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 캐스코 '용광로참사' 전모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9.17 1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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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온(狂溫)에 사그라진 아까운 두 청년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2010년 가을에 발생한 용광로 사고. 결혼을 앞둔 젊은 청년이 1600도가 넘는 용광로 쇳물에 빠져 귀한 목숨을 잃었다.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인데 또 다시 용광로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LS그룹 계열사 'CASCO(캐스코)' 공장에서다.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27살, 28살 젊은 청년이다.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인재(人災) 논란

2010년 용광로 사망사건 당시 화제가 됐던 추모시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이다. 네티즌이 작성한 이 시는 인터넷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지난 10일 전북 정읍의 제3산업단지의 선박엔진부품을 제조하는 'LS엠트론 캐스코'에서 밤샘 근무를 하던 현장근로자 5명 가운데 박모(27)씨와 허모(28)씨가 쇳물을 뒤집어 써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3명은 쇳물을 피해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LS그룹은 LG에서 분리되어 에너지, 전선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연 매출 순위 9위의 대기업이다. LS엠트론은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만 800억원이 넘는다. 사고가 발생한 캐스코는 LS엠트론의 핵심 업체로 LS엠트론 50%, 삼양중기 37.7%, 두산엔진 12.3%의 지분으로 설립됐다. 캐스코는 사출기부품, 공조기, 선박엔진, 풍력발전기 날개 등을 생산하는 주물생산업체다.


은 근로자 2명은 용광로 쇳물 운반 기계인 '래들'이 뒤집히면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고인이 된 박씨는 이제 막 100일이 지난 딸이 있었으며 허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독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청년이 뒤집어 쓴 쇳물은 무려 1200도에 달했다. 이번 사건 후 두 청년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사고 현장에 접근했던 소방대원들조차 주변을 에워싼 뜨거운 열기로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당시 사고는 쇳물 온도와 불순물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실수로 인해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청년들의 동료 직원은 "쇳물 붓는 용광로를 새로 만들고 시험 가동을 몇 번 한 다음에 쇳물을 용광로에 처음으로 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고가 무리한 업무와 기계 결함 때문에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자 박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사고가 나기 전 5일간 야간작업을 했다. 일요일은 원래 쉬는 날인데 회사의 요구에 따라 잔업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면서 "애초에 회사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 설치한 기계를 충분한 시험가동도 하지 않고, 관리자 없이 무리하게 운행 시킨 것이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면서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용광로 작업현장에서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될 사고가 일어났다"고 호소했다.

사망사고 유족 "사측 관리 부실이 사고 원인"
'그 쇳물 쓰지 마라' 추모시 벌써 잊었나

이어 "일주일간 휴일 없이 이어진 야간근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아들이 사고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피해자의 실수가 아닌 안전 관리 부실이 부른 인재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안전장치와 안전설비조차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장에는 제품이 널려있어 좁은 통로를 제외하면 피할 곳도 없었다"며 "위험한 작업을 하는데 하다못해 주위에 파이프로 난간도 돼 있지 않았다"고 열악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 민주노총은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2년 전 밤샘 작업 중 피곤에 지친 청년 노동자가 용광로 앞에서 휘청거리던 그 순간, 그를 보호해줄 10만원짜리 안전난간은 없었다"며 "이번 정읍 사고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십여 년째 이어오고 하루에 8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어나가는 사회임에도 산업재해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산재 사망은 기업에 의한 구조적인 살인"이라며 "산재 사망 처벌 및 책임성 강화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고 이후 사흘간 침묵을 지키던 사측은 뒤늦게 피해자 유족들의 지적에 대해 기계 결함에 대한 부분은 인정하고 도덕적인 책임은 통감한다고 전했다.

사측의 한 관계자는 "주말 특별근무는 각 작업조에서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며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 관리자는 없었지만 작업반장의 책임하에 작업이 이뤄졌고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유족에게는 죄송하고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보상절차에 관해서 유족과 협의 중이다"고 덧붙였다.

안전불감증 심각

한편 사건을 조사 중인 정읍경찰서는 래들에 담긴 쇳물을 조형에 붓는 과정에서 쇳물이 흘러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격자는 경찰 조사에서 래들이 각도를 서서히 기울이면서 쇳물을 쏟아내다가 갑자기 뒤집히면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공장 관계자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쇳물이 얼마만큼 쏟아졌는지, 기계적 결함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요청했다. 국과수 정밀 감식 결과는 한 달 정도 걸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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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