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모든 껍데기를 깨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죽음 앞에서 나를 돌아보면 그 상처 많고 흠집 많은 삶 속 어딘가에 내 인생의 찬란한 꽃이 피어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행착오 끝에 누리게 될 절정의 순간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다.” - 류하완
서울 종로구 소재 갤러리마리가 류하완 작가의 개인전 ‘Crossover’를 준비했다. 류하완은 마스킹테이프를 작업의 주된 도구로 삼아 행위의 흔적, 시간의 흔적이 레이어드된 독특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온통 네모로 뒤덮인 화면에는 작가가 긴 마스킹테이프를 잘게 자른 후 채색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상처투성이
작업의 시작은 캔버스 위를 지나는 마스킹테이프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잘라내는 것이다. 물에 약한 종이 재질의 마스킹테이프를 캔버스에 붙인 상태로 색을 칠한다. 이때 붓이 지나가며 물감이 스며들기도 하고 밀려나기도 한다.
건조 후 다시 테이프를 붙이고 잘라내고 물감을 끼얹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일반적인 채색 방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이한 색층이 나타난다. 류하완은 이것을 우연에 의해 얻어진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재료와 색상이 혼재된 류하완의 작업은 ‘테이핑-커팅-페인팅’이라는 계획된 방식의 행위와 계산되지 않은 우연의 효과가 결합돼 만들어진다. 겹겹이 쌓인 마스킹테이프를 화면서 모두 떼어낸 후의 모습을 그 행위를 하는 동안에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모양이 어떤 색으로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작업을 이어가고 마지막으로 마스킹테이프를 다 뜯은 후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이 흥미로운 작업은 상당한 시간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고된 예술노동이다. 이 같은 작업의 과정은 ‘우연’을 의도하기 위한 것이다.
마스킹테이프 이용
우연에 의한 결과물
류하완의 많은 작업서 창문이나 커튼 또는 난간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안과 밖의 경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표출된 것이다. 알 수 없는 풍경 한가운데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안락함과 안전함의 표식이라 할 수 있다.
류하완은 작업을 거듭해 오면서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벗기는 일련의 과정이, 안정 지향적인 삶을 원하지만 그럼에도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의 삶과 같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빈 캔버스에 테이프가 쌓이고 물감이 뒤덮이는 동안 수도 없이 흠집이 나며 시련을 겪게 되고 그렇게 할퀴고 간 자리가 사라지지 않고 인장처럼 남듯 인간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 가만두지 못하고 거듭 무언가를 더해 본연의 모습을 가리면 가릴수록 순수한 모습을 잃고 점점 퇴색해간다. 욕망이 쌓이고 순수한 모습이 흐려질 때 시련이 마음을 난도질하고 흠집이라는 훈장을 단다. 누구나 삶에서 겪는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인간사
갤러리마리 관계자는 “마스킹테이프로 무작위적 드로잉을 시도하는 류하완의 작업은 생채기 투성이로 지나온 흔적을 애써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낸다”며 “그 작업과 마주할수록 작가가 만든 작고 정직한 사각형 안에서 수많은 점의 집합으로 치환된 우리 개개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jsjang@ilyosisa.co.kr>
[류하완은?]
▲학력
숙명여대 회화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개인전
‘익숙함에 관한…’ 세종갤러리(2021)
‘Flashback’ 안상철미술관(2021)
‘Flashback 2’ 더스트릿 갤러리(2016)
‘모퉁이’ 웨스트앤드 아트센터 커피숍(2016)
‘Flashback’ 롯데백화점 갤러리 영등포점(2015)
‘Pooh-Bohemian II’ 우모하 갤러리(2012)
‘The Bubble’ GS타워 더스트릿 갤러리(2011) 외 다수
▲수상
KCAF 청년작가 대상(2006)
한국미술정예작가 대상(2004)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상(2001, 2002)
중앙미술대전 입상(2002)
단원미술대전 우수상(2003)
서울미술대전 특선 외 3회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