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만난 노동운동의 한계

‘단결 투쟁’은 이제 옛말?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단결’ ‘투쟁’으로 대표되는 한국 노동운동사가 큰 변곡점을 맞았다. 바로 사회 주류로 발돋움하는 MZ세대와의 조우다. 기성세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MZ세대의 성향이 강성 노조의 활동 전략마저 뒤흔들 것이란 전망이다. 노동계 안팎에선 최근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이 별 소득 없이 일단락된 원인 중 일부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노동계의 수난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그렸던 ‘총파업 시나리오’는 시작도 전에 막을 내린 반면 정부의 반격은 멈출 기미가 없다. 아울러 노동계 안팎에서는 “더 이상 단일대오는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MZ세대를 필두로 노동계 분화가 본격화됐다는 의미다. 

노동계 
지각변동

민주노총이 총파업 첫 단추로 삼았던 화물연대는 집단 운송거부를 결행했다가 빈손으로 물러났다. 이들은 지난 9일 전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파업을 전격 철회했다. 지난달 24일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지 16일 만이었다.

정부는 시종일관 법과 원칙을 내세웠다. 정부는 “불법 파업과는 타협할 수 없다”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민주노총은 파업 막바지 물밑협상을 타진했지만, 정부의 ‘선복귀·후대화’ 기조를 깰 수는 없었다.

결국 우려했던 장기전은 없었다.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국민 여론 악화 ▲내부 분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언급된 두 요인의 중심에는 모두 MZ세대가 있다. MZ세대는 국민 여론에서도, 노동계 안에서도 이번 파업을 등졌다. 


우선 여론은 전반적으로 화물연대 파업에 부정적이었다. 지난 9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물연대가 우선 복귀한 뒤 협상해야 한다’는 응답이 71%에 달했다. 반면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 파업이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화물연대가 국민들 지지를 얻을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에도 14일간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화물연대가 한 해 두 번 이상 파업을 벌인 건 올해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MZ세대 여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응답자 중 20대의 67%가, 30대의 72%가 우선 복귀 협상을 골랐다. 이는 노년층(60대 82%·70대 이상 84%)보다는 낮지만 기성세대(40대 59%·50대 69%)를 상회하는 수치다.

하지만 MZ세대가 노동운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파업 대응에 관한 다른 항목에서 20대와 30대의 ‘잘하고 있다’ 응답 비율은 각각 17%, 19%에 불과했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였다.

반면 ‘안전운임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52%와 57%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평균(48%)을 가뿐히 넘긴 비율이다.

민주노총과 ‘궤 안 맞는’ 세대?
투쟁 일선서 이탈…새 노조 조직


결국 MZ세대는 파업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파업 강행에는 부정적 의견을 내비친 셈이다. 학계는 일견 모순적인 결과를 놓고 “MZ세대는 파업 여부보다도 투쟁 방식에 불만을 가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사회학 전공의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통계자료를 보면 MZ세대는 파업 명분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복귀를 원하는 여론이 높은 이유는 총파업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MZ세대는 그 누구보다도 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은 세대다. 다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대 특성상 집단주의적 투쟁을 강조하는 민주노총 방식은 수용하기 꺼리는 것”이라며 “단순히 젊은 세대의 정치 성향 우경화를 파업 반대의 원인으로 꼽는 건 설득력 없는 갈라치기”라고 덧붙였다.

B 교수는 MZ세대식 사고가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봤다. 그는 <일요시사>에 “MZ세대에게 맹목적인 지지란 없다. 같은 대상에게도 사안별로 지지 여부가 달라진다. 이게 기성세대와의 차이점”이라며 “이 때문에 명분에는 공감하면서도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같은 입장의 기성세대였다면 결국 지지·합류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MZ세대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수평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필요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실용성과 합리성도 엿보인다. 이 같은 특징들은 기존 노조 문화와 여러 지점에서 충돌한다.

민주노총의 연대·총파업은 주된 투쟁 전략 중 하나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산업의 이슈에도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민주노총’이라는 단위 아래에서 서로를 ‘동지’로 여기는 인식도 강하다.

빈손 복귀
더 큰 위기?

하지만 MZ세대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산업 이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때문에 확실한 동기 부여 없이는 연대·총파업 참여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일단 파업에 참여했더라도, 그 동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중도 이탈하는 사례도 목격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젊은 조합원 다수가 조기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직후 일부 화물 기사는 국토부에 먼저 연락해 “명령서를 빨리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 중 상당수가 20~30대의 젊은 기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맥락에서 MZ세대는 기존 노조의 경직된 분위기를 기피한다. 조직 내 복잡한 조직관계와 강한 위계질서에 불만을 느끼는 젊은 조합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주된 활동층인 기성세대와의 세대 차이·갈등도 불만의 한 축이다. MZ세대 조합원은 의견 개진·간부 선발 등에서 기성세대에 밀려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가 나왔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2월 ‘청년 조합원의 경험과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노동연구원 역시 보고서에서 청년층 조합원의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로 ▲세대 차이 ▲노조의 빈약한 동기 부여 ▲투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등을 꼽았다.


노동연구원은 특히 투쟁 방식에 대한 세대별 의견 차이에 관해 “면접 내용에 따르면 젊은 조합원일수록 예전과 달리 언론을 이용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하는 온건한 전략을 선호한다”며 “(젊은 조합원 사이에서)‘사회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노조가 과거와 같은 투쟁을 하면 큰일 날 수 있다’거나 ‘과격한 투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고 짚었다.

또 “MZ세대 조합원들이 집회 일변도를 벗어나 유튜브 활용 등 새로운 투쟁 방식을 제시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많다”는 분석도 언급됐다.

쌓인 불만
떠나는 MZ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존 노조를 향한 불만은 MZ세대가 직접 새로운 노조를 조직하려는 시도로 귀결됐다. 이 중 일부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대안세력’으로 떠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올바른노조’가 대표적인 예다. 올바른노조는 지하철 1~8호선 및 9호선 일부 구간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제3노조다. 지난해 8월 결성됐으며, 조합원의 약 90%가 MZ세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통공사의 제1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의 공사 노조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교통공사 양대 노조가 6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하자 이를 ‘명분 없는 정치파업’으로 규정하며 불참했다. 그런데 교섭 기간 중 젊은 직원 상당수가 공사 노조에서 올바른노조로 옮겨왔다. 노사 교섭이 진행되던 한 달 사이 조합원 수가 1250여 명에서 1900여 명으로 52%가량 증가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파업에 불참하고도 조합원이 급증한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와 관련해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공사 노조가 주도하는 불합리한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낀다며 올바른노조로 넘어오는 직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올바른노조는 독자적인 활동 방향을 구축했다. 이들은 ▲상급단체 없는 직원만을 위한 노동조합 ▲합리적인 조합비 ▲다양한 소통 채널과 빠른 피드백 ▲수평적 문화 구축 등을 내세우고 있다. 

때로는 공사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가 무기계약직 노동자 1300명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갈등을 빚은 문제는 올바른노조의 설립 계기가 됐다.

송 위원장은 “당시 정규직 전환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이 공사 노조다. 정규직 증가로 기존 직원의 피해는 없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충분한 소통 없이 이뤄진 불공정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답답했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오래 이어가야 하는 젊은 직원 중심으로 새로운 노조를 결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강성 대신 온건 교섭 선호 성향 
정부 압박 커지면 복귀할 수도 

실제로 2019년 감사원은 ‘비정규직의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서 “서울교통공사가 관련 법령에 따른 능력 실증 절차 없이 2018년 3월 무기계약직 1285명 전원을 일반직으로 신규 채용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로 이 중 192명이 기존 재직자의 친인척으로 드러나 논란이 인 바 있다.

다만 ‘MZ노조’가 마주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단체교섭권 확보, 기존 노조와의 관계 설정 등 난제가 산적했다. 

2011년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사업장별로 복수 노조를 설립할 길이 열린 건 맞지만,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는 여전히 1곳으로 제한된다. ‘기존 노조 소속 근로자와 근로 조건 등이 크게 다른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에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긴 해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실정이다.

기존 노조의 견제도 견뎌야 한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동조합은 지난해 4월 기존 노조와 별개로 단체교섭권을 획득했다. 이 노조 역시 조합원 90% 이상이 MZ세대 직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조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취소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직 노조 측에서는 “노조에 의한 노동3권 침해”라며 “복수 노조 시대에 다른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회사와 교섭창구를 독점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당시 법원은 일반직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지난 6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철도노조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노동현장 속 MZ세대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만큼 ‘노동계 대격변’은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변수는 남아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따라 MZ세대의 노동운동 방향이 변화할 여지는 상존한다. 

독자 활동
과제 산적

현 정부는 강도 높은 노동개혁과 함께 반(反)노조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2차례의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후에야 이 파업이 끝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파업기간 중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해서 과정 중에 있었던 각종 불법·폭력행위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후 정부의 노조 압박강도가 임계점을 넘어가면, MZ세대의 강성 투쟁 합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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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