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최대 폭력조직, 공포의 ‘꼴망파’ 해부

칼 들고 설치는 새파란 형님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0년대에 사실상 와해됐던 인천 최대 폭력조직 ‘꼴망파’가 슬금슬금 다시 등장하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다시 세력을 키우고 각종 사건에 연루되면서다. <일요시사>는 꼴망파와 그 조직원들이 벌인 주요 사건들을 되돌아봤다.

외식 프랜차이즈업체 대표의 유흥업소 폭행 사건에 조직폭력배가 연루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명 꼴망파 조직원이 해당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검은 특수상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상해) 혐의 등으로 불구속 송치된 요식업 대표 A씨의 사건을 강력부에 배당해 수사 중이다. 

술자리 동석
조직원 가담

당초 A씨 혼자 유흥업소서 지인을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술자리에 동석한 인천지역 폭력범죄단체 꼴망파 조직원인 B씨도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지검은 B씨의 폭행 가담을 확인한 후 사건을 강력부로 배당했다.

통상 조폭이나 마약과 관련된 사건은 검찰의 강력부서 수사한다. 검찰 관계자는 “해당 사건을 강력부서 수사 중인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A씨 등은 지난해 8월2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의 유흥업소서 지인 C씨를 둔기 등으로 여러 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유리로 된 얼음통을 C씨의 머리에 던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머리 부위에 열상 등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다.


B씨는 지난달 A씨와 함께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상해) 혐의로 불구속 송치된 상태다.

이 사건으로 꼴망파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꼴망파는 1987년 인천시 중구 신포동과 동인천 일대를 근거지로 조직됐다. 이후 꼴망파는 남구와 연수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유흥업소서 보호비 명목의 금품을 상납받는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인천의 최대 폭력조직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 두목의 계속된 투옥, 자금력 부족 등으로 세력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2011~2015년 신규 조직원 70여명을 영입하는 등 다시금 영향력을 키웠다. 

요식업 대표 폭행사건에 연루
도심 한복판 ‘빠따질’ 물의
노래방 살인 허민우도 같은 파

이들은 수차례에 걸친 ‘비상소집’과 ‘집결’을 통해 단합을 다졌다. ‘동원 전화를 받으면 보던 일을 그만두고 전원 소집한다’ ‘싸움이 벌어지면 후배가 앞장서고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 ‘조직을 탈퇴한 때에는 줄빠다를 맞고 시내를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등 18개 행동강령도 존재했다.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이유로 선배가 후배 조직원을 때리는 줄빠다도 고등학교 운동장 등지서 이뤄졌다. 조직원의 경쟁 조직 이적 문제로 흉기 등을 소지하고 인천 곳곳서 대기하며 집단 패싸움을 준비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꼴망파의 이름은 두목인 최태준의 별명이 ‘꼴망’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꼴망파는 신포동식구파로도 불린다. 최씨는 1980년대에 인천에 진출하려는 타지역 출신 ‘주먹’들을 평정, 인천 주먹계의 대부로 부상한 인물이다. 인천경찰청은 1989년 최씨를 검거하기 위해 특별검거반까지 편성했으나 경찰 내부 정보가 유출되면서 실패하는 등 검·경과도 밀접한 유착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꼴망파는 간석식구파와 더불어 인천의 최대 규모 폭력조직이었다. 하지만 간석식구파가 지난 2011년 10월21일 인천 남동구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크라운파와 집단난투극을 벌이고 검거된 뒤 꼴망파는 인천서 제일가는 폭력조직으로 거듭났다.

중구 신포동
동인천 일대

길병원 난투극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인천 폭력조직 크라운파 조직원의 부인을 조문하기 위해 모인 조직폭력배 중 크라운파로 소속을 바꾼 전 간석파 조직원과 현 간석파 조직원과의 실랑이가 발단이 됐다.

도심 한복판서 벌어진 칼부림과 난투극으로 일대 주민과 환자들은 장시간 공포에 떨어야 했다. 때마침 66주년 경찰의 날을 맞은 경찰은 난투극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

이후 경찰은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인천을 대표하는 5대 조직폭력단체 가운데 주안파, 부평식구파, 간석파, 크라운파를 무더기로 검거해 범죄단체 조직·활동 혐의로 처벌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꼴망파는 지난 2017년 경찰에 덜미를 잡히며 세력이 약화됐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신규 조직원을 대거 영입해 세력을 확장하고 범죄단체를 조직한 혐의로 꼴망파 조직원 72명을 검거해 핵심 조직원 D씨 등 8명을 구속하고 E씨 등 조직원 6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도주한 조직원 12명도 체포영장을 받아 추적했다.

D씨 등은 2010~2013년 신규 조직원 70여명을 영입해 경기도 가평 등에서 단합대회를 개최하고 조직 탈퇴를 막기 위해 후배 조직원들을 기수에 따라 야구방망이나 각목 등으로 수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4년 7월에는 ‘탈퇴한 조직원을 영입하려 한다’는 이유로 경쟁 폭력 조직원 6명을 야구방망이로 보복폭행하기도 했다.

두목 최태준
별명서 따와

경찰 관계자는 당시 “경쟁 조직과 패싸움을 위해 조직원들을 심야에 비상소집하고, 조직원을 영입하려 한 경쟁 조직원에게 보복폭행을 가하기도 했다”면서 “이번 조폭 엄단으로 인천지역을 대표하는 5대 조직폭력단체를 모두 소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꼴망파는 사라지지 않았다. 2020년 이후에는 1995년∼2006년 출생자인 신규 조직원 23명을 대거 충원하면서 중고차 사기, 보이스피싱, 대포통장 유통, 코인 리딩방, 작업 대출, 폭력 범죄 등에 연루돼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꼴망파는 인천 노래방 살인사건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노래방 살인사건의 범인인 허민우가 꼴망파 출신이었던 점이 드러나면서다.


인천 노래방 살인사건은 지난 2021년 4월경, 인천시 중구 신포동 한 노래방서 허씨가 손님을 살해한 뒤 시신을 여러 부위로 절단해 인천시 부평구 소재의 철마산에 유기한 사건이다. 현장 정밀감식 결과 허씨가 운영한 이 노래주점 화장실에서는 A씨의 혈흔과 미세 인체조직이 발견됐다.

허씨는 추가 요금 10만원으로 인해 시비를 벌이다가 손님으로부터 2차례 뺨을 맞자 화가 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는 경찰 조사에서 “(손님이)툭툭 건들면서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혼나 봐라’라며 112에 신고했다”면서 “화가 나 주먹과 발로 때려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2010년 사실상 와해
MZ세대 주축으로 재건

허씨는 범행 후 노래주점 인근 고깃집에 들러 CCTV가 작동하는지를 확인했고 인근 마트에서는 14L짜리 락스 한 통, 75L짜리 쓰레기봉투 10장, 테이프 2개를 샀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노래주점 내 빈방에 시신을 이틀간 숨겨뒀다가 차량에 옮겨 싣고서 인천 무의도와 강화도 등 곳곳을 돌아다녔고, 며칠 뒤 부평구 철마산 중턱 풀숲에 버렸다. 

그는 꼴망파서 활동하며 다수의 폭행·상해 전과를 얻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범죄단체 가입·활동 등 혐의로 기소돼 2020년 1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2월까지 보호관찰 중에 살인 범행을 저질렀다.


최근에는 MZ세대들이 꼴망파에 합류하며 세력을 다시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인천 도심서 집단보복폭행을 하다 검거돼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인천지검 강력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영창)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범죄단체 가입·활동이나 특수상해 등 혐의로 20대 조직원 F씨 등 5명을 구속 기소하고 2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F씨는 지난해 2월 인천시 미추홀구 노래방서 조직원 G씨가 다른 손님에게 폭행당하자 현장에 집결한 뒤 야구방망이와 쇠 파이프로 손님 등 3명을 보복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10·20대 합류
다시 세력 다져

또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조직 기강을 확립하겠다면서 후배 조직원들을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한 혐의도 받는다.

기소된 28명 중 25명은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폭력조직인 꼴망파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F씨는 이번에 집단보복폭행을 하고도 조직원에게 허위진단서를 제출하게 하는 등 마치 쌍방폭행인 것처럼 수사기관을 속이려고 한 사실도 드러났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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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