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로 지역주택조합 240억 사기 의혹 전말

‘판박이 먹튀’ 꼬리 잡힌 지주택 빠꼼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구로 5동에 ‘지역주택조합’을 세우겠다며 피해자들을 유인, 돈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 류모 대표. 그는 진행 중인 재판에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장의 신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가 서울 모처에서 벌인 또 다른 사건이 드러나면서다. 두 사건의 양상은 그야말로 ‘판박이’. 계획된 범죄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하 남부지검)은 지난해 11월18일 구속영장을 발부해 류 대표와 전 조합장 이모씨 등 2명을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함께 피소된 한모씨도 같이 재판에 넘겼다. 이들에게는 사기·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류 대표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19개에 달한다.

사기 혐의
구속 재판

<일요시사>는 남부지검이 작성한 사건의 공소장 전문을 입수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류 대표는 2015년 당시 구로 5동 532번지 일대에서 8년간 지지부진하게 진행돼온 일대 개발 사업권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가 일부 주민에게 받아놨던 ‘지역개발 동의서’도 함께 넘겨받았다.

이 동의서에는 단순히 ‘부동산을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만 담겨있다. ‘토지 사용 권한을 넘기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주택법에서 조합설립 인가의 요건이 되는 ‘토지 사용권원 확보’의 근거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피고인들은 이 동의서를 토지 사용권원 확보 서류로 둔갑시켜 조합원들을 속였다. 이 동의서 작성 비율과 국공유지·도로 비율 등을 합친 수치가 토지 사용권원 확보율인 것처럼 꾸민 뒤 “토지 확보가 거의 완료됐다. 조만간 착공해 2020년쯤에는 입주 가능하다”는 허위사실을 퍼트리는 수법이었다. 


이들이 조합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안내장을 발송한 때는 2017년. 당시 실제로 확보된 토지 사용권원 확보율은 28%에 불과했다. 심지어 토지 구매율은 전체 토지의 3%를 채 넘지 못했다. 이 같은 진행 상황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남부지검은 공소장에 “(피고인들은)별다른 자금도 없고, 사업 추진을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도 없었다”며 “이들이 직접 설계·승인한 각종 용역계약 구조에 의하면 조합원들에게 1·2차 계약금을 모두 지급받는다고 하더라도, 여러 수수료를 빼고 나면 사업 추진을 위한 필수 사업비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피해자 477명을 기망해 조합 가입 계약금 명목으로 239억6950만원을 편취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실제 피해 규모가 2배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한 피해자는 “총 조합원 수가 1000명 이상”이라며 “고소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피해까지 포함하면 총 피해 금액은 47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남부지검에 따르면 류 대표는 빼돌린 투자금 일부로 회사 운영비를 충당했다. 투자금·마사회 마권 구입 등 개인 목적으로도 사용했다. 또 돈을 빼돌리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토지매입 용역비 부당 지출, 부지 매매대금 부풀리기 등 5가지 유형의 업무상 배임 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주된 세탁 창구는 토지 용역회사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토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3개월 뒤, 류 대표가 용역회사를 차명으로 인수해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이후 용역회사가 토지매입 및 동의율을 부풀려 용역 대금을 청구하면, 조합장이 승인해주는 방식이었다.

사기·배임 혐의…피해 금액 470억 추산
결백? 다른 조합서도 사기 치다 쫓겨나 


류 대표는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 류 대표 측 법률대리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사업 과정에서 개인적인 편취나 배임 등은 없었다”며 “오해가 발생한 부분이 있는데, 마침 사업 지연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던 조합원들이 류 대표를 찍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류 대표는 조합원들이 낸 사업비가 모자라자, 자신이 받을 몫인 업무 대행비까지 대여해가며 사업을 이어나갔다”며 “이 업계에서 용역회사로 뒷돈을 빼돌리는 일이 빈번한 것은 안다. 하지만 류 대표는 사업비가 모자라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용역회사를) 인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류 대표는 여전히 사업을 정상화할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제시한 류 대표의 횡령·배임 내역에 대해서는 “검찰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 같은 류 대표 측 주장과 배치되는 과거 행적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요시사>는 류 대표가 서울 모처의 ‘A동’에서 벌인 다른 지역주택조합 사업 경과를 추적했다. 취재 결과, 류 대표가 A동에서도 구로 5동 지역주택조합 사업(이하 ‘구로 사업’)과 유사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정황이 드러났다. 류 대표 주장의 모순점도 여럿 발견됐다. 사정 당국 역시 이를 인지하고 이미 수사에 착수했다.

구로 5동처럼, A동에도 답보상태에 놓인 지역주택조합 사업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2003년 처음 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 2010년 들어 조합변경 인가를 한 차례 승인받은 게 활동의 전부였다. 류 대표는 2017년 초를 전후로 사업을 넘겨받았다. 1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판박이’ 사업을 하나 더 벌인 셈이다.

1년 전과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사업 자금을 끌어올 만한 곳이 바로 있었다는 점이었다.

앞서 류 대표는 막상 구로 사업을 인수하고도 초기 사업자금이 없어 애를 먹었다. 결국 1년이 지나 한씨가 투자처를 연결해준 뒤에야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류 대표가 받은 투자금은 약 20억원으로 알려졌다.

류 대표는 2016년 9월 업무대행사를 세우고, 그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 않은 2017년 초에는 토지 용역회사와 A동 사업을 연이어 인수했다.

그런데 이때 류 대표가 두 건이나 되는 인수자금을 어디서 마련해왔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류 대표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당시 그는 인수자금을 확보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희생양? 
혐의 부인

류 대표는 앞서 “투자금과 업무 대행비 등 회사의 각종 재원은 만성 적자 상태에 놓인 조합을 유지하는 데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류 대표가 두 인수 건을 모두 무상으로 마무리한 것이 아닌 이상, 자금을 끌어올 구멍은 조합비와 회사 수익금 단 두 곳뿐이었다. 


“조합비를 빼돌리지 않았다” “업무 대행비도 챙기지 못했다”는 두 주장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류 대표 고소에 참여한 구로 조합원들은 검찰이 공소장에서 언급한 ‘빼돌린 조합금’이 A동 사업 인수자금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또 류 대표는 사업을 넘겨받은 직후부터 구로 사업 초창기와 유사한 수법을 활용해 A동 조합원을 모집해나갔다. 그는 이번에도 허위사실까지 퍼트리면서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류 대표는 A동에서도 사업을 진행할 의지를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A동 사업을 맡은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전 사항이 전무한 것이 그 방증이다.

마치 구로 사업처럼, 토지 확보율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멈춰 있다. 가뭄에 콩 나듯이 확보한 땅들은 ‘전시용’으로 의심받고 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현장을 찾았을 때, 땅 곳곳을 확보하는 중으로 착각하도록 조금씩 사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에 관해 류 대표는 “2017년부터 땅값이 급등해 사지 못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아울러 관련 인가 승인이나 규제 해제도 이뤄낸 게 없다. 심지어는 류 대표가 토지 성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조차 미지수다.


국토부가 제공하는 ‘토지e음’ 서비스에 따르면 A동 사업 부지는 ‘제2종 7층 일반 주거지역’으로 분류돼있다. 용어 그대로 지상 7층 이하의 건축만 허용되는 땅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저층 주거환경 보호·난개발 방지 등이 필요한 지역에 설정되는, 일종의 제한 장치다.

지난해 말에 들어서야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서 층수 제한을 25층까지 높일 수 있게 됐다.

류 대표는 이 땅에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며 조합원들을 불러 모았다. 계획대로 지으려면 제3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는 게 필수적이다. 하지만 류 대표와 업무대행사는 지난 5년 동안 용도 변경은커녕 조합변경 인가조차 통과시키지 못했다.

관할 구청에 문의해봤다. 구청 관계자는 “해당 지역은 2010년 조합 변경 인가 승인 이후 변동사항이 없었다”며 “2018년 한 차례 변경 인가 요청이 들어온 적은 있지만 반려됐다”고 밝혔다.

류 대표의 ‘30층 아파트’ 계획이 허가받을 수 있을지도 물었다. 이 관계자는 “우선 30층 사업 계획을 전달받은 바 없다. 반려된 2018년 요청도 2010년 인가와 동일한 18층짜리 사업 계획을 제시했다”며 “이전에 검토한 바 없어 즉답은 어렵지만, 무조건 통과할 수 있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고 답했다.

한편 류 대표가 당시 사업 계획을 굳이 18층에 맞춰 제시한 배경은 땅 용도를 제2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제2종 일반 주거지역에 18층 층수 제한이 있었다. 종전에 제2종 일반 주거지역에서 지을 수 있었던 최고 층수를 써낸 셈이다.

류 대표가 A동 사업을 처음 맡은 때가 2017년이다. 최소 1년 이상을 땅 용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도 변경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왔다는 게 된다.

다만 층수 혼동 문제가 조합 인가 반려의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짜고 친 정황
의도된 한탕

구청 관계자는 “조합 설립·변경 인가에서, 사업 계획은 참고만 한다”며 “조합 인가 승인과 사업 계획 승인은 별개의 문제다. 조합 인가 승인을 우선 받고, 사업 계획 승인은 차후에 따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령 그때 류 대표가 30층짜리 사업 계획을 제시했더라도 조합 변경 절차에만 문제가 없었다면 변경 인가가 승인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류 대표가 A동 사업을 맡은 후 사업은 사실상 일시정지됐다. 반면 조합 재정은 ‘밑 빠진 독’이 됐다. 각종 운영비와 수수료가 계속 빠져나간 탓이다. 그동안 꾸준히 제 몫을 챙기왔던 류 대표의 업무대행사와 조합 사무실 등은 지난해 류 대표가 구속된 뒤 연락이 두절됐다.

A동 조합도 구로 사업처럼 류 대표로 인해 최소 100억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도 “류 대표가 구로와 A동 사업비를 수표로 인출해 보관하다 횡령했다”고 명시돼있다. 구로 사건 공소장에서 일부 확인되는 A동 조합 피해 금액만 집계해봐도 최소 15억원 수준이다.

불안감을 느낀 일부 조합원은 ‘보장증서’를 근거로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다.

류 대표가 구로·A동 조합원들에게 나눠줬던 보장증서에는 “신탁기관이 안전하고 투명하게 자금을 관리하겠다” “사업 계획 미승인이 확정될 경우, 납부한 분담금 전액을 돌려주겠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조합원들이 보장증서를 근거로 투자금을 회수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진단한다. 구로와 A동 모두 관련 안건이 총회에서 논의된 적 없어 보장증서의 법적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지역주택조합 관련 민사소송을 여러 번 맡아봤다는 한 변호사는 “이 같은 내용의 보장증서가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단체법에 근거해 조합 총회에서 결의를 받아야 한다”며 “이미 지역주택조합 관련 사건에서 비슷한 증서들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판례가 많다”고 전했다.

“안전하게 관리하겠다”던 조합 신탁 예치금도 무사하지 못했다. 조합장들의 묵인·동조 속에서 류 대표는 자금을 사실상 독단적으로 활용했다. 업무대행사를 감시·견제해야 할 조합장들은 알고 봤더니 류 대표와 ‘한패’였다.

구로 사업 전 조합장 이씨와 A동 사업 조합장 한씨는 모두 직책을 맡기 전부터 류 대표와 친분이 있었다. 이윽고 이들은 류 대표 뜻에 따라 움직이는 ‘낙하산’ 조합장이 됐다.

마권 구입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
은폐 위해 대금 부풀리기 등 동원

이들이 처음 마주한 시기는 2015년으로 류 대표가 구로 5동을 찾았을 때였다. 당시 이씨와 한씨는 구로 5동 주민으로, 류 대표 이전에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해오던 ‘지역개발주민 협의회’ 소속이었다. 일명 ‘지역개발 동의서’를 받고 다닌 장본인들이었다.

이들은 류 대표가 구로 사업을 인수했을 때부터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씨는 지역개발주민 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던 이력을 살려 구로 조합 추진위원회 위원장·조합장 등을 맡았다. 그는 류 대표가 차린 업무대행사와 조합 간의 용역·대리사무 계약 등 굵직굵직한 사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씨가 조합원들에게 류 대표의 비위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구로 사업 피해자는 “이씨는 미진한 사업 진행 상황에 의구심을 느낀 조합원들이 정보공개를 청구했음에도 마땅한 이유 없이 이를 뭉갰다”며 “결국 대법원까지 법적 다툼이 이어졌고, 이씨는 벌금형과 자격박탈에 처해졌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2016년에는 구로에서 토지 용역 작업을 하다가, 2017년 A동 사업으로 넘어가 조합장이 됐다. A동 조합원들은 이들의 관계를 뒤늦게 알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허탈해했다.

또 조합장들은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를 ‘바지 조합장’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특정 건에 대해)왜 도장을 찍어준 것이냐”는 추궁에 “조합장 도장은 류 대표가 가지고 다녔다. 본인 마음대로 찍고 다녀서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A동 조합원들도 류 대표와 사업 관계자들에 대한 고소·고발 절차를 마쳤다. 현재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한 A동 조합원은 “압수수색도 2번이나 진행됐고 수사도 잘 진행 중이라고 전달받았다”며 “혐의 입증은 문제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류 대표와 한씨의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이들을 사업에서 몰아내기로 했다. 사업을 다시 본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서다. 이들은 과반수의 의견을 모아 총회를 열고, 관련 안건을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한씨가 총회 소집을 거부하면서 시일이 조금 더 소요됐다. 법원에서는 일단 조합장의 손을 들어줬다. 조합 규약에 따르면, 총회 소집 요구 정족수는 과반수가 아닌 3분의 2 이상이라는 게 이유였다.

결국 조합원들은 이달 초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다시 확보했다. 법원에도 다시 총회 소집 요구 의사를 전했다. 요건을 충족했으니, 총회 개최와 류 대표 ‘축출’은 사실상 시간문제가 됐다.

사업 정상화
물갈이 예고

한 조합원은 “류 대표는 애초에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며 “총회가 열리는 대로 바로 쫓아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류 대표가 빼돌린 것으로 보이는 사업 자금만 잘 회수되면 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우리는 류 대표 처벌보다도 사업 정상화에 방점을 두고 모든 노력을 쏟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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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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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