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 만에…’ 엎어진 대통령 약속들

얼마나 됐다고 ‘손바닥 뒤집 듯’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 태도와 나올 때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정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격언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선거 시작할 때의 정치인과 끝난 후의 정치인이 달라지는 걸 매번 경험하기 때문이다. 

196일간 총 61회 실시됐던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중단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22일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기자단에게 도어스테핑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다음날부터 곧장 윤 대통령은 ‘문답 없는’ 출근을 시작했다. 

불미스러운

이로써 ‘참모들 뒤에 숨지 않고 직접 소통하겠다’던 취지로 시작된 대통령 출근길 문답 시스템은 볼썽사나운 뒷말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대통령실이 밝힌 ‘불미스러운 사태’는 지난 18일 있었던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진 사이의 설전을 말한다.

대통령실은 ‘사적 발언’ 논란 당시 불거진 MBC와의 갈등을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로 전개시키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도어스테핑 시간에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진 간 설전이 오갔고, 이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대통령실은 이참에 도어스테핑을 전면 취소할 심산이다.

대부분의 여의도 전문가들은 “평소 말도 많고 탈도 많이 있었던 즉석 질의응답 시간을 대통령실이 원래 취소하고 싶어했다”고 분석한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일요시사>에 이번 도어스테핑 중단 사태에 대해 “나는 처음부터 반대했다. (정치적으로)이익이 없는 밑지는 장사였다. 속이 다 후련하다”고 말했다.

MBC 갈등 핑계로 도어스테핑 중단?
“어차피 하기 싫었는데 잘됐지 뭐”

그러나 이는 ‘공약 불이행’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서 용산으로 옮길 때,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도어스테핑’을 내세웠다.

지난 8월17일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도어스테핑을 계속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 대통령은 “대통령도 날선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용산에 온 것이다. 과거 청와대에는 기자실이 춘추관이라는 별도 건물에 있었지만, 나는 나와 참모가 함께 근무하는 이곳 용산 대통령실 1층에 기자실이 들어오도록 조치했다”고 답했다. 

취임한 지 이제 200일가량 지난 윤석열정부는 도어스테핑 중단을 기점으로 여러 가지 공약을 불이행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이 질타는 비단 도어스테핑 논란 때문만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흥행몰이로 남발했던 ‘한 줄 공약’들을 인수위 시절부터 수정하거나 폐기해 공약 불이행의 서막을 알린 바 있다.


‘병사 봉급 월 200만원 상향’ 공약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1월9일, 본인의 SNS에 군인 월급을 당선 즉시 200만원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당시 2030 남성들의 표심을 노리고 있었던 그는 군인의 월급을 파격적으로 올려준다고 선언했고, 이 공약에 수많은 20대 남성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이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군인 월급을 200만원으로 상향하려면 기존 국방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5조원가량이 추가로 필요했지만, 현실적인 재원 조달책이 뒤따르지 못했다.

남발했던 한 줄 공약 보니…
지금까지 5개 수정이나 파기

결국 이 공약은 2025년까지 병장 월급 월 200만원 상향으로 변경됐으며, 병사 봉급에 자산 형성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조건도 붙여졌다.

‘전기차 충전요금 5년간 동결’ 공약 또한 파기 수순을 밟고 있다. 윤 대통령이 모빌리티 분야의 공약 중 하나로 내건 전기차 요금 동결 공약은 취임 두 달이 지나자마자 바로 깨졌다. 전기차 충전 요금 할인 특례제도가 지난 7월에 끝났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전력은 2017년부터 전기차 구매 장려를 위해 전기차 충전의 기본 요금을 할인하는 제도를 실시해왔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이 할인제도를 지난 6월 말 종료했고, 추가 할인제도에 대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대통령실도 전기차 충전 요금 동결에 대한 뚜렷한 대책 제시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폐기 리스트

윤 대통령은 이외에도 ▲노후 주택 진단 면제 공약 ▲50조원 이상 재정 자금 확보와 온전한 손실보상 ▲코로나 19 긴급구조 특별본부 설치 등 대통령후보 시절 약속했던 공약들을 차례로 파기하며 ‘화장실 나올 때’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공약을 믿고 표를 찍어주었던 유권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대통령의 약속 파기를 지켜보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김건희 여사의 ‘시끄러운 내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공약 불이행에서만 비롯된 건 아니다.

김 여사의 시끄러운 행보 탓이기도 하다.


김 여사는 지난 이력서 위조 논란 당시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국민들에게 한 가지를 약속했다. 

그는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영부인이 되더라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뒤에서 남편을 도울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모양새다.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각종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야권의 뭇매를 맞고 있다. 

우선 스페인 순방 당시 본인의 지인을 동행하게 해 ‘지인 순방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세금이 투입되는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본인의 지인을 억지로 넣었다는 질타였다. 


또, 김 여사가 지난 11일(현지시각) 캄보디아에서 의료 봉사한 사진을 대통령실이 공개하며 또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은 해당 사진을 보고 “빈곤 포르노”라고 지적했고, 여권에서 이를 “막말”이라 대응해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을 키웠다.

비판의 진정성이 어떻든, 요즘 김 여사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그가 선언한 ‘조용한 내조’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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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