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릴레이 인터뷰> 경북도지사 재선 이철우

“더 이상 TK 패싱은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말이 아닌 발로 뛰는 도지사’라는 단어가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처음 경북도지사직을 맡으면서 경북 곳곳을 누비고 다닌 거리를 계산하면 한 해 평균 12만㎞가 넘는다. 발로 하는 행정을 통해 재선에 성공한 이 지사는 유독 이번 당선에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국가정보원 국장부터 3선 국회의원 등 중앙정치를 경험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멍석 정치로 이름을 날렸고,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했다. 이 도지사와 일하면 실·국장급은 괴롭다고 호소한다. 이 지사가 새벽 일찍 경북 관련 기사를 공유해 미리 대책을 준비하도록 해서다. <일요시사>가 이 지사에게 영남권 신공항 건설, 윤석열정부와의 협치 방식, 정치 현안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수학교사로 첫 사회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경북 상주와 의성에서 5년간 교직 생활을 한 뒤 지금의 국정원을 거쳐 2005년 경북도 부지사로 기용돼 2년2개월 동안 활동했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으로부터 고향인 경북 김천에 전략공천돼 초반 2대 8이라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리던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이후 저는 국회의원 3선을 역임했습니다.

경북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중심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변방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경북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경북이 다시 대한민국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지난 민선 7기 선거에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경북도지사 재선에 성공하셨습니다


▲도민 여러분께서 저에게 다시 도정을 맡겨 주셨습니다. 초선 때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도민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성원은 경북을 위해서, 또 대한민국을 위해 더 큰 머슴이 되라는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말이 아니라 발로 뛰는 현장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험한 파도를 헤치고 달려가는 승풍파랑의 도전정신으로 큰 정치, 큰 인물로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이유는 대통령, 도지사, 기초단체장이 원팀이 돼 예산도 많이 확보하고 지역을 발전시켜 달라는 도민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 동안의 성과를 꼽으신다면?

▲우선 저는 민선 7기 4년 동안 도정을 혁신해 청렴하고 일 잘하는 경북도청을 만들었습니다. 민선 7기 공약이행평가 전 분야 최우수(SA), 공공기관 청렴도 2년 연속 전국 최고등급, 경북도청 내부 청렴도 역시 17개 시·도 가운데 1등급을 달성했습니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우리 도가 국비 예산 10조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투자 유치도 국내 기업 8조5000억원, 해외기업 1024억원, 등 지난 4년 동안 31조 2000억원을 달성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성과라면 여러 갈래의 장벽을 뚫고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이전 문제를 확정 지은 것입니다. 

-도지사님께서는 의원시절 멍석정치로 이름을 알리셨습니다

▲당시는 우리 국회가 ‘동물국회’ ‘식물국회’ 등 역대 최악의 국회였던 시기였습니다. 국회의원 집무실에 멍석을 깔아놨던 것은 저부터 우리 정치를 곪게 만든 요인들을 멍석에 둘둘 말아 국민으로부터 박수받는 정치를 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경상북도, 대한민국 중심 도시로
“승풍파랑의 도전정신 발휘하겠다”

그러나 제대로 멍석말이도 못하고 국회를 떠난 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도지사가 되고 나서도 집무실에 멍석을 깔아놨는데 빨리 정치가 옳은 궤도에서 비행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경북도지사는 여권 소속으로 도지사직을 하게 되십니다

▲지난 4년간 TK(대구·경북) 패싱은 없다며 예산을 따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같은 성과의 이면에는 ‘알아야 도지사를 한다’ ‘무는 개는 돌아본다’ 같은 나름의 원칙을 실천한 결과입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에서 70%가 넘는 대구·경북의 표심에 감동했고 압도적 지지를 보내준 도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의 분위기로 봐서는 경북을 발전시킬 예산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선 과정에서 맺어진 따사로운 인연들을 잘 추슬러서 정부와 호흡을 맞춰 경북 수확의 계절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경북 땅은 전국에서 제일 넓습니다. 경북도정 운영의 핵심을 어디에 맞춰 나갈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도민이 투표해주신 결과에 제 혼을 담아 희망이 샘솟는 경북을 짓겠습니다. 보다 더 큰 정치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경북 건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중앙과 지방 간 격차가 큽니다. 윤 대통령도 국민이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듯이 지방을 살리는 획기적인 대안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지방화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단순히 중앙정부 예산에 의존하기보다는 헌법 개정 등을 통해 지방자치의 제도화가 검토돼야 합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자치를 실현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북 인구가 계속 줄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비단 경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범국가적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총인구도 지난해 기준 2만900명 정도가 줄었습니다. 경북은 합계 출산율 1명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전국에 지방소멸 고위험지역 30곳 가운데 경북에만 7곳이 있을 정도여서 이제 인구 감소는 생존 문제 해결을 위한 선결과제가 됐습니다. 의성에 이웃사촌시범마을 조성하고, 스마트 팜을 만드는 것도 청년을 끌어들이거나 수도권으로 빠져 나가는 청년들을 붙잡아 두자는 취지입니다.

“신공항 반드시 이뤄낼 것”
인구 문제 시급한 선결과제


현재 전국 시·도 가운데 처음으로 지방소멸대응종합계획을 만들고 청년인구 정착을 위한 청년애(愛)꿈수당을 지원하는 등 도민 체감형 정책으로 인구소멸 위험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경북의 주요 이슈는 신공항건설과 군위군 편입 문제입니다

▲군위를 대구에 편입시키는 안건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습니다. 저는 이 약속이 6월 국회에서는 지켜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약속했고,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도 약속을 했습니다. 이달에는 반드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이 말씀하시는 국비 지원과 경북도가 추진하는 기부대양여 방식이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둘 다 같은 국비 지원입니다. 단지 기부대양여는 지금 K2 공항 부지를 받은 겁니다. 210만 평을 현물로 받은 뒤 이걸 팔아서 공항을 짓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긴축재정을 하게 되면 새만금, 가덕도,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등 3개 공항이 영향을 받게 돼 예산을 한꺼번에 투입하기 굉장히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점점 더 공사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대구공항 부지를 판돈으로 시설을 해서 모자랄 때는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현재 방식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위군 대구 편입은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리라 믿습니다.


-재선 도지사로서 경제는 어떻게 방점을 찍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기업이 다시 찾는 기회의 땅, 경북을 만들어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성공시대를 여는 경북을 만드는 데 집중할 방침입니다. 과감한 규제혁신으로 첨단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해 수도권에 75%가 집중해 있는 첨단기업들이 경북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겠습니다.

대학과 기업이 한 팀이 돼 일자리를 만들고 대학도 살리는 연구 중심 혁신도정을 고도화할 방침입니다. 메타버스 산업단지, 초거대 클라우드팜 조성 같은 대형 프로젝트도 추진해 디지털시대의 선두 주자가 되는 도정을 펼칠 계획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민생 살리기 특별본부를 상시화하고 전통시장을 디지털시장으로 바꾸겠습니다.

일자리 관련 종합기구를 설치해 민생경제의 성공시대를 열어나가는 데 도정을 집중하고자 합니다. 지난 민선 7기 경북 도정의 지속성과 확산성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을 논의하겠습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민생경제 활력 증진과 급변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부응할 수 있도록 민생경제 활력을 도정의 목표로 설정하겠습니다. 

청년의 역외 유출을 막고 저출산에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이 일자리 창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북도를 대한민국 일자리 요람으로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과 협치
“윤석열 대통령 경북 발전 약속”

-대구와 내부적 출혈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말이 나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과의 협치 복안을 알고 싶습니다

▲홍 당선인과의 엇박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런 벽이 없습니다. 시장은 시장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도지사는 도지사 나름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큰 현안이 있으면 의논해서 해결하면 잘 풀릴 것입니다.

앞으로 홍 당선인과 찰떡궁합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갈 예정입니다. 홍 당선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 명입니다. 아직 문제로 부딪쳐 본 적이 없지만 홍 당선인은 선견지명도 있고, 결단력도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홍 당선인과 함께 대구·경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어려운 숙제가 있으면 손을 맞잡고 실마리를 찾겠습니다. 힘을 합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나아가 대구·경북이 더 발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윤정부와 협치는 어떤 방식으로 해나갈 것인지 궁금합니다

▲국회의원 3선, 당 최고위원·사무총장, 경북도지사로 활동하면서 관계를 가졌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예산을 더욱 확보하겠습니다. 정부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가 한 팀이 돼 경북을 발전시킬 대형 프로젝트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야당 도지사가 아닌 여당 도지사가 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에서 경북의 주요 현안 해결을 여러 차례 약속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파는 장사고, 행정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떤 정책이나 행정도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보다 우선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도민의 건강도 지키고, 경제도 살리고, 도민들 사기도 높이겠습니다. 달리는 말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난 4년간 힘차게 달려 왔지만 저는 아직도 걸어가야 할 몇 걸음이 더 남아 있기에 여기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남은 몇 걸음에 도민 여러분의 염원을 담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경북을 다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올려놓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선거는 끝났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과 반목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누구를 지지했건 경북의 발전의 염원은 모두가 한마음일 것입니다. 제 열정을 도민 화합을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켜 나가겠습니다. 

<ckcjfdf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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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