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후임 박성재 ‘급호출’ 내막

사실상 용산 구원투수
대통령실 핫라인 발동?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신임 법무부 장관에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이 지명됐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 간 갈등 국면서의 갑작스러운 발탁이다. 당초 검찰 안팎에서는 4월 총선까지 법무부 차관의 장관 대행 체제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정권을 향한 수사 통제 강화와 제2의 ‘사정기관 피바람’이 불 것이라는 관측에 나오기 시작한 이유다.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은 이원석 검찰총장의 사법연수원 10기수 선배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의 ‘대선배’이기도 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고검으로 좌천됐을 때 대구고검장을 지냈다. 박 전 고검장의 등장으로 검찰 권력이 과천으로 쏠릴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정부를 향한 수사기관의 칼날이 그만큼 무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법무부 장관
한쪽 칼날만?

박 전 고검장은 ‘사법연수원 17기 트로이카(최재경 전 민정수석, 김경수 전 고검장, 홍만표 전 검사장)’에 가리기는 했지만 ‘특수통’으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법무부 감찰담당관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 서울고검장을 지냈다.

2015년 대구고검장일 때, 2017년 서울고검장일 때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됐다. 원칙에 따라 조직을 장악해 강단 있게 업무를 추진해왔다고 평가받는다.

박 전 고검장은 윤 대통령과 근무 인연이 있다. 윤 대통령이 초임 검사 때인 1994~1996년 대구지검서 같이 검사 생활을 했고, 윤 대통령이 2014~2015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하다 대구고검으로 좌천됐을 때 대구고검장을 지냈다. 이때 박 전 고검장이 윤 대통령을 아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검찰 내부에선 4월 총선까지 심우정 법무부 차관의 장관 대행 체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법무부 장관 자리를 한 달째 공석으로 둔 상태서 법무부 차관부터 교체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청문회 리스크’를 피하려고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 전 고검장의 갑작스러운 발탁을 두고 검찰 내부에선 문재인정부 시절 검찰·법무부의 색채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직 장악력이 강한 박 전 고검장을 중심으로 ‘이원석 검찰 체제’에 힘을 실어준다는 평가다.

검찰 관계자는 “한 비대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갈등만으로 검찰 조직이 흔들리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박 전 고검장은 윤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선배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원석 체제 검찰 안정 원칙주의자
정권에 충성? “무리한 수사 안 해”

박 전 고검장은 후배인 문무일 부산고검장이 2017년 7월 검찰총장에 내정되자 자리서 물러났다. 검찰은 새 총장이 임명되면 사법연수원 선배 기수와 동기들이 대부분 사직하는 관행이 있다.

그는 당시 내부망을 통해 ‘검찰을 떠나면서’라는 글을 작성했다. 박 전 고검장은 “2007년 3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을 마치고 지방 지청장으로 떠나면서 작성해 둔 사직서를 오늘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전 고검장은 “검사장급 인사에서도 보듯이 부적절한 결정을 한 검사라는 이유로 몰아내는 인사를 했으나 그들이 어떤 사건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한 것이 부적절했는지 사유가 불분명해 언론에서는 이를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새로운 ‘줄세우기’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여러 제도개선안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 검찰의 문제가 한두 개의 처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며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형사사법시스템의 근간과 관련된 일이므로 심사숙고해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지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고검장은 “검찰은 제도가 도입될 때부터 ‘인권옹호기관’이었지만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으로 ‘거악척결’이라는 1차 수사기관적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검찰권이 운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 점이 검찰제도가 도입된 근본적인 취지와 배치되면서 여러 가지 비난 대상이 되고 부조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 원인 중 하나다. 이에 대한 대응방안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용한
원칙맨

박 전 고검장이 검찰 내부 안정화에는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검찰의 재벌과 제 식구 감싸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가 일선 부장검사 시절 수사한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6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장이었던 그는 삼성그룹 관련 4개 사건을 한꺼번에 맡아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소환 일정을 차일피일 미뤄 ‘재벌 봐주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이 회장을 기소한 것은 1년 뒤 출범한 삼성 특검이었다.

박 전 고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임한 뒤 정권의 의중이 실린 포스코 비리와 자원외교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취임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패척결을 강조하면서, “해외자원개발과 관련한 배임, 부실 투자”와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횡령 등의 비리”를 언급했을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이 전 총리의 담화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자원외교와 관련해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했다.

포스코 수사는 검찰이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이상득 전 의원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하면서 7개월의 수사 성과로 보기엔 초라했다고 평가받았다. 자원외교 수사도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을 구속 기소하는 데 그쳐 ‘용두사미’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건희·윤석열정부 향한
권력형 사건 사장 가능성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박 전 고검장은 검사 시절부터 윗사람과 청와대의 심기를 거스른 적이 없다. 원칙주의자지만 정치적 논란을 의식하고 강단 있게 성역까지 후벼 파는 스타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 전 고검장은 검찰이 홍 전 검사장의 법조 로비 의혹을 수사했을 때도 거론된 바 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이원석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검사였다. 중앙지검 특수1부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청탁 자금으로 3억원을 받은 홍 전 검사장과 만나거나, 정 전 대표의 브로커와 전화 상담을 한 사실이 확인된 고위직 검사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검찰은 홍 전 검사장이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던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을 두 차례 만나고, 최소 여섯 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홍 전 검사장이 최 차장을 만난 시점은 정 전 대표로부터 ‘최 전 차장과 박 전 고검장에 관한 청탁 명목’으로 3억원을 받은 직후였다.


부적절한 만남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데도 검찰은 최 차장에 대해 서면조사만 진행했다.

검찰은 “당시 최 차장이 정 전 대표를 엄정하게 구속 수사하라고 지시한 객관적 증거가 있다”고 했으나, 그 증거가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당시 정 전 대표가 회삿돈으로 도박을 했는데도 도박죄보다 형량이 센 횡령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검찰·재벌
봐주기 논란

검찰은 최 차장의 직속상관이던 박 전 고검장에 대해서는 아예 서면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홍 전 검사장이 박 전 고검장을 찾아가거나 통화한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특수통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전 고검장이 조직 안정화에는 뛰어난 사람이지만 권력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것과 엄정한 수사를 해왔다는 평가는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박 전 고검장은 정권에 부담가거나 무리한 수사는 하지 않았다. 반대로 정권과 평행선을 달리는 기업과 인사들에 관해서는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왔다.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무총리였을 때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검찰 수사는 특정 라인을 압박하기 위한 수사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 회장을 비롯해 김정행 전 대한체육회 회장,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 민영진 전 KT&G 사장 등 MB(이명박 전 대통령)맨들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서도 중앙대 비리 사건을 다루면서 MB정부 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냈던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을 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일부 사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했으나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던 건 사실이다.

이 같은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의 기획자로는 박 전 고검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꼽힌다.

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박 전 고검장이 우 전 수석과 청와대서 미팅한 사실이 있다”며 “둘의 미팅 직후 검찰이 발 빠르게 움직이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의 의중이 실린 검찰 수사가 강화될 수 있다는 견해가 검찰 안팎서 나오는 이유다.

우병우와 기획 사정 주도
총선 직전 피바람 부나

4월 총선까지 검찰의 칼끝은 결국 대통령실이 위치한 용산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거세다. 과거처럼 검찰발 사정 정국이 강화되면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야권을 타깃으로 한 검찰의 표적 수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 유죄판결(정치자금법 위반)과 민주당 출신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 기소(위증 혐의) 건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현재 검찰이 사실상 묵혀두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통제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김 여사를 1년 넘게 소환조사하지 않고 결론조차 내지 않았다. 재판부가 주가조작 일당이 김 여사의 계좌를 불법 시세조종에 이용한 사실을 인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여사의 성역화가 공고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사실상 ‘김건희 대변인’을 자처했다는 비판이 상당했던 법무부의 보도자료 때문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지난 5일, 윤 대통령의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직후 ‘야당 단독으로 강행한 위헌적인 특검 법안 2건에 대한 국회 재의 요구,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6쪽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법무부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은 문재인정부 당시 검찰이 김 여사가 대통령과 결혼하기도 전인 12∼13년 전 일에 대해 이미 2년 넘게 무리하고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강도 높게 수사하고도 김 여사에 대해서는 기소는커녕 소환조차 하지 못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소관부처로서 정부 이송 법률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법제업무 운영 규정에 따라 입장문을 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소환조차 하지 못한 사건’이라고 규정했으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엄연히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김건희 수사
도로 넣을까

법무부는 또 보도자료서 여당의 특별검사 추천권을 배제한 특검법 조항에 대해 “최소한의 중립성은커녕 편향적인 특별검사가 임명될 수밖에 없는 기형적 구조”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2016년 국정 농단 특검법에도 있던 조항이다. 특히 2019년 2월 헌법재판소가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이 특별검사 후보자를 추천함으로써 이해충돌 상황이 야기되면 특별검사 제도의 도입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합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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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