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태영호발 국힘 리스크 딜레마

실수? 더는 안 봐준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두 달 만에 국민의힘 지도부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한 사람도 아닌, 한꺼번에 두 명이 날아가 버렸다. 끊임없는 설화를 만들어냈던 인사들은 엄벌에 처해졌지만 이것만으로는 속이 개운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위기일 수 있어서다. 가까스로 버텨내고는 있지만, 다음 행보에도 비슷한 실수가 나온다면 정말 위태로워진다. 과연 계속되는 살얼음판의 김기현호는 괜찮을까?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 태영호 의원에 대한 징계 수위가 결정됐다. 윤리위원회는 김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 태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내렸다. 김 최고위원은 여전히 버티는 반면, 태 의원은 징계 수위가 결정된 날 최고위원 사퇴를 통해 한숨 돌렸다. 

공백 생긴
당 수뇌부

황정근 윤리위원장에 따르면 두 인물의 징계 사유는 각각 세 가지다. 김 최고위원은 5·18 헌법 전문 수록 반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우파 천하 통일 및 제주 4·3 사건 발언이 결정적이다. 태 의원은 제주 4·3 사건이 북한 김일성 지시라는 주장,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녹취록, 더불어민주당을 사이비 종교 단체인 JMS에 빗댄 발언이 문제가 됐다. 

앞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통상 월요일, 목요일마다 열었던 최고위원회를 두 차례 개최하지 않았다. 표면상 미개최 이유는 다른 일정 때문이었으나 일각에서는 사실상 김 최고위원·태 의원의 자진 사퇴의 종용을 위한 게 아니었냐는 해석도 나왔다. 

앞서 윤리위는 이들에 대한 징계 논의에 대해 한 차례 결정을 미뤘던 바 있다. 징계 결정을 두고 두 인사가 최고위원직서 물러날 경우 양형에 반영되냐느는 질문에 황 위원장은 “정치적인 해법이 등장하면 징계 수위는 예상하는 바와 같다”고 답했다. 결국 정치적 해법은 사퇴로 이어진 태 의원만 받아들인 모양새가 됐다.


자진 사퇴한 태 의원의 징계 수위는 윤리위서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윤리위 4차 회의가 열렸던 지난 1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태 의원은 “부족함으로 당과 윤석열정부에 큰 누를 끼쳤다”며 “당과 대통령실에 누가 된 점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리위도 태 의원이 스스로 물러난 것을 감안해 징계 수위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버티는 김 최고위원과 징계 수위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 일각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나온다.

자진 사퇴 시 차기 총선서 공천 신청이 가능하지만, 버틸 경우 기회조차 주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히 높기 때문이다. 같은 당 김용태 전 최고위원은 두 인사의 처신에 대해 ‘용산의 의중이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버티던 태 의원이 사퇴 카드를 꺼낸 이유가 일종의 거래가 있었냐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징계는 ▲가장 낮은 수위인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고 ▲제명의 4단계로 돼있다. 

당내에선 두 인물에 대한 징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한 최고위원도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김 최고위원·태 의원의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징계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던 초반, 이들은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버티면 1년, 물러나면 3개월
당원보다 입김 센 전국위 표


지난 6일, 김 최고위원은 자신의 SNS에 징계를 반대하는 온라인 탄원서에 참여를 부탁한다며 지지자들을 독려하고 나섰다. 라디오 인터뷰서도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앞서 그는 김기현 대표로부터 경고를 받고, 한 달간 자숙하는 시간을 보냈으며 제주도를 방문해 4·3 사건 유족들에게도 사과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태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박에 힘을 쏟았다. 날을 세우기도 했다. 자신은 때릴수록 강해진다며 태영호 죽이기에 의연하게 맞서겠다면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천 개입 녹취록 논란으로 징계 수위가 최대 1년이 나올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결국 꼬리를 내렸다. 

두 인물을 향한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자 내부서도 김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했다. 논란 초기만 해도 김 대표는 두 인물을 옹호했던 바 있다. 지도부에 날을 세우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오히려 상임고문서 해촉하는가 하면, 경고 발언으로 논란을 종식시키려 했다. 

결국 두 인물의 징계 수위가 결정되자 김 대표는 “일부 최고위원의 설화로 당원과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윤리위가 열리는 동안 김 대표는 “잠시 (최고위원이)결원인 경우가 있지만 어떻게 그게 공백이냐? 다른 지도부는 투명 인간이냐?” 등 다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끊임없는 설화가 터지는 사이 중도층은 줄줄이 등을 돌리며 이탈했고,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60억 코인’ 의혹이 눈덩이가 됐지만 국민의힘은 전혀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다시 또
비대위?

게다가 강성 보수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으로선 과도한 우클릭으로 인한 이탈표까지 신경써야 한다. 

김 최고위원과 태 의원의 징계가 이뤄진 강성 보수층만 바라보기에는 위험 요소가 따른다는 지도부의 계산이 깔려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국민의힘은 점점 극우 이미지가 극에 달했다.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끌었으며 국민의힘과 합당을 했던 안철수 후보는 전대 기간 내내 색깔론에 휘말렸다. 심지어 최고위원, 당 대표 후보에 극우 유튜버들이 출사표를 던졌고, 자신의 조직을 과시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대부분 컷오프되긴 했지만, 국민의힘 안팎에는 판을 뒤흔들 만큼 극우 세력이 컸다. 


이번 김 최고위원의 징계 결정으로 잠시나마 극우 프레임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다. 김기현호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곳곳서 사고가 발생한 데다 현재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2명이 공백 상황이다.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시 사고로 규정하며 탈당 권유부터 궐위로 인정된다. 탈당 권유 또는 제명에 따른 최고위원 궐위 시에는 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후임을 선출할 수 있다. 당원권 정지는 궐위가 아닌 직무정지에 해당해 공석이 유지된다. 

김 최고위원이 버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원권 정지가 의결돼 현재로선 지도부서 김 최고위원을 내칠 방법이 딱히 없다. 대신 지도부는 태 의원의 자리를 빠르게 채울 계획이다. 조만간 최고위에서는 최고위원 보궐선거 선관위를 구성하는 등 후임 선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국민의힘 당헌 27조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궐위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한 달(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서 최고위원을 선출해야 한다. 데드라인은 다음달 9일까지다. 

위태로운
김기현호

전국위원회 구성은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최고위원, 상임고문, 시도당 위원장, 당 소속 국회의원, 시장·도지사 등 1000명 이내로 구성되며 통상 보궐선거가 진행된다. 선관위 구성 후 선출 규정을 준용하게 돼있으나 선관위 의결로 지도부가 다른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규정은 맞추기 나름이다. 내부에선 지명직으로 바꾼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지명직이든 선거를 치르든, 말만 선거다. 후보 등록 기간을 주고 나서 등록해도 100% 당원 선거보다 힘이 세다”고 말했다.

지도부 의중이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셈으로 후임 최고위원의 관건은 친윤(친 윤석열)이냐 아니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미 ‘친윤 일색’이라는 비판서 자유롭지 못했던 만큼 영남권 후보와 비영남권 후보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심하고 있다.

만약 또다시 친윤 인사로 채울 경우 지역 배제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최고위원에 도전했던 허은아 의원, 김용태 전 최고위원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정작 당사자들은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출마를 해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탓이다.

또 다른 후보군으로 직전 원내대표 선거서 비윤(비 윤석열)계의 파란을 일으켰다고 평가받았던 이용호 의원이다. 국민의힘 내 유일한 호남(전북 남원임실순창)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 의원은 대선 기간 무소속에서 당적을 옮겼다. 

이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최고위원직에 대해)아직까지는 제안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요청이 올 경우 최고위원직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게다가 김 대표가 취임 직후 연포탕(연대·포용·탕평) 원칙을 내세웠던 만큼 비윤계 인사의 지도부 입성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다. 

다급해진 지도부 최고위원 고심
용산의 뜻에 따라 다시 비대위?

문제는 대통령실의 ‘입김’으로 또다시 비대위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닻을 올린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김 대표 입장에서는 비대위 구성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최고위원을 이른 시일 내에 선출해야만 한다. 비대위설은 실제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앞서 이준석 전 대표 시절에도 최고위원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 비대위가 구성된 바 있다. 사퇴하지 않고, 비대위를 반대한 인물은 김용태 전 최고위원뿐이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최고위원은 “남아 있는 최고위원들이 하루, 이틀 뒤에 줄줄이 사퇴했다”며 “비공개 회의서 대통령실의 의중이 어딘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사퇴를 통해 비상 상황을 유발시킬 것인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에는 최고위원들의 줄사퇴로 이어졌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번에도 용산의 의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나는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윗선서 비대위로 간다, 혹은 지도부를 유지한다는 결정이 서면 최고위원들이 의중을 파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명의 최고위원이 사퇴할 경우, 두 달 만에 김기현호는 침몰할 수도 있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공석인 최고위원을 채워 넣어야 한다. 대외적로는 윤석열정부 출범 1년을 갓 넘긴 상황서 집권여당이 또다시 비대위 체제로 진입할 경우,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관리형·안정형 대표로 선출된 김 대표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이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최고위원들이 용산의 의중을 좇는다면 김 대표 입장에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최고위원 4명 전원 사퇴 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직접 나서
수습해야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고위원 공백 문제를)김 대표가 빠르게 수습해야 한다. 현 상황을 제대로 수습해내지 못하면 김 대표 역시 상당히 힘든 상황에 빠질 수 있어 보인다”며 “총선까지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하루 빨리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공천 개입 의혹 수사 나서는 공수처

윤석열 대통령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에 대한 공천 개입 의혹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특별수사본부(이하 공수처)가 수사를 맡는다.

지난 9일 공수처는 이 정무수석,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공천 발언과 관련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고발 사건을 특수본에 배당했다.

최근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된 태 의원의 녹취 발언과 관련해 한 시민단체가 이 수석을 직권 남용, 윤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며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지난 2월 신설된 특수본은 비직제 기구로 김진욱 공수처장의 직속으로 운영된다.

특수본은 다른 수사 부서와 달리 통상의 결재선도 거치치 않고, 김 처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받는 구조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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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