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동국제강이 의미심장한 결정을 공표했다. 황태자의 승진, 조직개편, 오너의 귀환 등 굵직한 3건의 소식이 같은 날 터져나온 양상이다. 해당 사안들은 추구하는 바가 조금씩 다른 듯 비춰지지만, 사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징검다리 놓기 작업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동국제강은 지난 9일 승진 9명, 신규 선임 4명 등 총 13명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동국제강의 이번 임원 인사는 재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무이사 승진자 명단에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장남이자 그룹의 실질적 후계자인 장선익 상무가 이름을 올린 덕분이었다.
보폭
넓히나
1982년생인 장 전무는 연세대 경영학과와 히토츠바시대 경영햑 석사 과정을 졸업한 뒤 2007년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2015년 법무팀, 2016년 전략팀, 2018년 전략실 경영전략팀장을 거쳤고, 2020년부터 동국제강 인천공장 생산 담당을 지내며 현장 감각을 익혔다.
상무에 오른 지 약 2년 만에 또 한 번 명함을 바꿔 달게 된 장 전무는 이번 승진과 함께 구매실장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철강업은 원자재 매입이 매출원가 비중의 약 80%를 차지할 정도로 원자재 관리가 중요하다. 원자재 관리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만큼 구매실장으로서 장 전무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장 전무 승진을 계기로 동국제강이 본격적인 경영 승계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다. 머지않은 시기에 장 회장이 보유한 동국제강 지분을 넘겨받는 과정이 뒤따를 거란 계산이다.
장 전무를 축으로 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은 장 회장의 지분을 어느 시점에 넘겨받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동국제강의 최대주주는 지분 13.04%를 보유한 장 회장이고, 장 회장의 동생이자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장세욱 부회장은 9.43%를 갖고 있다. 반면 장 전무의 동국제강의 지분율은 0.83%에 불과하다.
동국제강의 조직개편 소식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승계 문제와 연결된 덕분이다. 장 전무의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인적분할을 계기로 본격화될 거란 계산이다.
동국제강은 지난 9일 이사회를 열어 인적분할 계획서 승인의 건, 임시주주총회 소집 승인의 건 등을 의결했다. 인적분할에 따라 주주의 분할 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그대로 승계된다. 내년 5월17일 인적분할 승인 주주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분할 기일은 6월1일이다.
승계 절차 교통정리 작업
의미심장한 변화의 수순
동국제강은 이번 인적분할로 존속법인 ‘동국홀딩스(가칭)’와 철강사업을 열연과 냉연으로 전문화한 신설법인 ‘동국제강(가칭)’ ‘동국씨엠(가칭)’으로 분리한다. 분할 비율은 동국홀딩스 16.7%, 동국제강 52.0%, 동국씨엠 31.3%다.
동국제강은 이번 인적분할이 철강사업 전문성 강화 등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인적분할은 기업을 분리할 때 새로 생긴 법인의 주식을 모회사 주주에게 같은 배율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계열사 간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원활한 승계 작업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인적분할을 내세웠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장 전무의 승진과 인적분할이 결정된 가운데 장 회장의 복귀도 초읽기에 접어든 양상이다. 동국제강은 내년 5월17일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분할계획서 승인의 건, 이사 선임의 건 등 안건을 상정한다고 지난 9일 공시했다.
이사 선임 안건에는 장 회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이 포함됐다. 임기는 내년 5월17일부터 2025년 5월16일까지 2년이다.
장 회장은 2016년 횡령·상습도박 혐의로 징역 3년6개월형을 선고받고 2018년 가석방됐다. 장 회장은 구속과 실형으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으나, 회장 직함으로 동국제강 미등기임원에 계속 이름을 올렸다.
장 회장은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완전히 경영 복귀가 가능해졌다. 내년 주총에서 이사 선임 건이 통과되면 장 회장은 8년 만에 경영에 복귀한다. 업계에선 장 회장이 동생인 장 부회장과 함께 형제 경영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남다른
접근법
장 부회장은 그동안 장 회장의 부재에도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며 회사를 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국제강은 장 부회장 체제에서 2020년 순이익 673억원을 기록하며 3년 만에 흑자 전환했고, 올해는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6480억원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