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검찰의 대반격

문-이 측근부터 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새 정부 출범 이후 전열을 가다듬은 검찰이 공격 모드로 돌입했다. 5년 내내 개혁 대상으로 지목돼 ‘동네북’ 취급을 받았던 검찰이 역공을 취하는 모양새다. 특히 이전 정부 관련 수사가 확대되면서 ‘윗선’ ‘몸통’에 대한 수사 가능성도 점쳐진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공포될 때까지만 해도 검찰의 부활을 점치는 목소리는 많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내내 축소돼온 검찰의 권한은 대통령 임기 말에 이르러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 부패·경제 범죄에 대한 수사권만 남게 됐다.

초토화됐다
간신히 부활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 시도에 반발해 사퇴했다. 이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거쳐 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 대통령의 당선으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전 공포까지 마무리지었다. 

거듭된 권한 축소에 검찰은 초토화됐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고, 전국 고검장들이 사의를 밝히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다. 최근 금융감독원장으로 임명된 이복현 전 검사도 검수완박 법안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지도부의 연이은 사의 표명으로 검찰 조직 자체가 흔들렸다.

반전은 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부터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1기 내각을 조각하는 과정에서 법무부 장관에 한동훈 전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지명했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한 장관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서울중앙지검장, 수원지검장 등 검찰 요직에 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민주당에서 한 장관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예측을 모두 뒤엎고 한 장관을 윤석열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파격 인사였다. 한 장관의 존재감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두드러졌다. 민주당 의원과의 공방전은 유튜브 채널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지방선거 대패 이유로 ‘한동훈 청문회’를 꼽기도 했다.

한 장관은 취임 직후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공석인 검찰총장을 대행할 대검찰청 차장검사, 문재인정부 관련 사건 수사팀을 이끌 서울중앙지검장, 민주당 이재명 의원 관련 사건을 잡고 있는 수원지검장 등을 교체했다.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이 요직에 배치됐고, 문정부 시절 ‘친정부 검사’로 불렸던 이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뭉개기 의혹’ 수사 기지개
특수통 전진 배치로 급물살

찬밥 취급을 받았던 특수통 검사가 전진 배치되면서 문재인정부, 이재명 의원 관련 사건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오는 9월이면 검수완박 법안 시행으로 검찰의 권한이 한층 축소되는 만큼 내부에서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검찰의 칼은 사건의 ‘윗선’ ‘몸통’으로 향하고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은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 의원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무렵 성남시에서 진행된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특정 업체가 큰 이익을 봤다는 내용이다. 또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치권, 법조계 유력 인사에 뇌물이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대장동 사건은 대선 기간 내내 화두였다.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후보끼리 대장동 의혹 몸통이라고 서로를 지목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대장동 사건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검사 20여명을 포진시킨 대규모 수사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나왔다. 

결과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로 이어졌다. 대장동 5인방(유동규·김만배·남욱·정영학·정민용)은 재판에 넘겼지만 ‘윗선’에 대한 수사는 대선이 마무리될 때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이 의원은 물론 그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에 대한 수사도 지지부진했다. 

설상가상으로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 개발사업본부장, 김문기 개발1처장이 지난해 12월10일과 21일, 극단적 선택으로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 내부 감사를 받던 상황이었다.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주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위로 향한
권력 수사

검찰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눈치를 보고 있다’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입성한 이후 검찰 내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장동 사건 수사가 발 빠르게 이뤄지면서 이 의원에 대한 수사망이 빠른 속도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검찰이 이 의원을 대장동 사건 피의자로 특정하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입증과 관련된 수사를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앞서 검찰은 대장동 5인방에 배임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면서도 대장동 개발사업의 최종 인허가·결정권자였던 이 의원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이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이 의원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을 이용한 정치보복, 정치탄압이 시작된 듯하다”며 “21세기 대명천지에 또다시 사법정치 살인을 획책하자는 거냐. 정치보복, 사법살인 기도를 중단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수사를 윤석열정부의 보복 수사로 규정한 것이다. 

민주당 역시 “사법살인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는 논평을 내놨다. 민주당 조오섭 대변인은 “언론 보도를 통해 검찰이 이 의원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관련 배임 혐의의 피의자로 적시해 수사를 진행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편파수사, 기획수사, 정치보복 수사다. 무슨 증거가 있어 이 의원을 배임 혐의 피의자로 특정했는지 밝히길 바란다”고 반발했다. 

방탄 배지
소용없나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소환 조사가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불체포특권을 위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 의원으로선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회기 중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 불체포특권 대상이다. 

더 큰 문제는 측근들의 ‘입’이다. 대장동 5인방의 재판 과정에서 이 의원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실제 대선 기간 동안에도 대장동 사건 공판이 월요일마다 열리면서 이 의원이 ‘월요일 리스크’ ‘먼데이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이 의원이 성남시장·경기도지사로 재직할 무렵 불거졌던 사건 수사도 불이 붙은 상황이다. 경찰은 김씨의 법카 유용 의혹과 관련해 최근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당시 가장 ‘윗선’이었던 이 의원은 수사 과정에서 소환되는 인물의 진술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태다. 

문재인정부 관련 사건 수사도 판박이다. 검찰은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수사·공판 과정에서 수사망을 점차 좁혀가고 있다. 결재 라인 길목에 있는 인물에 대한 수사를 통해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현재 그 표적으로 지목된 인물이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이다.

백 전 장관은 장관 재직 시절 산하 기관장 13명으로부터 사직서 제출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김도읍 의원이 2019년 1월 중부발전 등 발전 공기업 4개사 사장이 산업부 고위 관계자의 압력에 못 이겨 사표를 냈다며 백 전 장관, 이인호 전 산업부 차관, 박모 전 에너지 산업정책관 등 5명을 고발한지 3년여 만에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장동 5인방 입 열 때마다…
백운규 구속영장 기각으로 한숨

그나마 이 의원 관련 사건과 다른 점은 법원에서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수사 진행에 잠시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사실이다. 신용무 서울동부지법 영장담당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백 전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신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대체적인 소명은 이뤄진 것으로 보이나 일부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피의자가 현재 별건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점이나 지위, 태도 등에 비춰 도망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백 전 장관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이 백 전 장관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문정부 청와대와의 고리를 잡으려 했던 작전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과는 관계없이 검찰이 문정부 청와대와 야당(민주당)으로 사정 범위를 넓힐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수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 박 의원은 당시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냈다.

여기에 산업부뿐만 아니라 외교부·교육부·농림축산식품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 등의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도 불거진 상황이다.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 김영록 전 농식품부 장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홍남기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피고발인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가 윗선으로 번져 문재인 대통령까지 안 간다는 보장이 있나”라며 “이명박정부 시즌2”라고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거론했다.

박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개시되자 당 차원의 대응을 위해 기자회견을 자처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보복 수사다”
“적폐 청산은?”

국민의힘은 문정부 시절 ‘적폐 청산’을 언급하면서 반박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절에 우리 당 인사들에 대한 보복 수사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문정부 초반 2년간의 적폐 청산 수사도 정치보복이었는지 우 비대원장에게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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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