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뒤흔든 '희대의 탈옥' 이야기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9.24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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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한 현실판 프리즌 브레이크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있던 전과 25범의 피의자가 탈옥했다. 탈옥얘기를 다룬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의 치밀한 계획도 <프리즌 브레이크>에서처럼 온몸에 교도소 설계도를 문신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경찰관이 조는 틈을 타 한 뼘 높이의 배식 구멍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역대 간 큰 탈옥수들을 살펴봤다.

미꾸라지처럼 구멍을 빠져나간 황당 탈옥사건이 발생했다. 전과 25범인 최갑복(50)은 지난 17일 온 몸에 피부연고를 발라 최대한 매끄럽게 만든 뒤 가로 45cm, 세로 16cm의 직사각형 배식구를 통해 도망쳤다. 유치장을 빠져나가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성폭행과 강도 등 각종 전과를 갖고 있는 최갑복은 탈주 6일만에 밀양서 검거됐다. 

탈옥 후 브라질서
부인과 살 계획

최갑복의 ‘배식구 탈출’이 최근화제라면 80년대는 조세형(당시39세)의 ‘대낮 대탈주’가 있었다. 전과 11범이던 그는 83년 4월 14일 TV 드라마 속의 죄수처럼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이날 서울 서소문에 있는 서울형사지방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갔다가 구치소로 넘겨지기 직전 대기 중인 구치감에서 일을 벌였다. 순식간에 수갑과 포승을 푼 뒤 복도 벽의 환풍기를 뜯어내고 그 구멍으로 도주했다. 그 뒤 건물 옥상과 옥상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조세형은 상습절도범이었다. 1983년 검거 이전에도 절도죄만으로 6번이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부모도 누군지 모른 채 길거리에서 자라 소년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렸던 그였다.

사회보호법에 따라 보호감호까지 청구돼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론의 동정과 은근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조세형은 고관대작의 집만 골라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법원사>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는 주로 고위공직자, 기업체 사장 등 부유한 집만을 골라 귀금속과 금품을 훔쳐왔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도’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마치 의적처럼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우리 사회의 빈부갈등에 따른 위태로운 위화감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조세형의 절도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부유층 대저택만 노렸고, 사람을 해치는 강도짓은 하지 않았다. 피 한 방울 흘리게 한 적 없다는 것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대도’ 조세형 대낮 대탈주, 구치감 환풍기 뚫고
전주교도소 탈옥3명, 쇠창살 자르고 담벼락 넘어

탈주 후에도 조씨의 절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5박6일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서울 도심을 활보하며 5차례에 걸쳐 주택에 침입해 음식과 현금 등을 훔쳤다.

그러나 이도 잠시. 끈질긴 추적을 벌인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붙잡혔다. 다행히 살았다. 이후 진행된 심문에서 그는 “자신이 무기징역이 구형된 데다 보호감호 10년까지 청구돼 15~20년간을 복역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이가 60이 가까워지므로 부인 나영씨와의 결혼생활이 지켜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탈주 결심 동기를 밝혔다. 그는 탈출 후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 뒤 홍콩에 있는 부인을 불러들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조세형은 특수절도에 도주 혐의까지 추가돼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재심청구 등을 통해 16년만인 1998년 출소했다.

출감하자마자 그는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겠다”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자신을 검거했던 ‘수사반장’ 최중락씨의 도움으로 에스원 범죄예방 자문위원으로 위촉, ‘범죄예방 전도사’로 새 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음식 구걸 후
최후의 순간

90년대 발생한 또 다른 탈주사건이다. 노태우 정권이 서슬퍼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지 두 달 밖에 되지 않던 때였다. 조세형처럼 구치감의 환풍기 구멍을 뜯지 않았다. 이들은 아예 감옥 쇠창살을 자르고 교도소 담벼락을 넘었다.

1990년 2월 27일 새벽 전주교도소를 탈출한 박봉선(당시30세), 신광재(당시21세), 김모군(당시17세) 등 3명은 감방 창문에 설치된 철책 2개를 쇠톱으로 자르고 사물함으로 쓰이는 선반으로 2.7m짜리 사다리를 만들어 4.5m 높이의 교도소 담을 넘었다. 그 뒤 경찰의 검문을 받다가 실탄 6발이 장전된 권총까지 빼앗았다.

박봉선과 신광재는 살인범이었다. 박봉선은 무기징역을, 신광재는 징역15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비해 함께 탈주했던 김군은 폭력 초범이었다. 1년만 형을 살면 나오게 돼 있었다.

이들의 도주행각은 이틀 만에 대전에서 경찰 감시망에 걸린다. 이후 경찰포위망이 좁혀오자 이들은 충북 청원군 문의면 대청호 안으로 숨어든다. 경찰은 뒤 쫓아가며 이들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박봉선은 권총을 겨누며 “먹을 것을 보내주면 자수하겠다”고 말했고, 경찰이 “한 명을 보내주면 갈전으로 함께 나가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하자 김군을 대신 보냈다. 경찰은 김군을 곧바로 고무보트에 태워 연행했다.

경찰헬기에서는 “무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리지 않으면 사살하겠다”는 방송이 잇달아 나왔다. 경찰이 접근해오자 박봉선이 머리에 권총1발을 발사해 자살했으며 신광재 역시 권총을 주워 왼쪽가슴에 쏘았다. 박봉선은 현장에서 숨지고 신광재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전주교도소 탈옥극’의 전모는 영구 미스터리로 남았다. 경찰에 잡힌 김군은 단순공범이라 아는 게 없었다. 직경 2cm나 되는 쇠창살을 어떻게 잘랐는가 하는 의문도 풀리지 않았다.

수시로 감방 복도를 오가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이 작업을 완성하려면 20여일 이상 걸린다는데 이를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탈옥 욕망’으로
초인적 다이어트

1997년 1월 20일엔 희대의 탈옥수가 탄생한다. 그 이름은 신창원(당시30세). 그는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 통풍구 철망을 뜯고 사동 밖으로 나온 뒤 교도소 내 공사장을 통해 밖으로 달아났다.

신창원은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중범죄자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잃고, 82년 절도죄로 김제경찰서에 붙잡혀 소년원에 처음 들어갔다.

이후 절도 등으로 3번 더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그는 89년 3월 공범 3명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모씨 집에 침입, 정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해 6개월여 동안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89년 9월 검거된 그는 강도치사죄로 무기형이 확정됐다. 당시 그는 이 형에 몹시도 분노했다고 한다. 자신의 범죄에 비해 너무나 무거운 형을 받았다는 것.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 역대 최장 탈옥기간 달성    
영원한 해방을 꿈꾸던 탈옥수들의 비참한 말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신창원은 허구헌날 싸움질에 사고를 연발하다가 이감을 거듭하던 중 부산교도소에 온 이후 거짓말처럼 사람이 변했다. 모범수가 됐고, 운동도 열심히 하여 몸을 가꾸는 건실한 수감자로 생활했다.

원래 80kg이 넘던 그가 60kg의 날렵한 체구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의 초인적인 다이어트 동기는 따로 있었다. 교도소 내 교회 공사를 위해 교도소 외벽 일부가 철거되고 철제 울타리로 대체된 뒤였고, 화장실 환풍구의 쇠창살이 허술하게 보였던 것이 이유였다. 그는 몰래 손에 넣은 쇠톱으로 쇠창살을 조금씩 잘랐고 몰라보게 날씬해진 몸으로 그 사이를 통과했다.

탈옥 후 신창원은 도주하는 동안 모두 5차례에 걸쳐 경찰과 맞닥뜨리고도 유유히 검거망을 벗어나며 2년6개월여 동안 도피행각을 벌여왔다. 1999년 7월 검거되기 전까지 그는 절도 104건, 강도 5건, 강도강간 1건 등 총 142건에 달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검거 후 22년 6월의 형이 추가됐다.

이처럼 범죄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일들이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교도소에서도 간간히 발생했다. 절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는 등의 죗값을 치르는 길 대신 감옥을 뛰쳐나와 야수처럼 날뛴 탈옥수들.

시작은 요란
그 끝은 ‘처참’

출소이후 ‘절도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것 같았던 대도 조세형은 제버릇 남 못주는 절도행각으로 ‘좀도둑’신세로 전락했고, 독 안에 갇혀 먹을 것 좀 달라고 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박봉선과 신광재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쩌다가 사람을 죽였는지, 교도소에서 어떤 처지였는지, 어떻게 탈옥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역대 탈옥수 중에서 최장 탈옥기간 기록을 달성한 신창원은 체포된 이후 특급의 감시를 받는 죄수로 10년이 넘도록 독방 생활을 했다. 답답함을 못 이기던 그는 지난해 자살 기도까지 했다.

인과응보일까. 사회적 책임일까. 어쨌든 영원한 해방을 꿈꿨던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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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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