의 판결문에는 거짓말로 점철된 자매의 삶이 적나라하게 적시됐다. A씨는 자녀 유학이나 미국 영주권 취득 명목으로 피해자 4명에게 41억여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 모 대학병원에 교환교수로 온 미국 의사이자 해외 의료기기 회사 한국 총판 대표로 자신을 거짓 소개하며 사기 행각을 벌였으나, 이 모든 게 거짓이었다. 해당 병원은 A씨가 교환교수로 재직한 이력이 없다고 밝혔고, 그가 제시했던 미국 의사면허도 가짜로 판명됐다. 

A씨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컬럼비아대학 졸업증에는 ‘생물학 석사’라는 전공이 기재돼있을 뿐, 의대 졸업증명서도 없었다.

만 23세였던 1997년, 미국서 입국한 그는 2009년까지 전남 순천서 영어학원을 운영했고, 2010년부터는 광주 영어학원 본부장으로 일한 것으로 드러나 어린 나이에 미국서 의대 졸업 후 입국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가 ‘제니퍼 정’이라는 이름을 광주에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7~2018년 외국 의료기기 회사의 한국 측 파트너를 자임하며 광주시에 3200억원 규모 투자를 제안하면서다. 해당 기업의 한국 공장을 세우겠다며 광주시와 ‘비전 선포식’까지 열었으나, 본사에서 “한국 내 공장 투자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결국 촌극으로 끝났다.

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의료기기 회사 한국지사 대표인 것처럼 행세한 A씨는 의료기기 회사 측에 투자를 요청하기는 했으나 투자 계약이 체결된 사실이 없었고, 회사 제품을 주문하고 위조 수표로 결제대금을 보내 거래도 전혀 없었다.

A씨의 거짓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녀의 미국 유학을 원하는 의사 등을 대상으로 미국계 의료기기 회사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다며 수십차례 거액을 받아 생활비나 쇼핑 등에 탕진했다.

이 과정서 주한 미대사관에 근무하는 국제교류 변호사 연락처로 비자 발급 서류 등을 보냈지만, 변호사는 가상의 인물이었고 서류를 보낸 연락처도 A씨가 개통한 휴대전화였다.

A·B씨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기 범행을 계속하면서 서로 다투거나 상의하며 범행을 모의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서 “우리 가족은 모두 거짓말로 살아왔다”고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가 발견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광주지법 형사11부(고상영 부장판사)는 “피해자 자녀 중 일부는 미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했거나 입학이 취소돼 머나먼 미국서 전전하는 등 꿈과 희망이 가득해야 할 학창 시절을 허비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엔 윤석열 대통령의 인척이라며 세계 40개국에 첨단소재 등을 수출하는 국내 대기업의 공장 견학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기업이 진위 파악에 나섰지만, 끝내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관계자는 “이름이 ‘윤석○’이란 사람이 계열사 공장 견학을 요구했지만, 이틀째 확인이 안 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에 본사가 있는 그룹은 지방 계열사 공장 견학이라고 했는데, 일반인의 견학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 관계자는 “내부 검토 결과 두 사람을 거쳐 그룹 본사로 전달된 사람의 이름이 윤 대통령 이름의 앞에 두 자와 같아 마치 친인척인 것 같기도 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단골 멘트
비자금 세탁

수소문 결과 특정 종교단체의 회장으로 동명이인이 있긴 하지만, 같은 인물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공장 견학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대통령실은 “가까운 친척 중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손해를 입지 않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권력 사칭범들은 피해자에게 ‘기망-착오-인과관계-재물의 교부(재산상 이익의 취득)’로 이어지는 범죄구성요건을 성립시켜 돈을 착취한다. 


“나는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1280조원을 관리하는 청와대 국고국 직원이다. 비자금 관리 과정에 급히 필요한 1억원을 빌려주면 나중에 2억원으로 돌려주고 별도로 공로금 30억원을 지급하겠다.”

2014년 3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외모가 비슷한 C씨가 D씨에게 이같이 제안했다. C씨는 자신을 김 전 실장의 6촌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C씨 등 세 명은 이 같은 수법으로 2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얼굴이 김 전 실장과 많이 닮아 깜짝 놀랐다. 통치자금의 존재 사실을 누설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보안각서도 쓰게 해 피해자들이 쉽게 속아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왜 ‘허황된 말을 하는’ 사칭범의 말을 믿을까? 피해 사례를 보면 사칭범들은 연기력, 명품 세트, 권위, 당황 유도, 약점 활용, 시간 끌기, 민사 사건화 등으로 본인을 고소하거나 경찰 신고를 막는다.

사기 범죄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기범과 피해자 간 신뢰관계가 형성되거나, 특정 사실에 대해 피해자가 기망을 당해야 한다. 이런 과정 자체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며 설득을 기반으로 한다. 문제는 이 과정서 피해자가 스스로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칭범은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
“현실 고통 잊어?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사칭범은 피해자 선정을 위해 충분히 조사를 벌인다. 단지 욕심이 많거나, 약자이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 본인이 갖고 있는 강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후 친목을 형성하며 이익을 취한 뒤 신뢰를 배반하는데, 이 과정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또 다른 대상을 정하는 식이다. 

심지어 공범을 등장시켜 희생자인 것처럼 위장해 피해자가 사칭범을 고소하지 않게 하거나 결혼 사기처럼 피해자로 하여금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하는 심리적 조작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상대방의 상처받기 쉬운 부분을 찾아내는 귀신같은 재주를 갖고 있으며,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한다. 사람들이 믿을만한 미끼를 던져놓는다. 또 그것이 실제처럼 보이도록 하는 전술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정보들도 있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사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아예 상대방의 삶으로 들어가 심리를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칭범들은 하나같이 병적일 정도의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과 자아를 만들어내면서 일생을 거짓으로 살아간다.

이 과정서 반사회적, 연극적, 경계적,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앓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며, 상대를 고려하는 능력이 결여된 인격장애의 일종이다.

결국 자아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무관심하지만, 남을 속이는 행위를 통해 상대를 비하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피해자가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칭범들 자체가 사칭을 위해서 현실의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해서, 피해자도 사칭범이 하는 말을 믿게 되기 때문이다.

통하는
권력자

한 경찰 관계자는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거나 번복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하다. 사기 범죄 처벌을 좀 더 세분화해 권력층 사칭 범죄에 대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리학 전문가는 “대중은 내세울만한 유력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을 쉽게 신뢰하고 그에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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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