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본지 새 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김영권 작가

박근혜·윤석열 이면을 들여다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작가는 시종일관 신중했다. 대화 도중 뜸을 들여 단어를 골랐다. 한 줄의 ‘작가 소개’를 고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 작품 속 무명작가인 ‘나’와는 달랐다. 김영권 작가가 ‘문제작’ <대통령의 뒷모습>을 들고 <일요시사>를 찾아왔다.

큰 키에 구부정한 자세를 한 남성이 <일요시사> 편집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모자를 한 손에 쥐고 가방을 옆으로 맨 채로 연신 물을 마셨다. 가방 안에는 손바닥만한 수첩과 볼펜, 최근에 나왔다는 신작, 그리고 초고 한 묶음이 들어 있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4일 오후였다. 

과거와 현재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는 건 작가 입장에서 큰 모험이다. 독자에게 배경 설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내는 대신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인식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사건을 다룰 때는 그 민감함의 수준이 끝없이 높아지곤 한다. 

김영권 작가가 내민 원고지 1200장 분량의 시사 에세이 <대통령의 뒷모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룬 작품이다. 서울 해방촌에 자리한 무지개 하숙집에 살고 있는 하숙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대통령의 뒷모습>은 화자인 무명작가 ‘나’가 ‘피에로 사내’와 함께 하숙집을 찾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나와 피에로 사내는 2013년 김 작가가 출간한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에 이어 또 한 번 작가의 페르소나로 활약한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은 자기계발과 성공이라는 허상에 대해 비판하고 풍자한 작품이다. <대통령의 뒷모습>처럼 서울의 한 하숙집을 배경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하숙생의 이야기를 다뤘다.


김 작가는 “처음 글을 쓸 때부터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하숙집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인다는 점에서, 또 그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늘 나의 관심을 끌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뒷모습>이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의 후속편 격이라고 귀띔했다. 

하루에 3~5시간씩 글을 쓴다는 김 작가는 A4용지로 130여장 분량의 이 작품을 쓰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했다. 작품을 집필하는 데 온전히 집중한 시간이 그 정도라는 뜻이다. 박 전 대통령 취임 무렵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중단과 집필을 반복하는 사이 5년여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 후속
취임부터 탄핵까지 5년 조명해

김 작가는 “개인 사정상 몇 번의 중단기를 거친 끝에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가 석방될 즈음 초고에 마침표를 찍었다”며 “현실 시간과 작중 시간이 함께 흐른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인용으로 대통령직을 잃었고, 수많은 혐의로 영어생활을 하다 지난해 12월 특별사면 형태로 석방됐다.

<대통령의 뒷모습>은 무지개 하숙집 하숙생이 본 박 전 대통령 시절 5년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남북통일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결말 부근에 이르러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대한민국 헌정사를 관통한 문장도 의미심장하게 사용된다.

무명작가, 사이비 교주, 모창가수, 탈북민 등 주변에서 쉽게 보긴 어렵지만 분명히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하숙집에 모여 저마다의 생각을 드러낸다. 신문지 위에 오징어다리와 소주를 두고 주거니 받거니 잔을 기울이면서 박 전 대통령의 통치를 두고 한마디씩 거드는 것이다. 

때론 욕설을 섞어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인물이 있는 반면 무명작가인 ‘나’는 시종일관 판단을 보류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한 태도가 아니라 결정에 앞서 현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모습에 가깝다. 김영권 작가는 화자인 ‘나’에 자신의 생각을 일정 부분 투영했다. 


김영권 작가는 “화자이자 무명작가인 ‘나’는 다른 인물과의 대화 혹은 생각을 통해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실제 작가인 나를 투영했지만 오롯이 나를 대변하는 인물은 아니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화자인 ‘나’의 대사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질문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무명작가를 화자로
독자에게 질문 던져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대통령의 뒷모습>에는 ‘통일’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하숙생들은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현 상황이 좋다’ 등의 의견을 토해낸다. 화자인 ‘나’는 통일을 하든, 분단 상태를 유지하든 스스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일갈한다.

현재까지 통일이나 분단 등의 상황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지배층이 결정하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렸다는 지적이다. 

김 작가는 “학교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던 때는 가고 각자도생을 울부짖는 시대가 왔다”며 “통일에 대해 찬반의 목소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론 꼭 해야 한다고 서두를 필요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고 가로막을 까닭도 없다고 본다”고 말을 골랐다. 그러면서 “훗날 쓰일 역사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한 번쯤 성찰해 볼 가치는 있다고 본다”며 “바로 여기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힘주어 말했다. 

작품 제목인 <대통령의 뒷모습>에서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을 의미하기도 한다. 박 전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현재 윤 대통령의 정치가 그 당시와 오버랩 된다고 은근한 암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오버랩

그는 “(작품이)박근혜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현재의 극보수정권을 되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게끔 구성했다”며 “실망감에 빠진 국민에게 성찰과 미래지향적 희망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를 넘어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를 꿈꿔본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대통령의 뒷모습>은 지령 1394호(9월25일 발행)부터 지면을 통해 게재됩니다.]


<기사 속 기사> 김영권 작가는?

인하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비평전문지 <작가와비평>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돼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선감도: 사라진 선감학원의 비극>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자물쇠 속의 아이들: 어린 북파공작원의 비밀> <몽키하우스> 등이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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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