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나무서 떨어진 김범수 카카오 수장

왜 카카오만…독점의 민낯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카카오의 일대기는 두 번의 ‘상전벽해’로 요약된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카카오는 카카오톡 ‘대박’에 힘입어 국내 스타트업 성공신화를 새로 썼다. 하지만 어느새 카카오는 국민에게 ‘밉상 기업’으로 각인됐다. 게다가 잇단 ‘먹통 사태’로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다. 이 가운데 창립자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덩달아 부침을 겪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감장에 서게 됐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전 연령 스마트폰 보급률 100%에 근접한 나라에서, 카카오톡은 메신저 앱 중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4000만명이 넘는 사용자는 메신저뿐만 아니라 쇼핑·게임, 심지어 대중교통 탑승까지 모두 카카오 ‘플랫폼’을 활용한다.

성공가도
승승장구

그런데 지난 15일, 카카오톡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이곳에 보관된 카카오 서버 전원이 내려간 탓이었다. 이 여파로 나라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날 먹통이 된 카카오톡 채팅은 다음 날 새벽에나 일부 복구됐고 ‘톡서랍’과 업무용 메일 등은 완전히 복구되기까지 나흘이 넘게 걸렸다. 이외에도 선물하기·대리운전과 택시 앱 서비스 일시중단으로 해당 유료 기능을 활용하던 이들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스쿠터·킥보드 등이 반납되지 않아 당황했다는 일화와 카카오톡 로그인 기능을 활용하다 곤경에 빠진 코인 거래소의 상황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그간 카카오의 위치는 많이 변했다. 연간 수십억에 달하는 서버 유지 비용으로 만년 적자를 기록하던 스타트업이 독자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며 반등하기 시작한 때가 2012년이다.

이후 카카오는 종합 플랫폼 기업으로의 도약 성공, 코로나 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산업 특수 등을 발판 삼아 크게 성장했다. 초기 창업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카카오는 현재 재계 서열 12위의 대기업으로 변모했다. 시가총액은 40조원을 넘나든다.

하지만 카카오의 기업 이미지는 급격한 성장세와 반비례했다. 기업가치가 뛰어오르고 새로운 ‘쪼개기 상장’이 발표될 때마다, 카카오를 둘러싼 문어발식 경영·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들끓었다. ‘스타트업의 성공신화’ ‘혁신의 아이콘’ 등의 수식어도 어느덧 옛말이 됐다.

창업자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제각각이다. 한국 IT시장의 선두주자 격인 한게임과 카카오톡을 잇달아 성공시킨 혁신가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력가가 됐다.

하지만 김 전 의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수모를 겪을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정치권의 질타를 받았고, 올해는 먹통 사태 관련 보고를 앞뒀다. 이외에도 경영권 승계 준비·사익편취 등 개인 의혹은 해명한 후로도 뒷말이 무성하다.

최근 여러 논란과 의혹으로 빛이 바랬지만, 김 전 의장은 여전히 자수성가한 사업가 중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그는 1966년 전라남도 담양 농사꾼 집안 2남3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그의 부모님은 다섯남매의 교육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부친은 막노동과 목공 일을, 모친은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김 전 의장은 자연스럽게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할머니를 포함한 8식구가 단칸방에서 살 만큼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다.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정작 그의 부모님은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김 전 의장은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모두 스스로 결정했다. 그런 그에게 부모님은 “넌 잘하고 있다”며 항상 응원을 보냈다. 훗날 김 전 의장은 “그런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 전 의장이 중학생 때, 부친이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가정형편이 나아졌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를 맞으며 가세가 다시 기울었다. 다섯남매가 모두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었던 상황. 결국 장남인 김 전 의장 혼자만 대학에 가게 됐다. 김 전 의장이 독하게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카톡으로 대박…이번 먹통 사태로 미운 털
도마에 오른 위기 대처…올해도 국감 망신

김 전 의장의 재수 시절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을 베서 혈서를 썼고, 담배를 끊기 위해 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놨다. 결국 그는 피나는 재수 생활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합격했다.

김 전 의장은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4년 만에 학사 학위를 받았고, 2년 뒤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김 전 의장은 1992년 석사 졸업 직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삼성데이타시스템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컴퓨터 언어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다. 그는 입사 첫해 양식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에는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어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여러 버전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이윽고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김 전 의장은 삼성SDS에서 평생의 사업 동반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문태식 카카오VX 대표와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가 첫 창업에 발걸음을 뗀 건 1998년이었다. 당시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강하게 불었다. 김 전 의장은 남궁훈 카카오 전 공동대표(지난 19일 사퇴)와 함께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열었다. 전국 최대 규모 PC방으로 유명해졌다.

PC방은 개업 반년 만에 당시 가치로 매출 5000만원을 달성할 만큼 성업했다.

김 전 의장은 아내에게 PC방 운영을 맡기고 구석 자리에서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 그는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를 다른 PC방에 판매하면서 1억5000만원을 더 벌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같은 해 9월 삼성SDS를 나온 데 이어 11월 한게임을 창업했다. 보드·퍼즐게임을 제공하는 게임 포털사이트로 시작한 한게임은 서비스 5개월 만에 300만 회원을 동원하며 인기를 끌었다. 


김 전 의장은 2000년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하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삼성SDS 동기인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현 글로벌투자책임자, GIO)와의 동업은 7년간 이어졌다. 김 전 의장은 2004년 NHN 단독 대표에 이어 해외사업 대표를 지냈고, 그러다 2007년 8월 NHN을 떠났다.

그가 퇴사할 당시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명언을 인용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향했다. 1년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그는 홀로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한 뒤에도 음악과 책에 매진하며 재충전 시간을 가졌다. 이후로는 미국에 있던 가족까지 한국으로 데려와 여행·게임 등 취미 생활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폐 포털
밉상 기업

그렇게 2000년대가 끝날 무렵, 김 전 의장은 스마트폰 보급에 발맞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 머물 때 아이폰 출시를 지켜보고 PC에서 모바일로 시장의 중심축이 옮겨갈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한창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카카오톡은 “PC 메신저 일색인 시장 속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 채팅 등의 강점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1년 만에 1000만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배경으로는 ‘차별성’과 ‘시장 선점’이 꼽힌다. 2010년대 초반 당시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던 문자 메신저는 별도의 통신비가 있었고, 글자 수가 제한됐다. 스마트폰 출시에 발맞춰 시장에 나온 메신저 앱들 역시 대부분 유료였다.

반면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무료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글자 수 제한도 따로 없었다. 

막대한 서버 운영비를 떠안은 대신 카카오톡은 몇 년간 다진 기반 위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냈다. 중소 게임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애니팡’ 등 카카오톡 기반 게임을 흥행시켰고, 이모티콘 판매·선물하기 기능 등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카카오는 2014년, 다음(한메일)을 비롯해 여러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몸집을 빠르게 불렸다. 그간 카카오는 플랫폼 영향력을 바탕으로 결제·은행·게임 등의 서비스를 키우고, 이를 분사·상장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카카오는 이를 수 없이 반복하면서 창사 9년 만에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김 전 의장은 사업 외에도 기부 등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다. 그는 평소 ‘성공이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라는 에머슨의 시를 자주 인용한다. 특히 인적 투자와 지원에 주안점을 둔다.

실제로 김 전 의장은 “100명의 CEO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2016년 스타트업캠퍼스 초대 총장으로 취임할 당시 “청년들이 직장이 아닌 업을 찾는 걸 돕겠다”고 발언한 것과 사회혁신가를 찾아 지원하는 아쇼카코리아에 기부한 일화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이외에도 코로나·산불·태풍 등 자연재해가 벌어질 때마다 큰 액수를 기부하는 ‘통 큰 기부’ 행보를 이어왔다.

지난해 2월에는 기빙플레지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서약한 바 있다. 서약 직후 이를 활용할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을 세웠다. 보통 기부재단은 기금을 조성한 뒤 해당 기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은 기부금을 즉각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운 점이 특징이다.

업무, 생활…
암흑 속으로

하지만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카카오와 김 전 의장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김 전 의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감장에 서는 게 그 방증이다.

다만 지난해에는 정무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등 세 차례나 국감 증언대에 섰던 것에 반해, 올해는 과방위에서만 출석 요구를 받았다. 여야 협의를 통해 질의 내용은 이번 화재에 관한 것으로만 한정됐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 국감장에서 ‘난타’ 당했다. 당해 국감에서 세 차례나 불려 나온 총수는 김 전 의장이 유일했다.

당시 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스마트 호출 서비스’가 가장 먼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는 영업시간 제한으로 택시·대리운전 수요가 특정 시간에 집중되자 배차 확률을 높여주는 대가로 많게는 5000원에서 수만원에 이르는 추가 금액 지불을 요구하는 서비스를 개시했다가 곧바로 철회한 바 있다.

모빌리티 시장 경쟁사들이 규제 철퇴로 주춤한 사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한 카카오모빌리티가 횡포를 부린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이를 기점으로 카카오의 계열사 면면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공룡 기업 ‘카카오’ 이름을 달고 꽃·간식·샐러드 배달 사업에 나선 점,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카카오헤어샵 사업에 투자한 점, 스크린 골프 시장에서 카카오VX가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 등이 연이어 지적됐다.

결국 카카오에는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대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김 전 의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케이큐브홀딩스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고 있다. 투자회사로 설립됐지만 별다른 투자 활동이 없어 사실상 카카오의 지주회사로 여겨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9월 김 전 의장이 케이큐브홀딩스 관련 자료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며 한 차례 조사한 바 있다. 여기에 경영권 승계 준비 의혹, 배당금 절세 의혹, 사익편취 등 가족 관련 의혹이 함께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케이큐브홀딩스는 마치 가족끼리 돈놀이하는 놀이터 같다. 동생한테 돈을 빌려주지를 않나, 선물옵션 거래를 한다든지 사모투자신탁에 가입한다든지 해서 이익을 낸다. 지주회사인지, 금융회사인지도 불분명하다. 금산분리 규정 위반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딛고 자수성가 혁신가
문어발식 경영·골목상권 침해로 입방아

다방면에 걸쳐 날선 비판이 이어지자, 김 전 의장은 “골목상권을 절대 침해하지 않겠다. 성장에 취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통렬히 반성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뼈를 깎는 심정으로 노력하겠다”며 추가 상생안 마련·이행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카카오 측은 지난 4월 “올해 계열사 수를 30~40개 줄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약속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카카오 계열사는 128개에 달한다. 138개였던 발표 당시와 비교해 단 10개가 줄어든 셈이다. 

이 가운데 터진 ‘카카오톡 먹통’ 사태에 여론 반응이 호의적일 리 없었다.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도 서버 백업 등 안전망 구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카카오를 향해 각종 비판이 쏟아졌다.

“서버 백업 조치는 이뤄져 있었다”는 카카오 측 해명에도 성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IT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카카오톡 사용자는 3905만명으로 화재 전인 14일 사용자 수 4112만명 대비 207만명 급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본 사태를 직접 언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이것이 국가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때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카카오 무한 책임론’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대국민 사과’ 역시 눈길을 끌었다.

카카오는 김 전 의장의 국감 출석 전 여론 진화에 총력을 쏟는 모양새다. 카카오는 임직원들을 밤샘 비상근무에 투입한 데 이어 지난 19일 사과문과 남궁훈 전 대표이사의 사퇴 소식을 전격 발표했다.

남궁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카카오 전체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쇄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계 당국의 우려 역시 어느 때보다 무겁게 받아들여, 조사와 요청에 성실하게 협조하겠다”며 “모든 서비스가 정상화되는 대로 이번 사건에 대해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이러한 일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지난 3월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글로벌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본사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한 발 빠진 셈이다.

집단소송 
움직임도

하지만 김 전 의장은 결국 이번에도 국감장에 얼굴을 비추게 됐다. 과방위의 여러 증인 사이에서도 집중포화가 예상된다.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지만, 관건은 다음 국감이다. 만약 카카오를 둘러싼 논란이 내년에도 가라앉지 않는다면, 또다시 국감장에 불려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과연 김 전 의장은 국민과의 ‘불편한 대면’을 그만둘 수 있을까.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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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