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손절’ 송영길 히든카드

간, 쓸개 다 빼줬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선거를 앞두면 이 생물의 움직임이 더욱 극적으로 변한다. 최근 여야는 다수당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 앞서 내부 단속에 나섰다. 특히 전‧현직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앓고 있는 야당의 상황이 정치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2대 총선을 11개월 앞두고 연달아 악재를 만났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송영길 전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됐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송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돈봉투를 뿌렸다는 내용이다. 

전·현직
대표 리스크

검찰은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 전 대표(당시 당 대표 후보) 캠프가 조직적으로 정치자금 9400만원을 살포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 과정서 송 전 대표가 범행을 인지했거나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과 지난 1일에는 송 전 대표 자택, ‘평화와 먹고 사는 문제 연구소(먹사연)’, 선거 캠프 관계자 등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송 전 대표는 현재 돈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상태다. 지난달 24일 프랑스 파리서 귀국한 그는 당시 곧바로 검찰에 조사받겠다며 자진출석했다. 하지만 검찰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서면 진술서를 제출하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조사자가 일방적으로 조사 일정을 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지난 2일 송 전 대표는 다시 한번 ‘자진출석’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은 기자회견도 진행해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토로했다. ‘피의자 신분’인 그는 A4용지 6장 분량의 입장문을 미리 준비해 ‘전근대적 수사’ ‘인생털이 수사’ ‘이중 별건 수사’ ‘총선용 정치수사’ 등의 표현으로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신혼부부, 워킹맘, 20~30대 비서 등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며 “임의동행이란 명분으로 데려가 협박하고 윽박지르는 무도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격 살인을 하는 잔인한 수사 형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저 송영길을 구속시켜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윤석열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냈다. 송 전 대표는 “윤석열정권의 대미‧대일 굴욕외교와 경제 무능으로 민심이 계속 나빠지자 정치적 기획수사에 올인하고 있다”며 “민심이반을 기획수사로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돈봉투 살포 공모, 개인적 자금 조달 의혹 등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자진출석했다 ‘문전박대’
구속영장 피하려는 꼼수?

수사의 단초가 된 ‘이정근 녹취록’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는 “다급해진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저의 집과 측근을 압수수색했다”며 “인디언 기우제처럼 뭔가 나올 때까지 하는 마구잡이식 수사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연결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자진출석 카드를 반려했다. 사실상 ‘문전박대’였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대상자가 적법하게 진행되는 수사 절차에 대해 근거 없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단서가 확인됐는데도 수사를 안 하면 오히려 직무유기다.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실체적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송 전 대표는 10여분 만에 청사를 떠나야 했다. 이 과정서 송 전 대표의 이중적인 행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검찰 수사를 자처하며 자진출석했던 그가 초기화된 휴대전화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검찰에 따르면 송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주거지 압수수색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휴대전화에는 연락처, 통화내역, 문자 등이 없는 초기화 상태였다고 전해졌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대응은 자진출석 과정서 밝힌 ‘수사 협조’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기자회견을 통한 혐의 부인이 다수의 관련자에게 보낸 모종의 메시지가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금품 살포라는 혐의의 특성상 많은 관계자가 피의자 혹은 참고인 조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송 전 대표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지금처럼 무단출석과 대인배 놀이는 오히려 수사를 방해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권 전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송 전 대표는 자숙하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자진 출두 퍼포먼스를 벌이며 언론을 향해 대인배 흉내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빛 바랜
퍼포먼스

이어 “올해 초 이재명 대표도 검찰에 출두할 때 자신을 김대중‧조봉암에 빗대며 정치범 연기를 하더니 송 전 대표 역시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공당의 대표까지 지낸 분이 ‘나 한 명으로 퉁치자’는 식으로 사법거래를 시도해서야 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송 전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한 것에 대해서도 “탈당과 복당이 단톡방 들락거리기처럼 흔해 빠진 민주당서 탈당이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어떤 범죄 피의자도 자기 마음대로 수사 일정을 못 정하는데 이는 특권의식의 발로”라며 “겉으로는 검찰수사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검찰수사를 방해하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민주당의 태도다. 민주당 내부서조차 송 전 대표의 이번 자진출석을 두고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돈봉투 살포 의혹이라는 치명적인 악재가 발생하자 민주당 차원서 송 전 대표를 ‘손절’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문재인정부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기면서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이 당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윤석열정부 출범과 맞물려 치러진 지난 지방선거 완패로 지방권력의 추가 넘어간 부분도 총선에 대한 부담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서 전·현직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일부 의원에겐 ‘털고’ 가야 하는 흠집이 된 모양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송 전 대표의 검찰 자진출석에 관해 언급했다. 조 의원은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구속영장 청구에 대비해 ‘나는 도주의 의사가 전혀 없고 도주할 수도 없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드림으로써 구속영장 기각의 명분을 쌓겠다, 그런 여러 가지 포석을 둔 게 아닌가”라고 해석했다. 

대선 경선까지
편파적 관리?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조 의원은 이 대표가 지난달 24일,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기자의 질문을 받고 “김현아(전 국민의힘)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고 되물은 것에 대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모래에 머리 박고 있는 타조 같은 그런 모습 같은 느낌이 들어 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 역시 송 전 대표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대표는 송 전 대표에게 이른바 ‘정치적 수혜’를 입은 적 있다.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이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인천 계양을 선거구는 당초 송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회의원 배지를 내놨고 이를 이 대표가 이어받은 것이다.

‘송영길 지도부’ 체제로 치러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서도 송 전 대표가 이 대표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파적인 관리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비명계(비 이재명)서 제기된 주장으로 당시 당 지도부는 경선 도중 후보직에서 사퇴한 정세균·김두관 후보가 받은 표를 ‘무효표’ 처리했다.

그 결과 이 대표는 득표율 50.29%, 턱걸이 과반으로 간신히 결선투표를 피했다. 

이 전 총리 측이 무효표 처리를 두고 강하게 항의했지만 송 전 대표는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이재명 후보를 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로 선포했고 추천장을 공식적으로 수여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송 전 대표가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되고 귀국과 동시에 논란이 폭발하자 비명계를 중심으로 당시 상황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대표는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고개를 숙인 상태다. 지난달 17일 ‘이정근 녹취록’ 등으로 의혹에 불이 붙은 지 6일 만에 이 대표는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사과했했다. 그러면서 “아직 사안의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당으로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당 내부서도 반응 안 좋아
꼬리 자르기에 태도 바꿀까

이어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수사기관의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며 “민주당은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할 것이고 이번 사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확실하게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검찰에 비판 일변도로 대응했던 이 대표가 송 전 대표를 둘러싼 의혹은 수사기관의 힘을 빌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여기에 당시 프랑스에 있던 송 전 대표의 귀국도 요청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송 전 대표는 귀국했고 민주당서 탈당했다. 자의든 타의든 선긋기에 나선 것이다.

현재 송 전 대표는 ‘사면초가’ 상태다.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 신분도 아닌 데다 당적마저 없어졌다. 민주당 방패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치권이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아군이라 여겼던 민주당 내부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검찰이 송 전 대표를 돈봉투 의혹의 최대 ‘수혜자’로 보고 있어 수사를 피할 수도 없다.

검찰이 쥐고 있는 카드도 송 전 대표에 불리하다. 1만여건에 이르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녹음 파일이 확보된 상태고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송 전 대표의 휴대폰도 검찰로 넘어가 있다. 민주당서 의혹에 연루된 인사 일부를 정리하는 선에서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녹취록에 이름이 언급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은 자진 탈당 형태로 당을 떠났다. 윤 의원과 이 의원은 지난 3일 탈당 의사를 밝혔다. 두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비공개 최고위서 이 대표 등 지도부를 만나 이 같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원은 “그동안 여러 가지 당에 많은 누를 끼치고 국민들에게 걱정을 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여러 가지 할 말은 많지만 조사 과정서 성실하게 이 문제를 밝혀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민 여러분과 지역구, 당에 이런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 “법적 투쟁으로 진실을 밝혀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내년 총선
송에 달려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송 전 대표의 태도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 기획본부장은 이 대표의 ‘외면’에 태도를 바꿨다. 이전까지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최근에는 활발하게 입을 열고 있다. 현재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뚜렷하게 드러난 현직 의원은 2명이지만 이 사안이 언제 ‘게이트’로 번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송 전 대표의 입에 달렸을 수도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돈봉투 살포’ 국민의힘도?
민주당 때리다 역풍 맞을라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부 정비에 나선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서도 좀처럼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복원, 한일 셔틀외교 복구 등 다양한 이슈가 산적해 있는데도 지지율은 민주당에 밀리고 있다. 

당무감사위로 진상조사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 2일, 신의진 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첫 회의를 열었다.

고양시정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아 전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 전 의원이 기초의원 등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당무감사위에 진상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