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단속'에 뿔난 흡연자들, 왜?

꽁초 찍는 카메라 “몰카도 범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서울시 담배꽁초 무단 투기 단속은 2007년 강남구에서 처음 시작돼 벌써 햇수로 벌써 15년째다. 이젠 서울 모든 지자체에서 담배꽁초 무단 투기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무단 투기 단속의 존재를 모르는 흡연자는 사실상 0에 수렴한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단속 자체에 큰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방’이 아닌 단순히 ‘징수를 위한 단속’이나 ‘함정 단속’처럼 투기 장면을 채증하기 위해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는 ‘몰카 채증’에 대한 불만은 점차 커져가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4시경 시청역 인근 골목. 담배꽁초가 잔뜩 버려진 구석에서 흡연을 하던 20대 A씨는 두 중년 여성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의심스러운 느낌에 자리를 피하고자 서둘러 담배를 끄고 바닥에 버린 순간 뒤에서 한 중년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채증이 범법?

“담배 바닥에 버리신거 맞죠?”라며 의심스럽던 두 중년 여성을 가리켰다. 갑작스레 태도를 돌변한 여성이 “버리신 거 다 녹화됐습니다”며 A씨에 신분증을 요구했다. 

2013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등 30여 명이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진주의료원 재개원 6대 과제 실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 모인 의료인들은 경찰 채증이 사실상 ‘몰카’ 수준이라며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면서 법규 정신을 가지라고 외쳤다. 이들은 “경찰의 채증 역시 심각한 상황으로 범죄에 대한 증거수집이 아니라 주민들에 대한 감시 사찰인 것으로 보인다”며 “‘몰카’ 수준의 장비를 이용해 경찰이 무분별한 채증을 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주민 이모씨도 “경찰이 반대 주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강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날 시위를 펼친 반대대책위 대표 김준한 신부는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경찰에게 요구하는 것은 법을 지켜달라는 것 뿐”이라며 “경찰에게 이런 요구를 해야 하는 현실이 정말 참담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권력을 가진 경찰조차 증거수집을 위해 몰카를 찍는 건 범법행위다. 이는 최근 여러 차례 ‘몰카 범죄’ 가 기승을 부리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한 영상을 소지‧공유하는 문제의 심각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공영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은 엄연한 범죄입니다’”라는 문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곧 ‘몰카’ 행위는 증거를 수집할 때도 사용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주먹구구식 운영방식이 관리 부실로 이어지며 무단투기 단속팀이 자행하는 ‘몰카’ 채증은 인지하기조차 쉽지 않다. ‘흡연자’ 낙인과 ‘담배 꽁초를 버린 무단 투기범’이란 주홍글씨를 그 즉시 달게 돼 마치 현행범처럼 여겨진다. 

단속반은 보통 3인1조로 움직인다. 이 중 1명이 무단투기 모습을 동영상으로 몰래 찍어 단속 증거를 확보한다. 증거가 확보되면 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 “지켜봤다” “증거가 다 담겨있다”며 투기자가 버린 꽁초를 주워 제시하면서 과태료 처분을 내린다.

과태료를 부과받은 시민들은 주로 ‘함정 수사’와 ‘몰래 자신의 영상을 찍는 행위’ 등 법적으로 올바른지 묻는 동시에 ‘신분증 제시 요구’ ‘쓰레기통 설치 여부’ 등 예방 활동 미흡 등도 지적한다. 


무단투기 함정 단속 문제는 하루 이틀 된 이슈가 아니다. 단속이 시행된 첫해부터 많은 흡연자가 예방이 목적이 아니라 단속을 위한 단속인 것 같다며, 예방을 위한 계도가 아니라 흡연자를 몰래 지켜보며 꽁초를 버리기만을 기다린다고 불만을 토로해왔다.

지자체는 과태료 부과가 투기 예방 효과가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서울 중구청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단속의 우선 목적은 예방이 맞다”며 “꽁초 투기를 하지 말라고 언급하는 것보다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무단투기 방지 효과가 더 높다”고 주장했다. 

현장 잠복해 동영상 녹화 후 투기 적발
도넘은 과잉 단속…단속반도 처벌 대상?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해선 “딱히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계약직 공무원이 간단한 업무 교육만 받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태료 부과 업무에 투입되는 게 맞냐며 단속반의 자격 논란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이 같은 논란이 지속되자 서울 중구에서는 2015년부터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생활폐기물 무단투기 단속반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폐기물의 무단투기 단속의 운영 및 모든 권한은 각 구청이 가진다. 무단투기 단속반의 구성부터 운영, 단속팀의 홍보비 예산을 책정하는 등 모든 권한을 각 구청이 맡게 됨에 따라 각 구청마다 생활폐기물 무단투기 단속반을 채용하는 자격 요건 또한 상이하다. 

이에 일각에선 단속 수입 대비 단속 홍보비도 터무니없이 적어 ‘예방보다 과태료 부과를 위한 정책’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특별시 기후환경본부 생활환경과에 문의한 결과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서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5일 서울시 생활환경과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시청 업무는 3분기마다 담배꽁초 투기 단속 건수와 단속건의 징수액 등 통계지표 상의 처리업무만 할 뿐 현장에서의 단속 업무를 포함한 단속팀의 구성부터 모든 운영이 구청이 관리한다고 잘라 말했다. 

단속팀의 집행비와 예산 홍보비 등 관련 질의도 모든 운영비가 구청에서 관리된다고 답변했다. 또 단속 과정에서의 채증 관련 민원 건수를 묻자 이 또한 구청의 소관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단속 방법 매뉴얼과 관련 법규와 관련해 질의하자 “없다”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단속팀 관련 모든 권한이 구청에 있기에 잘은 모르겠으나, 현재 단속팀 채증 방식과 관련해 매뉴얼과 관련 법규는 마련돼있지 않다”면서 “구청마다 환경 미화원을 채용하거나 기동반 혹은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등 운영 방식부터가 달라 구체적인 매뉴얼을 구성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끊임없이 무단 투기 단속팀이 논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4월 ‘2020년 지역사회 건강조사 주요 결과’를 통해 성인 흡연율이 지난해 19.8%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조사는 2019년 전국 255개 보건소에서 약 900명씩 만 19세 이상 성인을 표본으로 선정해 진행됐다.

이는 건강의 문제와 직결되나 사실상 성인 5명 중 1명 꼴로 몰카의 위험에도 노출된 것이다.

한편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 1항11호(쓰레기 등 무단투기)에 따르면 담배꽁초나 껌, 휴지, 쓰레기 등 그 밖의 더러운 물건이나 못쓰게 된 물건을 함부로 아무 곳에나 버리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될 수 있다.

몰카 성범죄는 불법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행위 자체로도 처벌 대상이 되는 성범죄다. 정식 죄명은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이다. 영상물을 소지하거나 유포 시에는 더욱 큰 처벌을 받는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나 그 밖의 유사한 기계 장치를 이용해 사람의 신체를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할 때 성립하는 것으로 수치심 혹은 여러 욕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겁게 다뤄진다.


이런 몰카 불법촬영을 하다가 적발되면 실형 선고 시 형법상 성폭력 처벌법 14조에 의거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매뉴얼 없어

몰카 범죄는 버스, 공공 화장실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에서 은밀하게 범행이 이뤄지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성적 목적으로 인해 다중이용시설 침입죄가 추가된다. 이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될 수 있다. 다만 공무원의 경우 직무를 이행할 시 공무원법에 의거해 보호받는다. 따라서 공무원이 직무를 이행할 시에는 실형선고에선 배제될 수 있다.


<lyricki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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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