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자전거 여행 ②광양 섬진강 자전거길

매화 향 흩날리는 봄날에는, 광양 섬진강 자전거길

시인은 “매화꽃이 피면 / 다사강 강물 위에 / 시를 쓰고”(곽재구 ‘봄길’ 중), 상춘객은 매화꽃이 피면 섬진강 변에서 자전거를 타리라. 다른 꽃보다 일찍 피어 화괴(花魁), 즉 ‘꽃의 우두머리’라 불리는 매화가 지천인 섬진강 변에는 봄이 빨리 찾아든다. 꽃길과 물길 사이로 뻗은 광양 섬진강 자전거길 따라 봄으로 달려간다.

전북 임실서 전남 광양까지 이어지는 섬진강 자전거길은 국토종주 자전거길 중 자연미를 가장 잘 살린 코스다. 곳곳에 꽃이 피어 봄철 자전거 여행지로도 인기다. 봄이 시작되는 이맘때 빛을 발하는 곳은 단연 매화마을-배알도수변공원 구간이다.

매화마을

양쪽 어디서 출발해도 상관없지만, 자전거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무료 대여소가 있는 매화마을서 시작하자. 매화마을 내 섬진강 테마로드 관광안내소서 신분증만 제시하면 누구나 자전거 대여가 가능하다. 매화마을서 실컷 꽃구경하고 자전거도 탈 수 있으니 일석이조.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광양매화축제도 열리고 있다. 매화마을서 섬진강 쪽으로 내려가면 빨간 공중전화 부스 모양 무인인증센터가 보인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인증 스탬프가 비치된 장소로, 종주 인증수첩 소지자는 스탬프를 찍거나 ‘자전거행복나눔’ 모바일 앱을 통해 사이버 인증을 할 수 있다.

무인인증센터서 남쪽으로 달리자, 전망 좋은 자리에 선 정자가 눈에 띈다. 조선 선조 때 나주목사를 지낸 정설이 세웠다고 알려진 수월정이다. 송강 정철이 이곳 정취에 반해 <수월정기>를 남겼다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정자서 보는 섬진강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


정자 주변에는 섬진강에 얽힌 두꺼비 전설을 보여주는 조형물과 안내판이 있다. 모래가 많아 다사강(多沙江)이라 불리다가, 두꺼비 섬(蟾) 자를 써 섬진강이라 불리게 된 유래를 알려준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강과 거리를 벌렸다 좁혔다 하며 다양한 각도서 경치를 즐기게 한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경남 하동과 광양을 잇는 여러 다리도 만난다. 섬진강대교는 푸른빛이 가득한 산과 강의 풍경 속에 붉은빛이 강렬한 포인트를 살린다.

멀지 않은 곳에 빨간색 명물이 하나 더 있다. 인증 사진 하나쯤 남기고 싶은 우체통 모양 화장실이다. 외벽에 적힌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섬진강 / 마음의 편지를 보내는 곳’이라는 문구가 운치를 더한다.

봄바람, 강바람 따라 신나게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새 섬진강 끝자락 망덕포구다.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망덕포구는 봄 벚굴, 가을 전어로 유명한 횟집거리인 동시에 윤동주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횟집 사이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국가등록문화재)이 자리한다. 시인의 주옥같은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공간이다.

섬진강 따라 달리는 자전거로드
이달 8일~17일 매화축제도 즐기기

윤동주가 생전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다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자, 친우 정병욱이 그 원고를 망덕포구에 있는 부모님 댁에 맡겼다. 항아리 속에 몰래 보관한 원고는 광복 후 간행돼 세상에 알려졌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포구와 시를 음미하자.

섬진강 자전거길의 기점이자 종점인 배알도수변공원이 망덕포구에서 가깝다. 그대로 자전거길을 따라 태인대교를 건너거나, 배알도 섬정원으로 이어지는 별헤는다리로 이동하면 된다. 화물차가 종종 다니는 태인대교 쪽보다 후자를 추천한다.


별헤는다리 끝에 감성 넘치는 배알도 섬정원이 있다. 예쁘게 정돈된 섬에는 빨간색 ‘배알도’ 조형물이 포토 존으로 인기다.

배알도 섬정원 다른 쪽에 놓인 해맞이다리를 건너면 배알도수변공원이다. 이곳에는 무인인증센터와 함께 종주 인증스티커를 발급하고 종주 인증수첩을 판매하는 유인인증센터도 있다. 별헤는다리와 해맞이다리는 보행교로,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한다.

매화마을과 배알도수변공원을 잇는 약 20㎞ 광양 섬진강 자전거길은 일부 오르막 구간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완만하다. 매화마을과 광양읍 쪽 운전면허시험장 입구에 자전거 무료 대여소가 있으니 일부 구간이라도 가볍게 즐겨볼만하다.

대여소는 이달 1일부터 11월30일까지 오전 9시~오후 6시(수·목요일, 주말 제외한 공휴일 휴무)에 운영 중이며, 대여 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섬진강 자전거길이 지나는 섬진강끝들마을서도 일반 자전거와 어린이 자전거, 가족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준다. 전화(010-2605-1060) 예약 필수, 월요일은 쉰다.

자전거로 섬진강 변을 달린 뒤에는 광양 원도심으로 이동해 문화예술 탐방을 하자. 그 시작은 도시 재생 사업으로 탄생한 복합 문화 공간 인서리공원이다. 원도심의 낡고 빛바랜 곳이 제각각 새로운 쓰임새를 얻으며 골목 풍경을 바꿔 놓았다. 오래된 한옥은 아트숍과 카페, 숙소로, 버려진 양곡 창고는 갤러리로 변신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인서리공원서 전남도립미술관까지 골목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걸어본다. 옛 광양역 부지에 들어선 미술관은 유리로 된 외벽, 직선과 사선을 이용한 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시기별로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며, 도슨트 전시 해설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참여형 교육 공간인 어린이아틀리에, 휴식 공간인 카페와 아트숍도 갖춰 알차다.

광양예술창고

미술관 바로 앞에 폐창고를 리모델링한 광양예술창고가 자리한다. 전남도립미술관과 함께 2021년 문을 열었으며, 미디어 A동과 소교동 B동으로 구성된다. 미디어 A동에는 영상실과 이경모아카이브, 갤러리가, 소교동 B동에는 문화쉼터와 어린이다락방, 다목적실이 있다. 흥미로운 인터랙티브 미디어 콘텐츠를 선보이는 영상실, 전시·체험 공간, 카페가 어우러진 문화쉼터는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광양 섬진강 자전거길(매화마을-배알도수변공원)→인서리공원→전남도립미술관→광양예술창고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광양 섬진강 자전거길(매화마을-배알도수변공원)→구봉산전망대→광양와인동굴
-둘째 날 유당공원→전남도립미술관→광양예술창고→인서리공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광양시 문화관광 https://gwangyang.go.kr/tour
-자전거행복나눔 https://www.bike.go.kr
-인서리공원 https://inseori01.com
-전남도립미술관 https://artmuseum.jeonnam.go.kr
-광양예술창고 https://blog.naver.com/gycc0701

문의 전화 
-배알도수변공원 유인인증센터 061)791-9023
-광양시관광안내소 061)797-3333
-인서리공원 061)761-6701
-전남도립미술관 061)760-3242~3
-광양예술창고 061)762-0702


대중교통
-광양 매화마을
버스 서울-하동, 서울남부터미널서 하루 8회(06:40~19:30) 운행, 약 3시간50분 소요. 하동터미널 정류장서 35번·35-1번 버스 이용, 매화 정류장 하차, 매화마을 자전거 무료 대여소(섬진강 테마로드 관광안내소)까지 도보 약 7분.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광양시버스정보시스템 http://bis.gwangyang.go.kr

-배알도수변공원
버스 서울-중마(동광양), 센트럴시티터미널서 하루 8회(08:10 ~22:10) 운행, 약 4시간 소요. 중마버스터미널 정류장서 11-2번 버스 이용, 명당(태인5구) 정류장 하차, 배알도수변공원까지 도보 약 10분.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https://www.kobus.co.kr, 광양시버스정보시스템 http://bis.gwangyang.go.kr

자가운전
-광양 매화마을 순천완주고속도로→구례화엄사톨게이트→용방교차로서 구례·지리산국립공원 방면→냉천교차로서 하동·화엄사 방면→냉천삼거리서 남해·하동 방면→섬진교회전교차로서 순천·광양 방면 3시 방향→신원교차로서 구례·다압 방면 2시 방향→섬진강매화로→광양 매화마을
-배알도수변공원 남해고속도로→진월톨게이트→진월 IC서 광양·광양제철소 방면→백운1로→태인대교 건너 우회전→배알도수변공원

숙박 정보
-연경당: 봉강면 중흥로, 061)763-2678, https://peepul.co.kr
-호텔락희 광양: 광양시 항만9로, 061)913-5000, https://hotel lackyae.com
-섬진강별빛야영장: 진월면 사평1길, 010-2605-1060

식당 정보
-청룡식당(재첩국·재첩회): 진월면 섬진강매화로, 061)772-2400
-세림식당(옛날오징어볶음): 광양시 발섬4길, 061)794-0795, https://www.instagram.com/serim_10.10
-대한식당(광양불고기): 광양읍 매일시장길, 061)763-0095

주변 볼거리
2024 광양매화축제 2024년 3월8~17일 매화마을 일원 https://gwangyang.go.kr/tour, 이순신대교, 광양역사문화관, 광양장도박물관, 백운산자연휴양림, 성불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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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