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박빙 대선’ 이재명에게 듣는다

“잘 알고 잘해야 대통령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정치인들의 속만큼 알 수 없는 게 없다. 대변인이나 보좌관이 잘못 전달할 때도 있고, 언론이 잘못 해석해 보도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본인에게 직접 들어봐야 한다. <일요시사>는 대선을 코앞에 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속을 제대로 알기 위해 그에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코로나19 위기와 동유럽의 전쟁 위기, 연이어 터져 나오는 후보 리스크 속에서 대한민국의 2022년 대선은 혼란스러운 국면에 빠져 있다. 요즘 대선판은 대선후보들에 대한 생산적인 뉴스보다는 무의미한 마타도어와 어지러운 국제정세 뉴스에 얼룩져있고, 심지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는 ‘남는 게 없는’ 말들만 쏟아지고 있다.

연이은 충격적인 뉴스에 유권자들은 강제로 ‘알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향후 5년을 책임질 대통령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새도 없이 국민들은 귀중한 하루하루를 무의미한 뉴스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후보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투표하기 전 이뤄져야 할 필수요소다.

<일요시사>는 잠시나마 국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본인’의 뜻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 후보에게 각종 현안과 일자리, 저출산, 청년, 부동산정책에 대해서 물었다. 다음은 이 후보와의 일문일답. 

-‘나는 OOO 대선후보다’라고 스스로를 정의해주세요.

▲‘실력을 인정받아 이 자리까지 온 유능한 대선후보’라 자임하고 싶습니다. 저, 이재명은 오로지 실력과 진정성만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국민께 검증받은 인물입니다. 소년공에서 인권변호사, 시장, 도지사를 거치면서 실력과 진정성을 검증받았습니다. 


제가 처음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는 어르신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서 동네 경로당에 들어가지도 못했었는데, 재선 때는 어르신들이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에 투표했다. 이재명이 일을 잘해”라고 하시며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역대급 가족 리스크 대선’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두 후보 모두 가족 이슈로 국민께 실망과 혼란을 드린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모든 것은 다 제 불찰이며, 이번을 계기로 저와 가족, 주변까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국민 앞에 송구스럽고 백번이라도 사죄하겠습니다. 

잘못된 것은 시정하고, 책임질 것이 있다면 책임지고, 잘못 알려진 부분은 적극 소명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국민 여러분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저는 이제까지 공적 업무를 수행하면서 권력을 남용하거나, 사적인 감정에 치우쳐 판단을 그르친 적은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국민께서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국민께 더 다가가고, 국민의 다양한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더 많은 국민의 마음을 듣고, 아픔을 보듬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 모습으로 ‘일하는 것 보니, 호감이다’ ‘믿음이 간다’의 신뢰를 드리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특검 도입은 아직 찬성하시나요? 지금이라도 특검을 도입해서 대통령이 되신 후에라도 공정하게 수사받으실 건가요?


▲신속하게 특검하자는 일관된 입장을 내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현재 유불리 따지며 시간 끌기하는 것은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입니다. 저와 민주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건 없이, 성역 없이, 지체 없이, 3무(無) 특검이 필요하다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국민 의혹 해소를 위해서라도 대장동 사건 시작인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수사’를 포함한 특검이 필요합니다. 한편 최근 윤석열 후보가 50억 클럽 당사자인 곽상도 전 의원의 구속을 두고 ‘편파 수사’ 의혹을 제기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검찰을 압박해 제대로 된 수사를 막고 진실을 숨기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의 승패와 상관없이 재수사나 특검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후보는 국가 운명을 책임질 사람이고, 후보를 포함한 그 측근, 가족들의 범죄 혐의는 전부 명명백백하게 규명되어야 할 것입니다.단 승자와 패자, 모두가 제대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며, 당선인에겐 면죄부를 주고, 선거의 패자를 보복하는 식의 수사나 특검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호남 지지율 부진의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방안은 있으신가요?

▲최근 호남에서 민주당에 실망하신 분들이 계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가 더 잘해나가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겸허히 그 뜻을 받들어 민주당의 후보답게 ‘잘하기 경쟁’으로 더욱 열심히 정책을 알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호남 민심은 ‘묻지마식 지지’가 아닌 ‘전략적 선택’을 하시는 것이 특징입니다. 역대 대선후보자에 대한 지지율을 보면, 대선 직전까지 고민하신 뒤에, 마지막에 꼭 필요한 선택을 해주셨습니다. 호남 유권자들은 대선에서 항상 시대정신에 부합한 후보를 지지해주셨습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공정’과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권자들께서는 시대정신에 부합한 후보가 누구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호남 유권자들께 호남정신을 계승해 좋은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실현해 갈 수 있는 인물은 저, 이재명뿐임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가상화폐 시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피할 수 없다면 앞서가야 합니다. 최근 가상화폐 투자시장의 거래액이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내버려둔다면 가상자산 투자자 피해가 속출하고 블록체인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등 사회적·경제적 손실이 우려됩니다.  

따라서, 합리적인 법 제도를 발 빠르게 마련하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견고하게 구축해야 합니다. 가상화폐 공개와 증권형 가상자산 발행 허용을 검토하고, 다양한 가상자산이 만들어지고 투자될 수 있도록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구축하겠습니다.

-과세 문제는?


▲과세 문제는 과세 결정이 아니라 준비 여부가 중요합니다.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봐야 할지, 해외거래소를 통한 거래 부대비용은 어떻게 인정해야 할지 등 아직 논의할 사안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가상자산 과세를 1년 늦추고,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 실행하고자 합니다. 손실을 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손실을 5년간 이월 공제하고, 투자수익의 5000만원까지 비과세하겠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공정’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는?

▲불공정한 산업생태계 공정화를 말씀드린 것은 우리나라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불공정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고용을 촉진하지 못하는 문제만 해결해도 일자리를 많이 늘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발생하는 불공정은 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등으로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을 악화시시키며 발생합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돼 저임금의 노동환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가 공정해지면, 중소기업의 경영실적이 좋아지고, 당연히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도 올라가며, 대기업에 버금가는 근로 환경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이러면 중소기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공공 일자리만으로는 일자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당연히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할 것입니다.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면 규제는 과감히 혁파할 것입니다. 

“공정 바로서야 일자리 창출”
“내가 바로 청년들의 들러리”


-저출산의 주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출산의 악순환은 지금 세대보다 미래세대가 더 행복하고 잘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때 비로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출생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출산을 장려하고, 육아의 부담을 줄이는 정책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래에 희망을 준다면 결혼을 미루거나 아이 낳기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자 뺏기 놀이가 아니라 의자 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장의 회복과 기회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저는 아래와 같은 정책을 통해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에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은 대책은 있습니까?

▲먼저 ‘청년기본소득’을 통해 적은 돈이지만 청년들이 학업과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유를 확보해주겠습니다. 그렇게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자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청년기본주택’은 내 집을 갖고 싶은 청년들의 꿈을 실현시킬 것입니다. 나아가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시 주식담보대출(LTV) 90%를 통해서 내집 마련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 대부분 청년의 경우 현재 소득이 적기 때문에 대출 규제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래 소득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누구나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하겠습니다.

-사법시험 일부 부활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걸까요?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도록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법시험을 통해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대학 4년 졸업 후 다시 3년 과정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만 합니다.

대학 및 로스쿨 7년 등록금만 해도 평균 7000만원에서 많게는 9000만원 이상이 들어 일반 서민들과 경제적 약자는 법조인이 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법조계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반론하실 건가요?

▲법조인 양성 시스템을 로스쿨, 그것도 야간이나 온라인 로스쿨도 없이 주간에만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시대착오적 발상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로스쿨 제도를 두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로스쿨을 나오지 않더라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2030 계층이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후보님의 어떤 점이 청년들에게 매력적일까요?

▲지금 우리 2030세대는 특정 진영논리에 따르지 않고, 사안에 따라 선택을 달리하는 ‘실용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좌우, 진보·보수 가리지 않는 ‘실용주의자’입니다. 진영을 떠나서 좋은 정책, 실력 있는 인사라면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의 실력과 실적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가 윤 후보님을 포함한 다른 후보님들보다 2030 세대에 더 어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입니다. 따라서 국민이 원하는 ‘더 나은 삶’을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제가 가진 민생 해결에 대한 책임감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경험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제가 가진 실력과 추진력으로 2030의 어려움과 민생 문제를 해결해나가겠습니다. 

“호남 유권자들을 믿는다”
“내 집 마련 기간 1/10로”

-청년들의 선대위 참여가 사실상 ‘들러리’가 아니냐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반론하실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오히려 ‘제가 청년들의 들러리’입니다. 선대위 청년들은 ‘스스로’를 위한 선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청년세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요, 대리인일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청년 선대위는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청년 선대위의 대표적 역할은 시민(청년)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 뜻을 받들어 후보의 공약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소확행 공약 중 하나였던 ‘탈모치료약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공약은 청년 선대위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리스너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출발한 공약입니다. 많은 분이 필요성을 공감해주셨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청년 선대위는 이재명을 잘 활용하고 있고, 이재명은 청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당선되시면 청년들을 어떻게 정부에 참여시키실 건가요?

▲제가 청년일 때도 기성세대가 당시의 청년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 단절 현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후위기, 저출생과 고령화, 산업전환 등 다가오는 다양한 문제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미래세대에게 결정권을 맡기는 것이 더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청년은 직접 정책에 참여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청년들이 정부 곳곳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습니다. 

정책설계, 예산편성, 집행까지 청년이 직접 관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청년정책을 담당하는 수석비서관 및 청년 특임장관을 임명하겠습니다. 범정부 청년정책 총괄 컨트롤타워인 국무총리 산하에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의를 둬 청년위원을 확대하겠습니다.

또 각 부처 ‘청년예산 총액배분 자율 편성’ 보장하고, 청년 당사자가 이끌어가는 청년의회를 상설하겠습니다. 국민참여예산에 청년참여예산 쿼터제 도입 등을 도입해 청년 정책에 대한 결정과 집행 과정에 청년들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평균 월급 기준, 내 집 마련 기간이 취직 후 20년에서 30년이라고 합니다. 후보님은 내 집 마련을 몇 년까지 단축시킬 수 있으신가요?

▲‘몇 년 단축’이라는 말보다, 주택 공급을 확실하게 늘려 내가 살아갈 집을 마련하는 데 부담을 덜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씀 드립니다. 주택 마련은 시장상황과 연계되기 때문에 언제까지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단정 지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정책으로 그 기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동산 정책 발표를 통해, 전국에 총 311만호의 주택을 신속히 공급하고, 인근 시세의 절반 정도인 반값 아파트 공급, 개인 선호와 부담 능력에 맞는 다양한 주택을 공급할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박근혜정부의 공급가격 기준을 조성원가 수준으로 다시 환원한다면 반값 아파트 공급도 가능할 것입니다. 집 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토지 가격 부담을 줄인다면 훨씬 저렴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계획들이 모두 이뤄진다면, 최대 기존 기간의 1/10 정도 수준까지는 단축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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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