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뒤흔든 '희대의 탈옥' 이야기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9.24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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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한 현실판 프리즌 브레이크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있던 전과 25범의 피의자가 탈옥했다. 탈옥얘기를 다룬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의 치밀한 계획도 <프리즌 브레이크>에서처럼 온몸에 교도소 설계도를 문신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경찰관이 조는 틈을 타 한 뼘 높이의 배식 구멍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역대 간 큰 탈옥수들을 살펴봤다.

미꾸라지처럼 구멍을 빠져나간 황당 탈옥사건이 발생했다. 전과 25범인 최갑복(50)은 지난 17일 온 몸에 피부연고를 발라 최대한 매끄럽게 만든 뒤 가로 45cm, 세로 16cm의 직사각형 배식구를 통해 도망쳤다. 유치장을 빠져나가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성폭행과 강도 등 각종 전과를 갖고 있는 최갑복은 탈주 6일만에 밀양서 검거됐다. 

탈옥 후 브라질서
부인과 살 계획

최갑복의 ‘배식구 탈출’이 최근화제라면 80년대는 조세형(당시39세)의 ‘대낮 대탈주’가 있었다. 전과 11범이던 그는 83년 4월 14일 TV 드라마 속의 죄수처럼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이날 서울 서소문에 있는 서울형사지방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갔다가 구치소로 넘겨지기 직전 대기 중인 구치감에서 일을 벌였다. 순식간에 수갑과 포승을 푼 뒤 복도 벽의 환풍기를 뜯어내고 그 구멍으로 도주했다. 그 뒤 건물 옥상과 옥상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조세형은 상습절도범이었다. 1983년 검거 이전에도 절도죄만으로 6번이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부모도 누군지 모른 채 길거리에서 자라 소년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렸던 그였다.

사회보호법에 따라 보호감호까지 청구돼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론의 동정과 은근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조세형은 고관대작의 집만 골라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법원사>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는 주로 고위공직자, 기업체 사장 등 부유한 집만을 골라 귀금속과 금품을 훔쳐왔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도’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마치 의적처럼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우리 사회의 빈부갈등에 따른 위태로운 위화감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조세형의 절도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부유층 대저택만 노렸고, 사람을 해치는 강도짓은 하지 않았다. 피 한 방울 흘리게 한 적 없다는 것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대도’ 조세형 대낮 대탈주, 구치감 환풍기 뚫고
전주교도소 탈옥3명, 쇠창살 자르고 담벼락 넘어

탈주 후에도 조씨의 절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5박6일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서울 도심을 활보하며 5차례에 걸쳐 주택에 침입해 음식과 현금 등을 훔쳤다.

그러나 이도 잠시. 끈질긴 추적을 벌인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붙잡혔다. 다행히 살았다. 이후 진행된 심문에서 그는 “자신이 무기징역이 구형된 데다 보호감호 10년까지 청구돼 15~20년간을 복역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이가 60이 가까워지므로 부인 나영씨와의 결혼생활이 지켜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탈주 결심 동기를 밝혔다. 그는 탈출 후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 뒤 홍콩에 있는 부인을 불러들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조세형은 특수절도에 도주 혐의까지 추가돼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재심청구 등을 통해 16년만인 1998년 출소했다.

출감하자마자 그는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겠다”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자신을 검거했던 ‘수사반장’ 최중락씨의 도움으로 에스원 범죄예방 자문위원으로 위촉, ‘범죄예방 전도사’로 새 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음식 구걸 후
최후의 순간

90년대 발생한 또 다른 탈주사건이다. 노태우 정권이 서슬퍼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지 두 달 밖에 되지 않던 때였다. 조세형처럼 구치감의 환풍기 구멍을 뜯지 않았다. 이들은 아예 감옥 쇠창살을 자르고 교도소 담벼락을 넘었다.

1990년 2월 27일 새벽 전주교도소를 탈출한 박봉선(당시30세), 신광재(당시21세), 김모군(당시17세) 등 3명은 감방 창문에 설치된 철책 2개를 쇠톱으로 자르고 사물함으로 쓰이는 선반으로 2.7m짜리 사다리를 만들어 4.5m 높이의 교도소 담을 넘었다. 그 뒤 경찰의 검문을 받다가 실탄 6발이 장전된 권총까지 빼앗았다.

박봉선과 신광재는 살인범이었다. 박봉선은 무기징역을, 신광재는 징역15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비해 함께 탈주했던 김군은 폭력 초범이었다. 1년만 형을 살면 나오게 돼 있었다.

이들의 도주행각은 이틀 만에 대전에서 경찰 감시망에 걸린다. 이후 경찰포위망이 좁혀오자 이들은 충북 청원군 문의면 대청호 안으로 숨어든다. 경찰은 뒤 쫓아가며 이들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박봉선은 권총을 겨누며 “먹을 것을 보내주면 자수하겠다”고 말했고, 경찰이 “한 명을 보내주면 갈전으로 함께 나가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하자 김군을 대신 보냈다. 경찰은 김군을 곧바로 고무보트에 태워 연행했다.

경찰헬기에서는 “무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리지 않으면 사살하겠다”는 방송이 잇달아 나왔다. 경찰이 접근해오자 박봉선이 머리에 권총1발을 발사해 자살했으며 신광재 역시 권총을 주워 왼쪽가슴에 쏘았다. 박봉선은 현장에서 숨지고 신광재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전주교도소 탈옥극’의 전모는 영구 미스터리로 남았다. 경찰에 잡힌 김군은 단순공범이라 아는 게 없었다. 직경 2cm나 되는 쇠창살을 어떻게 잘랐는가 하는 의문도 풀리지 않았다.

수시로 감방 복도를 오가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이 작업을 완성하려면 20여일 이상 걸린다는데 이를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탈옥 욕망’으로
초인적 다이어트

1997년 1월 20일엔 희대의 탈옥수가 탄생한다. 그 이름은 신창원(당시30세). 그는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 통풍구 철망을 뜯고 사동 밖으로 나온 뒤 교도소 내 공사장을 통해 밖으로 달아났다.

신창원은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중범죄자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잃고, 82년 절도죄로 김제경찰서에 붙잡혀 소년원에 처음 들어갔다.


이후 절도 등으로 3번 더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그는 89년 3월 공범 3명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모씨 집에 침입, 정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해 6개월여 동안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89년 9월 검거된 그는 강도치사죄로 무기형이 확정됐다. 당시 그는 이 형에 몹시도 분노했다고 한다. 자신의 범죄에 비해 너무나 무거운 형을 받았다는 것.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 역대 최장 탈옥기간 달성    
영원한 해방을 꿈꾸던 탈옥수들의 비참한 말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신창원은 허구헌날 싸움질에 사고를 연발하다가 이감을 거듭하던 중 부산교도소에 온 이후 거짓말처럼 사람이 변했다. 모범수가 됐고, 운동도 열심히 하여 몸을 가꾸는 건실한 수감자로 생활했다.

원래 80kg이 넘던 그가 60kg의 날렵한 체구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의 초인적인 다이어트 동기는 따로 있었다. 교도소 내 교회 공사를 위해 교도소 외벽 일부가 철거되고 철제 울타리로 대체된 뒤였고, 화장실 환풍구의 쇠창살이 허술하게 보였던 것이 이유였다. 그는 몰래 손에 넣은 쇠톱으로 쇠창살을 조금씩 잘랐고 몰라보게 날씬해진 몸으로 그 사이를 통과했다.

탈옥 후 신창원은 도주하는 동안 모두 5차례에 걸쳐 경찰과 맞닥뜨리고도 유유히 검거망을 벗어나며 2년6개월여 동안 도피행각을 벌여왔다. 1999년 7월 검거되기 전까지 그는 절도 104건, 강도 5건, 강도강간 1건 등 총 142건에 달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검거 후 22년 6월의 형이 추가됐다.

이처럼 범죄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일들이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교도소에서도 간간히 발생했다. 절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는 등의 죗값을 치르는 길 대신 감옥을 뛰쳐나와 야수처럼 날뛴 탈옥수들.


시작은 요란
그 끝은 ‘처참’

출소이후 ‘절도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것 같았던 대도 조세형은 제버릇 남 못주는 절도행각으로 ‘좀도둑’신세로 전락했고, 독 안에 갇혀 먹을 것 좀 달라고 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박봉선과 신광재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쩌다가 사람을 죽였는지, 교도소에서 어떤 처지였는지, 어떻게 탈옥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역대 탈옥수 중에서 최장 탈옥기간 기록을 달성한 신창원은 체포된 이후 특급의 감시를 받는 죄수로 10년이 넘도록 독방 생활을 했다. 답답함을 못 이기던 그는 지난해 자살 기도까지 했다.

인과응보일까. 사회적 책임일까. 어쨌든 영원한 해방을 꿈꿨던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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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