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인’ 검찰 공화국 대해부

낄 데 안 낄 데 다 낀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윤석열정부의 요직 인선이 검찰 출신 인사들에 편중돼있다는 비판이 나온 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능력과 전문성’이라는 명분 아래 이를 정당화해왔다. 하지만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이 더욱 많아진 지금, 이들을 겨눈 자격·자질 논란이 모두 매섭다. 정치권에선 정부가 무리한 인선으로 비판을 자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논평을 통해 윤석열정부 취임 이후 핵심 지위에 임명된 검찰 출신 인사가 총 29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만사검통, 검찰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검찰 공화국으로 만들 생각이냐”며 윤정부를 직격했다.

윤 사단
대거 등판

박 대변인은 논평에서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검찰 출신을 대략 헤아려봤다”며 29명의 명단을 일일이 거명했다. 해당 명단에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한동훈 법무부 장관·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장차관급 인사를 필두로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사무총장·박경오 서울대병원 감사 등이 포함됐다.

박 대변인은 “이들 대부분이 서울중앙지검·특수부 등 윤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검찰 출신 인사들”라며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도 검찰 출신, 심지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을 검찰 출신 한석훈 변호사로 임명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 인재가 많은데 전문가를 쓰지 않고 죄다 검찰 출신만 임명하고 있다. 검찰 공화국을 완성 시키는 게 정권의 제1 목표인지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된다”고 꼬집었다.


윤정부가 검찰 출신 인사를 대거 전방 배치한 배경에는 ‘분배’보다는 ‘실익과 효율’에 주안점을 둔 윤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에서 상황에 따라 정부 주요 조직에 검찰 출신을 추가로 배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임명한 직후였다.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비판이 최고점에 달한 시기였다.

하지만 야권의 의견은 달랐다. 이들은 정부 인선이 실익과 효율 면에서도 실패했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국가보훈처, 민주평통, 교육부 등 명시적으로 검사 업무과 큰 연관성을 보이지 않는 부처에도 검사 출신 인사가 배치된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례로 윤정부는 국가보훈처장 자리에 박민식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앉혔다. 박 전 의원은 검사 시절 윤 대통령과 같은, 이른바 ‘특수통’이었다. 부산지검 특수부 주임검사와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 수석검사를 지냈다.

정부 요직 곳곳에 검 출신 인사들 포진
민주 공개한 명단 보니 “지금까지 29명”

하지만 박 처장 이력에서 국가보훈처 업무와 관련된 내용은 찾기 어렵다. 박 처장은 18~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법제사법위원회·지식경제위원회 등에서 활동했을 뿐, 국가보훈처 업무와 가장 밀접한 국방위원회 활동 이력이 없다.

박 처장의 아버지가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연결고리다.


인선 과정에서 뚜렷한 대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당초 국가보훈처장 하마평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이는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이었다. 윤 의원은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 의정활동 이전에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이사·독립기념관장 등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각종 독립운동 기념사업과 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아울러 윤 의원이 제20대 대선 당시에도 윤대통령 캠프의 국가정체성회복특별위원장 직을 수행한 점 역시 결정적인 근거로 꼽혔다.

하지만 결국 정부의 선택은 윤 의원이 아닌 박 처장이었다. 윤 의원이 보훈처장 자리에 대해 거부 의사를 표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박 처장이 분당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를 추진하다 내정 나흘 전 돌연 자진 사퇴한 배경에도 이목이 쏠렸다.

일각에서는 박 처장의 직무 부적합성을 뒷받침할만한 과거 행적을 들고 나왔다. 박 처장은 2021년 10월 자신의 SNS에 “5·18 왜곡 처벌법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는 게시글에서 “5·18 왜곡 처벌법은 보편성의 원칙, 비례의 원칙 등 법률 제정의 기본원칙에 저촉될 뿐 아니라,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우리 헌법상 가장 핵심적인 기본권을 침해한다”면서 “일부 편향적 시각을 빌미로 위헌적 법률을 제정한다면,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는 되레 퇴색될 것이며 통합을 가로막는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쏠리는 인선 
대안이 없다?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유공자 지원 및 5·18 행사 기념’은 보훈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얼마 전 관련법에 반대 의사를 표한 이가 보훈처장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석 사무처장 역시 임명 직후부터 적절성 시비에 시달렸다. 민주평통은 헌법 제92조에 근거해 창설된 대통령 자문기관이다. 해당 조항은 ‘평화통일정책의 수립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이 조직에서 사무처장의 서열은 의장인 대통령과 수석부의장 다음 가는 수준으로,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사무처장은 내부 사무와 공무원 지휘·감독 업무를 총괄하는 권한을 가진다.

문제는 석 처장 이력에서 엿볼 수 있는 민주평통 인선 근거가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는 점이다. 석 처장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으로 윤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40년지기’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검사로 임용된 점도 공통점이다. 석 처장은 사법연수원 15기로 임관해 2012년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검복을 벗었다.

정부는 석 처장이 검찰 시절 법무부 법무과장·출입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일법령 정비 ▲재외동포지원 ▲북한이탈주민 국내 정착 업무 등을 담당한 점을 유관 경력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석 처장은 변호사 개업 이후 약 10년간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공동대표로 활동한 바 있다. 

하지만 야권은 석 처장의 관련 이력보다도 윤 대통령과의 친분에 더 주목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해 8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서 “윤석열정부의 초법적 임명직 내쫓기의 끝이, 결국 ‘측근과 지인 자리 챙기기’가 아닌지 하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며 “이석현 민주평통 부의장이 사퇴 압박에 직을 내려놓자마자 김무성 전 의원이, 사무처장에는 대통령의 40년 지기 석동현 변호사가 내정됐다”고 발언했다.

카르텔 
리스크

실제로 석 처장은 사무처장 취임 이후에도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연일 이어갔다. 이 중 일부가 입길에 오르내릴 때마다 대통령과의 각별한 관계가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검찰 출신 인사의 논란이 정권 자체의 리스크로 연결되는 모양새다.

우선 석 처장은 지난해 ‘윤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윤사모) 임원들이 본인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민주평통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실언한 사실이 알려져 야권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지난해 12월5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서 석 처장에게 관련 사실에 대해 질의했다.

김 의원은 “처장은 이 자리에서 윤사모에게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윤 대통령 호위무사 역할을 주문하고 민주평통 자문위원에 윤사모 회원을 대거 등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석 처장은 “그런 사실이 있다”면서도 “두루 추천해달라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김 의원은 “민주평통은 진보·보수의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을 자문위원으로 구성해 국민적 합의를 추구하기 위한 기관”이라며 “민주평통을 ‘친윤’으로 구성하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처장의 행태는 국민적 합의를 해야 할 자문기구로서 성격을 무시한 편가르기와 갈라치기”라며 “정권의 홍위병, 홍보단을 만들겠다는 취지냐”고 맹폭했다.

석 처장은 “지적한 부분을 유념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7일에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옹호하는 글을 SNS에 남겼다가 역풍을 맞았다. 

전문성·자질 논란 도마 위
과거 행적 논란도 ‘판박이’

석 처장은 “얼마나 의젓하고 당당한 해법인가. 윤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낸다”며 “이제는 마치 우리가 아직도 일제 식민지배하에 있어서 독립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좌파들의 비참한 인식에서 좀 탈피하자. 일본에 반성이나 사죄 요구도 이제 좀 그만하자! (일본에 의해)식민 지배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라고 적었다.

정부 해법에 반발하는 피해자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함부로 국민 개개인의 청구 권리를 박탈한다는 뜻이 아니라 더 큰 이익을 위해 국민 개개인의 청구권 행사를 금하는 대신에 국가가 보상해준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라며 “국가가 개인 피해 감정을 설득하지 못하고 국제분쟁으로 끌고 가는 것은 국제관계에 무지한 하지하책”이라고 주장했다.

졸지에 국민적 공분을 산 석 처장은 지난 8일 여론 진화를 위해 추가 입장문을 냈다. 그는 ‘논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는 제목 아래 전날 작성한 글이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가 아닌,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을 향한 글이었다고 설명했다. 주로 논란이 된 표현에 관한 개별적인 해명도 담겼다.

석 처장의 해명에도 야권은 공세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위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정부에 석 처장 파면을 재차 요구했다.

이 가운데 석 처장의 과거 행적 역시 도마에 올랐다. 그는 2019년 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존중을 요구하는 한·일 법률가 공동성명’에 한국 쪽 인사로 이름을 올렸다. 상대편에는 일본 쪽 우익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해당 성명에는 ▲대법원 판결은 한일관계에 큰 균열을 일으키고 전후 최악이라고 평가될 만큼 한일관계의 악화를 가져온 중대한 요인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한국인 근로자들이 입었다고 주장하는 손해 등에 관한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국제문제로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사법부가 특정 역사해석을 하는 것은 법 해석의 측면에서도 학문 연구의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실리 인사?
여론은 글쎄

이는 2018년 대법원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에게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의무를 지운 판결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야당은 검찰 출신 인사들이 야기한 논란을 묶어 대정부 총공세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민주당은 석 처장 논란뿐만 아니라 정 변호사에 관해서도 공격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서 하루 만에 낙마했다. 한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꼽힌다. 검찰 출신 인사임에도 경찰청 산하 조직의 장으로 임명되면서 적절성 시비가 일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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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