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이태원 국조 두 갈래 길

지금까지 맹탕 보나마나 허탕?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1일 활동을 시작했다. 참사 발생 후 무려 54일 만이다. 당초 45일로 정해졌던 활동 기간 중 27일을 날렸다. ‘맹탕 국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요시사>는 유사한 국정조사 사례를 돌아봤다. 이번 국정조사는 ‘모범사례’로 꼽히는 삼풍백화점 조사보다 국회 ‘흑역사’로 꼽히는 세월호 조사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한 연장이 사실상 필수적인데,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이하 국조특위)는 지난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시민분향소 조문을 시작으로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날 국조특위는 참사 현장과 이태원 파출소·서울경찰청·서울시청 등을 찾아 조사했다. 분향소에서 위원들을 마주한 유족들은 “국정조사 진실규명” 구호를 연신 울부짖었다.

절반 지나
겨우 개시

국조특위는 지난 23일 용산구청·행정안전부를 찾아 2차 현장조사를 벌였다. 오는 27일에는 국무총리실 등 8개 기관을, 29일에는 서울시청 등 10개 기관을 대상으로 기관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국조특위는 이후로도 계속 속도를 붙이며 일정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조특위가 숨 가쁜 일정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활동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조특위는 다음 달 7일이면 활동 기간이 끝난다. 활동 기간이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건 정치권이 전체 활동 기간 중 60%를 정쟁의 불쏘시개로 활용하다 날려버린 탓이다.

앞서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은 지난 11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사퇴 의견을 전달하고 결정권을 내맡겼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 상정·의결하자 이에 반발하는 의미였다.


여야가 지난달 말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하면서 내건 ‘예산안 통과 후 국정조사 실시’ 조건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예산안 세부 협의가 공전을 거듭하면서, 국정조사 일정도 덩달아 표류했다. 

결국 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3당은 지난 19일 ‘개문발차’를 선언했다. 국민의힘이 뒤늦게나마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은 열어놓되, 각종 일정과 기관 증인 채택 건은 단독으로 처리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튿날 유가족 간담회를 마친 뒤 국정조사 합류를 선언했다. 주 원내대표는 간담회 후 특위 위원들을 불러 면담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국정조사 참여를 권유하며 국조특위 사퇴를 최종 반려했다. 국조특위 위원들 역시 특위 복귀 의사를 밝혔다.

국정조사에 늦게라도 활동 동력이 마련된 모습이지만, 여전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분위기다. 사회적 참사를 대상으로 한 국정조사가 명확한 성과를 거둔 전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례 중 활동 기간 절반 이상을 날리고 시작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국조특위 27일 만에 완전체 활동 개시
실질 활동 18일…전례 없이 짧은 기간

이번 국정조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려면, 역대 참사 국정조사 중 ‘가장 적은 기간’ 안에 ‘가장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정조사는 제헌의회부터 운용된 제도다. 다만 과거에는 실시 근거가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돼있었다. 그러다 13대 국회 들어 국정조사에 관한 구체적 법률을 따로 정하도록 국회법이 개정됐다. 이후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총 106건의 국정조사 요구서가 제출됐다.


이 중 사회적 참사에 관한 사례는 ▲제14대 국회 삼풍백화점(1995년7월12일~8월11일) ▲제19대 국회 세월호 (2014년6월2일~8월30일) ▲제20대 국회 가습기살균제 (2016년7월7일~10월4일) 등 3건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역대 네 번째 참사 국정조사다. 

전체 활동 기간만 놓고 보자면, 이번 국정조사는 이 중 세 번째다.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국조특위는 각각 90일, 삼풍백화점은 30일간 활동했다. 하지만 실질 활동 기간을 따져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먼저 삼풍백화점 국정조사는 1995년7월20일 본격적인 조사 일정을 시작해 22일 뒤 끝났다. 당시 국조특위는 이날 서울시와 서초구청의 기관보고를 받았다.

가습기살균제 국조특위는 2016년7월25일 환경부와 보건복지부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출범 18일 만에 활동을 본격화해 실질적으로 72일간 활동한 것이다.

세월호 국조특위는 구성 이후 약 20일을 허비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활동 종료까지 한 달 정도 남겨둔 시점에 예비조사와 추가 현장조사 등을 모두 매듭지었다.

반면 이번 국정조사의 실질적 활동 기간은 18일에 불과하다. 

성과 평가
천차만별

다만 활동 기간과 성과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앞선 세 사례 중 가장 짧게 활동한 삼풍백화점 국정조사가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히려 90일을 활동한 가습기살균제 국조특위는 마무리 과정에서 아쉬움을 남겼고, 같은 기간을 부여받았던 세월호 국정조사는 청문회 한 번 열어보지 못한 채 ‘맹탕’으로 끝났다.

삼풍백화점 국조특위는 한 달 사이 회의를 6번, 조사를 8번 진행했다. 이들은 사고가 ▲공사의 일관성 상실 ▲잦은 설계변경에 따른 부실화 ▲형식적 감리 등 공사 추진상의 문제점과 공무원 유착비리 등 행정관청의 감리·감독 소홀로 일어난 사고라고 규정하는 결과보고서 채택에도 성공했다.

이 보고서는 훗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산업안전보건법’ ‘건설산업기본법’ 등 재난방지 법안을 제·개정하는 기준점이 됐다. 삼풍백화점 국정조사가 모범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가습기살균제 국조특위는 현장조사와 관계자 면담·청문회 등을 거치며 관련 기업들이 살균제의 인체 안전성 점검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다. 이후 여야 합의를 통해 결과보고서가 채택됐고, 이 내용을 반영한 ‘화학물질등록평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삼풍백화점 사례처럼 객관적인 활동 성과를 확보했다는 의의를 남긴 셈이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가족 사이에서는 피해 구제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측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조특위의 성과가 ‘진상규명’에만 집중됐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국조특위는 활동 기간 연장을 논의했지만, 결국 여야가 방안 구체화 과정에서 이견을 보이며 불발됐다.

세월호 국조특위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문으로 활동을 개시한 이래로 계속 불협화음을 냈다. 기관보고 일정 합의가 수차례 무산되며 “활동 기간을 허비한다”고 비판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국정조사 활동 기간이 브라질월드컵, 7·30 재보궐선거, 후반기 국회 원구성 협상 등과 겹쳤다.

또 다른
흑역사?

이 과정에서 국정조사는 정치권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당이 국조특위 의원 중 일부를 선거전 일정에 동원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국조특위는 우여곡절을 겪는 와중에도 각종 조사 등 ‘기본작업’을 신속히 처리해냈다. 아울러 이들은 이를 통해 ‘정부의 초동대응이 부실했다’는 정황을 찾아내기도 했다. 세월호 국조특위가 활동 중반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여야는 활동 기간 한 달을 남기고 청문회를 제외한 일정 대부분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국정조사의 꽃’이라던 청문회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 여야가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비롯한 청문회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강 대 강 대치만 고집한 결과였다.


결국 세월호 국정조사는 결과보고서 채택 없이 종료됐다. 아울러 청와대 책임 규명이 불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유가족을 중심으로 ‘세월호특별법’ 제정 논의가 이어졌다.

이번 국정조사를 둘러싼 상황은 세월호 국정조사 때와 유사하다. 공통점으로 ▲정부 책임론이 강하게 일면서 여당은 수성, 야당은 공세로 일관했다는 점 ▲국정조사 시행 합의 이후에도 정쟁 때문에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졌던 점 ▲활동 개시 이후에도 파행을 불러올 수 있는 뇌관이 곳곳에 남아있다는 점 등이 꼽힌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 국정조사는 세월호 국정조사 때보다 기한이 훨씬 촉박하다는 것이다. 16곳에 달하는 기관보고를 이틀 만에 끝마쳐야 하고, 1월 초에는 곧바로 청문회 일정에 돌입한다. 세월호 국정조사 당시에는 기관보고만 11일간 진행됐다.

‘세월호 국조’처럼 정쟁 불쏘시개로 희생?
촉박한 일정에도 연장 불투명…어두운 앞날

반면 이번 국정조사에서는 남은 일정상 11일 사이 기관보고와 청문회를 모두 마무리해야 한다.

자칫해서 여야가 또다시 충돌해 일정이 파행된다면, 세월호 국정조사 때처럼 청문회를 마무리 짓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간 주된 갈등 요인이었던 예산안이 통과됨으로써 ‘한숨 돌렸다’는 게 중론이지만, 증인 채택을 두고 예견되는 갈등이 변수로 꼽힌다.

현재 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 여당은 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증인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한 국무총리는 참사의 최종 책임 주체 중 한 명인 동시에 관련 실언으로 입길에 오른 바 있다. 신 의원은 참사 당일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도왔던 걸로 알려졌으나, 뒤늦게 닥터카·관용차 탑승 의혹 등이 불거져 논란이 일었다. 당초 신 의원은 야당 측 국조특위 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논란 직후 물러났다.

여야 국조특위 위원들은 국정조사 기간 연장을 놓고 의견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 측 국조특위 위원들은 실질 활동 기간이 짧은 만큼 국정조사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은 부정적인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당 회의에서 “여당이 의도적으로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켜 국정조사 기간을 허비한 만큼 반드시 상응하는 기간 연장을 관철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반면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이날 유가족 간담회 직후 “지금까지 국민의힘은 기한 연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고, 야당 단독 의결 일정을 보더라도 1월7일 기한 내 마치는 것을 목표로 진행돼서 지금 단계에서 논의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동안 친윤(친 윤석열)계가 국정조사 시행을 강하게 반대했던 만큼, 향후 여당의 국정조사 연장 동의는 낙관하기 어렵다.

관건은
연장 여부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야당의 활동 기간 단독 연장 의결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정감사·조사법’ 제9조에 따르면, 본회의 의결을 통해 활동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야당이 단독 연장을 강행한다면 여당이 국정조사에서 재차 이탈할 확률이 높다. 어느 쪽이든 깔끔한 마무리는 어려워진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의 앞날이 어두워 보이는 이유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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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